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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1-02 (금)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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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171      
[현대] 조연현과 문협 이사장 선거 (박태순)
조연현과 문협 이사장 선거

박태순

[2] 문인협회 이사장 선거에 출마한 이호철과 돌격대장 고은

1974년 12월 20일 제1회 [한국문학 작가상]을 수상한 고은을 축하하는 모임 자리가 청진동의 한 음식점에서 있었다. 이 문학상은 [한국문학]지가 제정한 것으로 시인 고은은 문학상이라는 것을 난생 처음 받아보는 중이었다. 가짜 고은이 연거푸 출몰할 지경으로 '성(聖)고은'은 일반인들에게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허무주의의 맹장'이었던 그의 그때까지의 한국문단 주소는 주변부적인 것이었다.

[한국문학]의 발행인은 김동리였지만 이의 경영은 손소희의 몫이었고, 편집을 비롯한 실무는 이문구 서영은 김연균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서라벌예대의 사제 관계인 이들 사이에는 서로 양보되지 아니하는 문학관의 차이와 고뇌를 인격적인 정중함으로 양해시키고 있었다. 난데없는 옥고를 치렀던 소설가 이호철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선거에 출마하도록 권유해보자는 발의는 이문구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나아가서는 손소희가 기획한 것일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김동리의 암묵적인 동의를 받아 김동리 캠프가 작동되기 시작한 것일 수 있었다. 이호철과 함께 옥살이를 했던 정을병은 이미 독자적으로 부이사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채비를 갖추어놓고 있는 중이기도 하였다. 이문구는 자실문인들과 김동리캠프를 매개하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창비학교]는 전면에 나서려 하지 아니하였고 [문지학교]는 어느 정도 중간자적인 위치에서 관망을 하고 있었다(창비학교/ 문지학교라는 '에콜'은 시인 황동규가 선물하여 붙여준 작명이었다).

비공식적인 [자실] 간사회에서 이미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다. 한국문단에 '마그마운동'은 벌써부터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지각변동운동'으로 문단 풍토 쇄신 작업을 일으켜야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는데 대하여 공감하게 되었다(자실회원 중에는 <너무 설치는 것 아니냐> 하는 자성론을 내놓는 이가 아주 없지는 아니하였으나 이에 대해서는 '대표간사'의 임제종 선문답과 같은 '투쟁론'이 단호하면서도 과감하였다).

① 민주화시대를 이끌어 나가야할 문학인의 시대 정신 표현
② 문단 체질 개선
③ 소위 '문인간첩단'이란 명칭으로 더럽혀진 한국문학의 명예회복
④ 이호철 정을병 임헌영 김우종 장백일등 [문인 반공법 위반사건] 피의자였던 5인의 실질적인 사면 복권 및 당당한 문단 복귀

이를 이루기 위해 자실문인들은 이호철에게 문협 이사장 선거에 출마할 것을 강력히 권유하였다.

더구나 국민이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는 '유신시대'에 문인들이 '선거'라는 행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의 상징적인 의미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물론 완벽하게 '장기집권체제'를 갖춘 현 이사장 조연현의 아성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박정희를 퇴치시키는 것만큼이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실제로도 '유신체제'의 당국은 문학동네의 '조연현체제'가 확고하다는 것을 입증시켜주기 위해 또한번의 '문학공작'으로 선거승리작전을 지원하고 지도해주게 된다)

그렇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의 성실성'이 문학계와 사회 일반에 중요한 메세지를 그 자체로 전달시킬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있었다. 고질적인 문학풍토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야말로 한국문학의 초미의 과제가 되어왔음은 누구나 일깨우고 있는 바였으니 '하나마나 마찬가지인 것'은 아니라는 믿음들이었다.

이 당시 42세의 나이이던 이호철은 '자유실천문인들의 천거'를 받는다는 전제 하에 문협 이사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하였다.

