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25 (화) 15:41
분 류 사전2
ㆍ조회: 1163      
[조선] 민영환 (브리)
민영환 閔泳煥 1861(철종 12) 서울~1905(광무 9)

한말의 정치가.

본관은 여흥.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 민씨 정권의 세도 속에서 관직에 진출했고, 2차례의 해외 여행으로 견문을 넓혀 왕에게 개혁 정책을 권하기도 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운명이 기울자 자결로 일제에 항거했다.

출신 및 초기 관직 생활

아버지는 선혜청당상을 지낸 겸호(謙鎬)이며, 뒤에 큰아버지인 태호(台鎬)에게 입양되었다. 1877년(고종 14) 동몽교관이 되었고, 이듬해 정시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정자·검열·수찬·장령 등을 거쳐, 1881년(고종 18) 동부승지, 1882년 성균관대사성과 도승지를 지냈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생부 겸호가 피살되자 벼슬을 내놓고 3년상을 치렀다.

그뒤 도승지·이조참판·한성우윤·예조판서·형조판서·한성부윤·독판내무부사 등을 지냈다. 1895년 8월 주미전권공사에 임명되었으나 민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 부임하지 못했다. 친러파가 축출되고 친일적 경향의 제3차 김홍집 내각이 들어서자 낙향해 두문불출했다.

외교활동

1896년 특명전권대사로 학부대신 윤치호(尹致昊), 2등서기관 김득련(金得鍊), 3등서기관 김도일(金道一) 등과 함께 4월 1일 인천을 출발해 상하이·나가사키·도쿄·밴쿠버·뉴욕 등을 거쳐 유럽 대륙의 신문명을 보고 5월 20일 모스크바에 도착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뒤 약 3개월 동안 러시아 각지를 둘러보고 시베리아를 횡단해 10월 21일 귀국했는데, 그의 여행은 독립신문에 그 내용이 소개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1897년(광무 1) 1월에는 다시 영국·독일·프랑스·러시아·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6개국 특명전권공사가 되어 3등서기관 이기(李琦), 서기 김조현(金祚鉉)·김병옥(金秉玉)·손병균(孫炳均) 등과 함께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년 축하식에 참석했다. 도중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들러 니콜라이 황제에게 국서와 고종의 밀서를 전달했다.

2차례에 걸친 해외여행을 통해 유럽의 제도를 모방해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민권을 신장해 국가의 근본을 공고히 할 것을 여러 번 고종에게 건의했는데, 그중 군제에 관한 건의가 받아들여져 원수부(元帥府)에 의한 육군통솔이 이루어졌다.

그뒤 서재필 등이 조직한 독립협회를 측면에서 후원하다 원로대신들의 무고로 파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참정대신·탁지부대신·장례원경·헌병사령관 등을 역임했으며 훈1등(勳一等)과 태극장(太極章)을 받기도 했다. 1904년 이후 내부·학부 대신을 역임했으나, 일제의 침략을 맹렬히 반대하다가 시종무관장이라는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1905년에는 참정·외부 대신을 역임했으나 다시 시종무관장이 되어 순국할 때까지 그 직위에 머물렀다.

을사조약과 순국

당시 국내정세는 1904년 2월 러일전쟁의 발발과 동시에 대한제국정부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일본은 강제로 한일의정서를 체결했고, 그해 8월에는 1차 한일협약을 체결해 재무·외교 부문에 고문정치를 시작했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의 승리를 계기로 한국에서의 정치·경제·군사 상의 우월권을 인정받은 상태에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이 체결되자 원임의정대신(原任議政大臣) 조병세(趙秉世)와 함께 조약에 찬동한 5적을 성토하고 조약의 파기를 주장했으나 조병세의 체포로 실패했다. 이어 2차 상소를 전개했으나 나라의 운이 이미 다했음을 깨닫고 죽음으로 항거해 국민을 각성시킬 목적으로 그해 11월 13일 오전 6시경 2,000만 동포와 고종 및 주한 외국사절에게 보내는 3통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그의 자결 소식이 알려지자 조병세·김봉학(金奉學)·홍만식(洪萬植)·이상철(李相喆) 등이 그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했다.

저서로는 〈민충정공유고 閔忠正公遺稿〉·〈해천추범 海天秋帆〉·〈사구속초 使歐續草〉·〈천일책 千一策〉 등이 있다.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대신(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大臣)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윗글 [조선] 나철 (민족)
아래글 [조선] 민영환 (한메)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20 사전2 [조선] 민영환 (민병태) 이창호 2003-03-26 871
119 사전2 [조선] 오기호 (브리) 이창호 2003-03-25 1143
118 사전2 [조선] 오기호 (한메) 이창호 2003-03-25 1161
117 사전2 [조선] 오기호 (두산) 이창호 2003-03-25 1123
116 사전2 [조선] 오기호 (민족) 이창호 2003-03-25 1195
115 사전2 [조선] 나철 (브리) 이창호 2003-03-25 1121
114 사전2 [조선] 나철 (한메) 이창호 2003-03-25 988
113 사전2 [조선] 나철 (두산) 이창호 2003-03-25 1135
112 사전2 [조선] 나철 (민족) 이창호 2003-03-25 1235
111 사전2 [조선] 민영환 (브리) 이창호 2003-03-25 1163
1,,,6162636465666768697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