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14 (금) 05:19
분 류 사전2
ㆍ조회: 2491      
[고대] 한국의 고대사회 개관 (한메)
한국의 고대사회 개관

관련 문서

한국사의 시대구분
원시사회
고대사회
고려사회
조선사회
근대사회
민족의 수난과 저항
현대사회

[고대사회]

청동기문화는 기원전 수세기에 걸쳐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무기ㆍ거울ㆍ말갖춤[馬具]ㆍ수례갖춤[車具]ㆍ공구ㆍ장신구 등이 다양하고도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또 청동기와 더불어 철제 무기ㆍ농구도 나타났다. 청동기문화ㆍ철기문화는 랴오허강[遼河] 유역에서 한반도 북서부 일대를 중심으로 개화하여 곧 남쪽으로 퍼졌다.

<동이족의 문화권과 단군조선>

청동기를 사용하던 민무늬토기인들이 한국민족의 근간이 되는데 이들은 중국의 선진문헌(先秦文獻)에 나타나는 동이족(東夷族)으로 알려진다. 동이족은 당시 화이허강 이북의 연해 일대인 장쑤성[江蘇省]ㆍ안후이성[安徽省]의 일부로부터 산둥성[山柬省]ㆍ허베이성[河北省]을 거쳐, 보하이만을 끼고 랴오허강 유역과 만주지역에 살았던 민족의 총칭이었다.

동이족은 중국 북서지역으로부터, 한 갈래는 만주 남동부와 한반도로, 다른 한 갈래는 허베이ㆍ산둥 방면으로 이동하였으며, 산둥 방면의 동이는 은대(殷代)로부터 한족(漢族)과 끊임없는 접촉과 투쟁을 벌였고, 주대(周代)에 이르러서는 화이허강 유역까지 진출하여 대연합세력을 이룬 것 같다.

그러나 이 지역의 동이족은 진시황(秦始皇)의 통일정책에 따라 한족에게 점차 동화ㆍ정복되거나 구축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광의의 동이족이 한(韓)ㆍ예맥으로 일컬어지는 민족이었고, 몇 차례의 민족이동을 계속하면서 중국의 북동지방, 만주, 한반도 등지에 우수한 금속문화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이와 함께 한국사에는 최초의 국가형태를 갖춘 고조선(古朝鮮)이 등장하였다.

13세기의 승려인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에는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桓雄)과 곰의 화신인 웅녀(熊女) 사이에 태어난 단군왕검(檀君王儉)이 고조선을 건국하는 신화가 실려 있다. 즉, 제석천(帝釋天)인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이 홍익인간의 뜻을 품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가지고 풍백ㆍ우사ㆍ운사 등을 거느리고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신단주 아래 내려와 신시를 베풀고 인간사회의 여러 가지 일을 교화하다가 뒤에 곰에서 화신한 여인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 단군왕검은 중국의 요(堯)와 때를 같이하여 조선을 건국, 아사달에 도읍하였다고 한다.

이 단군신화는 몇 가지 역사사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즉 부족의 시조를 하느님의 손자에 비유하는 천신사상, 제사장인 단군과 정치의 수장인 왕검의 동시사용에 보이는 제정일치사회, 단군의 어머니를 곰에 비유하는 곰 토템씨족설, 풍백ㆍ우사ㆍ운사 설화에 보이는 원시농경사회적 요소가 포괄되어 있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연숭배 사조가 신석기시대에서 시작하여 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서 천신사상과 결합되었음을 의미한다. 한국 최초의 부족국가인 고조선의 시조 단군은 BC2세기경 신화로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며, 후세에 민족의 시조로 추대되고 이에 따라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의 성장과정에서 고조된 것으로 보인다.

<철기문화의 전래와 위만조선>

중국의 전국시대에 보급되기 시작한 철기문화는 장성 밖으로 파급되어 그 곳에서 북방 스키타이계 청동기문화와 혼합되고 BC 4세기∼BC 3세기에는 압록강중류를 거쳐 청천강과 대동강 상류로 들어와 먼저 서북 평안도 지방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 새로운 금속문화의 전래는 생활에 큰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가옥은 움집에 온돌장치를 한 것이 나타나고 또한 지상에 목조가옥을 짓고 살기도 하였다.

세형동검(細形銅劍)ㆍ동과(銅戈) 등의 청동기 무기 외에 쇠검[鐵劍]ㆍ쇠살촉 등 철제 무기를 가지고, 말갖춤을 사용하였다. 무기 이외에도 철기문화의 유적에서는 흔히 가래ㆍ낫ㆍ보습 등의 발달된 농구가 출토되었다. 이리하여 초기 철기인들은 새로운 무기와 농구를 사용함으로써 종래의 고인돌인[支石墓人]을 가볍게 구축할 수 있었다.