12월 23일 이호철은 자유실천문인들이 열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적으로 문협 이사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문 방송들은 예상 못했던 이러한 출마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문학 담당 기자들은 동아일보의 이부영, 조선일보의 이상현(아동문학), 중앙일보의 정규웅(문학평론가인 그는 자실 선언 발기자의 1인이기도 하였다), 한국일보의 우계숙, 서울신문의 박강문 등 쟁쟁한 멤버들이었다. 신문들마다의 정치적인 색깔과는 상관없이 이호철의 돌진을 '일대 문학적인 사건'인 것처럼 보도하였는데, 일반인들의 관심이 또한 대단하였다. 연초의 '문인간첩'이라는 딱지는 오간데 없이 되고 연말의 '문협이사장 도전' 이라는 '명예혁명'의 전개가 대단히 극적이기 때문이었다.

"문협 이사장 선거에 새 양상/ 젊은 작가 추대로 이호철씨 출마 선언"

중앙일보는 이러한 제목으로 한국문단의 체질개선 및 세대교체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음을 보도하였다(요약).

"김동리씨의 출마 포기로 조연현 현 이사장의 독주가 예상되던 문인협회 이사장 선거에 40대 작가 이호철씨가 돌연 출마를 선언, 문단에 충격을 주고 있다. 주로 30대의 젊은 문인들에 의해 타의로 출마하게 됐다는 이씨는 <문협 혹은 문단의 쇄신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이 때, 나의 출마가 일조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십자가를 메는 기분으로 기꺼이 앞장 서곘다>고 말했다."

'문협 혹은 문단의 쇄신'은 어떤 이유에 의하여 제출되고 있는 중이며 왜 그것이 요청되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정규웅 기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씨의 출마 표명이 문단에 충격을 주는 까닭은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문학단체가 항상 50대, 60대의 중진 문인에 의해 리드돼왔기 때문이다. 이씨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 문학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제 때 문학활동을 하던 문인들은 이제 우리 문학의 정신적인 지도자의 위치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근본적으로는 문학단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나, 문협의 존재를 기성사실로 받아들인다면 <문협이 우리 문학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가령 지난번 '문인사건' 때 문협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도전이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매우 회의적이지만 이씨는 문인 자신의 긍지와 자존심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또한 이사장에 선출된다해도 문인 본래의 자유 회복, 문단 풍토 개선등 기틀이 마련된다면 더욱 참신하고 유능한 문인에게 바통을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26일의 조선일보는 "문단에 예상 못했던 충격파/ 이호철씨 문협 이사장 출마"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보도하였다(발췌).

"김동리씨의 출마 포기로 조연현 현 이사장의 단독 입후보가 확실해졌던 이사장 선거에 뒤늦게 이호철씨가 출마 선언을 하게 된 것은 문협의 세대교체와 타락선거의 배제등을 시도한 고은 박태순 이문구등 젊은 문인들의 요청에 의한 것. 부이사장에 입후보한 정을병씨와 제휴, 40∼30대 문인들을 배경으로 한 이씨의 이같은 전격적 출마선언은 문단에 예상치 못했던 충격을 던지고 있다. 문단선거가 일반 정치선거 추태의 축소판으로 비난을 면치 못했으나, 이번 선거가 의외의 자숙을 엿보이고 있는 것은 출마 당사자나 유권자인 회원이 다 함께 갖는 소망의 작용과 표현으로 문단 정화를 위해 격려돼야할 일이다."

12월 27일 이호철은 전국 문인들에게 연하장을 겸하여 문협이사장 출마 인사장을 우송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자신의 뜻을 피력하였다(발췌).

인사 말씀

새해 안녕하십니까?

지난 한 해는 우리 문단에만도 크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본인과 몇 동료 문인들이 불의로 영어의 몸이 되었으나 문단의 선배 동료 여러분의 물심양면의 뜨거운 사랑과 도움에 힘 입어 풀려나오게 된 것을 뒤늦게나마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중략).

먼저 오늘의 문단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풍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을 같이하는 문인들의 강력한 충고와 권유로 이번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에 출마하기로 하였습니다.

한국문인협회는 마땅히 전체 문인의 권익옹호와 공익에 엄정하고 회원중심의 문협 운영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독선과 아집, 그리고 정실과 편파에 치우쳐 몇 사람의 관료적인 독무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번 문협선거는 문단만의 행사가 아니라 사회 각계가 주시하고 있으며 우리 문학인들에게도 문단의 낡은 껍질에서 벗어나느냐, 아니면 더 깊이 타락할 것이냐 하는 중요한 고비가 될 것입니다.

