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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27 (목)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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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598      
[현대] 대한민국 사회2-교육 종교 (민족)
대한민국(사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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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육

우리 나라에 있어서 학교교육의 역사는 매우 길다. 고대로부터 근대 말에 이르기까지의 1,500여년 동안 각 왕조는 모두 교학발전을 위하여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세기 말 근대교육제도가 도입된 이래 거의 1세기가 지난 오늘날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국민교육은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있어서도 교육을 통한 국권회복이라는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정신 아래, 일제의 식민지교육정책에도 불구하고 자주독립을 지향한 민족의 교육열은 매우 높았다.

광복 후의 교육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민주주의이념에 입각한 교육정책의 수립과 국민의 교육열 증가에 따라 교육수요는 해마다 높아져, 현재는 각급 학교의 취학률과 상급학교에의 진학률이 어느 선진국에도 뒤지지 않는 교육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또한,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정규교육기관 이외에도 평생교육의 이념에 입각하여 취학 전의 유아교육 및 일반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사회교육이 확충되어 가고 있다.

[교육정책]

광복 후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원리를 이념으로 한 새로운 교육을 추진하게 되었다. 미군정기 동안 종래 복선형 학제를 단선형으로 개편하고 교육행정의 자치화를 꾀하는 한편, 초등학교 교과서 편찬, 민주교육 이념의 보급을 위한 교원 재교육, 문맹퇴치를 위한 성인교육, 각급 교육기관의 확충 등 새로운 교육체제를 정비하게 되었다.

이러한 군정기의 교육재건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우리의 힘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교육을 모색하게 되었다. 당시 무엇보다 시급한 교육정책 과제는 국민교육제도의 근간이 될 교육의 기본법을 제정하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1949년 12월 〈교육법〉이 공포되어 홍익인간의 이념을 교육이념으로 삼게 되었으며, 각종 교육제도의 정비로 교육기반을 확립하게 되었다.

1951년 3월 6·3·3·4제의 현행 학제가 수립된 이래 제도적으로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고 국민학교 의무교육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으며, 중등교육인구의 급증과 고등교육의 확장 등 전란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을 계속하여 왔다.

한편, 교육자치제의 실시를 위하여 꾸준히 추진한 결과, 6·25전쟁중인 1952년 6월 각 교육구와 교육위원회의 발족을 보게 되었다. 전쟁복구와 재건기라 할 수 있는 1950년대 중반 이후 전란으로 파괴된 교육시설을 복구하고 교원의 수급조정 및 인사 등에 관한 체계 확립, 반공·도덕 교육의 강화와 과학·기술 교육의 진흥 등에 중점을 두어 교육정책을 추진하였다.

1960년대는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거치면서 교육의 정상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1961년 9월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 등을 공포하고, 1963년 2월 종래의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기에 이르렀다. 제3공화국에 들어와서는 민족중흥과 국가발전을 위한 교육개혁이 강조되었다. 이에 따라 1968년 잇따른 교육정책상의 개혁이 실시되었다.

즉, 중학교 평준화시책에 따른 중학교 무시험진학과 대학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지역간의 격차 해소를 위한 대학입학예비고사 실시 등 입시제도에 있어서의 변혁을 비롯하여, 〈국민교육헌장〉의 제정, 통신교육제도의 도입, 장기종합교육계획심의회 설치 등이 그것이다. 특히, 〈국민교육헌장〉은 새로운 국민상과 국민교육을 제시한 것으로, 홍익인간의 교육이념과 함께 우리 나라 교육의 기본이념으로 정착되었다.

제4공화국이 출범한 1970년대의 교육은 ‘국적 있는 교육’이라는 기치 아래 반공안보교육·주체성교육 등에 역점을 두었으며, 과학기술교육과 산학협동기술이 강화되어 전국민의 과학화운동이 실시되었고,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의 사회적 기능을 개발하기 위한 새마을교육이 전개되었다.

학교교육에서는 중등교육의 보편화가 이루어져 1979년 중학교 진학률이 91%를 나타내게 되었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고등교육에서의 개혁과 확충이 이루어졌다.