이 금속문화는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토착화로 이어졌다. 이로써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한 중국 유이민과 토착민과의 연합정권인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즉 위만조선은 중국인 이주자들에 의한 식민정권이라기보다는 철기문화의 영향을 받은 유이(流移) 동이계 한인(韓人)과 토착 조선인의 연합정권이었던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중국의 군현>

고조선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나, 한무제(漢武帝)의 침략을 받아 BC108년 멸망하였다. 한은 고조선의 고토(故土)에 낙랑(樂浪)ㆍ진번(眞番)ㆍ현도ㆍ임둔(臨屯)의 4군을 설치하여 중국 영토에 편입시켰다. 낙랑군 이외의 3군은 오래지 않아 폐지되었거나 혹은 타지역으로 이전되었으나 낙랑군만은 후대의 4세기 초까지 존속하였다. 그 사이 3세기 초에는 낙랑군의 남부에 대방군(帶方郡)이 설치되었다. 낙랑과 대방 2군은 중국 역대왕조의 동방지배 거점이 되었다.

4군 및 대방군의 정확한 오늘날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즉 낙랑군치가 있던 곳은 평양 부근이 아니고 랴오둥〔遼東〕반도로서, 평양 부근에 있던 것은 낙랑군이 아니고 한국인이 세운 낙랑국(樂浪國)이라는 설 등이다. 아무튼 군현 설치 이후의 중국 지배에 대해 한국의 제족은 항전을 시작하였다. 선봉장격인 고구려는 부여족의 일파로서 압록강 중류역을 중심으로 기원 전후에 왕국을 세웠다.

이후 중국 역대의 왕조와 악전고투를 거듭하였고 또 주변 제종족을 정복하면서 4세기 초 낙랑군을 아울렀으며 계속해서 대방군을 격파하였다. 이로써 약 400년간 지속된 중국의 한국 일부지역에 대한 지배는 종결되었고, 고구려는 만주에서 한국 북부에 이르는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하였다.

<삼국시대>

삼국시대는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삼국의 건국연대로부터 660년의 백제멸망, 668년의 고구려멸망까지의 700여 년간을 말한다. 삼국이 고대왕권의 기반을 형성한 것은 고구려는 6대 태조왕 때, 백제는 8대 고이왕 때이고, 신라는 17대 내물마립간 때부터이다. 따라서 그 이전의 시기는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로 불린다.

원삼국시대 이래 철기문화의 급속한 보급은 어로ㆍ목축과 함께 농경생활의 능력과 군사능력을 크게 발달시켰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안으로는 부족통합을 촉진시키게 되었고, 밖으로는 중국의 식민지세력과 충돌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고대왕권의 성립과 그 지배력의 강화를 보게 되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교통요충지에서 성장하며 태조왕 때 동해안지역에 진출하였고 청천강 상류지역을 확보하면서 계속해서 랴오둥지방으로의 진출을 꾀했다. 미천왕 12년(311)에는 서안평(西安平)을 점령하였고, 계속해서 중국의 침입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백제는 고구려보다 약 100년 늦은 고이왕 때부터 발전하였는데,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중국식민세력과의 힘든 대결을 겪었다.

반면에 3세기 초부터 가야 등 주변세력들과 대항하는 부족연맹체를 형성하고 있던 신라는 낙랑군과 연결된 부족들, 가야의 지배하에서 조종을 받던 왜(倭) 및 한강 상류지역을 개척하고 있던 백제 등과 빈번한 충돌을 하면서 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삼국은 각각 중국의 제도ㆍ문화를 흡수하여 자국의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토지와 인간의 획득을 목적으로 서로 항쟁하였다. 그 가운데 고구려의 광개토왕(재위 391∼413)은 신라를 복속시키고 백제를 공격했으며, 중국과 교전하여 광대한 왕국을 세웠다. 그 뒤 장수왕은 도읍을 압록강 중류역의, 지금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輯安縣]인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겨(427),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였다.

백제는 고구려에게 한산성(漢山城)을 빼앗긴 뒤 도읍을 웅주(熊州)로 옮겼고(475), 다시 사비성으로 옮겼다(538). 또 왜와 연맹하여 고구려ㆍ신라와 대항하였다. 신라는 6세기에 가야연맹을 병합한 뒤, 한강 하류를 장악하고서 화전(和戰) 양면책을 구사하며 영토를 넓혀 나갔다.

삼국의 관등조직은 고구려 14등급, 백제 16등급, 신라 17등급으로 조직되었으며, 문화적으로는 불교의 전래로 부족국가시대에 비하여 크게 확대되고 복잡해진 고대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철학을 제시하는 한편 고도의 다양한 불교문화ㆍ예술을 꽃피워 삼국의 고대문화 발전의 길잡이가 되었다. 또 한문학이 수입되어 학문수준이 고양되었으며, 이와 같은 문화축적은 후진국 일본을 교화시키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남북국시대―통일신라와 발해>

삼국이 항쟁하며 발전한 4∼6세기에 걸친 시기에 중국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ㆍ남북조(南北朝)의 혼란기로서 한국에 간섭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6세기 말에 수(隋)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그 힘은 한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수는 7세기 초 3번에 걸쳐 고구려에 침입하였으나 고구려의 분투로 패퇴하였고, 4번재 침공을 계획하던 중에 자국내의 농민반란으로 인하여 멸망하였다(618).

