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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1-02 (금) 13:09
분 류 사전3
ㆍ조회: 1689      
[현대] 조연현론 (김윤식)
조연현론

김윤식 (서울대)

1. 비평의 존재방식과 그 자의식

비평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이 물음에 온몸을 던졌던 최초의 비평가가 조연현이다. 물론 조연현 이전에도 비평가들이 없지 않았다. 조연현보다 학식이 풍부하거나 감수성이 민감한 비평가도 있었을지 모르나 비평에 대한 자의식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면서 이를 운명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해 간 비평가로는 조연현이 처음이었다. 이 사실은 조연현 비평을 문제삼을 경우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평사 및 비평행위를 문제삼을 때에도 빠뜨릴 수 없는 으뜸항목이다.

사람은 시인이나 소설가 또는 희곡작가가 될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사람이 비평가로 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는 무엇을 대가로 지급하고 비평가가 되어야 했을까. 왜냐면 시인이나 소설가 되기의 논의가 끝난 자리에서 비평가 되기 논의가 비롯되는 까닭이다.

무엇을 대가로 지급하고 그는 비평가가 되어야 했는데, 그 때문에 그는 이 <무엇>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과 아쉬움, 나아가 저주를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이점에서 조연현 비평은 그것에 시달린 형국을 빚는다. 그러나, 이러한 자의식을 철저히 은폐하는 방식을 창출해 낸 점이야말로 조연현 비평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곧 근대성이라는 이름의 주인에 맞선, 노예로서의 주체성 확보가 그것이다.

주체성 확보란 무엇인가. 우리 근대문학사를 문제삼을 때, 이 과제만큼 은밀하면서도 중요한 그러면서도 소홀하게 다루기 쉬운 것은 달리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라고 할 때, 그 자체가 타자로서의 서양이었으며, 이를 전면 수용함으로써 비롯된 우리 근대문학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를 내기에는 실패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타자로서의 서양(근대)이란 주인이었던 까닭이다.

물론 서양과 근대(이성에 따른 계몽주의)란 별개의 개념이라 할 수 있으나, 서양이 동양을 단지 오리엔탈리즘의 레벨에서 파악하고 있는 한 사정은 거의 마찬가지이다. {오리엔탈리즘}(1978)의 저자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과 서양 사이에 이루어진 존재론적 인식론적 구별>(박흥규 역, 교보문고, 1991, p.14)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이 존재론적 인식론적 구별이란 동양이, 주체로서의 서구에 의해 표상/지배(representation/master)되는 존재로서 설정됨을 전제로 하고 있다. 주체인 서구의 눈에 비친 객체로서의 동양이란 어떠한가. 혼돈·침체·몽매·자연성·암흑·성적 방종·생산성·여성·피·어미로서의 대지 등등이다. 단적으로 말해 <불활성의 자연적 일이나 현상>으로 표상화된 것이다.

이것은 주체에 의해 지배된 이미지인 셈이다. 따라서 동양은 서양에 대해 선험적으로 존재한 바 없다. 차라리 서구가 동양을 생산한(낳은) 것이라 할 것이다. 서양 곧 근대성을 승인하는 한,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동양은 영원히 서양으로부터 계몽받지 않으면 안 될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운명적이며 이 운명에서 영영 벗어날 방도란 없는 것일까. 노예란 영원히 노예이며 결코 주인으로 될 방도란 없는 것일까.

여기까지 물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조연현 비평의 놓인 자리가 새삼 문제성을 띠게 된다. 서양이라는 이름의 근대성(주인)에 맞서, 주체성을 확보하는 방식 곧 노예가 주인에 맞서 마침내 주인의 자리에 올라서는 일이 가능한가. 만일 가능하다면 그 노예가 과연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주인이 되더라도, 이 주인·노예의 틀(변증법)에서는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이러한 물음을 조연현 비평이 안고 있는데, 이 때문에 조연현 비평은 근대성을 문제삼거나, 근대성 이후(포스트모더니즘)를 논의할 때 놓이게 될 하나의 시금석이 아닐 수 없다.

말을 바꾸면, 그토록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보편성)로서의 근대성(마르크스주의가 그 대표적인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모던성에 의해 부정되거나 비판당하는 후기 산업사회 속에 놓인 이 시점에 설 때, 조연현 비평의 재평가란 불가피한 일이자 동시에 새로운 출발점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논리)의 시각에서 노예가 주인이 될 수 있는, 생사를 건 싸움의 논리와 그 한계를 중심으로 조연현 비평의 현대적 의의를 살피고자 함에 있을 뿐, 전면적인 조연현론은 아니다(조연현 비평의 일반적 고찰은 졸고 [조연현론-문협 정통파의 정신구조], {현대문학}, 1977.7 : 졸저 {한국근대문학사상비판}, 일지사, 1978 수록 참조).

2. 비평가 되기의 조건

조연현은 무엇을 대가로 지급하고 비평가로 되었던 것일까. 이 물음은 그의 성장과정과 밀접히 관련된다. 그는 다음처럼 대담하게 고백하고 있는데, 이 고백체가 <아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라고 시작되는 서정주의 [자화상](1936)에 맞서고 있음을 알아차리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나는 네군데의 중학교와 한군데의 전문학교를 중퇴하였다. 고등예비학교니 강습소 같은 곳에 적을 두었던 것까지 합친 근 10년 가까운 학창생활에 있어서 내가 진실로 학생이라는 신분에 적합한 시간을 가진 것은 아마 10년의 백분지 일을 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명색이 학생이면서도 언제나 교과서 대신에 문학서적을 탐독했었고 통학하는 대신에 매일같이 영화관에 출입하였다. ({문학과 사상}, 세계문학사, 1949, p.209)

1920년, 경남 함안에서 보통학교를 마친 그가 어떤 연유로 서울의 보성·중동·배재학교 등에 적을 두며 배회했는가를 알 수는 없으나, 요컨대 그가 학교수업 대신 문학서적에 열중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서정주의 고백체인 [자화상]과 나란히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나란히 감이란 그것의 동질성을 의미함에 멈추지 않는다. 아비가 종이라는 것, 그러니까 <나>는 종의 자식이며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는 이러한 세속적 귀천문제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 그렇다면 무엇이 본질적인가. <시> 그것이다. 시만이 전부이며, 이를 떠난 어떤 고귀함도 비천함도 관심의 대상일 수 없다는 주장이야말로 참으로 대담한 고백이자 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

세속적인 세계에서는 종이요 노예이지만 시의 세계에서는 찬란한 왕자라는 주장은, 세속적 세계에서 볼 땐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군주적인 자세이자 정신상태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지만 이것만은 절대로 버릴 수 없으며 또 이것만은 <내것>이라 주장하는 사람을 두고 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정신상태란, 종교의 경우엔 매우 뚜렷해진다. 우리의 경우 조선조 후기 몰락 양반계층에 침투한 카톨릭 세력을 설명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권력층에서 밀려난 몰락한 남인층(이 경우 비유적으로는 다산을 포함시킬 수도 있으리라)이 천주라는 이름의 절대신에 스스로를 포기하고 종이 되었던 이유란 무엇일까.

