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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06 (금)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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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789      
[근대] 일제강점기-삼일운동 (민족)
일제강점기(3·1운동)

세부항목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1910년대의 한국사회와 독립운동)
일제강점기(3·1운동)
일제강점기(3·1운동 후 1920년대의 한국사회의 독립운동)
일제강점기(193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와 독립운동)
일제강점기(참고문헌)

(1) 3·1운동의 봉기

국내외에서 애국자들과 한국민족이 대규모 독립운동을 일으킬 절호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 때, 1918년 11월 제1차세계대전이 종결된 이듬해인 1919년 1월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승전국인 미국대통령 윌슨이 이 강화회의의 회담원칙으로 14개 조항을 발표한 속에는 패전국의 식민지 처리에 민족자결원칙이 적용된다는 항목이 있었다.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신한청년당은 기민하게 이것을 기회로 포착하여 파리강화회의에 신한청년당대표 겸 한국민족대표 김규식(金奎植)을 파견하고, 국내의 애국자들과 노령·만주의 망명 독립운동가 및 일본에 있는 유학생들에게도 오랫동안 기다리던 대규모 독립운동을 일으킬 기회임을 알렸다.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한국인 학생들은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을 조직하고, 1919년 2월 8일에는 남녀 유학생 400여명이 동경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2·8독립선언’이다. 2·8독립선언은 국내에서 대규모 독립운동을 모색하던 인사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국내에서는 그 이전부터 독립운동의 기회를 노리던 애국자들이 해외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에 큰 자극을 받고, 천도교·기독교·불교·학생단 등이 민족대연합전선을 결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그들은 천도교의 손병희(孫秉熙), 기독교의 이승훈(李昇薰), 불교의 한용운(韓龍雲) 등 33인이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학생과 시민들은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 독립만세시위에 들어감으로써 3·1운동이 폭발하게 되었다.

(2) 3·1운동의 전개

3월 1일 오후 2시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학생들과 서울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서울시내를 누비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같은날 평양·진남포·안주·의주·선천·원산의 여러 곳에서 거의 동시에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남으로써 3·1운동은 초기조직단계에서 민중운동단계로 비약하게 되었다.

3월 2일에는 함흥·해주·수안·황주·중화·강서·대동 등지에서 독립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으며, 뒤이어 민족독립을 요구하는 시위운동은 함경북도 북단에서 제주도 남단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민중들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퍼져나갔다.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3월 6일에는 서간도 환인현(桓仁縣)에서, 3월 13일에는 북간도 용정(龍井)에서 한국인 동포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뒤이어 만주 각 지방·상해·노령 연해주와 미주 등 해외 각지에서도 한국인이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국내의 3·1운동에 호응하여 독립선언과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1일부터 5월말까지 3개월간 50명 이상의 독립만세시위 집회수가 1, 542회, 참가 인원수가 202만3098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50명 이상 규모의 집회와 참가자수를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저평가된 것이며, 농촌에서의 무수한 소규모집회까지 포함하면 3·1운동의 실제 참가자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전대미문의 전민족적 대규모 독립시위운동이었으며, 당시 1700만명의 총인구에 대한 비율로 볼 때 약소민족 독립운동사상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위운동이었다.

3·1운동은 비폭력방법에 의한 평화적 만세시위운동으로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헌병과 경찰뿐 아니라 육해군 정규군까지 동원하여 평화적 시위군중에게 총탄을 쏘아 살육하고, 민가·교회·학교 등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3·1운동 때 일제 관헌에 의하여 학살된 한국인이 7,509명, 부상자가 1만5961명, 피체포자수가 4만6948명에 달하였으며, 관헌에 의하여 불탄 민가가 715개소, 교회당이 47개소, 학교가 2개소에 달하였다. 수원 제암리에서와 같이 교회 안에 수십명을 감금하여 불을 질러 태워 죽이고, 탈출하는 사람은 총을 쏘아 죽인 만행도 비일비재하였다.

(3)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3·1운동에서 한국민족은 많은 희생을 내었으나 그것이 쟁취한 성과의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큰 것이었다.

우선 그 민족사적 의의를 보면 ① 3·1운동으로 일제가 1910년부터 9년간 닦아놓은 식민지 무단통치와 한국민족 말살정책이 근본적으로 붕괴되고, 잔혹한 식민지통치의 진상이 전세계에 폭로되었다. ② 3·1운동으로 어떠한 힘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독립운동 역량이 비약적으로 고양되고 강화되어, 한국민족의 독립쟁취의 주체적 실력을 내부적으로 확고부동하게 세워서 독립을 스스로 튼튼히 보장하였다.

③ 3·1운동으로 상해에 공화정체의 새로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됨으로써 9년간 단절되었던 민족정권을 계승하게 되었다. ④ 3·1운동으로 만주와 노령에서 독립군 부대들이 조직되고, 독립군의 무장투쟁이 비약적으로 고양되어 국경지방에서의 국내진입작전까지 감행하게 되었다.

⑤ 국내에서 일제의 잔혹한 탄압을 물리치고 극소부분이나마 언론·집회·결사의 부분적 자유를 쟁취하여, 민족문화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대항하는 민족보존운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⑥ 3·1운동으로 국내에서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함으로써 농민·노동자의 권익향상뿐만 아니라 민족독립운동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⑦ 3·1운동은 한국민족 스스로의 실력에 의하여 국제적으로 한국민족의 독립을 보장받아 냈다. 한국민족이 3·1운동의 전민족적 봉기로써 자주독립을 전세계에 선언하였기 때문에 일본이 승전국이었던 당시에는 당장 독립이 성취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언젠가 일본이 패전국이 되는 날에는 한국민족은 자동적으로 독립되는 것으로, 전세계로부터 공인받게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중에 일본 패전 후의 한국민족의 독립이 모든 국제회의에서 한국민족대표의 참석 없이도 당연한 것으로 논의된 것은 기본적으로 3·1운동에 의한 것이었다.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민족사에 끝나지 않고 세계사적 의의가 컸다.

① 3·1운동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승전국의 식민지·반식민지 약소민족이 위축된 상황에서 급전환하여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일으키는 계기를 열어주었으며, 이때부터의 독립운동이 그뒤 제2차세계대전 종결 후의 독립에 귀결된 것이었다.

② 3·1운동에 고취되고 그 영향으로 중국에서는 5·4운동이 일어났다. 현대중국의 탄생의 전환점이라고 하는 5·4운동은 내부요인을 별도로 하고 외부요인을 보면, 세계사적으로는 3·1운동의 파급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③ 3·1운동의 파급과 영향으로 인도에서는 국민회의파의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고양되었다. 그들은 영국의 식민지 간접통치의 구조적 특징을 활용하여 비폭력 투쟁방법까지 채택하여 급속도로 성장하여 드디어 1945년 이후에는 자기의 실력으로 독립을 쟁취하기까지 이르렀다.

인도 독립운동의 비약적 발전의 전환점을 이룬 간디의 지도하에 1919년 4월 5일부터 일어난 사타야그라하·사브하 운동은 내부요인을 별도로 하고 외부요인을 보면 3·1운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었다.

④ 3·1운동의 영향은 인도지나반도 제 민족과 필리핀과 이집트의 독립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들은 1919년 여름에 3·1운동을 거론하면서 대대적 독립시위운동을 벌였다.3·1운동의 의의는 민족사와 세계사에서 다같이 매우 큰 것이었다.

<신용하>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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