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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1-19 (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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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060      
[조선] 근대 태동기의 정치 개관 (7차 지도서)
(1) 개관

일제 강점기에 분파적 민족성과 관련하여 정쟁(政爭) 내지는 당쟁(黨爭)으로 이 시기 정치사가 설명되다가 1980년대 붕당정치론(朋黨政治論)이 등장하면서 이를 역사적 사실로서 객관화하여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정쟁의 양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정치의 운영 방식이나 그 이론적 근거가 되는 정치 사상, 제도 등 다방면에 걸친 연구가 진행되었다. 아울러 붕당 정치론이 비록 16, 17세기 연구에 접근하려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조선 후기 정치사에 대해 새롭게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함으로써 정치사 연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각 왕대별로 붕당 정치의 운영 원리와 실상에 대해 접근이 이루어졌다.

붕당 정치론이 적용되는 17세기 정치사 연구가 활성화된 반면에 18세기 이후에 대해서는 이직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는 환국(換局)과 탕평(蕩平)으로 이어지는 이 시기를 새로운 세력이 대두하여 새로운 정치 운영을 이끌었다기보다는 흔히 붕당 정치의 파행과 그 수습이라는 시각으로 이해한 데서 온 결과이다. 1990년대부터는 환국과 탕평 시기에 중심적인 위상을 갖게 된 왕권을 중심으로 왕실의 구성과 활동이 새롭게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또, 이 시기의 일익을 담당했던 사회 세력의 역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 역시 새로운 세력의 대두라는 측면에서 주목되는 것이다.

한편, 18세기 정치사의 특징은 탕평 정치라 말해지는데, 탕평 정치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같은 탕평 정치기로 말해지는 영조와 정조대 탕평은 그 성격이나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음이 지적되었다. 그리하여 영조대 탕평에 대해서는 이를 주도한 정치 세력을 기준으로 그 성격을 말하거나, 정치 운영의 형태로 정의되기도 하나 아직 이 시기의 탕평 정치에 대해서는 충분한 성과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반면, 같은 탕평 정치기라 말해지는 정조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다. 그리고 화성(華城)이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고 화성성역의궤가 공간되는 등으로 인해 화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동시에 정조대 탕평 정치의 개혁성 등이 말해지기도 한다. 그 결과 정조대는 왕조 중흥의 꽃이 활짝 핀 전성기라거나 정치 정의에 힘쓴 탕평의 시대 또는 서유럽의 르네상스기에 비견되는 조선의 르네상스기라고 말해질 정도이다.

정치 세력과 관련해서는, 각 붕당의 정치적 성격 등에 대한 규명이 이루어지기도 하여, 노ㆍ소론의 차이를 의리론과 실리론의 입장에서 접근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숙종대 전반기에 발생한 서인의 노ㆍ소론 분당 원인을 사상적으로 접근하거나, 갑술환국 이후 실세한 남인의 분화 문제라든지 영남 남인과 기호 남인과의 제휴 관계 등이 규명되기도 하였다. 한편, 1980년대부터는 정치 세력과 관련되어 18세기 후반 이래 경화거족 또는 경화사족에 대한 일련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주로 연암 박지원과 그 제자들의 출신 성분과 학문 경향을 통해 경화사족의 실체에 접근하였다.

세도 정치기에 대해서는 최근에 한 공동 연구의 성과를 통해 이 시기 정치사를 정치 세력, 정치 구조, 정치 운영, 정치 운영론으로 나누어 총체적으로 다루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세도 정치기를 규정하는 최대의 갈등 관계를 안동 김씨 세도 정권과 이에 대한 비판 세력으로 결집하였던 반안동 김씨 세력과의 대립 갈등으로 파악하고 그들의 정치적 대립을 살핀 연구가 발표되는 등 종전에 부정적으로만 인식되어 오던 세도 정치기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되고 있는 것은 최근의 정치사 연구의 새로운 경향으로 주목된다.

정치 세력과 관련해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특히 주목되는 존재가 산림(山林)이라는 존재이다. 산림은 과거를 통해서 관료로 진출하던 일반적인 정치적 진출 경로와는 달리 천거에 의해서 특정한 관직을 제수받았다. 산림은 정치가 학문, 사상과 연결되어 학문적 쟁점이 정치적 쟁점으로 연장되었던 조선 후기 정치사의 특성을 결정짓는 존재이다. 이러한 산림에 대한 개념이나 정치적 성격, 시대적 변천 등에 대해서 연구가 이루저졌으며, 이러한 산림이 생애와 사상, 그리고 활동이 밝혀졌다. 이 밖에도 지방 사족의 정치 활동이라 할 수 있는 유소(儒疎)가 정치사의 주제로 부상하여, 조선 후기 유소의 동향 및 유생들의 공론의 변화 양상을 정국 동향과 검토하면서 이를 공론(公論) 정치로 규정한 연구가 나오기도 하였으며, 개별적으로 정조대의 영남 만인소가 검토되거나 성균관 유생들의 공관(空館)이나 권당(捲堂) 등에 대해서도 검토가 이루어졌다.

