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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3 (일) 20:04
분 류 사전1
ㆍ조회: 1214      
[고려] 부곡 (한메)
부곡 部曲

1) 한국의 전근대 사회에 존속하였던 특수 계층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을 부곡인이라고 한다. 부곡에 관해서는 《삼국사기》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주목(驪州牧) 고적조(古蹟條)>에 부곡이 삼국 시대부터 존재하였음을 알려주는 단편적인 기록이 있다.

고려 시대 부곡에 대해서는 《고려사》와 《세종실록》 <지리지>에 명칭과 위치가 실려있다.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고려 시대 부곡 집단은 신라 말·고려 초에 후삼국 통합 전쟁이라는 사회 변동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후삼국 통합 전쟁시 고려는 왕조에 저항한 호족 세력 지역의 주민들을 부곡민으로 편성하였고, 후삼국 통합 후에는 이 지역들을 법제적으로 부곡제라는 행정 구획으로 편성하여 군현제의 하부기구로 예속시켜 지배하였다. 부곡의 주민은 부곡리와 부곡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둔전(屯田)·공해전·학전(學田) 등을 경작하거나 군사 요충지에서 성을 수축하는 역을 부담하였다. 또한 국학(國學)에 입학하거나 승려가 되거나 관직에 진출하는 데에로 법제적으로 제한을 받았다. 고려 중기 이후 군현제의 변동으로 수취 체계가 변질되면서 부곡은 고유의 성격을 탈피하여 점차 소멸하였다.

2) 중국 고대의 사가(私家)에 속하는 천민(賤民)의 일종. 여성 부곡은 객녀(客女)라고 한다.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말기에 하나의 신분으로 성립하여 당(唐)나라 때까지 존재하였다. 최하층 노비와 마찬가지로 독립된 호적을 가질 수 없었고, 균전법(均田法)에 의한 토지 배분도 받을 수 없었으며 세습적으로 주인집에 예속되었다. 다만 노비와 달라서 공식적으로는 매매되지 않았고 가족을 이루며 성(姓)이 있는 등, 법적으로는 노비보다 상위에 있었다.

그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우선 부곡이라는 말이 원래 군대 편성에 관계되는 말이었던 사실로 보아 남북조시대 때 사병(私兵)으로 활동했던 노비가 승격된 것이라고 하는 설, 또 가난 때문에 다른 집에 맡겨져 양육되다가 전락한 것이라고 하는 설과 노비로 몰락한 자가 불완전한 형태로 해방되면서 생겼다고 하는 설 등이다. 당나라 때의 법률에는 부곡에 관해 상세한 규정이 있다고 하나 구체적인 사항을 기록한 사료가 부족하고 새로 출토된 투르판 문서의 연구 등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이균영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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