그 심리적 메커니즘이란 일목요연하다. <아비는 종이었다>의 그것과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 것, 신 앞에 종이 되는 일이란 신 이외의 일체의 것, 가령 왕권이나 계층싸움 등을 포함한 일체의 정치적 현실적인 것의 철저히 멸시하기의 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 패배한 자가 그 패배를 이길 수 있는 길이란, 현실정치를 철저히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러면서도 허무의 늪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신이 필요하였다. 그런 신의 노예가 됨으로써 비로소 그는 현실정치를 철저히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었는데, 주체성이 비로소 획득된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나는 종이다>라고 외치는 고백체란 약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유례없는 강자의 목소리가 아닐 수 없다. 서정주에 있어 그 절대적인 신은 <시>였다. 조연현에 있어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였다.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만 생각한다면 나는 언제든지 학교나 가정에서 환영받는 모범적인 우등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뿐 아니라 그 길은 나에게 있어 가장 용이하고 안이한 길같이만 생각되었다. 사실은 이 안이하고 용이해 보이는 길이 나에게는 가장 지난한 과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는 수학의 방정식을 풀고 영어단자를 암송하고 역사의 연대표를 기억하고 산소와 수소의 성분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젊은 베르텔의 비애]를 읽고 [악령]의 내용을 이해하고 랭보나 보들레르의 시를 외우는 것이 더욱 중대한 일같이만 느껴졌다. (윗책, p.300)

정상적인 학교수업을 감당할 능력이 없거나 모종의 이유로 그러한 일을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이 허무의 늪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이를 초극하는 길이란, 학업보다 한층 소중하고 성스럽기조차 한, 그러니까 신과 같은 존재를 상정하고 거기에 매달려 온몸을 맡기고 마침내 그것에 종이 되는 방식이다.

신(절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말할 것이 없이 형이상학적 동물인 인간의 이성적 고안물이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그러하였고 이 이데아를 신으로 대체한 기독교가 그러하였다. 이 관념형태로서의 형이상학에의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에 스스로를 초극하고자 한 것, 그것의 시대적 구체적 표정이 와일드의 [옥중기], 셰스토프의 [비극의 철학]이었다. "인생은 보들레르의 시 한 줄에 비길 것이 못 된다."(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芥川龍之介)라는 사상이 이로써 탄생된다.

현실에 철저히 패배한 자들의 현실초극방식이 신의 노예로 됨으로써 가능했다면, 서정주는 신의 자리에 미를 앉혔고, 따라서 미가 지배하는 영토의 왕자일 수 있었다. 신의 자리에 도스토예프스키를 앉힌 조연현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지배하는 영토의 왕자라 자처함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서정주나 조연현의 이러한 출발점이 도시의 모던보이인 임화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점도 손쉽게 지적될 수 있다. 보성중학을 중퇴, 교과서를 팔아 헌팅캡을 사 쓰고, {중앙공론} 따위 사상잡지를 사들고 가출한 서울 토박이인 임화가 다다이즘과 아나키즘에 몸을 던지고, 활동사진배우로 달려감이란, 그 모더니티가 지배하는 영토의 왕자 되기에 다름아니었다.

이들 세 사람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동질적이지만 그들이 선택한 신의 성격을 현저하게 달랐다. 서정주에 있어 그것은 미였고, 조연현에 있어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였고, 임화에 있어 그것은 근대성(마르크스주의)이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면 조연현과 임화의 정신적 높이가 매우 유사함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임화가 근대성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고 그것을 경배하고 그의 종이 되어 마지않았다면,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그의 시·평론으로 나타났고, 마침내는 남로당의 문학이념인 인민민주주의 민족문학론으로 논리화되었다면, 그것은 그가 주체성을 세우기 위한 길의 필연성에서 말미암았던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와 정면으로 맞서, <구경적 삶의 형식> 또는 <원형적 인간성의 형식>으로써 근대성을 철저히 부정한 조연현 비평 역시 자기의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연성에서 말미암았다. 이점에서 둘은 정신적 높이에서 등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과 노예의 논리(변증법)를 문제삼을 경우엔 현저한 차이가 있는데, 이점을 밝히는 일은 조연현 문학 본론에 해당될 뿐 아니라 우리 근대정신사의 본론이 아닐 수 없다. 주인으로서의 서양(근대성)을 섬기고 그것의 노예가 되는 일이란 무엇인가.

만일 서양이, 이성의 계몽주의(료타르가 말하는 큰 이야기)가 보편성을 막바로 가리킴이라면, 근대성의 종이 되어 이를 이땅에 심고자 하고, 이를 휘두른 임화는 이로써 주체성을 세운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근대성을 하나의 허구(서양 것이지 내 것이 아님의 인식)로 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삶의 구경적 형식> 또는 <원형적 인간성의 존재방식>을 신이라 보고 이것에 스스로 종이 되고자 한 조연현의 처지에서 보면 임화가 경배하는 신인 근대성이란 한갓 허깨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구경적 삶의 형식이 허깨비냐 근대성이 허깨비냐라고 문제를 제출하는 것은, 구경적 삶의 형식이 진짜 신이냐, 근대성이 진짜 신이냐를 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또 문협 정통파(곧 인생파·생명파·청록파)와 근대주의파(모더니즘 및 마르크스주의)와의 대결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방식의 문제제출이 정치주의냐 문학주의냐로 문제를 제출하는 방식보다 한층 본질적이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러하다.

3. <구경적 삶의 형식>에 이르는 길

과연 조연현이 비평가로 될 때 무엇을 대가로 지급했던 것일까. 이런 물음의 해답이 위의 논의에서 어느 정도 암시되었거니와 그의 문학적 출발은 시였다. [하나의 향락](1938)이 발표된 것은 배재중학을 졸업한 18세적이었다. 해방 직후에도 그는 시작에 몰두하였는데, 서정주의 주의를 끌었다는 [혼자 가는 길]의 전문을 보이면 이러하다.

혼자 가는 길이다.
나의 모든 실패와 비극을 거느리고
나 혼자 가는 길이다.

어떠한 사랑도 도움도
이미 따라와 주지 않는
고요한 절정의 길이다.

누구에게도 들리어지지 않는
나의 노래를 가슴에 새기며
나 혼자 가는 길이다.

다음 날 가장 아름답게 가장 굳세게
솟아오를 나의 힘을 믿으며
나 혼자 가는 길이다.         ({조연현문학전집}Ⅰ, 1977, pp.92∼93)

[막다른 골목]과 함께 [혼자 가는 길] 역시 서정주의 초기 흔적을 매우 서툴게 간직하고 있는 이러한 작품에서 시적 자질을 말할 처지가 못 된다. 단순한 주장에 멈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의 창작에 대한 자질이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창작이야말로 학업이라 말해지는 세속적 삶을 초극하는 것이라 믿었는데, 이 믿음의 근거를 분석하는 일은 상당한 인내가 요청된다.

그가 별로 시적 자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를 계속 쓰고자 했는데, 그 이유란 무엇인가. {여성문화}에 [혼자 가는 길]이 발표되었을 때 서정주가 {조선일보}에서 호의있는 시평을 해 주었으나 "성급한 시대적 요구는 어느 사이에 시 한편 똑똑히 지어 내지 못하는 나에게 평론의 붓을 잡게 하였던 것"(전집 Ⅰ, p.110)이라 그가 말해 놓은 것은, 음미될 필요가 있다.

시에 대한 자신의 자질 없음을 암묵적인 상태에서 깨닫고 있었음과 동시에, 비평적 자질의 발견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면도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해방공간의 비평에서 많은 평론활동을 감행한 바 있다. 평론집 {문학과 사상}(1949)은 김동리의 평론집 {문학과 인간}(1952)과 더불어 뚜렷한 비평사적 업적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속적으로 시인이 못되었음을 한탄하고, 스스로가 이루어놓은 고도의 비평행위와 그 업적을 대수롭지 않은, 그러니까 흡사 억지로 마지못해 해 놓은 어떤 대행물로 간주하고 있음은 웬 까닭인가.