부디 기탄없는 충고와 채찍을 주시기 바라며 아울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에 본인을 적극 밀어주실 것을 거듭 당부하며 이만 인사말씀을 올립니다.

1975년 새해 아침 이호철 재배

아울러 자유실천문인들은 전국 문학인들에게 이호철후보 추천의 글을 우송하였다(박태순 작성).

이호철씨를 추천하며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문단의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좋은 문학풍토에서만 좋은 문학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문학사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 문협이 문학인들 위에 관료적으로 군림하여 비민주적인 권위주의와 파벌, 그리고 이권 다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 우리 문학인들은 이를 선거에 의해 광정해야할 정당한 권리와 의무에 소홀할 수 없는 것입니다(하략).

1975년 1월 일추천인 일동

1975년 새해가 되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벌어졌다. 한국문단에는 이상한 풍습이 있었다. '원로문인'의 댁으로 수백명씩 몰려들어 흡사 '파워게임'을 벌이는 것처럼 세배를 다니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75년 벽두에는 자유실천문인들마저 '선거운동'을 위해 이같은 '유세행각'을 벌이고 다녔다. 선거 전망은 밝은 것이 아니었지만 이호철 정을병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고은 이문구 신세훈 박태순등이 열심히 뛰어다녔다.

중앙일보는 선거가 임박한 1월 10일 날짜의 문화면에 조연현 후보를 지지하는 모씨의 기고문과 함께 이호철 후보를 지지하는 고은의 기고문을 실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발췌).

"그동안 우리는 많은 물의를 담고 있는 문학단체에 대하여 초연해왔다. 그것은 일종의 문학단체 무용론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런 흉흉한 문협선거 따위에 뛰어드는가. 왜 '백로의 사회'를 뛰쳐나왔는가. 첫째, 우리는 많은 문학인들이 문협의 피해자라고 판단한다. 문학단체의 소재는 그것이 문학인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학인이 그것을 정당한 절차에 의해서 이용하는 목적과 부합되지 않으면 안된다. 문단의 살림을 맡는 일은 그것이 문학적 명예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차라리 문단의 대내(對內)에서는 가장 무능한 도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결코 특정의 문단 야망자의 점유물이 아니라 문학사회의 교류에 대한 절충자의 역할에만 그 의미가 주어진다(중략).

우리는 문학사회에 대해 사회의 깊은 관심이 집중되어 있음을 본다. 여기서 우리는 문단의 사회에 대한 책임이 어느 시대보다도 확실하게 설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아무리 문협을 가지지 않으려해도 사회적 직능기구로서의 문협은 기정 사실이다. 이런 경우 문학인들의 자세가 고고한 것만으로는 문협의 폐습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을 겪은 40대의 이호철씨를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가 아무런 적의 없이 문단의 위장된 양태들을 달래서 전체 문학인의 마음 하나하나를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젊은 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태순은 1월 10일 날짜의 동아일보에 이호철 후보를 지지하는 글, "문인의식과 문예운동"을 기고했다(요약).

"작년 1974년은 문학인의 전변의 몸부림이 어느 때보다도 강했던 1년이었다. 문학이 서있는 위치는 바로 그 시대의 환부일 수 밖에 없다. 문학인은 문학작품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문학인 자신으로서도 문예운동을 일으켜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해 1975년을 맞이했다. 우리의 문학적 상황은 여전히 극한을 이루고 있다. 문학은 문학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문학 내적인 시련에 의해서 그 정처(定處)를 여전히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언론자유가 누구의 선물로 가져지는 것이 아니듯이, 문학의 현장도 문인들의 피와 땀의 노력으로서만 획득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과연 문인들은 문학의 현장을 올바로 지키고 있는가. 아니 문학의 영토는 현재 제대로 존재하기는 하는가. 왜정시대에는 친일문학자들이 있었다. 자유당 독재 치하에서는 이른바 만송족 문인들이 있었다. 지금 설마 그런 배신적 문인들은 없으리라 믿지만... 문인을 위한 문학단체가 아니라 문학단체를 위해 문인들을 복속시켜놓고 갖은 추태로서 문인들을 망신시키는 상전 노릇을 해왔다. 1월 12일 열리는 문협 이사장 선거가 이번에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그것이 문학자율화운동의 성격을 띤 때문이다. 고난과 시련이 거셀수록 문예운동은 더욱 풍요하게 뻗어나갈 것이다. 그러기에 1975년 우리는 한층 든든한 용기와 희망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주목 끌고 있는 문협 이사장 선거/ 파벌 중심 문단에 해방세대 도전"