정치 기구와 관련되어서는 조선 전기 정치 기구와 같이 의정부나 6조, 승정원 등과 같이 개별 기구에 대한 제도사적 접근은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그에 비해 조선 후기 최고의 권력 기관으로 자리 잡은 비변사(備邊司)에 대해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비변사에 대한 연구는 초기에는 주로 개설적인 언급에 그치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비변사의 직제나 운영 등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다. 비변사에 대해서는 이외에도 18세기에 중앙에서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8도구관당상제가(八道句管堂上制)가 검토되거나 세도 정치기에 비변사의 군사권ㆍ재정권 장악과 비밀 회의를 통한 의사 결정 방식, 의천권(擬薦權)의 확대된 범위와 실제 의천 참여자의 감소를 밝힘으로써 세도 정치기에 핵심 기구였음을 밝힌 연구가 있다.

비변사와 함께 조선 후기 정치 기구로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정조가 설치한 규장각(奎章閣)이었다. 규장각은 정조 연간의 정치 기구로서, 그리고 학술 기관으로 확대되면서 정조의 왕정을 지원했던 기관으로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그리하여 정조와 규장각의 관계라든지 19세기 이후 변화 모습 등에 대해서 밝혀졌으며, 1980년대 전반기에는 규장각 초계 문신(招啓文臣)과 탕평책의 제도적 장치로서의 역할, 조선 초기 집현전(集賢殿)과 관련성에 주목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17세기 전후부터 당하관 관료, 조직을 줍도하면서 당상관의 견제 역할을 하던 이조 전랑이나 한림, 홍문관, 사헌부 장령(掌令)이 담당하던 청요직에 대해서는 이중환의 택리지를 분석하여 사림 정치의 운영 구조를 밝히거나 탕평 정치하에서 청요직의 통청권이 혁파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언급 정도가 있을 뿐이다. 흔히 이조 전랑을 포함해 이른바 언관권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풍문(風聞)이나 처치(處置)ㆍ물론(物論) 등에 대해서는 그 실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관리의 선발 문제와 관련되어서는 홍문록(弘文錄)을 중심으로 한 청요직과 비변사의 인사 의천권(擬薦權), 산림과 천거제와의 관련성에 대한 규명이 있다. 이에 따르면 경국대전에 근거한 청요직의 인사 관행이 16세기에 홍문록과 전랑을 중심으로 확립하였는데, 동시에 인사권도 분화되어 당하관의 통청권이 전랑에게 귀속하였고, 17세기를 거치면서 당상관의 인사권이 비변사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여 비변사 당상과 군영 대장 및 변방 요직에 대한 인사권을 가졌고 당상관 승진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음이 밝혀졌다. 한편 17세기 인사 관행은 관직군과 인물군의 집단적 대응 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음이 해명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관직 진출의 또다른 경로였던 천거제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관리 인사의 일반적 통로인 과거 제도에 해해서는 조선 전기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소홀한 편이다. 과거제와 관련해서는 조선 전기의 경향과 같이 무과(武科)나 잡과(雜科)의 해명을 통해 신분제 문제와 관련한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가운데 18, 19세기 과거 제도의 문란상과 그 개혁 문제를 다루거나, 문과를 통해 집권 세력의 성격에 대해 검토가 이루어졌다. 비록 19세기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집권 세력 문제와 관련된 연구는 과거제 연구의 방향과도 관련해 중요한 주제로 바루어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16세기 이후 문화를 중심으로, 문과 응시 자격과 시험의 종류, 급제자의 분관(分館)과 관련된 경국대전의 규정이 이후 대전후속록에서 변화되는 과정과 배경 및 의의 등을 검토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소과인 생원ㆍ진사시에 대해서도 검토가 이루어졌는데, 이 연구에서는 금제자의 96%가 유학(幼學)이었고, 그 나머지는 관직자와 기타 직역이 차지하였으며, 대체로 양반 신분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18세기를 전후한 신분제의 뱐동 속에서 향리와 서얼 등 소수에 국한해서 국가가 과거를 통해서 신분 상승의 욕구를 수용하려고 노력했음을 밝혔다.