나는 아직도 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기왕에 평론에 붓을 댄 이상 나의 평론은 시나 소설과 마찬가지의 창작적인 의의를 갖지 않으면 아니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되었다. (전집 Ⅰ, p.110)

그가 이렇게 말해 놓은 것은 {문학과 사상}을 간행한 1949년이었다. <성급한 시대적 요구>로 말미암아 시를 버리고 비평을 썼지만, 자기의 목적이랄까 지향점이 시인 이상, 비평을 시의 경지로 올려 놓는 길이 겨우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그는 <창작과 비평>이라 불렀다. 외도에 불과한 비평행위를 본도인 시의 경지로 이끌어올린다면 바로 외도와 본도의 구별도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것이 당시의 그의 방향성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문학적 외도>인 비평을 어떻게 하면 문학적 본도인 시적 경지로 이끌어 올릴 수 있을까. 이 방법론에서 그는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 속에 조연현 비평의 본질이 깃들고 있다. 당초 그는 이 방법론을 참으로 막연하게 생각했음을 다음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비평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창작된 예술품이 아니라는 것, 이런 것이 나는 싫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대부분의 비평이 갖는 특성이라 할지라도 모든 비평이 다 그렇게만 결과된다고는 볼 수는 없다. 작품 이상으로 창조적인 비평도 있는 것이 아닌가. J.M.머리의 [기독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론]과 같은…… 남에의 관심을 통하여 자신의 철학을 논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처럼 형상화하는 그 놀라운 능력! 나도 이런 능력을 갖출 수만 있다면 평론가로서 나는 또한 얼마나 영광스러운 창조자가 될 수 있을까. (전집 Ⅰ, p.127)

이러한 발상은 일종의 시적 환각이 아니겠는가. 일찌기 일본 근대비평을 연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는 비평이란 타인을 소재로 하여 자신을 말하는 것이라 갈파했거니와 조연현은 이러한 비평을 일축하고 J.M.머리의 [도스토예프스키론]같은 작품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머리의 작품이 예술품처럼 형상화된 것인가 아닌가란 중요하지 않다. 또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랄까 경지를 가리킴인가를 아는 일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비평을 시처럼 형상화된 것이라고 생각한 점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러한 비평을 끝내 쓰지 못했음에 있는 것이다. 대체 어떤 형태가 형상화된 비평일까. 조연현 비평은 이점에는 함구하고 있다. 그의 비평 전체를 훑어보아도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예술품처럼 형상화한> 비평은 단 한 편도 발견할 수 없다. 이는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가 보통 비평이라 할 경우 그것은 표현과 인식의 무한한 접근을 의미할 것이다. 가령 시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시작품을 내보인다면 그것은 인식으로 대답한 것이다. 비평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인식만으로도 표현만으로도 부족한 것. 이 둘의 무한 접근이 그 이상이다. 조연현 비평은 이 사실을 알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표현만이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그 고정관념을 단 한 번도 실천하지 못 했다. 여기서 못 했다 함은, 안 했다 함과는 구별된다.

원칙적으로 비평의 존재방식상에서 조연현이 바라는 그러한 <예술품처럼 형상화된> 비평이란 존재할 수 없다. 표현과 인식의 무한 접근이 비평의 이상적인 존재방식인 만큼 표현 일변도를 지향하고자 한 조연현의 염원이란 실상 비평 자체의 부정행위가 아니면 안 된다.

그가 머리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을 그러한 유형이라 주장하지만, 이 역시 벨자예프나 지드 또는 E.H.카나 고바야시 히데오의 도스토예프스키론과 같은 범주에 드는 것이며, 다만 이들에 비해 논리의 힘이 빈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표현과 인식의 무한 접근에서 비평의 이상이 놓여 있다는 일반론을 거부한 조연현 비평은 그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그러한 고정관념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시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음에 대한 일종의 복수행위가 아니었을까. 시에 대한 편향성이 비평에 대한 원한을 낳았으며, 이 원한이 마침내 비평거부현상으로 퉁겨져나간 것이다. "내가 평론가가 된 것은 나 자신의 희망이거나 목적이 아니라 그것은 인생의 모순과 같은 하나의 운명"(전집 Ⅰ, p.127)이라고 그가 강조할 때, 이 문맥 속에 놓인 원한의 밀도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누구나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원한이 예술작품처럼 형상화된 비평, 곧 불가능한 환상적 비평상을 상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불가능한 비평상의 내세움이란 기묘하게도 조연현 비평의 특성을 이루게 되는데, 이점을 밝히는 것은 조연현 비평에 멈추지 않고 우리 근대 정신사의 해명으로 연결되는 것이어서 특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조연현은 실상 비평을 거부함으로써 비평보다 그 근원적인 문제에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내적 드라마가 일종의 율리시스적 거인의 모험에 해당된다고 볼 것이다. 그가 몽매에도 그리워한 시란 형상화된 예술작품을 가리킴이 아니라, 그러한 것 속에 비로소 깃들어 있고 또 깃들 수 있는 <원형적 삶의 형식>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두고 다만 시라 불렀던 것. 실상 그가 J.M.머리의 [도스토예프스키론]에 형언할 수 없이 반하고, 이를 두고 <예술작품처럼 형상화하는 놀라운 능력>이라 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술작품 자체를 가리킴이었던 것이다.

머리가, 또는 지드나 고바야시 히데오가 쓴 <도스토예프스키론>들이 예술작품처럼 형상화된 놀라운 비평으로 보이는 것은 그들의 비평능력의 놀라움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정작은 논의된 대상인 도스토예프스키 예술이 뿜어내는 휘황함이었던 것, 그는 이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고, 평론집을 낸 직후 다음처럼 고백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괴테의 작품과 함께 나의 모든 정열을 바쳐서 이를 구명하고 이를 소화해보고 싶은 유일한 문학적 대상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매료되어 이미 10년의 세월이 흘러갔건만 이 엄청나게 거대한 대상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손을 대여보아야 할지 그 갈피를 잡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지나치게 깊고 넓은 그 창공과 영토의 어느 조그만 한 부분에 이미 나는 압도당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도취되어버리거나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문학을 立像化시켜보기 전에 그의 작품을 이해해보는 데 숨이 가빴으며 그의 작품을 이해해보기 전에 그의 그 방대한 전저작을 읽어내는 데 힘이 벅차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0년 동안이나 나를 압도하고 나를 숨가쁘게 해온 도스토예프스키는 언제나 나에게 있어 (……) 문학적 원천이었다.지금까지의 나는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를 잘못 이해해왔는지도 모를 것이며 나는 언제나 그를 왜곡하여 인식해왔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10년을 한결같이 그에 대한 상념에서 떠나본 날이 없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해결은 나의 인생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한 필연적인 과제가 아니 될 수 없을 것이다. ([구경을 상징하는 사람들 (Ⅰ)], {문예}, 1949.12, pp.138∼139)

평론집 {문학과 사상}(1949.12)을 간행한 직후 그는 돌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부제를 단 [구경을 상징하는 사람들]을 그가 책임편집하는 {문예}에 3회, 다른 곳에 1회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文學界}의 편집책임자인 고바야시 히데오가 마르크스주의 문학진이 잠복된 직후인 1935년 1월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생활]을 연재한 것에 여러 모로 대응된다.