동아일보 문화부 문학담당 기자이면서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앞장을 서고 있던 이부영 기자는 이러한 제목으로 문협 선거에 관한 장문의 기사를 작성하였다. 그것은 자유 언론인이 지켜본 한국문단에 관한 문화시평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이었고, '광고탄압'에 맞서던 일선기자들의 언론정신을 엿보게 하는 것이었다(요약).

"해방 후 문단을 지배해온 해방 이전의 문인들이 해방 후 진출한 신진세대들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단지 문단에만 그치는 흐름이 아니라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바람의 한 부분이다.

이호철씨의 입후보는 그의 당선 여부는 차치하고 문단에 비상한 충격을 가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문협의 주류는 박종화 김동리 조연현씨로 이어지는 보수적인 흐름으로 일관해왔다. 문화계에 가득차 있는 비문화적인 요소들과 관련, 문화단체 해독론이라는 부정적 평가까지 나왔던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짧은 문화단체사의 특징은 이들의 성쇠와 집산이 혼란스러웠던 정치사와 같은 궤적을 그렸다는 점이다. 문화예술계가 외부에 의해 조정되는 한 그 문화예술은 항상 내적인 숙제를 안고 있게 되며 자생적인 문화의 논리를 갖추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또한 문화단체가 어용성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단체로서 당연히 지녀야할 압력단체의 기능을 팽개치는 것도 뻔하다. 한국문단은 이러한 현상을 일제 친일단체의 작가, 자유당 시절의 '만송족'에서 보았고 지금도 그런 양상이 지속돼온 형편이다(중략).

문단의 이같은 풍토는 신인 등장의 길을 또한 왜곡시켜왔다. 신인들은 주로 문학지의 추천과 신문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장하는데 이른바 문단 지도자들이 심사위원이란 관문을 틀어잡고 앉아 문단 신풍의 유입을 갖가지로 막아왔다.

문학의 업적에 비례함이 없이 문단의 실력자로 작가가 세력을 갖는 풍토는 문단을 유파 중심보다는 파벌 중심으로 편성하는 달갑지 않은 추세를 결과시켰다. 이제 문단도 정화할 단계와 시점에 이른듯 하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문인들의 자각증상의 적극 표면화의 한 부분이며 일부 사이비 문인들에 의해 더이상 농락당해서는 안된다는 요청의 구체화이기도 하다. 문단에서도 여타 부문이나 마찬가지로 해방후 건전한 시민의식을 기초로 자라온 세대들이 기존 문단 주류에 도전할만큼 자란 셈이다."

1월 12일 운니동 천도교 예식장에서 75년도 제14회 한국문인협회 정기총회가 열렸다. 유신독재에 저항하여 국민들이 총궐기하는 양상을 띠고 있는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여 사회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모은 이번의 문협 이사장 선거는 초기의 예상과는 달리 대단히 과열된 대결 양상을 나타나게 되었다.

① 국민이 대통령 직접선거를 할 수 없는 시대에 문인들이 문협 이사장 직접선거를 한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심장한 상징성

② 유신체제를 떠받쳐온 현 이사장의 문협구조에 대해 40대의 이호철 후보가 사회민주세력을 대변하여 도전한다는 것이 보여주는 문학 민주화운동 실현 가능성의 궁금증,

③ 중앙정보부부를 비롯한 관계 당국의 조연현 현 이사장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방어 전술 전략과, 언론자유운동을 벌이고 있는 언론 매체 일선기자들의 자유실천문인들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과 지지라는 양극적 대립구조의 결과 여하.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1945년 해방 이후로 체제함몰적인 관제문화의 기제로 자리잡아온 문협 문단의 메카니즘을 자유실천문인들이 돌파한다는 것은 도저히 가능할 수 없었다.