정치 운영의 쟁점에 관해서도 관심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예론이 단지 공리공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중요한 이념 논쟁이라는 문제 제기 이후 이 시기 예론과 예송에 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기울여진 가운데 그것을 당시의 정치 변동과 연결시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 밖에도 조선 후기 정치 세력의 정치 사회적 입장을 사상적으로 규명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기 시작하여 17세기의 경우 산당(山黨)ㆍ한당(漢黨) 등 집권 세력의 국정 운영론을 고찰하거나, 국가 재조론적 입장을 가지고 남인(유형원ㆍ허목)과 노론(송시열ㆍ한원진)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노론 학자(송시열ㆍ김수항), 노론 훈척(김석주ㆍ김만기), 전향 노론 학자(박세채ㆍ김간), 소론 학자(윤증ㆍ허목ㆍ허적) 등으로 나누어 그들의 입장을 고찰하는 등 그 지평이 확대되고 있다. 이 밖에도 정조의 개혁 이념을 한송절충론(漢宋折充論)으로 파악하는 연구가 있었으며, 호락 논쟁(湖洛論爭)의 정치사적 의의 등을 규명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 유지의 물리적 기반이 되는 군사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1960년대부터 ㅇ녀구가 진행되었다. 차문섭은 균역법의 성립에 이르기까지의 조선 후기 양역 문제를 군사 제도와의 관련성에서 해명하였으며, 이 밖에도 군사 정책이나 국방 사상을 비롯해 군비나 군사 시설에 관한 문제가 추구되었다. 이 시기 특이한 것은 유승주에 의해서 조총이나 유황 광업에 대해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후 1970년대에는 기존의 연구를 정리한 저서가 간행됨과 동시에 육군사관학교에서 간행한 한국군제사-근세후기편은 정치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줌과 동시에 정국의 추이와 군제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역작이다.

1980년대 이후 군사 제도에 대해서는 주로 5군영을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5군영 체제의 정비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훈련도감을 제외한 나머지 4개 군영의 군사는 일부 급료병 및 서울에 상주하는 상비군도 있었지만 지방에서 번상하는 군인이 주축을 이루었고 특히 어영청과 수어청은 경기도 속오군이 주축을 이루었음이 밝혀졌다. 또, 17세기 중엽 효종 때에는 북벌 정책의 추진과 고나련하여 훈련도감 등 각 군영의 규모가 확대되었으나 그것이 통일성을 갖게 된 시기는 금위영이 설치된 뒤인 18세기 초이며, 이후 서울에서의 상공업의 발달을 배경으로 도성 수비 체제가 확립되어 훈련도감과 어영청, 금위영의 세 군문이 궁궐 및 수도 외곽의 방어를 맡게 되었음이 해명되었다. 이 밖에도 중앙 군제와 관련해서는 영조대에 설치되는 용호영과 정조대에 설치되는 장용영에 대해서도 접근이 이루어졌으며, 정조 사후 장용영 혁파 이후 세도 가문의 군사권 장악에 대해 국왕들이 새로운 군영을 창설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지방 군제에 대해서는 1990년대 이후 속오군(束伍軍)이나 영장제(營將制)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속오군의 신분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가 진행되거나, 영장제 문제에 접근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영장제와 관련되어서는 영장 제도가 갖는 정치적ㆍ사회적 기능에 주목하여, 영장제가 18세기에는 국내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 적극 활용되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지방 군제에 대해서는. 지방의 특수 병종인 친기위(親騎衛)를 비롯해, 해방론(海防論)의 대두와 함께 이루어진 강화도 수비 체제에 대한 연구와 수원에 설치된 장용영 외영에 대한 검토와 아울러 제주 지방에 설치되었던 마대(馬隊)와 속오군, 별아영(別牙營) 등을 소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의 대외 관계는 대청ㆍ대일 관계로 단순화되는 점이 큰 특징인데, 대청 관계에 대해서는 주로 북학이나 서학의 유입과 관련되어 조선의 지식인과 청나라 지식인과의 교류를 비롯해 연행록에 대한 분석 등이 이루어졌다. 이런 가운데 숙종대에 세워진 백두산 정계비 문제를 다루거나 경제적 교류의 차원에서 개시(開市)나 후시(後市) 등이 언급되고 있다.

대외 관계는 통신사(通信使)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가운데 임진왜란 이후 기유약조(己酉約條) 체결 과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나아가 대마도의 종가 문서(宗家文書)의 분석을 통해 일본과의 경제적 교류를 고찰하는 등 연구의 소재가 확대되고 있다. 또,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검토되기도 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18세기 이후 일부 실학자를 중심으로 일본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시도되었으며, 관심 분야가 군사적인 데서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문화적인 관심으로 옮겨가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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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고등학교 국사 교사용 지도서], 교육인적자원부, 2002, pp.11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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