성급한 시대적 요구가 조연현으로 하여금 시를 버리고 평론을 하게끔 강요했는데, 이 사실은 [내가 살아온 한국문단](전집 Ⅰ 수록)에서 자세하다. 곧 해방공간에서의 좌우익 문학논쟁이 그것인데, 여기서 좌우익이란, 정확히 말하면 당파성을 내세운 북로당과의 대결이 아니고, 임화·이원조·김남천 중심의 남로당(인민민주주의 민족문학노선)과의 대결이었다.

이 남로당의 문학노선(연합독재형식)이 남한 단독정부수립으로 철저히 무산되었고, 그 주력이 북로당으로 흡수되어 38선을 넘어간 1949년의 마당에 섰을 때 조연현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로 하여금 시를 버리게 하고 평필을 잡게끔 강요한 것은 성급한 시대적 요청이었다. 남로당과의 필사적인 논리적 대결이야말로 그의 평론의 전부였다. 그런데, 돌연 그 적수인 남로당이, 일 대 일의 실력대결이 아니고, 정치적인 사정으로 말미암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링 위에 올라서자 상대방 선수가 없는 장면이 벌어진 셈이다. 용사에 있어 가장 치욕적인 것은 싸울 대상의 소멸인 것. 이른바 부전승을 거두어야 하는 치욕스러움이 거기 있었다. 無虎洞中狸作虎의 형국이 벌어졌던 것. 문협이 뚜렷한 존재로 군림하고, 남로당 잔당인 정지용·백철·김기림 등이 보도연맹 산하에 모여들고 있었다. 상대가 없어진 용사의 가슴만큼 공허한 것이 따로 있었을까.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였다.

고바야시 히데오의 경우도 사정은 꼭 같았다.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문학(NAPF 계열)이 만주사변(1931) 이래 대탄압을 받아 잠복상태에 돌입하였으며, 그 거두의 하나인 전향자 하야시 후사오(林房雄)의 감옥행을 배웅한 직후 고바야시 히데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생활]의 연재를 시작했던 것이다.

어째서 도스토예프스키여야 했던가. 이 물음엔 일목요연한 해답이 주어진다. 장대한 마르크스주의 사상체계와 맞먹는 장대한 사상체계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였던 까닭이다. 장대한 것에는 장대함만이 맞설 수 있는 것. 이는 상식 중의 상식이 아닐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장대함이란 또 무엇인가.

조연현에 있어 그것은 <구경적 삶의 형식>(김동리)이었다. 조연현에 있어 도스토예프스키란,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조한 인간형에 있었는데, 그 인간형이란 구경적인 삶의 형식이라는 점에 있었고, 이를 달리 원형적 인물이라 불렀다.

고바야시 히데오에 있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장대함이란 러시아 사회에서의 사상과 현실의 분리, 곧 사상(관념)이 현실에서 분리되어, 도끼를 들고 현실 속을 여지없이 휘젓고 다니는 기묘한 후진국의 장면(小林秀雄, {도스토예프스키}, 고단샤, 1966, p.247)에 있었다. E.H.카 역시 이점에 지대한 흥미를 가졌다.

그런데 우리의 조연현은 어떠했던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조한 인물들의 그 절대적 성격의 심원함이야말로 그를 절망케 하는 장대함이었다. 그는 10년 동안(1939년부터이니까, 나이 19살 때부터인 셈이다) 라스콜리니코프·무이쉬킨·스타브로긴·키릴로프·드미트리 등의 기괴하고도 절대적인 인물들 앞에 절망해 왔던 것이다.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라고 시작되는 일인칭 고백체 소설인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비롯,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조해 낸 인물들 그 어느 것이나 일찌기 인간이 상상도 한 바 없는 극단적인 모습과 표정을 갖추고 현실 속으로 걸어나오고 있음을 목도한, 네 군데의 중학과 한 군데의 전문학교를 다닌 식민지의 한 시골 출신의 인간에게는 그것이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늪이며 심연이었다.

그는 이 심연에 무한한 매력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는데, 그 매력과 두려움을 시라고 믿었다. 곧 창조적 행위란, 이러한 구경적 인간형 탐구라 믿어 버렸던 것이다. 그것을 인간고의 극치이자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로 직결되는 과제로 받아들였다. 이 삶의 구경적 형식이란 물론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예술이란 이름의 관념세계(상상력)의 것이나, 이것을 향해 삶의 전부를 거는 일이 바로 문학하는 일인 만큼 <문학지상주의란 현실지상주의>와 등가가 아닐 수 없다고 그는 믿었다.

그러한 구경적 삶의 형식을 탐구하는 일이 문학이고 거기로 매진하는 일이 그에겐 현실인 까닭이다. 곧 문인에 있어 현실이란 한 개의 사상, 한 개의 표현, 한 개의 언어가 아닐 수 없는 것. 고바야시 히데오에 있어서도 사정은 같다. 고바야시에게 있어서도 살아 있는 것은 언어 곧 사상이지 인간이 아니었다. 언어가 인간보다 생생히 살아 있는 경지란 시가 아니고 무엇일까. 고바야시의 정신이 시적 경향을 띠는 것. 그의 명저 {도스토예프스키의 생활}의 기묘함도 이와 관련이 있다.(江藤淳, {小林秀雄}, 고단샤, 1965, p.180)

해방공간이 정리기에 접어들어, 역사공간으로 변하기 직전의 공백기에 직면한 조연현의 내면에 비친 도스토예프스키란 마르크스주의가 물러난 자리를 메우는 장대한 사상체계였다. 그런데, 이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이름의 장대한 사상체계가 원형적 인물 또는 구경적 삶의 형식을 갖춘 인물군으로 비친 이유는 무엇일까.

사상체계가 육화되었음을 새삼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사상체계가 육화되었다 함은 또 무엇인가. 곧, 시적인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는 여기서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가 도스토예프스키론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구경적 삶의 형식을 갖춘 인물을 알아보는 일이 그 자신의 현실적 삶을 규제하는 율법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시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시적 창조(형상화)란 결국은 언어의 문제였던 것. 그럼에도 그는 아직 이점을 자각하지 못했는데, 성급한 시대적 요청이 그 자각을 막았던 까닭이다. 그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은 단 4회(1959.1∼4)로 끝나고 말았는데, 6·25가 그의 모든 것을 걸었던 이 과업을 중단시켰다고 했지만(전집 Ⅰ, p.33), 6·25가 없었더라도 과연 그는 이 과업을 계속 밀고나갈 수 있었을까. 이 물음은 역사에 대한 가정법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데, 왜냐면 6·25가 그에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심연에 해당된 까닭이다.

구경적 원형적 인간 드라마가 그에겐 6·25였다. 6·25란 그에겐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군이 보여 주는 구경적 삶의 형식이 살아 있는 현실로 서울 종로 골목과 부산 광복동 <밀다원 다방>에서 펼쳐졌던 까닭이다.

