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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7 (일) 07:31
분 류 사전1
ㆍ조회: 1223      
[조선] 김덕령 기록=최황의 졸기 (선조실록)
《 선조 165 36/08/01(갑신) / 해성군 최황의 졸기 》

해성군(海城君) 최황(崔滉)이 졸하였다.

상이 정조시(停朝市)와 별치부(別致賻)를 명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최황은 한양인(漢陽人)인데 사람됨이 각박하고 편급(偏急)하며 남을 해치기를 좋아하였다. 기축년 역변(逆變)이 일어났을 때에 정철(鄭澈)과 서로 심복이 되어 역적을 함정으로 삼아서 큰 옥사를 꾸며 사류를 죄에 빠뜨렸다. 최영경(崔永慶)이 억울하게 죽은 일도 다 최황이 도운 것이 없지 않고, 조대중(曺大中)의 일족이 주벌(誅罰)된 것도 다 최항이 한 일이다. 조정에서 벼슬한 40여 년 동안에 두루 벼슬하여 이공(貳公)의 지위까지 이르렀다. 이때에 이르러 죽었으나, 아깝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신은 논한다. 난리 뒤에 호남에 김덕령(金德齡)이라는 자가 있었다. 행오(行伍)에서 일어났는데 용력이 뛰어나 이름이 적중(賊中)에 알려져 은연중 호표(虎豹)의 형세가 있으므로 상이 손수 장군이라 써주어 권장하였다. 뒤에 역적의 무함을 받아 금부(禁府)에 나치(拿致)되니, 사람들이 누구나 그 정상을 억울하게 여기고 용맹을 아까워하였으며 상도 풀어주려는 뜻이 있었으나, 최황이 상에게 그 용맹 때문에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여 목에 칼을 씌우고 손에 수갑을 채워서 끝내 옥중에서 죽게 하였으므로, 도중(都中)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그 억울함을 가엾이 여기고 최황에게 눈을 흘기고 있다.】

【원전】 24 집 509 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출전 : 선조실록 165권 선조 36년 8월 1일 (갑신)

《 선수 037 36/08/01(갑신) / 해성군 최황의 졸기 》

해성군(海城君) 최황(崔滉)이 졸하였다. 황은 관청에서 일을 처리함에 있어 본래 민첩하다는 칭찬이 있었다. 다만 성품이 각박하고 도량이 좁아서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축년의 옥사에서는 실로 누구를 함정에 밀어넣어 빠뜨린 일이 없고, 김덕령(金德齡)의 옥사에서도 죄를 얽어서 모함한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일을 기록하는 자가 이것으로 그를 폄론(貶論)했으니, 이는 유감을 품고 은밀히 배척한 것이다.

【원전】 25 집 690 면
【분류】 *인물(人物)

출전 : 선조수정실록 037권 선조 36년 8월 1일 (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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