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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4-20 (일) 20:01
분 류 사전2
ㆍ조회: 1079      
[민족] 한민족의 의식과 생활 (민족)
한민족(의식과 생활)

세부항목

한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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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참고문헌)

한국인의 의식, 사회적 성격, 또는 가치관을 논할 때 흔히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다. 그 하나는 한국인에 관한 기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데서 빚어지는 오류이다. 기록은 의식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기록을 언제, 누가, 무슨 목적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작성한 것인가 하는 점들이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 역사에 관한 기록 가운데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는 고려시대에 들어와 기록된 것이다. 그것도 한자를 사용할 수 있는 지배층에 의하여 편찬된 것이고, 다분히 삼국 중 신라의 입장에 치우쳐 있다. 기록의 내용은 정치적ㆍ군사적 사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기록은 고구려나 백제, 일반서민, 일상생활에 관련된 부분은 무시되어 한국인의 의식을 왜곡시켜 파악하게 하기가 쉽다.

또 한 가지 빠지기 쉬운 오류는, 앞의 오류와 같은 맥락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한국인의 의식을 역사시대에 들어선 뒤의 사건들에 의해서 파악하려는 경향이다. 역사시대에 한국인이 어떤 자연환경과 사회ㆍ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생활하였는가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한국인의 의식을 파악하려는 방법에는 일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의식은 보다 더 뿌리가 깊고 넓은 무의식(無意識)의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무의식에 잠겨 있는 내용이 인간의 오랜 진화와 문화적ㆍ역사적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이러한 방법으로는 한국인의 진실된 의식과 무의식의 내용을 옳게 파악하기 어렵다.

물론, 역사시대 이전의 한국인의 생활체험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료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언어학ㆍ고고학ㆍ인류학 등의 영역에서 국내의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는 한편, 과거에 우리 민족과 깊은 관계에 있던 민족들에 대한 연구를 참고함으로써 선사시대에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의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하여 역사시대를 거치는 동안에 형성된 의식도 더욱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의식]

한국인은 일찍부터 한족(漢族)과 인접하여 살아왔고,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는 문화적ㆍ정치경제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한국인의 언어가 알타이어 계통으로 한족의 언어와 근본적으로 다르듯이 한국인의 종교적 의식 가운데 가장 뿌리가 깊은 것은 흔히 샤머니즘이라고 불리는 본래적 민간신앙 및 그 신앙과 관련된 개념들이다.

원시신앙으로서의 샤머니즘은 세계 여러 곳에 존재하였으며, 한국의 샤머니즘이 본래 어떤 것이고 다른 민족의 샤머니즘과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샤머니즘적인 신앙의식이 한국인 일반에 상당히 뿌리깊이 박혀 있어서, 오늘날에도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는 샤머니즘적인 관행에 따르는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중국에서 전래된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나 불교 및 도교의 요소들과 혼합되어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되었으며, 전통사회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흥종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샤머니즘적 요소가 한국인의 의식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고 하여서 그것이 현대사회에서 과학적인 지식과 기술의 활용을 억제할 정도로 의식의 표면에 강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사회의식]

유교는 삼국시대에 이미 전래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한국인의 의식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윤리로서, 그리고 정치철학으로서 양반 치자계급(治者階級)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예(禮)를 존중하고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강조하며 상위자와 하위자 간에 권위적 통제와 절대적 복종의 관계가 요구되었다.

또한, 중앙집권적인 관인신분사회에서 부귀를 누릴 수 있는 신분은 양반에 국한되어 있었고, 따라서 한국인에게는 관직에 오르려는 신분지향적 의식과 관존민비(官尊民卑) 관념이 강하다.

그리고 관직에 오르는 합법적인 통로가 유교적 소양을 지니고 학문에 통달하여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었으므로 학문을 존중하는 의식이 강하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강한 교육열의 의식적 근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양반 치자(治者)들은 공허한 이념과 형식적인 예를 숭상하는 데 치우쳐 노동과 생산활동을 경시하였기 때문에 경제적ㆍ사회적 발전을 추구하는 데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였다. 조선 후기에 일부 양반들 사이에서 실학사상(實學思想)이 대두하였지만, 그 영향력은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바꿀 정도로 크지는 못하였다.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관념 중의 하나는 효(孝)이다. 그리고 효를 중요시하는 가치관념과 세습적인 신분제도로 말미암아 조상들의 관직과 공덕을 족보에 밝히고 제사를 통하여 조상을 숭배하는 한편, 가계(家系)를 계승하고 가문의 위세를 떨치려는 의식이 양반들 사이에서는 매우 강하였고, 이러한 관념은 하층신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말미암은 가족중심주의적 관념은 현대사회에도 한국인의 사회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령 한국인이 중동(中東)과 같은 외국의 어려운 생활조건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데에는 행복을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가족 전체로서 성취하고, 가장으로서 가문을 빛내려는 전통적인 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가족을 넘어서서 보편적인 원리에 의하여 단결하고 사회에 기여하려는 의식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조선시대의 사회현상을 보고 한국인은 사대주의적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단결을 하지 못하는 민족적 성격이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작은 나라가 이웃의 큰 나라를 의식하는 것은 비단 한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양반 치자들 사이에 사대주의적 관념이 있었다는 것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거기에는 조선 말기에 이르러 중국에 정치적으로 의존하려는 정치인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과장된 점도 없지 않다.