4. 근대정신 전체와 대결한 김동리의 세계

조연현 비평에 있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존재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는 형편이다. 이점은 앞장에서 상세히 검토되었거니와, 실상 <성급한 시대 요청>을 그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도스토예프스키로 말미암았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르침에 따라 그가 평필을 들었으며, 그 때문에 그의 평론은 가공할 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라는 장대한 사상체계에 맞설 수 있는 것이란 도스토예프스키의 장대한 육체가 필요하였던 것. 근대성이란 이름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체계에 맞설 만한 사상체계란, 눈을 씻고 보아도 도스토예프스키밖에 없었던 것. 이 사실을 도스토예프스키와는 관련 없이, 독자적 방식으로 전개한 이론분자가 작가 김동리였다.

김동리에 있어 문학함이란 아주 자명한데, <구경적 삶의 형식>에 해당된다는 것이 그것. 문학한다는 것은 곧 산다는 것에 해당되는 것이며, 이는 다음 3가지로 분류된다. 짐승처럼 사는 단계가 그 하나. 두번째는 직업적 삶. 그러나 이 두 삶엔 연속성이 없다. 이 두 삶에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삶의 방식이 있는데, 이것이 구경적 삶이다.

우리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천지 사이에 태어나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천지 사이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적어도 우리와 천지 사이엔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유기적 관련이 있다는 것과 및 이 <유기적 관련>에 관한 한, 우리들에게는 공통된 운명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에게 부여된 우리의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의 전개에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의 전개에 노력하는 것, 이것이 곧 구경적 삶이라 부르며 또 문학하는 것이라 이르는 것이다. (김동리, {문학과 인간}, 인간사, 1952, p.100)

이 인용에서는 <운명>이란 단어가 한가운데 놓여있거니와, 구경적 삶의 형식이란 결국은 인간의 원형적 조건의 탐구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구경적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을 탐구함이 그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종교와 다름은 표현(형상화)을 통해서라는 점에서이다.

이른바 인간 조건의 원형, 절대의 탐구와 그것의 표현이란 김동리의 [무녀도](1936)라든가 [역마](1948)에서 선명히 드러나며, 또한 유치환의 허무의지라든가 서정주의 육체의 원형이 이를 새삼 환기시키고 있다. 이들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그들의 창작(표현)에 주력하고 있을 때, 이들의 창작에 논리적 형식을 부여한 것이 조연현 비평이었다.

왜냐면, 이들의 창작이 근대성이란 이름의 마르크스주의라는 장대한 논리 앞에 크게 위협받게끔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협에서 구출하고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끌어들인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이점에서 해방공간에서의 조연현의 존재는 뚜렷한 유일한 방법론이자 운명 자체이기도 하였는데, 왜냐면 중학시절부터 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심연 주변을 헤매며 그 심연을 보아 왔던 까닭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해방공간의 마르크스주의를 막아 내는 장치로 고안해 낸 것이라면, 이는 한갓 방법론상의 측면이겠지만, 오래 전부터 도스토예프스키를 맴돌며 그 심연을 보아온 점에서 보면 방법론 이전의 운명(생리)적 측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가 아시아(러시아)적 공동체의 고대적 성격에 닿아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결해 있지만, 그럼에도 방법론적 측면과 생리적 측면이 오직 조연현을 통해서만 가능했는데, <성급한 시대적 요청>이 이를 한층 촉진시켰을 따름이다. 이 요청에 응할 수 있는 자질이 그에게만 있었던 까닭이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로 말해지는 구경적 삶의 형식이 우리 문학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었던 것일까. 조연현 비평이 찾아낸 가장 뚜렷한 문학이 서정주와 김동리에서였다. 구경적 삶의 형식이기에 시라든가 소설의 구별이란 애시당초에 초월해 버린 것. 원형적 인간상의 탐구가 전부인 까닭이다. 본격문학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한 문학의 대표적 형식의 하나가 {화사집}의 서정주이다. 조연현 비평이 서정주를 평가하는 방식이 김동리의 문학평가 방식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것도 이 까닭이다.

먼저 그는 서정주의 문학을 <원죄의 형벌>이라 규정한다. 23세에 쓴 [자화상]을 분석하는 마당에서 조연현은 숙명 또는 운명을 기본단위의 평가기준으로 삼고 그것을 3박자의 명쾌한 논리로 정리하였다.

<애비는 종이었다>는 이 굴욕의 의식! <스물세해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는 이 유랑의 의식! 그리고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갔다는 천치와 죄인의 의식이 그것이다. ({문학과 사상}, p.74)

<원죄의 형벌>이라 규정할 수 있는 이러한 [자화상]의 상황(조건)이란 물을 것도 없이 원형적 상황이다. 거기에는 짐승일 수도 없는 인간, 그리고 직업으로 규정될 수도 없는 인간상이 늪처럼 펼쳐져 있다. 있는 것이라고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운명만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운명적 조건을 가장 밀도있게,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표현(형상화)의 수준에서 완성한 것이 김동리 문학인데, 이를 정확히 묘사한 점이야말로 조연현 비평의 휘황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을 통해 본 우리의 근대정신사개론>이란 부제를 단 [근대조선소설사상계보론서설]({신천지}, 1949.8)은 조연현 비평의 최고 수준을 드러낸 것이자 동시에 우리 근대정신사의 내면풍경을 선명히 밝힌 뛰어난 업적이다.

이 평론이 지닌 착상의 패기란 놀랄 만한 것이며, 그 패기를 감당하고도 남는 정치한 논리가 뒷받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근대성의 초극문제가 빈틈없이 논의되어 있어, 모더니즘은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땅에서 논의하는 사람들에게는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필수적인 통로까지를 겸한다. 이 평론에서 그가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광수의 [무정](1917)에서 김동리의 [황토기](1939)에 이르기까지의 소설이다. 어째서 [무정]에서 [황토기]까지여야 했는가에 대해 그는 다음처럼 명쾌히 기술한다.

그것은 [무정]이 우리의 근대적인 사상의 최초의 표현이었다면 [황토기]는 [무정]에서 출발된 우리의 근대사상의 구경적인 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무정]이 우리의 근대에의 출발을 완성시킨 최초의 작품이라면 [황토기]는 우리의 근대에의 종언을 완성시킨 최후의 작품이라는 데 있는 것이다. ({문학과 사상}, pp.52∼53)

이 대목에서 제일 주목되는 것이 <근대적 사상>, <근대사상>, <근대>이다. 지금 그는 근대성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근대성이란 무엇인가. 구경적 삶의 방식이라든가 운명의 형식이라든가 원형적 인간형으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사상체계)가 근대성과 어떤 연관 아래 놓여 있는 것일까.

이 물음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겠는데, 마르크스주의가 바로 근대성·근대사상 자체인 까닭이다. 말을 바꾸면, 조연현 비평이 여기서 시방 겨냥하고 있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초극하느냐에 있었던 것이다.

그가 [무정]을 두고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그 당시의 개화인들의 열광적인 지지와 성원 속에 등장된 우리의 최초의 근대적인 작품인 [무정]이 우리의 최초의 근대인이었던 당시의 개화인들을 한 사람도 명확한 형태로서 구상화시켜 놓지 못했다."(윗책, p.54)라고 했을 때 그는 근대인의 주체성을 묻고 있는 것이다.

[무정] 속에는 계몽사상이 범람하지만 구체적 인간성을 완성시킨 최초의 경우에 멈추고 만 것이다. 우리의 최초의 근대인이었던 그 당시의 개화인들이 근대사상에의 막연한 추종자는 되었으나 근대사상의 명확한 소유자는 아니었다는 것, 이를 정확히 반영한 점에서 [무정]은 근대의 출발을 완성시킨 작품으로 규정된다.