계속해서 당(唐)도 7세기 중기에 몇 차례나 고구려를 침입하였으나, 번변이 고구려의 반격에 굴복하였다. 이에 당은 작전을 바꾸어, 바다 건너 백제를 침공하였다. 이 때, 신라는 숙적을 물리치기 위해 당과 연합하여, 나ㆍ당의 연합군은 660년 백제를 무너뜨렸고, 또 백제를 원조하기 위해 온 일본군을 백촌강(白村江)에서 대파하였다(663). 뒤이어 나ㆍ당연합군은 고구려를 공격하여 내부적 균열이 생긴 고구려를 멸망시켰다(668).

당은 백제와 고구려의 고토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고자 했으나, 당의 한반도 점령에 반대한 신라와 6년간(671∼676) 전쟁을 벌인 끝에 패퇴하고서 쫓겨났다. 당의 철퇴(撤退)에 따라 신라는 한반도 대부분을 영유하게 되었다. 이 광대한 국토를 지배하기 위해 신라는 율령제도(律令制度)를 채용하고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건설을 이루었다.

집사부(執事部)ㆍ조부(調部)ㆍ창부(倉部)ㆍ예부(禮部) 등의 중앙관청, 9주5경 및 군현 등의 지방통치기구, 9서당(九誓幢) 10정(十停)의 군사조직 등을 7세기 말까지 정비하였다. 왕족과 귀족은 골품제에 의해 특권이 지켜졌으며, 그들이 거주한 수도 경주에는 전국으로부터 공물이 운입(運人)되었다. 아울러 장려한 궁전ㆍ관청ㆍ사원ㆍ저택이 세워졌다. 경주 주변에 남아 있는 사원ㆍ불상ㆍ동종과 고분으로부터의 출토품 등은 당시의 영화(榮華)를 보여준다.

한편 멸망한 고구려지역과 한반도를 경영하기 위해 당이 평양에 설치하였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신성(新城)으로 옮겨 압록강 이북의 고구려 옛 땅만을 통치하게 된 지 20여 년 후 중국은 안으로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전횡과 밖으로 거란족(契丹族) 이진충(李盡忠)의 난이 일어나 내우외환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좋은 기회에 고구려 별부(別部) 출신으로 알려진 대조영(大祚榮)이 다수의 말갈족(靺鞨族) 세력을 규합하고 지금의 지린성 둔화현〔敦化縣〕 밖에 성을 쌓고 건국의 터전을 쌓은 뒤 자립하여 진국왕(震國王)을 칭하기에 이르니, 곧 발해(渤海)의 건국이다. 건국 이후 한동안 침체상태를 겪기도 하였으나 중흥의 영주(英主)인 10대왕 대인수(大仁秀)에 이르면서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당시에 <방2천리(方二千里)>였다는 영토가 <방5천리(方五千里)>로 확장되었다.

사실 최성기 발해의 범위는 오늘날의 중국 지린성을 중심으로 랴오닝성[遼寧省]ㆍ헤이룽장성[黑龍江省] 일부, 한반도 북부, 소련의 연해주(沿海州)에까지 미쳤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선진 중국문물을 흡수하여 대규모의 짜임새 있는 수도(首都)를 가졌고, 최근 출토되고 있는 유물들을 보면 불교문화가 꽤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발해는 시라무렌강〔西喇木倫〕에서 흥기하여 거란의 여러 부족을 통합한 야울아보기(耶律阿保機)에게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15대 220여 년 만에 멸망하였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대한민국-역사' 항목에서
   
윗글 [근대] 동도서기론 (브리)
아래글 [겁외사] 큰스님 큰삶 영원히 속세에 머물게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720 사전2 [근대] 이광수 (브리) 이창호 2003-06-26 2564
719 사전2 [신라/고려] 호족 (브리) 이창호 2003-05-10 2563
718 사전2 [불교] 불교-불교의 역사 (브리) 이창호 2003-12-31 2538
717 사전2 [일본] 메이지유신=명치유신 (브리) 이창호 2003-04-23 2522
716 사전2 [조선] 이항로 (문화부) 이창호 2004-02-29 2521
715 사전2 [고대] 고대국어 (브리) 이창호 2003-04-20 2513
714 사전2 [근대] 일제강점기의 지방행정제도 (민족) 이창호 2003-04-28 2512
713 사전2 [근대] 동도서기론 (브리) 이창호 2003-04-15 2492
712 사전2 [고대] 한국의 고대사회 개관 (한메) 이창호 2003-03-14 2491
711 사찰 [겁외사] 큰스님 큰삶 영원히 속세에 머물게 이창호 2001-05-01 2481
1234567891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