더욱이 양반들 사이에 어느 정도 그런 관념이 있었다고 하여도 그것을 한국인 전체에 확대 적용하여 마치 민족성을 형성할 정도로 굳어진 의식인 것처럼 논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사대주의적 관념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큰 국가와의 외교관계를 매끄럽게 유지하기 위하여 정책적인 차원의 사대방책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민족이든 자신의 자존을 지키려는 독립정신은 있을 것이며, 더욱이 수천 년 동안 강대국에 위협과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도 민족과 역사를 굳건히 지켜온 것은 자존과 독립정신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당쟁(黨爭)의 현상을 보고 한국인이 단결하지 못하는 민족성을 가진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역시 잘못된 것이다. 물론 공개적인 경쟁의 여지가 적고, 관직의 수에 비하여 관직에 오르려는 희망자가 훨씬 많았던 조선왕조에서 양반들 사이에 정치적 파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배계급 내부의 정치권력을 둘러싼 대립은 어느 나라 역사에서나 항상 존재하는 것이며, 조선시대의 그것은 붕당정치(朋黨政治)라는 틀 속에서 오히려 반대 당파의 존재와 상호비판을 전제로 하는 나름대로의 발전된 운영원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와 같은 한국인의 의식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우리 민족의 자성(自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국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악의적으로 날조한 식민사관(植民史觀)인 타율성론ㆍ당파성론 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서민의식]

조선 말기에 한국사회를 관찰한 외국인들의 기록 중에는 촌락에서 농민들이 민주적인 자치단체를 조직하여 훌륭한 공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감명깊게 서술한 것들이 있다.

조선시대의 일반 서민들은 관인이나 양반들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계(契)ㆍ두레 등을 통해서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수습하기 위하여 상호 부조하며, 영농을 비롯한 경제적ㆍ사회적 활동들을 공동의 노력으로 효과있게 전개하여 왔다. 이것을 보더라도 한국인이 단결하지 못한다는 평가는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한국의 문화를 한(恨)과 슬픔에 의하여 특징짓기도 한다. 지배층의 압박에 시달리고 외세의 침략 밑에서 신음한 경험이 많은 한국인들에게 그러한 측면이 없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반 서민들이 낙천적이고 해학을 즐기며 율동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정치이념으로서 숭상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치자계급에서의 일이지 서민의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생활면에서 보면 유교의 영향은 정치제도와 가족제도에 크게 미쳤지만, 일반 서민의 일상적인 의식주생활에 있어서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는 본래적인 문화적 요소를 보존하여 온 면이 더 강하다.

또한, 서민들은 샤머니즘을 비롯하여 토속적 신앙의식은 강하지만, 외래 종교의 영향은 강하게 받지 않아 왔다. 그리하여 그 종교들에서 강조하는 보편적 윤리의식과 내세관(來世觀)보다는 현세적(現世的)이고 실용적인 사고를 취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서민들은 현실의 변화에 부응하여 신축성 있게 대처하는 능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 기독교 등 서구의 종교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서 사회 전체적인 흐름을 이끄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바로 서구문물의 유입에 따른 현실의 변화와 부응이라는 대처능력의 한 방편이라 생각된다.

[민족의식]

한국인의 생활터전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며, 대륙에 접한 북쪽 경계는 백두산과 거기서 흘러내리는 두 개의 강으로 분명하게 갈라져 있기 때문에 민족의 동일성과 문화적 고유성을 견지하기에 비교적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형성된 한국인의 민족의식은 전통시대에 있어서 지배계급이 중국으로부터 정치적ㆍ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모화적(慕華的:중국에 기대고 따름)이지 않다. 조선 말기로부터 한국인은 민족적 자주의식을 발휘하였고, 그것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으면서 반일감정을 깊이 간직한 민족의식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한국인의 민족의식은 배타적이지 않으며, 서방세계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로부터 한국인은 단결된 행동으로 위기에 대처하였으며, 서방세계에서 발전한 민주주의의 가치관념과 문화ㆍ기술 등을 적극 수용할 수 있었다.