[무정]을 출발점으로 하여 열린 우리의 근대문학사상은 (A) 김동인으로 대표되는 자연주의, (B) 박종화({백조}파)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C) 이기영으로 대표되는 유물주의로 전개된다. [무정]에서 출발된 우리의 막연한 근대의식이 (A)(B)(C)로 전개되었다 함이란 이 셋이 근대성의 구체화라는 뜻이 아닐 수 없다.

자연주의란 근대정신의 기초 위에서 성립된 것으로 종래의 모든 인간의 권위와 우상을 자연과학의 시각에서 비판·해체·부정하였는데, 그 결과는 어떠했던가. 인간의 현실태란, 과학적 생물학적 시각에서 보면 한갓 추악한 짐승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며, 성욕과 시체와 광인들이 난무하는 지옥도가 펼쳐졌던 것이다.

한편, 낭만주의의 구경은 어떠했던가. <월광으로 짠 병실>의 이미지가 잘 말해 주듯 자연주의가 폭로한 추악한 현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오직 환각 속에서 모든 가치기준을 설정한 꼴이었다. 물론 당초의 낭만주의란 미와 제2의 현실 창조에 있었지만 박종화로 대표되는 그것은 단순한 현실로부터 회고에의 도피요 과거에의 미련과 애정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이기영으로 대표되는 유물주의란 어떠했던가.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수준 높게 수용한 이기영 문학의 구경이란, 인물이나 소재 및 사상이 한결같이 이데올로기 구현을 위한 방편으로 처리되고 말았던 것이다.

자연주의·낭만주의·유물주의란 물을 것도 없이 [무정]에서 막연히 출발된 근대의식의 구체적인 3가지 발현양식이었지만, 각각 현실폭로의 비애로, 회고와 과거에의 꿈으로, 이데올로기의 기계적 적용으로 치달아, 명확한 근대성의 총체적 형상화에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 중간에 한층 새로이 동요되고 방황하는 양상을 보여 주는 일군의 작가들이 놓여 있었다.

새로이 방황, 동요한 문학이란 구체적으로는 (D) 이태준·이효석·안회남·유진오·김남천·박태원 등의 한 묶음과 (E) 이상과 최명익의 그 한 묶음을 가리킴이다. (D)그룹은 어떠한가. 김동인·박종화·이기영 등이 전개한 (A)(B)(C)를 각기 자기 나름으로 세련시켰거나 되풀이한 것으로 평가될 수는 있으나, 어느 것에도 깊이를 갖추지 못하고 어정쩡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곧 근대정신의 세련자들이나, 근대정신을 명확히 하는 대신 오히려 회의와 방황을 드러내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A)(B)(C)에 각각 탯줄을 이어, 이를 비판 극복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근대의 종가인 서구의 근대정신이 위기에 처해 가고 있음을 보고 그것에 탯줄이 닿았기 때문이다. 본래적인 근대가 아니고 종가의 근대가 망해지자 생긴 그 불안의식을 근대 자체인 듯이 착각했던 것이다.

이점에서 볼 때 (E)란 의미심장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상과 최명익으로 대표되는 (E)란, 서구의 근대의식의 동요·방황·회의 끝에 놓인 자의식의 분열과 해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상은 그러니까 자기분열의 완성을 보여 준 것이며, [무성격자], [심문]의 작가 최명익은 자기해체의 완성을 보여 준 것이다.

[무정]에 의해 막연히 출발된 근대의식이 (A) 김동인 (B) 박종화 (C) 이기영을 통해 어느 수준에서 명확히 드러났으나, (D)에 와서는 각각 근대의식의 불안·회의·동요에 휩쓸려 갈팡질팡하다가 (E) 이상과 최명익에 와서는 극단적 양상인 자기분열 및 자기해체로 치달아, 근대정신 자체가 <결정적으로 붕괴>되었다는 것. 이것이 조연현이 파악한 근대성의 도식이다.

근대정신의 이러한 결정적 파산 앞에 놓인 늪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이 마지막으로 남거니와 조연현 비평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이다. 근대정신이 결정적으로 파산한 자리, 그것이 조연현 비평의 출발점이라 함은, 그것이 구경적 삶의 형식에 해당되기 때문인데, 구체적으로 그것은 다름아닌 김동리의 작품세계였다.

이광수에서 김동리, 박종화, 이기영을 거쳐, 이상과 최명익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란 실상은 김동리 문학 하나를 위한 준비 단계임을 주장하고 증명하고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조연현 비평의 본질이다.

이렇게 결정적으로 붕괴된 우리의 근대정신이 최후로 직면하게 되는 세계는 허무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김동리씨의 [황토기]는 이렇게 완전히 붕괴된 우리의 근대정신을 허무로써 정리하고 청산하려고 한 획기적인 작품이다. 근대정신의 청산인으로서 등장한 씨는 인간의 구경적인 운명을 허무에서 발견하고 이를 타개하는데 그의 모든 정열을 바쳐온 사람이다. [황토기]를 대표로 하는 씨의 일련의 작품들은 분명히 인간의 구경적인 과제가 허무로 돌아가버리는 인간의 모든 운명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씨가 바라본 인류의 생활이라는 것은 그것이 그대로 허무와의 유희였던 것이다. ({문학과 지성}, pp.68-69)

인류의 근원적인 삶의 방식이 <허무와의 유희>라는 이 발상이 대단한 착상의 패기로 보이는 것은 그것은 근대성과 대비시켰음에서 왔다. 실상 인류학이라든가 종교의 처지라든가 동양의 노장철학의 처지에서나 또는 샤머니즘의 자리에서 보면 허무라든가 허무와의 유희 따위란 운명이란 말 그것처럼 흔해빠진 상식의 일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 삶이란 근대정신과는 담 쌓고 살아온 시골의 밀밭길이나 서낭당 있는 마을에는 무당과 함께 지천으로 널려 있는 민중들의 일상성이자 현실이었던 것이다. 조연현 비평의 중요성은 이러한 전근대적 삶의 방식을 근대성과 연결시켜 파악한 점에 있다고 앞에서 말했거니와 그것은 여기에 이른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관여하고 있음과 관련된다.

5. 도스토예프스키와 6·25의 등가사상

김동리 문학을 허무와의 놀이로 보고, 그것이 과학주의· 합리주의· 실증주의· 유물주의 등으로 요약되는 근대성의 결정적 파멸을 목도한 뒤의 세계, 그러니까 헤겔투로 말해 역사의 종말 이후의 일, 또 다르게는 <근대의 초극>의 마당이라고 조연현 비평이 주장할 때, 그 전제에는 저 원형적 인물 또는 구경적 삶의 형식이 유례없이 펼쳐져 있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놓여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담보로 했기에 비로소 {황토기}가 바른 자리에 놓이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평 속에 김동리, 서정주,유치환 그리고 청록파를 놓이게끔 한 것이 조연현 비평의 최대의 공적인데, 그가 문협 정통파를 대표하는 논객인 까닭도 여기에서 말미암는다. 그가 김동리 문학을 두고 다음처럼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도스토예프스키를 등에 업었기에 가능한 논법이다.