즉, 고등학교 졸업생의 증가와 산업인력 수요의 증가에 대응하여 기존 대학의 입학정원이 현저히 확대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전문대학 수준의 고등교육기관이 대폭 증가되어 고등교육의 보편화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대학교육의 확충과 함께 대학원교육의 강화를 지향하는 고등교육개혁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입시제도에 있어서는 고등학교의 평준화와 지방교육의 발전을 목적으로, 고등학교 추첨입학제도의 확대와 함께 대학입시에 고등학교 성적을 반영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와서는 7·30개혁조치 등을 통하여 일련의 주요한 교육정책이 결정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① 국민정신교육의 강화, ② 평생교육 및 전인교육의 강화, ③ 고등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졸업정원제의 실시, ④ 대학입시제도에 있어서 국가학력고사 실시 및 고교내신제 적용, ⑤ 조기유아교육의 진흥, ⑥ 학원자율화, ⑦ 과외수업금지, ⑧ 해외유학에 관한 개방정책 추진, ⑨ 교육세 부과 등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나라의 교육정책은 역사의 격변과 함께 개혁과 변동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근시안적이고 잦은 개편으로 교육정책이 실시되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교육부가 중심이 되어 교육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이는 지난 50여년 간 교육을 지배하여 왔던 교육의 틀을 깨고 21세기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틀을 짜는 작업이다.

구체적으로는 인성·창의성을 기르는 열린 교육 및 학교 현장의 혁신운동 확산, 대학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자율화·다양화·특성화, 직업능력 향상을 위한 평생 직업교육의 내실화, 교육복지 구현을 위한 학습자 지원, 열린 평생학습 사회 건설을 위한 교육의 정보화 등이 그 방향이다.

이는 광복 이후 정치적·사회적 불안정, 경제적 궁핍, 급속한 인구성장 및 교육의 팽창 등 여러 가지 내적·외적인 요인에 따라 체계적이고 건전한 교육의 성장이 어려운 조건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양적 팽창, 민주적 제도의 도입, 교육투자의 증대, 교육프로그램의 다양화, 교육기술의 전문화 등 여러 면으로 성장해 왔으며, 이러한 성장발전을 위하여 부단히 교육정책이 바뀌고 학제도 수정, 보완되어 왔다.

[학교교육]

1998년 현재 우리 나라의 취학 전 교육은 만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과, 그 이전의 유아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집에서 실시하고 있다. 유치원 아동 수는 1980년의 6만6500명에서 1986년 35만5000명, 1996년 55만1000명, 1997년 56만8000명으로 급증하고 있으나 전체 대상 아동 수의 절반이 조금 안되는 인원이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1996년 44.8%, 1997년 45%).

초등학교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초등교육을 실시하는 곳으로, 학령(만 6세)에 도달한 아동을 대상으로 무상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988년 국민학교 수는 6,463개(분교 1,095개)이고, 학생 수는 총 481만9857명이었으나, 1997년 현재 초등학교 수는 5,721개이고, 학생 수는 총 378만3986명이다.

중등교육은 중학교(3년)와 고등학교(3년) 과정으로 나누어진다. 초등학교졸업자의 중학교진학률은 98% 정도이며, 중학교교육의 무상·의무제가 농어촌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1988년 중학교 수는 2,429개(분교 45개)이고, 학생 수는 총 252만3515명이었으나, 1997년 현재 중학교 수는 2,720개이고, 학생 수는 총 218만283명이다.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고등보통교육과 전문교육을 실시한다. 중학교졸업자의 고등학교진학률은 87% 정도이며, 학비는 자기부담이다. 고등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 실업계 고등학교 및 기타 예·체능 고등학교로 나누어진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고등보통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로서, 2학년부터 희망과 적성에 따라 인문·사회과정, 자연과정, 직업과정의 셋 중에서 택일하게 된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주로 농업·공업·상업 및 수산·해양 등 전문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이다. 기타 고등학교로는 예술고등학교·체육고등학교 등이 있어 음악·미술·무용·체육 등을 전공하게 하고 있다. 1988년 고등학교 수는 1,653개이고, 학생 수는 총 230만582명이었으나, 1997년 현재 고등학교 수는 1,892개이고, 학생 수는 총 233만6725명이다.

