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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14 (금) 05:22
분 류 사전2
ㆍ조회: 2732      
[고려] 고려 역사 개관 (한메)
고려 역사 개관

관련 문서

한국사의 시대구분
원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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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회
조선사회
근대사회
민족의 수난과 저항
현대사회

[고려사회]

<고려왕조의 성립과 발전>

신라 말 고려 초에 걸쳐 한국 고대사회는 중세사회로 큰 전환을 보게 되었다. 이로써 한국의 역사는 한 민족 한 사회 안에서, 그리고 같은 지역 안에서 자기 사회모순을 극복하고 중세문화를 성립시킴으로써 고대에서 중세로 계기적(繼起的)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성취는 민족문화의 저변폭의 확대와 민족문화 능력의 전체적 증대에서 온 것이었고, 보다 강력한 민족문화전통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중앙의 진골귀족(眞骨貴族) 중심이고, 수도 경주의 집중적인 고대문화에 반발하면서 성장한 지방호족(地方豪族)이 주체세력이 되어 성립시킨 중세문화로서의 고려문화는 2가지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로 고려문화는 안으로 신라시대의 고대문화적 모순을 극복하면서, 그리고 밖으로는 중국과 다른 성격의 전통과 사회기반 위에서 문화밀도가 크게 높아지고 개성 있는 문화를 성립시켰다. 그런 까닭으로 선진적인 송(宋)문화를 수입함에 있어서도 모방적인 단계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독특한 개성을 성립시킬 수 있었다.

중앙집권체제의 운영원리로서의 유교정치이념(儒敎政治理念)의 수립, 그리고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의 속장경 간행에 나타난 바와 같은 국제적인 문화활동,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독창적인 선교통합사상체계(禪敎統合思想體系)의 수립 등에 나타난 새로운 문화능력의 발휘가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고려문화는 실로 이러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말기에 가서 대내외의 시련으로 그 국가 자체는 멸망하였으나, 그 사회 안에서 다음 시대의 주인공을 양성함으로써 민족문화의 계속적인 발전을 가능케 하였다.

둘째로 고대문화의 모순을 자체적으로 극복하였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오는 문화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곧 새로운 문화의식을 토대로 한 보다 강력한 민족의 공동체의식(共同體意識)을 성립시켰다. 태조 왕건(王建) 때 후백제와 연결된 거란(契丹)을 경계하고 거란에 망한 발해의 유민(遺民)을 포섭하면서부터 북방의 유목민족(遊牧民族)이나 반농반목(半農半牧)의 민족과는 대립되는 단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반농반목의 문화단계에 머물러 있던 거란의 침입에 대해서 자기 문화의 수호관념이 강렬하게 성립되어 있었고, 이러한 고려인의 문화의식과 민족의식은 대거란전쟁(對契丹戰爭)에서 커다란 구실을 하였다. 이 전쟁에서 성공하여 거란의 팽창을 막은 것은 안으로 민족의 문화능력에 대해 더욱 자신을 갖게 하였고, 밖으로 고려ㆍ송ㆍ요(遼)가 정립(鼎立)하는 국제세력의 균형을 유지하게 하여 문화의 발전을 한층 더 가속하게 하였다. 그리고 뒤에 가서도 그러한 문화능력의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유목민족인 몽골의 침입에 대항해서 30여 년에 걸친 항전을 전개하여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농민반란과 무인정권>

12세기 이래 고려 정계에서는 권력투쟁이 격화되어 지배체제는 동요되었다. 또 지방에서는 농민의 유망(流亡)과 반란이 일어났다. 그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그때까지 문신에게 업신여김을 받던 무신이 반란을 일으켜, 일거에 정권을 장악하였다(1170). 얼마간 무인 상호간의 권력투쟁이 계속되다가 1196년 최씨무인정권(崔氏武人政權)이 성립하였다. 이것은 한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인정권은 몽골의 침입에 따른 정세변화를 겪다가 무너지게 되었다.

<외압과 몽골의 침입>

고려시대는 아시아의 북방민족이 활약하여 남방 농경민족을 괴롭히던 시기였다. 고려도 북방민족의 남침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10세기 말∼11세기 초에 걸쳐서는 거란(遼), 12세기에는 여진(金), 13세기 이래 몽골(元)족의 침입을 받았다. 특히 몽골은 약 30년(1231∼59)에 걸쳐 고려 전토를 구략(寇掠)하였다. 최씨무인정권은 완강히 항전하였으나, 화친을 주장한 문신파에게 무너졌다(1259).

이후 고려는 몽골의 번국(藩國)으로 전락하여 내정간섭을 받았고, 2차례의 일본원정에 참전할 것을 강요받았다. 이어 14세기가 되자 왜구(전기 왜구)가 내습하여 전 해안선뿐만 아니라 오지까지 황폐하게 되었다. 이러한 외환 중에서 토지는 소수의 권력자 손에 집중되었고, 다수의 농민은 토지를 잃게 되었으며 관료 가운데에도 토지와 녹(祿)의 지급에서 누락되는 사람이 나타났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대한민국-역사' 항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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