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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1-04 (월) 15:24
분 류 사전2
ㆍ조회: 1134      
[조선] 김석주의 졸기 (숙종실록)
《 숙종 015 10/09/20(계미) / 청성 부원군 김석주의 졸기 》

청성 부원군(淸城府院君) 김석주(金錫胄)가 졸(卒)하였는데, 나이가 51세이다.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서 거애(擧哀)하니 승지(承旨)·사관(史官)이 입시(入侍)하여 조애(助哀)하였다. 임금이 곡(哭)하며 몹시 슬퍼하였고, 그를 위해서 2일 동안 소찬(素饌)을 올리게 하였다.

김석주의 자(字)는 사백(斯百)으로 젊어서 문한(文翰)으로 이름이 있었는데, 등제(登第)하자, 청의(淸議)를 가진 자들이 초친(椒親)인 까닭에 혹은 허여(許與)하지 아니하기도 하였다. 김석주의 조부 김육(金堉)은 일찍이 대동법(大同法)을 힘써 주장하여 김집(金集)과 의논이 화합하지 아니하였는데, 김집이 이 때문에 조정을 떠나갔고, 김육도 서로 기꺼이 굽히지 아니하니, 사람들이 이로써 김육이 사류(士類)와 서로 좋지 않았다고 일컬었다.

김육을 장사할 때에 미쳐 김좌명(金佐明) 등이 참람하게 수도(隧道)를 파니, 대신(臺臣) 민유중(閔維重) 등이 법에 의거하여 죄주기를 청하였다. 이때 송시열(宋時烈)이 이판(吏判)이 되어 자못 그 논의를 도와 곧 대간의 논의와 다른 자는 내치고 같은 자는 올리니, 이 때문에 김석주의 집에서는 사류(士類)를 깊이 원망하였다.

갑인년 이후에 시사(時事)가 크게 변하여 송시열이 가장 무거운 죄를 받았고, 일반 사류(士類)도 거의 모두 쫓겨나니, 사람들이 곽씨(霍氏)의 화(禍)는 참승(驂乘)한 데에서 싹텄다고 하였다.

김석주가 한편의 사람들과 서로 미워하지 않았고, 또 폐부지친(肺腑之親)으로서 임금의 권우(眷遇)를 받아 몇 해 사이에 낭서(郞署)에서 경재(卿宰)의 지위(地位)에 올랐는데, 스스로 국가와 휴척지신(休戚之臣)으로서 시배(時輩)의 하는 바가 음흉하고 궤휼(詭譎)하고 방자하여 장차 반드시 집을 해(害)치고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을 눈으로 보고는 비로소 깊은 근심을 가지게 되어 겉으로는 비록 옳다고 하였으나 속으로는 서로 도모하려 하였다.

정(楨)·남(柟) 등이 몰래 불궤(不軌)를 꾀하자, 윤휴(尹鑴)·허적(許積)의 무리가 체결(締結)하고 반거(盤據)하여 성세(聲勢)를 서로 의뢰하자, 김석주가 밤낮으로 이를 우려하여 마음과 기지(機智)를 다 써서 다방면으로 형찰(詗察)하고, 은밀히 예단(睿斷)을 협찬하여 마침내 흉얼(凶孼)을 쓸어 없애고 다시 종사(宗社)를 편안하게 할 수 있었으니, 그 공이 크다고 이를 만하다.

경신년 경화(更化) 후에 일종의 시의(時議)가 스스로 사론(士論)에 핑계대어 이르기를, ‘당초에 환국(換局)한 거조는 일이 혹은 바르지 못하였다’ 하고, 자못 공박(攻駁)하여 배척하는 뜻이 있었다. 송시열(宋時烈)이 말하기를,

“예전에 조여우(趙汝愚)가 영종(寧宗)을 세운 것은 진실로 인륜(人倫)의 막대한 변고인데, 그 일이 한탁주(韓侂胄)와 환관(宦官) 관례(關禮)로 말미암은 것이었지만, 그 종사(宗社)를 온전하고 편안하게 한 공을 주자(朱子)는 잘못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더불어 같이 일하였다.

또 본조(本朝)의 청양군(靑陽君) 심의겸(沈義謙)도 일찍이 내통(內通)의 비난이 있었으나, 문성공(文成公) 이이(李珥)는 그가 사림(士林)을 붙들어 보호한 공이 있음을 허여하였었다. 지금 김석주의 공은 또 심의겸에게 비할 뿐만이 아닌데, 그 일이 비록 한결같이 정당한 데에서 나오게 하였다 하더라도 또한 이로써 허물할 수는 없다.”

하였다. 김수항(金壽恒)의 뜻도 시의(時議)와 같았는데, 드디어 송시열과 김수항을 아울러 공격하여 마침내 이로써 기사년의 화(禍)가 싹트게 되었다. 오직 신범화(申範華)는 악당을 편들어 준 자취가 있었는데, 김석주가 친척인 까닭에 그 죽음을 벗어나게 하려고 그 훈공(勳功)을 추록(追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으니, 인심이 자못 불울(拂鬱)하였다.

대개 추록한 일은 오로지 김석주에게서 나왔는데, 행문(倖門)을 크게 열어서 거듭 국체(國體)를 손상하므로, 공의(公議)가 매우 이를 비난하였다. 그의 평생 시종(始終)의 자취를 논하건대, 비록 그 소위(所爲)가 순수한 정도(正道)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라가 위의(危疑)한 때를 당하여 왕실(王室)에 마음을 다해 주선한 것이 마땅함을 얻었으므로, 탁연(卓然)히 주석지신(柱石之臣)이 되어 한때의 의뢰하는 바가 무거웠는데, 갑자기 죽어서 흉한 무리들로 하여금 기뻐 뛰게 하고 국세(國勢)가 외롭고 위태롭게 되니, 비록 평일에 좋아하지 않던 자들도 나라를 위해 탄식하여 애석해 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문장 또한 초한(峭悍)하고 법이 있어서 울연(蔚然)히 근래의 명가(名家)가 되었고, 저술한 문집(文集)이 세상에 행한다. 오직 호사(豪奢)가 습관이 되어 예(禮)로써 자율(自律)하지 못하고, 집을 넓게 일으키고 오랫동안 권세를 잡았으므로, 청의(淸議)가 자못 이를 단점(短點)으로 여겼다.

【원전】 39 집 11 면
【분류】 *인물(人物)

출전 : 숙종실록 015권 숙종 10년 9월 20일 (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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