1997년 12월에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에 의하면 초등교육(1학년∼6학년)부터 중등교육(7학년∼12학년)까지의 교육과정은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1학년∼10학년)과 고등학교 선택중심 교육과정(11학년∼12학년)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 공통 기본교육과정은 교과, 재량활동, 특별활동으로 편성된다. 교과는 국어·도덕·사회·수학·과학·실과(기술·가정)·체육·음악·미술·외국어(영어)로 한다. 다만 1∼2학년은 관련 교과를 통합하여 국어·수학·바른 생활·슬기로운 생활·즐거운 생활 및 우리들은 1학년으로 한다. 재량활동은 교과 재량활동과 창의적 계발활동, 봉사활동, 행사활동으로 한다.

고등학교 선택중심 교육과정은 교과와 특별활동으로 한다. 교과는 보통교과(국어·도덕·사회·수학·과학·기술·가정·체육·음악·미술·외국어와 한문·교련·교양의 선택과목)와 전문교과(농업·공업·상업, 수산·해운, 가사·실업, 과학, 체육, 예술, 외국어, 국제에 관한 교과)로 한다. 특별활동은 자치활동·적응활동·계발활동·봉사활동·행사활동으로 한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대학·교육대학·사범대학·전문대학·방송통신대학·각종학교 등이 있다. 종합대학교는 3개 이상의 단과대학으로 구성되며, 종합대학교나 단과대학은 모두 대학원을 설치할 수 있다. 대학의 수업연한은 대부분 4년으로 되어 있으나, 의과·한의과 및 치과대학은 6년으로 되어 있다.

학사학위는 문학·신학·미술학·음악학·법학·정치학·행정학·교육학·도서관학·경제학·경영학·상학·이학·가정학·체육학·공학·의학·치의학·한의학·보건학·간호학·약학·농학·수의학·수산학 등 25개 분야로 되어 있다. 교과는 일반교양과목과 전공과목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으로 구분한다.

교육대학은 국민학교의 교원을, 사범대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교원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교육대학은 모두 국립이며, 수업연한은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모두 4년이다. 전문대학은 종래의 전문학교와 초급대학을 개편한 것으로서, 전문지식과 이론을 습득한 중견직업인을 양성하는 곳이다.

전공 분야는 공업계, 농업계, 간호계, 수산·해운계, 산업·경영계 등이 있으며, 수업연한은 2년 내지 3년으로 되어 있다. 졸업하면 대부분 취업을 하지만, 동일계 4년제 대학에 편입하여 수학을 계속할 수도 있다.

1988년 고등교육기관 수는 대학 104개, 교육대학 11개, 전문대학 119개, 각종학교 25개 등이며, 재학생은 대학 100만3648명, 교육대학 1만8765명, 전문대학 26만6844명, 각종학교 1만9608명 등이었으나, 1997년 현재 고등교육기관 수는 대학 150개, 교육대학 11개, 전문대학 155개, 각종학교 8개 등이며, 재학생은 대학 136만8461명, 교육대학 2만948명, 전문대학 72만4741명, 각종학교 9596명 등이다.

고등교육기관의 10년 동안의 변화 상황의 두드러진 특징은 대학과 전문대학의 숫자와 학생 수가 현저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더욱이 전문대학 학생 수의 3배나 되는 급격한 증가는 우리 사회의 변화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원에는 석사학위과정과 박사학위과정이 있다. 1년 이상 수학하고 전공과목 24학점 이상을 취득한 자로서 외국어시험과 석사학위종합시험에 합격한 자는 석사학위논문을 제출할 수 있고, 다시 3년 이상 수학하고 전공과목 60학점 이상을 취득한 자로서 2종의 외국어시험과 박사학위종합시험에 합격한 자는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할 수 있다.

1988년 전국에 203개의 대학원이 설치되어, 재학생이 6만9962명이었으나, 1997년 현재 전국 592개의 대학원에 재학생은 15만1358명이다. 대학원도 10년 사이에 2배 이상의 증가를 보인 것에서 차츰 학문의 전문화가 확대되어 가는 추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수학교에서는 시각·청각 장애자 등 심신장애자에게 유치원·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에 준한 교육과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 및 기능을 가르친다. 서울특별시·광역시 및 도에는 각 1개 교 이상의 특수학교를 설립하게 되어 있고, 특별한 경우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에 신체허약자·성격이상자·정신박약자·농자 및 난청자, 맹자 및 난시자, 언어부자유자, 기타 불구자 등을 위하여 특수학급을 둘 수 있다.