한국인의 민족의식은 광복 후 남북분단과 6ㆍ25전쟁의 처참한 체험을 통하여 반공적인 감정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인이 강한 반공의식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한편으로는 통합된 민족의식이 한국인의 정신 기반에 깔려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광복 후 식민지 통치세력이 붕괴하였고, 일제강점기에 사회의 상층에 있던 양반지주계급이 농지개혁(農地改革)에 의해서 몰락하였으며, 새로운 시대에서 주도적 임무를 담당할 신진세력의 대두를 가로막는 전근대적 요소들이 무력해지거나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복지사회 건설과 의식개혁]

최근까지 한국인의 민족성ㆍ가치관ㆍ의식내용 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리하여 의식개혁의 필요성이 다양하게 제기되었고, 실제로 구체적인 운동도 전개되었다.

근대화 초기에 있었던 문명개화운동ㆍ애국계몽운동을 비롯하여 지역사회 개발운동, 5ㆍ16군사정변 후의 국민재건운동ㆍ새마을운동, 그리고 제5공화국에서의 사회정화운동과 의식개혁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운동들과 더불어 광복 후 일관해서 강조되어 온 중요한 가치관념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 생활의 합리화, 허례허식의 배제, 민족주체성의 확립, 민주주의의 신장과 인권의 존중, 국민총화와 국가안보, 경제적 번영, 근대적 시민의식의 확립 등이었다. 이것들은 물론 한국인이 당면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보다 행복한 내일의 복지사회를 이룩하는 데 긴요한 것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지나치게 정부 차원에서 국가 위주로 특정한 가치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개인에게 있어서 국가가 매우 중요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욱이 국가의 안보가 항상 위협받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한국인 각자가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려는 노력을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떠나서 국가가 성립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동시에 개인의 존엄성과 개인의 생활터전인 가족과 직장을 튼튼히 하는 데 필요한 가치관도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후자의 측면을 등한시함으로써 오히려 국민 각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국가에의 기여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

둘째, 정신혁명이나 의식개혁이 말로 강조함으로써 달성될 듯이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필요한 말은 해야 하며, 특히 듣는 사람측의 동기 부여에 따라서는 상당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판에 박은 말의 기계적인 반복은 경우에 따라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의식은 통합된 자아의 주체적인 체험이며, 따라서 그것은 개인이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련 밑에 책임 있게 살아가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책임감 있는 자기실천이 없이 말만 한다고 해서 의식이 개혁될 수는 없을 것이다.

셋째, 의식개혁이 법의 준수, 질서 유지, 상위자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는 데 그치고 비판ㆍ항의와 같은 갈등의 측면을 무시 또는 경시함으로써 오히려 개혁보다 정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불가피하게 갈등 속에서 살고 있다. 다른 사람과 합일화(合一化)의 극치에 도달하는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항상 어느 만큼의 갈등이 내재하여 있다. 갈등은 피차에 긴장감을 일으키고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바람직한 상태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이러한 갈등을 흡수하고 해소시키면서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협동하여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하고 문화가 풍부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립과 갈등이 서로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힘과 정당성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 위에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서 높은 수준의 공동생활을 이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의식개혁의 방향일 것이다.

넷째, 의식개혁은 흔히 과학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고 그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질의 풍요를 가져오려면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경제적 활동을 합리적으로 조직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생활에 있어서는 과학적 방법과 합리적 사고방식을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합리를 넘어서서 오히려 비합리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

경제발전이 진행되고 물질적으로 풍요해짐에 따라 한국인이 지나치게 물질주의ㆍ황금만능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삶의 진실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인간 자체를 수단시함으로써 실존(實存)을 상실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산업이 발달한 서구 선진사회에서는 벌써부터 기계적 물질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위기에 처하여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리하여 덜 기계적이고 물질적이었던 동양인의 의식형태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요소 또는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그리하여 인도의 불교나 힌두교, 또는 중국의 도교나 그 밖의 사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러한 동양의 철학사상을 재평가하려는 기운이 일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본래적인 우리의 의식형태를 잘 모르면서 덮어놓고 부정적으로 보는 한편, 외래적인 서방사회의 의식형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러나 점차 주체적인 자세를 다지는 가운데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 또는 외국인 혐오)와 제노피리아(xenophilia:외국 또는 외국인 선호)가 혼합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우리의 본래적인 의식을 냉정하게 밝히고 다각도로 검토하는 한편, 서구적인 관념에 대해서도 비판적 자세를 취하여 선택적 평가를 가함으로써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데 필요한 새로운 정신체계를 창조해 나가려는 기운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만갑>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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