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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9-20 (목) 21:09
분 류 사전1
ㆍ조회: 1124      
[조선] 서얼 (두산)
서얼 庶孼

양반의 자손 가운데 첩의 소생을 이르는 말.

서는 양인(良人) 첩의 자손, 얼은 천인(賤人) 첩의 자손을 말한다. 고려 시대에는 서얼에 대한 차별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들어와서 주자학의 귀천 의식과 계급 사상이 지배 계급의 생각으로 자리잡게 되자 서얼의 등용에 제한을 두기 시작하였다. 서얼은 가정에서도 천하게 여겨 재산 상속권이 없었고 관직에 등용되기도 어려웠다.

조선 시대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법전인 《경국대전》에 따르면, 서얼은 문과나 생원, 진사시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여 양반 관료의 등용 시험인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박탈하였다. 때로 제한된 범위에서 등용되기도 하였으나 그것 역시 아버지의 관직 높낮이나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한계가 있었다. 이를 한품 서용(限品敍用)이라고 하는데, 문, 무 2품 이상 관리의 양인 첩 자손은 정3품, 천인 첩 자손은 정5품까지, 6품 이상 관리의 양인 첩 자손은 정4품, 천인 첩 자손은 정6품까지, 7품 이하 관직이 없는 사람의 양인 첩 자손은 정5품, 천인 첩 자손은 정7품까지만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얼들이 신분 상승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그 수도 계속 늘어나자 조선 명종 초인 1550년대에 들어와서는 서얼 허통(許通)이 되어 양인 첩의 경우에는 손자부터 과거에 응시할 수 있게 하되 유학(幼學)이라 부를 수 없도록 하였고 합격 문서에 서얼 출신임을 밝히도록 하였다. 16세기 말에는 이이와 최명길(崔鳴吉) 등이 서얼 허통을 주장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하였다.

1777년 정조가 서얼들이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길을 넓힌 ‘정유절목’을 발표하고 규장각에 검서관(檢書官) 제도를 두어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등의 학식 있는 서얼 출신들을 임명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차별 완화 조치가 시행되었으나 폐습의 뿌리를 없애지 못하다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완전히 폐지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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