문제는 어쩔 수없이 허무와 맞서게 된 씨가 자기 앞에 가로놓인 허무에 굴복되느냐 이를 극복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씨가 자기를 가로막고 있는 허무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새로운 사람이 우리의 현대정신을 창조해주기까지 허무와 대결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씨가 자기를 가로막고 있는 허무를 극복한다면 우리는 40년 동안의 근대정신을 청산하고 새로운 현대의 정신을 처음으로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허무를 극복하느냐 이에 굴복하느냐 하는 이자택일의 설정에 직면한, 씨의 허무를 반항하기도 하고 제 3휴머니즘을 주장해 보기도 하는 씨의 근업에서 새로운 호흡과 주체의식이 박명 속에서 감각되고 발효되고 있다는 것은 씨의 금후에 대한 우리의 주목과 관심을 이끌어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문학과 사상}, p.70)

이 글이 1949년 8월에 발표된 것이니까 6 25가 나기 10개월 전에 해당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광으로 비로소 선명히 드러나는 김동리 문학의 한계란, 잘 따져보면 도스토예프스키가 근대정신의 비판을 선취해 놓았음에 관련된다.

루카치가 그의 {소설의 이론}을 끝마치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19세기적 유럽의 낭만주의라든가 그것에 반대하는 각양각색의 낭만적 반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러니까 <새로운 세계>에 속한다고 주장한 것({소설의 이론}, 루흐터한트 판, p.137)과 이것은 무관하지 않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증주의· 과학주의· 합리주의를 철저히 비웃고, 그것과는 별개의 삶의 구경적 질서관을 제시한 바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허무 앞에 직면하여 이를 초극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김동리 문학이 한눈에 잡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김동리의 시각에서 보면, 허무의 늪 앞에까지 나아간 마당인만큼, 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위기감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김동리 문학이 소설과 평론으로 이분화되는 과정이 이 위기감으로 설명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허무의 늪에 빠져 익사하지 않으려면 이 늪을 메우거나 건너야 하는데, 소설로써는 그 방도를 알지 못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이 그가 직면한 허무의 늪을 작품으로 메울 수도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라는 장대한 관념 때문이었다면 김동리에겐 그것이 불가능하였다. 그에겐 무당이나 풍수설밖에 없었다. [사반의 십자가]도 안병무의 지적대로 도술소설의 일종이었다. 그 대신 그는 평론으로 그 일을 감행하고자 시도하였다.

{문학과 인간}이 그것이며,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평론집이 아니고 혼신의 힘으로 허무의 늪을 건너뛰고 있는 생생한 비약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를 허무의 늪으로 익사케 하기 위해 육박해 오는 힘(세력)이 바로 근대성· 근대정신· 근대주의 자체였기 때문이다. 해체되고 분열된 근대정신이 일제히 총단합을 하여 하나의 깃발 아래 뭉쳐진 것이 마르크스주의였다.

이원조·임화로 대표되는 인민민주주의 민족문학론(모택동의 연합독재형식)이 그것이다(이 책의 Ⅲ장 이원조론 참조). 해방공간(1945-48)의 허무의 늪에 익사하지 않으려는 김동리 문학의 요청이기도 했던 것이다.

창작으로는 허무의 늪을 건너뛰거나 메울 시간적 여유가 없을 만큼 상황은 다급해졌다. 근대정신의 총체성이 마르크스주의를 핵으로 하여 거대하게 육박해 오자, 이에 맞서는 방식이란 평론이 아니면 안 되었다. 직접성이 평론의 특성인 까닭이다.

직접성으로서의 평론이 김동리의 {문학과 인간}, 조연현의 {문학과 사상}이다. 따라서 이 두 저술은 기념비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는데, 안으로는 허무의 늪 건너뛰기라는 위기의식의 소산이며 밖으로는 정치주의로서의 조직적 행동강령이다. 문제는 물론 안으로서의 위기의식과 그 극복 방식에 있다. 주체성 확보가 그 과제인 까닭이다. 이 점에서 조연현 비평은 선명하다.

김동리 문학이 소설 대신 평론으로 이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면 조연현 문학은 비평 일변도의 강도와 밀도를 갖출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들 비평의 내면풍경 또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의 근대성에 추격당하기와 이에 맞서고 반격하기의 내적 드라마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흡사한 것이다. 그것은 <낭만적 아이러니>로 요약되는 정신현상학이라 할 것이다. 이점에 조연현 비평의 위대성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다.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한 작업은 1930년대 후반기, 이른바 {문장}(1939-1941)지를 중심으로 한 세대논쟁으로 소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진오의 [순수에의 지향]({문장} 1권 5호, 1939)의 반론으로 씌어진 김동리의 {순수이의]({문장} 1권 7호)란 우리 근대문학의 정신사적 문맥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자리에 놓인다.

유진오가 내세운 논점은 30년대 작가들이 이데올로기를 경험한 처지에 있었는데, 그 이데올로기(카프문학)의 소멸로 말미암아 돌연 방향성을 잃었다는 것. 이 공백지대에 들어선 것이 파시즘이었다는 것. 따라서, 종전의 이데올로기의 포기와 새로운 이데올로기인 파시즘 앞에 갈팡질팡하고 있음을 고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김윤식,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일지사, 제2부 6장 참조).

유진오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카프 계열 작가들의 처지가 모두 이와 같았다.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파시즘이라는 이데올로기란 실상 동일한 것이 아닐 수 없는데, 함께 근대성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임화·김남천 등이 파시즘으로 쉽사리 이동해 간 것, 유진오·백철 등이 사실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 천황제 파시즘으로 접근해 간 심리적 메커니즘도 이로써 설명된다.

기성작가들이 이러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 신진작가들에겐 그러한 고민이 없으리라고 유진오가 지적했는데, 물론 이러한 지적은 그 자체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파시즘의 대두 앞에 노출된 유진오 중심의 지식인의 내면풍경의 드러냄에 그 의의가 있었던 것. 그렇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참으로 심각한 과제가 깃들어 있었다. 오직 김동리가 이를 지적, 충격하였는데, 이는 김동리의 총명함이자 동시에 논리적 필연이기도 한 점이 평가될 수 있다. 곧 김동리의 논리란 바로 주체성에 관한 것이다. 그가 다음처럼 단호히 말해 놓은 것은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근대성)를 비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의 하나였다.

자기의 의견에 의하면 어떠한 주관이나 객관이 그 자체가 따로 떨어져서는 아무런 리얼리즘도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의 주관과 아무런 교섭도 없는 현실(객관)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그 작가적 리얼리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한 작가의 생명(개성)적 진실에서 파악된 세계(현실)에 비로소 그 작가적 리얼리즘은 시작하는 것이며 그 세계의 여율(呂律)과 그 작가의 인간적 맥박이 어떤 문자적 약속 아래 유기적으로 육체화하는 데서 그 작품(작가)의 리얼은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몽환적이고, 비과학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도 그것은 가장 현실적이고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다른 어떤 현상과 꼭 마찬가지로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에 있어서는 훌륭히 리얼리즘이 될 수 있는 바이다. ([나의 문학수업기], {문장} 2권 3호, p.174)

아무리 몽환적 비과학적 현상이라도 가장 현실적 과학적일 수 있다는 김동리의 이러한 주장의 근거란 주체성의 존재방식에서 도출된 것이다. 말을 바꾸면 카프 작가들이 떠받들고 있는 이데올로기라든가, 그것이 무효화되자 새로이 등장한 파시즘이란 엄격히 따져 본다면 꼭같은 근대라는 뿌리에서 나온 이복형제가 아닐 수 없으며, 따라서 이를 신봉하고 이에 매달리는 일이란, 근대의 장본인인 가해자측인 서구인의 주체적 발현에 해당되는 것이다.

