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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14 (화) 13:45
분 류 사전2
ㆍ조회: 372      
[고려] 강동육주=강동6주 (한메)
강동육주 江東六州

고려 성종 때 평안북도의 서북면(西北面) 해안 지대에 설치한 흥화(興化)ㆍ용주(龍州)ㆍ통주(通州)ㆍ철주(鐵州)ㆍ구주(龜州)ㆍ곽주(郭州) 등 6주(州).

고려 때 군사상 교통상 요지였던 강동 6주는 여진족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북방진출에 큰 장애가 되었다. 993년(성종 12)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徐熙)가 거란장군 소손녕(蕭遜寧)을 만나 압록강의 동쪽 지방을 개척한 뒤에 거란과 국교를 열 것을 조건으로 고려는 강동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6주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6주 개척 후 거란과 국교를 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흥(長興;泰川)ㆍ귀화(歸化;郭山)ㆍ선천(宣川;宣州)ㆍ안의(安義;定州)ㆍ흥화(興化;義州東)ㆍ구주(龜州;龜城) 등지에 강동 6성을 쌓고 거란에게 적의(敵意)를 보였다. 이에 거란은 수삼차 사신을 보내어 약속 불이행을 추궁하고 국왕이 친히 내조(內朝)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역시 듣지 않았으므로 결국에는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여 왔다.

고려에서 이를 듣지 않자 거란은 1018년(현종 9) 이래 3차에 걸쳐 여러 가지 구실을 내세우고 침입하였으나 번번이 고려의 항전으로 이득을 보지 못하였으며, 특히 제3차 침입 때 소배압(蕭排押)이 거느린 거란군은 구주(龜州)에서 강감찬(姜邯贊)에 의해 대파되어 돌아갔는데, 이를 구주대첩이라고 한다.

두 나라는 서로 적대 관계에 지쳤기 때문에 고려는 거란의 연호를 쓰는 대신 거란은 강동 6주의 요구를 철회하였으므로 강동 6주는 계속해서 고려의 영토로 남게 되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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