① 문협 총회에 8백40명의 회원이 참석한 것으로 집계되었으나, 당초 예상보다 많은 숫자가 동원된 것은 총회에 대비하여 조연현 집행부가 그동안 급조한 신입회원이 2백여명에 달한다는 것 때문이었고,

② 더구나 그 신입회원 2백여명의 명단이 공개되지 아니한채 문협 사무국에 의해 비밀에 붙여져 있어서 이호철후보 진영에서는 그같은 회원들에 대한 접근은 커녕 그 실상조차 파악할 수 없었을 뿐더러 과연 그들이 진정한 자질을 갖춘 문인들인지 아니면 한낱 강제동원용의 거수기에 불과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는 점,

③ 총회 회의 진행이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날치기' 강행이라는 혐의를 받을 일이 자행되고 있었는데 사전의 치밀한 작전이 '관계간 회의'에서 구상되어 있었고,

④ 이사장 선거에 들어가면서는 고의적으로 기표장을 설치하지 않아 다른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후보자 이름을 쓰도록 하여 비밀투표가 아니라 공공연한 공개투표의 양태를 드러내게 하고, 특히나 현 집행부인 조연현 이사장을 비롯, 이봉래 김요섭등이 단상의 높은 위치에서 문인들의 기표를 바로 아래쪽으로 감시토록 하여 전혀 자유선거가 보장되지 아니하였다는 점.

이에 대해 이호철후보측의 고은은 총회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일방적으로 자행되는 이번의 문협 이사장 선거의 불공정성을 통박하고, 아울러 문협 사무국장 오학영이 광주의 문순태에게 보낸 협박과 회유의 편지, 그리고 이호철과 고은에 대한 인신공격을 담은 편지를 물증으로 공개하면서 이 선거를 부정선거 불법선거로 단정하였다. 개표 결과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그는 자유실천문인들 일행과 함께 모두 퇴장하였다.

고은은 자유실천문인들의 문협선거 가담에 대해 '영광뿐인 패배'라고 규정하였다. '도전 자체로서 거사의 의미를 갖는 문단사적 일대 사건'이라 하였다.

개표 결과는 이호철 266표, 조연현 528표로 집계되었다.

예상대로 조연현은 일방적 선거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된 뒤 시인 박용수를 비롯하여 많은 문인들의 항의와 규탄의 노성에도 불구하고 '한국문단의 10월유신'을 선포하였다.

"문협 선거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이사회에서 추대 형식으로 이사장을 선출하자"

그는 일방적인 주장과 함께 박수를 유도시켜 이 안건이 통과되었다고 선언해버렸다. 추대제에 필요한 정관 개정등 구체적인 안건은 새로 구성되는 이사회에 맡기기로 한다고 발표하여 독단적으로 '문협 유신체제'를 구축해버렸다. 이때로부터 문협 총회는 이사장을 뽑는 것이 아니라 분과별로 이사를 선출하는 기구로 전락되어 실제적으로는 총회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하였다.

1월 13일 날짜의 동아일보는 "타락으로 끝낸 문협 정기총회/ 조연현씨 이사장 유임/ 다시 드러낸 문단 고질"이라는 제목으로 이 선거의 추악상에 관해 보도했다.

"75년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선거도 역시 예년이나 다름없이 고함과 홍소 그리고 자조 섞인 탄식으로 끝냈다. 정기총회를 겸한 선거장이 그랬다면, 선거 전야는 협박 금력공세 회유 등 갖가지 악폐가 동원됐다는 후문이 나돌아 문단의 풍토가 예나 조금도 다름 없다는 해석을 내리기에 인색할 수 없을 것 같다."

1월 13일 날짜의 중앙일보 '분수대' 컬럼은 "개운찮은 과열 5시간"이란 제목으로 문협선거를 비판하고 야유하는 문화시론을 펼쳐 보였는데 문학평론가 홍사중이 쓴 것이었다.

"어쩌면 문사들마저도 때묻고, 심드렁하고, 역겨운 그 정상배들이 하는 일을 닮았을까. 하긴 '문단'을 만들어 무슨 총회를 하는 일부터가 비문학적 반문학적이다. 그것을 희극으로 엮어도 재미 없는 희극일 것 같다."

