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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0-03 (금) 23:15
분 류 사전3
ㆍ조회: 549      
[근대] 민족주의 (두산)
민족주의 民族主義 nationalism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하고, 이것을 창건(創建) ·유지 ·확대하려고 하는 민족의 정신상태나 정책원리 또는 그 활동.

민족주의는 본래 매우 비합리주의적이고 다의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이것에 일률적인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민족주의가 성립하는 데는 2가지 조건이 필요하였다. 첫째, 세계는 하나라고 하는 이상과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세워진 세계제국(世界帝國)이 무너지고 많은 독립국가가 나타나, 종래의 보편적인 종교 ·문화를 대신하는 새로운 민족적인 종교 ·문화를 창조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이렇게 이룩된 독립국가를 국민들이 ‘우리들의 국가’로서 받아들여 사랑하고 이에 긍지를 느끼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첫째 조건은 16세기 이후 그리스도교 세계의 통일이 무너지고 로마교황이나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많은 독립국가가 나타남으로써 충족되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에 나타난 독립국가는 그 대부분이 절대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것을 ‘우리들의 국가’로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거리가 먼 존재였다.

왕은 절대군주로서 절대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민은 전혀 권리를 가지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국민이 그들의 국가를 ‘우리들의 국가’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군주의 절대권을 제한하거나 배제하여 국민의 권리를 신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국민의 국가’가 되어야만 비로소 국민은 국가에 애착을 느끼고 긍지를 갖게 되며, 조국(fatherland)이라고 부르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최초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 곳은 17세기경의 영국이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꽃피운 나라도 영국이라 할 수 있다.

1. 역사

세계사적으로 보면, 민족주의가 세계를 움직이는 결정적인 힘이 된 것은 18세기 초였으나, 영국은 이보다 빨라서 17세기에 이미 민족주의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세계에서 제일 먼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영국은 부르주아지의 성장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빨랐다. 그들은 성장과정에서 중세의 미망(迷妄)을 타파하는 과학적 정신을 발전시켜, 왕권의 시녀가 되어버린 국립교회(國立敎會)의 개혁을 주장하는 한편, 국가와 국토를 국민의 것으로 만드는 혁명적인 정치이론을 창안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을 17세기의 청교도혁명을 통하여 최초로 실천하였다. 이것은 또한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쳐 독립전쟁(1776∼1782)을 일으키게 하였다. 본국의 압정(壓政)에 시달리던 미국은 본국과 투쟁하는 가운데 민족주의를 형성하였다. 투쟁의 선두에는 부르주아지가 섰으며, 그들은 민족주의가 갖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교묘히 이용하여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은 18세기의 프랑스혁명(1789)에서이다. 여기에서는 혁명의 와중(渦中)에 민족주의가 형성되었다. 혁명의 선두에는 부르주아지가 서서 민중을 이끌었고, 민중의 압력을 배경으로 하여 군주의 절대권(絶對權)을 부인하는 한편, 성직자·귀족의 특권을 폐지하고 인권선언을 공표하였다.

혁명정권이 내걸었던 '자유·평등·박애'의 기치(旗幟)는 프랑스 국민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외의 나라들에도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까닭으로 혁명의 진행은 프랑스의 군주와 귀족은 물론, 전(全)유럽의 군주·귀족들까지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무력간섭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 사이에서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일어난 애국심과 민족주의는 이를 완전히 물리쳤다.

당시의 프랑스에서는 민족주의란 절대군주에게 반대하는 일이며, 애국심이란 혁명을 지키는 일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민족주의는 공화제(共和制)와 민주주의를 뜻하였고 애국자는 곧 혁명가를 뜻하였다. 이런 경향은 1793년 자코뱅당(黨)의 독재기에 최고조에 달하였으며, 이 시기에는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794년 쿠데타에 의하여 자코뱅당이 몰락하자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 성공과 함께 더욱 심화되었다.

2. 반동화

프랑스에서 민주주의가 민족주의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한 시기는 나폴레옹이 유럽대륙에 대하여 침략전쟁을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 전쟁 중에 유럽대륙에서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탄생하였다. 즉, 프랑스의 민족주의는 프랑스의 침략군에 대한 국민의 저항 가운데서 탄생하였으며, 이의 지도적 역할을 한 것은 부르주아지가 아니고 절대군주의 정부 및 귀족들이었다. 이들 절대군주의 정부 및 귀족들은 프랑스의 침략군에 대한 국민의 증오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그들의 계급적 이익과 모순되지 않는 형태로 민족주의를 옹호발전시켰다.

여기서는 민족주의가 당초부터 민주주의나 합리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다루어졌고, 국민의 권리보다도 왕실의 영광이, 이성(理性)보다도 본능이 구가(謳歌)되었다. 혁명은 미치광이짓으로 간주되고 도리어 과거의 전통이 찬미되었다. 절대군주나 귀족들은 이와 같은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그들의 권위를 지켰고 혁명을 방지하는 방패로 삼았다.