과학적 합리주의라는 사고형태에 기반을 두고, 주인의 처지에 확고히 선 서구가 그것을 무기로 하여 동양을 노예로 삼은 것이다. 노예인 동양의 인간들이 마르크스주의나 파시즘을 받아들여 그것에 매달리는 일이란 스스로의 주체성을 포기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유진오·임화·백철·이원조 등 기성세대가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란, 김동리의 처지에서 보면 실로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왜냐면 그들이 갈데 없는 노예임을 자처한 것인데 그것 대신 새로운 神인 같은 뿌리에서 나온 파시즘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망설이는 일 자체가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어느 쪽으로 나아가든 노예를 자처함에는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김동리의 이러한 시각은 건전한 것일까. 다시 말해 김동리의 시각은 노예 아닌 주인의 처지에 설 수 있는 것인가. 이 물음에는 이른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제4장 (A))이 어떤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실상 천황제 파시즘에 맞서는 길은 가장 비현실적 비과학적 몽환적인 세계여야 했던 것. 사실을 부정하는 방식이란 가장 몽상적 비현실적인 이데올로기여야 했던 것. [무녀도]나 [승무]] 또는 밀밭길이나 [황토기]의 세계가 선택된 것은 이 때문이다. 주체성 확보의 근거가 이에서 말미암았던 것이다.

해방공간에서도 이 현상이 그대로 유지되었음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깊은 논의가 필요하거니와). 동양인으로서 마르크스주의나 파시즘에 나아가는 일이란 스스로 노예들임을 자처한 것으로 김동리가 바라보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임화나 유진오·이원조 등을 두고, 서구라는 주인을 경배하는 노예들이라 하고, 이와는 별개의 인식 위에 선 김동리 자신은 스스로 주인이 되는 것일까. 이 물음의 해답은 일목요연하게 주어진다. 곧 <근대의 초극>이란, 몽환적 비현실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이를 두고 <낭만적 아이러니>라 하거니와, <근대의 초극> 심포지엄({文學界} 주최, 1942.7. pp.23-24)에서의 <일본 낭만파>의 논리가 이를 잘 말해 준다.

강렬한 신으로서의 과학적 현실적 근대성을 부정, 초월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맞설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몽환적 비현실, 비과학적 존재로 되는 길밖에 없다. 적어도 그렇게 함으로써 곧 자기부정을 통해 상대방도 부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막바로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요컨대 논리적으로는 일단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이 <낭만적 아이러니>의 실상이다. 그러나 자기부정(죽음)을 통해 상대방을 부정하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전혀 무의미한데, 자기부정 다음엔 세계가 소멸되기 까닭이다. 이 철저한 자기부정이 우리 근대사상사에서는 성립되지 않았고, 바로 이점에서 우리 근대문학사상은 주인·노예의 변증법의 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근대를 초극하기 위해 내세운 이런저런 논리, 가령 <구경적 삶의 형식>이라든가 <원형적 인간형>이라든가 제3휴머니즘론이가든가 <본령정계의 문학>이라든가 <본격소설론> 등이란 자기부정이 아니라 자기주장인 것이며, 따라서 단지 근대성과 맞서기 위한 한갓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에 대해 또 다른 이데올로기로 맞서는 일이란, 주인·노예의 변증법의 틀 속의 논의이며 결코 이 틀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이점에서 해방공간의 좌우익 이데올로기의 논쟁이란 헤겔주의 범주에서 한치도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란 무엇인가. 헤겔에 따르면 주체(자아)와 주체(타자) 사이의 상호승인으로 비로소 성립되는 무한성이라는 개념이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성립시키며, 그것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역전되어 노예가 주인이 된다는 것, 이러한 관계의 무한성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헤겔,임석진 역,{정신현상학} Ⅰ,지식산업사, 1988, pp.256-271).

해방공간에서의 좌우익 대립이란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것인 만큼 문협정통파도 남로당이 일방적으로 소멸(월북)되었을 때, 이에 맞섰던 문협정통파들이 돌연 긴장감을 잃고, 방향감각을 상실, 현실에 주저앉아, 현상 유지에 급급한 것은 이로써 설명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가장 난처한 자리에 놓인 것이 조연현 비평이었다.

김동리나 서정주 또는 조지훈은 그들 본령인 창작에로 나갈 수가 있었지만 평론가 조연현은 나아갈 길이 막혀 버린 형국이었다. 맞설 대상(직접성)이 사라졌을 때 조연현이 나아갈 길은 가상적인 새로운 대상을 만들어 내야 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란 특정 문인이 아니고 그가 만들어 낸 신에 다름아니었다.

원형적 인간, 이 말은 대단히 애매하고 막연한 용어다. 나대로 풀이하면 성격의 원형이라고 할까. 원형이라는 말보다는 인간성, 또는 인간형의 기본적 요소, 기본적 특성이라고 하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 전형적인 어떤 성격을 구성해주는 여러 가지 인간적 특성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적 성질이다. 내가 보기에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이것을 포착하는데 神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전집 Ⅳ, p.37, 밑줄 인용자)

그토록 강력했고, 그 때문에 혼신의 힘으로 맞설 수 있었던 근대성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돌연 잠복 또는 소멸되었을 때, 조연현이 얼마나 당황하고 있었는가를 위의 인용이 잘 말해 주고 있지 않겠는가.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강력한 신이야말로 그의 관심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그동안 얼마나 강력한 대상과 그가 맞서 왔는가의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점에 미루어보면 그가 새로이 선택한 신인 도스토예프스키와의 싸움도 근대성과의 싸움 못지않게 치열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최대로 평가한 지드의 도스토예프스키론, 머리의 그것, 그리고 고바야시 히데오의 그것과 맞서거나 능가할 업적이 나올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계기를 6·25가 앗아갔다. 적어도 그는 스스로 그렇게 말해 놓고 있다.

"6·25동란이 〔……〕내 최대의 욕망이었던 이 일에 대해서는 거의 엄두도 낼 수 없는 생활 속에 나를 빠져들어가게 했다"(전집 Ⅳ, p.33)라고.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이 물음이 실상 본질적이다. 6·25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앗아간 것이 아니라 6·25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였던 것, 말을 바꾸면 6·25가 그에게는 새로운 신이었던 것. 이점에서 조연현 비평만큼 일관성을 지닌 체계란 없다. 이는 그만큼 그의 비평이 주체적이었던 증거인 셈이다.

조연현 비평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나는 지금껏 매우 우둔하게 살펴온 터이다. 이제 결론을 맺자. 이 결론맺기 역시 내가 맺는 한 우둔할 것이다. 분명한 방식을 찾는 편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분명한 비평가 조연현 자신이 스스로의 본질을 밝혀 놓은 터인만큼 그것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 상책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문제는 상대방을 극복하기 위한 필사적인 자신의 역량의 발휘다. 비평의 이와 같은 양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실상의 모습 바로 그대로다. 벼란간 6·25 동란에 직면했을 때 그것에서 무사할 수 있는 어떤 편리한 생활의 방법이 있었는가. 우리는 死力을 다하여 6·25와 대결했을 뿐이다. 승리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요, 그 승리를 위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는 없었다. 개인도 그랬고 국가도 그랬다. 이것이 6·25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비평이다.〔……〕비평이 결사적인 행동이 아니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할 수 있는 의견이나 주장이라고만 생각되고 있는 한 비평은 삶의 표현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된다. (전집 Ⅳ, p.17)

출전 :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선청어문 23집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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