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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1-22 (토) 13:17
분 류 사전2
ㆍ조회: 305      
[조선] 문묘 (민족)
문묘 文廟

공자(孔子)를 받드는 묘우(廟宇).

안자(顔子)ㆍ증자(曾子)ㆍ자사자(子思子)ㆍ맹자(孟子)를 배향(配享)하고 공문10철(孔門十哲) 및 송조6현(宋朝六賢)과 우리 나라의 신라ㆍ고려ㆍ조선조의 명현 18현(十八賢)을 종사(從祀)해 태학생 (太學生)들의 사표(師表)로 삼았다. 중앙에는 성균관, 지방에는 각 향교에 건치 (建置)하고 있다.

조선조에서는 공자를 정위(正位)로 하여 4성(四聖)과 공문10철, 송조6현을 대성전(大成殿)의 좌우에 배열, 배향하고, 동무(東黛)에 중국 명현 47위(位)와 우리 나라의 명현 9위를 종사하고, 서무(西黛)에 역시 중국 명현 47위와 우리 나라의 명현 9위를 종사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1949년 전국유림대회 결의에 의해 동무와 서무에 종사한 중국 명현의 위판(位板)을 매안(埋安)하고, 우리 나라의 명현 18위를 대성전으로 승당(陞堂)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나라 문묘의 건치는 714년(성덕왕 13) 김수충(金守忠)이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문선왕(文宣王:孔子)과 10철, 72제자의 화상(怜像)을 가지고 와서 왕명에 의해 국학(國學)에 두면서부터이다. 그 뒤 승출(陞黜)을 거듭해 조선조 말에 이르러서는 공자 이하 133위를 모시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유현(儒賢)은 모두 18위인데,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이 1020년(현종 11)에 종사되었다. 1022년 설총(薛聰)이 종사되었으며, 1319년(충숙왕 6) 안유(安裕)가 종사된 뒤 고려의 정몽주(鄭夢周) 이하 15위는 조선조의 태종 때부터 정조 때까지의 사이에 종사하게 되었다. 현재 보존된 성균관의 문묘는 1398년(태조 7)에 완성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1년(선조 34)에 중건해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묘의 구도 내용은 대성전을 정전(正殿)으로 하고, 하단에 동무ㆍ서무ㆍ제기고(祭器庫)ㆍ묘정비각(廟庭碑閣)ㆍ신삼문(神三門)ㆍ동삼문(東三門)ㆍ동서협문(東西夾門)ㆍ소문(小門)ㆍ수복청(守僕廳)ㆍ전사청(典祀廳)ㆍ포주(亮廚)ㆍ악기고(樂器庫)ㆍ차장고(遮帳庫)ㆍ악생청(樂生廳)ㆍ향관청(享官廳)ㆍ동서월랑(東西月廊)ㆍ수자간(水刺間) 등으로 되어 있다. 이는 중앙문묘(中央文廟)인 대설위(大設位)의 제도이나, 각 지방 향교에 건치한 문묘는 그 고을의 크기에 따라 중설위(中設位)와 소설위(小設位)로 구분되어 그 제도가 각각 다르다.

문묘의 대성전은 다른 사묘처럼 단독으로 건축되는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교육 기관이었던 서울의 성균관을 비롯해 지방의 향교에 이르기까지 문묘제향을 통한 존현(尊賢)과 강학(講學)을 통한 교학(敎學)의 두 기능에 맞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강당인 명륜당, 동재ㆍ서재 등 다른 건물과 함께 건축된다는 점에 다른 사묘와 다르다.

고려시대의 문묘건축에 대해서는 ≪고려도경 高麗圖經≫에 "대문에 국자감(國子監)이라는 현판을 걸고, 중앙에 선성전(宣聖殿)을 건축하고, 또 양무(兩黛)와 재사(齋舍)들을 건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성전은 바로 조선 시대 성균관의 문묘 대성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문묘 건축의 배치는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면 중앙 중심축 북쪽으로 문선왕전인 대성전이 자리잡고, 그 전면 좌우에 동무ㆍ서무의 양무를 건립한다. 외삼문부터 대성전 기단의 앞면 계단까지는 신도(神道)를 둔다. 대성전의 평면은 일반적으로 장방형이나, 칸수는 일정하지 않다. 보통 앞면에는 퇴(退)를 두어 개방하고 있다. 예컨대, 서울의 문묘나 강릉향교 대성전에서는 앞면에 개방된 툇간을 두었으나, 경주향교의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모두 문짝을 달았다.

동무와 서무의 평면은 측면이 1, 2칸이나 정면은 여러 칸 되는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성균관의 동무ㆍ서무는 정면 11칸, 측면 1칸반으로 앞면 반칸을 퇴로 개방하고 있다. 그 내부는 모두 통간(通間)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전주향교에서처럼 일부 칸을 막아 경판(經板) 등을 보관하는 경우도 있으나, 경판들은 존경각(尊經閣)에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원칙이 되어 있다.

문묘 대성전의 구조는 모두 목조가구식 건축(木造架構式建築)으로 포작계(包作系)이며, 주심포(柱心包)ㆍ다포(多包)ㆍ익공(翼工) 세 양식이 고루 사용된다. 예를 들어, 성균관 대성전은 다포 양식이고, 강릉향교 대성전은 주심포 양식이며, 전주향교 대성전은 초익공 양식(初翼工樣式)임을 볼 수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두 가지로, 성균관 대성전은 팔작지붕, 강릉향교 대성전은 맞배지붕이다. 동무와 서무는 일반적으로 민도리집 계통이나 때로 익공 양식으로 건축되기도 하는데, 모두 맞배지붕을 이룬다. 예컨대, 성균관의 동무ㆍ서무는 민도리집 구조로 맞배지붕이나 진주와 밀양항교의 동ㆍ서 양무는 익공 식으로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문묘 건축의 특성은 존현의 중심 기능인 제사를 위한 의식 공간(儀式空間)이기 때문에, 하나의 축(軸)을 중심으로 대성전과 동ㆍ서 양무를 좌우 대칭되게 배치하게 된다. 더욱이, 대성전 앞 동ㆍ서 양무는 배치뿐만 아니라 입면상(立面上)으로도 좌우 대칭되게 한다.

교학 공간과 관련해서 존현 공간인 문묘를 공간적으로 우위에 놓는 것도 특징이다. 이 밖에 다른 특성으로 건축 평면에서는 동ㆍ서 양무 모두 내부를 통간으로 하며, 건축 구조에 있어서는 대성전의 구조가 다른 건축물, 즉 동ㆍ서 양무와 강당, 동ㆍ서 양재, 고직사 등보다 우위에 두어 기단도 가장 높고, 또 포작계로 건립된다.

≪참고문헌≫

太學志, 文獻備考, 朝鮮古蹟圖譜 11(朝鮮總督府, 1931), 서울特別市史―古蹟篇―(서울特別市史編纂委員會, 1963), 全國鄕校現況調査(林漢永 外, 成均館大學校論文集 17, 1972), 韓國文化史大系 10(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78), 韓國建築美(朱南哲, 一志社, 1983).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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