한국문학 구조를 바꾸어보고자 했던 이 때의 자유실천문인들의 시도는 문학사적으로 어떻게 자리매김될 수 있을까. 문학이론가들은 그 '시도'의 엉성함, 순진성, 나아가서는 비과학성을 문책하려고 할 것이다.

김인환은 [20세기 한국비평의 비판적 검토]라는 거대담론의 논문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문학 비평이 문학의 한 갈래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문학에 대한 논의가 대중의 일에 관계되는 공공 영역의 일부로 인정되어야 한다.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경제 활동이 제한되던 나라 잃은 시대에 문학과 문학비평은 현실에 대하여 발언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공공 영역으로서 기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국 현대 문학비평이 1920년 6월에 처음으로 간행되었던 [개벽]지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고 살피지만, 문학 또는 구체적으로 문학비평이 한국에서 어떻게 성립되게 되는가 하는 데 대한 그의 근원적 성찰을 더 주목해서 읽게 된다.

문학 또는 문학비평이 '대중의 일에 관계되는 공공 영역으로서' 기능하여야 한다는 거시적 파악이 우리 근대문학의 출발 지점으로부터 이미 제시되고 있었다는 그의 진술은 과연 20세기 한국문학사를 새롭게 읽어볼 필요를 깨우치게 한다.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경제활동이 제한되던' 시대는 20세기의 전사(前史)만 아니라 후사의 70년대와 80년대에까지도 형태와 방식을 달리하여 지속되어 왔던 것이었다. 그는 '공공영역'에 놓여져야만 하는 문학(비평)의 성립 토대를 성찰하고자 하지만, 20세기의 80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은 '공공영역'을 확보하여 기능하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에 이르러 과연 그것이 바람직하게 확보되었다고 비평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까 하는 데 대한 답변이 궁금하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그 시련의 출발'을 다룬 이 항목에서 '시련'은 과연 어떤 뜻이 되는 것일까. [한국문학구조 변천사]라는 관점에서 이를 검토하고 아울러 비판하는 전문 비평을 기다리게 된다.

아울러 이 글은 유신시절의 문협 이사장 조연현을 긍정적으로 조명하여야 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아니하였는데, 문학평론가 조연현에 관한 평가는 이와는 별개의 것이지 않으면 아니 된다. 앞에 인용한 김인환의 논문은 조연현론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요약).

"조연현은 1948년에 출간한 첫 평론집 「문학과 사상」(세계문학사)에서 문학 사상과 정치 사상의 차이를 해명하고 문학의 생리적 자율성을 옹호하였다. 그는 비평도 창작과 마찬가지로 비평하는 주체가 가진 생명의 한 표현이라고 보았다.

문학과 철학에 대한 교양에 근거하여 작품을 철저하게 읽은 것이 조연현의 공이었다면 비정치주의의 가면을 쓴 정치주의에 집착한 것은 조연현의 허물이었다. 동란 이전에 나온 현대 비평의 업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47년에 수선사에서 나온 「조선신문학사조사」와 1949년에 백양당에서 나온 「조선신문학사조사(현대편)」이다. 임화의 전례가 있기는 하였으나 혼란의 시기에 580면이나 되는 문학사를 정리해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출전 : 민족문학작가회의-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예운동사 18-박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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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8 사전3 [현대] 박목월 (한메) 이창호 2004-01-02 928
2897 사전3 [현대] 박목월 (두산) 이창호 2004-01-02 876
2896 사전3 [현대] 박목월 (민족) 이창호 2004-01-02 950
2895 사전3 [현대] 조연현과 문협 이사장 선거 (박태순) 이창호 2004-01-02 1171
2894 사전3 [현대] 조연현론 (김윤식) 이창호 2004-01-02 1688
2893 사전3 [현대] 조연현 (브리) 이창호 2004-01-02 1007
2892 사전3 [현대] 조연현 (한메) 이창호 2004-01-02 909
2891 사전3 [현대] 조연현 (두산) 이창호 2004-01-02 962
2890 사전3 [현대] 조연현 (민족) 이창호 2004-01-02 1069
2889 사전3 [현대] 서정주 (바이오맨) 이창호 2004-01-02 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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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