19세기 말, 제국주의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민족주의의 반동화(反動化)는 점차 심화되어 갔다. 제국주의는 민족주의의 부정(否定)임과 동시에 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민족국가의 테두리를 무너뜨리고 다른 민족을 한 국가의 지배하에 두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민족주의의 부정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다른 민족을 병합·흡수함으로써 그 힘을 과시하고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민족주의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제국주의 단계에서도 부르주아지는 민족주의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였다.

민족주의는 그들에게는 외국침략이나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美化)하고, 약소민족에 대한 압박을 합리화하며 식민지나 반(半)식민지의 주민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신적인 근거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파시즘이 나타나, 민족주의가 파시즘의 노예가 된 단계에서 극점(極點)에 달하였다. 여기에서는 국가 또는 민족이 절대시되고 극단적인 에고이즘이나 침략전쟁이 신성화된 반면, 개인의 자유·평등·인간성의 가치는 완전히 부정되었다. 나치스시대의 독일, 파시즘시대의 이탈리아는 그 가장 좋은 보기였다. 이와 같은 종류의 반동적 민족주의를 아시아에서 발전시킨 국가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의 영향을 받아 천황제(天皇制)라는 절대주의체제를 확립하여 천황·귀족·지주 중심의 민족주의를 발전시켰다. 일본은 청일전쟁·러일전쟁·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자본주의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천황제를 수정·변질시켜 독특한 파시즘체제를 만들어내어 대규모 침략전쟁에 나섰다.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황통(皇統)'이니 '세계무비(世界無比)의 국체'니 하는 따위가 조작되고, 그것을 지킨다는 구실 아래 국민의 자유가 억압되었으며, 그들의 침략전쟁에는 이른바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처럼 민족주의가 변전(變轉)을 거듭하는 사이에 당초 그것이 부정하려고 하였던 것을 긍정하게 되었고, 타도하려고 하였던 것을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고전적인 민족주의가 갖는 본래의 혁명적 정신이 역사상에서 완전히 말살된 것은 아니었다. 제국주의 제국(諸國)에서 민족주의가 자유의 적에게 봉사하며 반동화되어 가고 있을 때, 이들 제국주의 제국에 의하여 핍박받고 있던 반(半)식민지·식민지에서는 새로운 민족주의가 혁명적 정신의 기수(旗手)로서 등장하였다.

3. 식민지민족주의

식민지 민족주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먼저 동부아시아에, 이어서 동부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로, 서남아시아에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로 식민지 ·반식민지 세계의 전역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역사의 추진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는 고전적 민족주의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었다.

고전적 민족주의는 자본주의가 봉건세력의 억압에 항거하여 성장하는 과정에서 탄생된 민족주의였으므로, 한결같이 반(反)봉건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식민지 민족주의의 경우는 이보다 더욱 복잡하였다. 즉, 식민지 민족주의는 자본주의가 무르익어 제국주의의 단계로 접어든 시기에, 제국주의의 압제하에 신음하던 식민지에서 일어난 민족주의였으므로, 반(反)제국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식민지 중에도 제국주의와 결탁한 토착의 봉건세력이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주의의 신장을 억제하는 경우에는 반봉건적 성격을 띠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 경우에도 민족주의의 주요한 적은 토착의 봉건세력이기보다는 그 배후조종자인 제국주의자였다. 그러므로 반제국주의야말로 식민지 민족주의와 고전적 민족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일제(日帝)의 압제하에서 일어났던 한민족의 독립운동이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식민지 민족주의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다.

4. 사회주의국가의 민족주의

1848년 K.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 중에서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고 말하였으나, 그 프롤레타리아가 아이러니하게도 1917년 러시아혁명에 의하여 그들의 조국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소련을 그들만의 조국이 아니라 온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조국이라고 선전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소련 한 나라뿐이었던 프롤레타리아의 조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복수(複數)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민족주의문제는 사회주의 세계에서도 무시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의하면, 사회주의국가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원리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이지 민족주의가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또,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오직 상대국의 독립과 주권을 존중하고 그 내정에 간섭함이 없이 호혜평등의 입장에서 물심양면의 형제적 원조를 제공하여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럼으로써 전근대적 농업국에 머물던 후진국도 더불어 선진공업국으로 성장해 감으로 민족주의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회주의국가에서 민족주의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회주의국가라고는 하지만 현시점에서 그 경제구조가 국민경제로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기반으로 민족주의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중·소 대립을 비롯한, 소련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민족주의자들의 반소(反蘇)게릴라전,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이즘, 그리고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의 자유노조운동 등 사회주의국가 사이에서 일어난 각종 이해대립은 이를 잘 입증한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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