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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23 (일) 19:05
분 류 사전2
ㆍ조회: 1022      
[조선] 이소응 (브리)
이소응 李昭應 1861. 8. 7 강원 춘천~1928. 3. 25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 일명 의신(宜愼). 호는 습재(習齋).

1895년 을미사변 및 단발령의 시행으로 을미의병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춘천부에서는 1896년 1월초부터 홍시영(洪時永)ㆍ이면수(李勉洙)ㆍ민영문(閔泳文)ㆍ이수춘(李守春) 등이 창의를 촉구했다. 1월 20일 유중락(柳重洛)ㆍ이만응(李晩應) 등의 지방유생들과 1,000여 명의 농민들이 춘천부에 집결하여, 그를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춘천 의진(義陣)을 일으켰다.

그는 곧 창의토벌을 촉구하는 격문을 전국에 보내고, 위정척사의 대의(大義)하에 일본을 오랑캐 왜노(倭奴)로, 그리고 개화정책을 수행하는 관리들도 동일한 범주로 규정했다. 정부에서 춘천부 관찰사 겸 선유사로 개화파 관료 조인승(趙寅承)을 파견하자, 단발(斷髮)을 한 그를 친일파로 규정하여 참형에 처했다.

이어 서울진격을 계획, 가평 쪽으로 진격해갔으나 가평 벌업산에서 관군과 대치하여 교전하던 중, 비가 내려 화승총을 쓰지 못한 채 패전하고 춘천으로 퇴각했다. 그후 그는 포군(砲軍)을 모집하러 지평으로 갔다가 지평군수 맹영재(孟英在)의 협조를 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제천 유인석(柳麟錫) 진영으로 갔다.

그뒤 유인석을 따라 만주로 망명했다. 한편 춘천 의진은 그의 종형제인 이진응(李晉應)ㆍ이경응(李景應)이 맡았으나, 이진응이 일본군과 관군의 공격으로 전사하자, 이경응은 강릉으로 가서 민용호(閔龍鎬) 진영에 합류했다.

춘천의 의병운동과 유인석 의진의 활동상황을 기록한 <습재연보>ㆍ<습재선생문집> 등이 남아 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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