1986년 특수학교는 서울맹학교와 서울농아학교의 2개 국립학교와 공립 23개, 사립 65개 등 총 90개가 있었고, 재학생은 1만5664명이었으나, 1997년 현재 특수학교는 114개가 있으며, 재학생은 2만2569명이다.

[사회교육]

학교교육 외에 평생교육의 이념에 입각하여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사회교육은 1970년대의 산업화추세에 따라 급속히 확장되었다. 사회교육은 그 성격 및 형태에 따라서 ① 준학교교육, ② 직업기술교육, ③ 정신 및 직무교육, ④ 일반교양교육 등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교육법〉에 정해진 학교로서 사회교육의 성격을 가진 준학교교육기관으로는 공민학교와 고등공민학교, 기술학교와 고등기술학교, 산업체특별학급 및 산업체부설학교, 방송통신고등학교와 방송통신대학, 각종학교, 개방대학 등이 있다. 특히, 방송통신교육기관·개방학교·산업체부설교육기관 등은 교육방식과 입학조건에 있어 전통적인 형식을 벗어난 탈전통적 학교로서,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증가된 근로청소년들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하여 고안된 교육기관이다.

직업기술교육 역시 산업화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 수요가 격증되었다. 이는 기업체와 공공단체의 기술훈련과 연수, 사설강습소와 영농훈련 등의 다양한 형태로 실시되고 있다. 체계적인 기술훈련은 1967년 〈직업훈련법〉이 제정되면서 정착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직업훈련법인이 실시하는 공공직업훈련, 비영리법인이 노동부의 인가를 받아 실시하는 인정훈련(認定訓鍊) 등이 실시되고 있다.

사설강습소는 광복 이후부터 학원이라는 명칭으로 발전해 왔으며, 1970년대 이후 그 수가 급증하여 직업기술교육의 커다란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영농훈련은 농촌진흥청과 각도 농민교육원을 중심으로 영농기술교육·농기계교육·청소년지도자훈련·사회지도자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정신 및 직무교육은 1970년대 전반을 통하여 사회운동의 이념으로 발전한 새마을운동과 함께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체계적인 조직을 통하여 도시와 농촌 구별 없이 새마을교육이 실시되었는데, 이는 1960년대 초의 재건국민운동이 발전된 것으로 정부 주도의 사회개발지향적 사회교육의 전형적인 예가 되고 있다.

일반교양교육은 경제수준이 향상되고 생활양식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교육적 요구로 등장하게 되었다. 즉, 주부를 중심으로 한 일반인들이 여가를 활용하면서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찾게 되었으며, 이에 부응하여 민간사회단체·언론기관 등에서 각종 교육프로그램으로 강좌를 개설하였다. 기존의 도서관·박물관·미술관 등도 단순한 전시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교육활동을 벌이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더욱 증가, 발전될 전망이다.

5. 종교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종교의 용광로’라고 불릴 만큼 동서양의 종교들이 한데 모여 있으며, 그러한 신앙의 자유는 〈헌법〉에 의하여 보장되어 있다. 물론, 우리 나라에는 외래종교의 전래 이전인 선사시대부터 애니미즘 또는 자연숭배의 한 형태인 고유종교가 있었다. 상고시대는 이 종교가 주민결속·사회통합·예술창출·인간심성순화 등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애니미즘은 체계적인 교리가 의식의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채 그 뒤 전래된 외래종교에 의하여 대치되는 한편, 외래종교와 융합, 변용되기도 하였으며,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여 무당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기복적 의식에 의존하는 서민층에 잔존하고 있다.

이러한 민간신앙은 오늘날 다분히 주술적·기복적이며 윤리성이 적고, 관념적인 내세관이나 까다로운 철학성과는 거리를 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민간신앙은 일부 서민층의 종교적 욕구에 의하여 가식 없는 소박한 신앙으로서 유구한 민족생활의 전통 위에 서서 고유성을 보존, 전승하고 있는 하나의 맥박으로 남아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크게 불교·유교·기독교 및 신흥종교의 네 조류가 있다. 이 가운데 불교와 유교는 긴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토착화된 우리의 전통종교이며, 기독교는 18, 19세기 무렵 서양문물의 영향 아래에서 이식, 성장해 온 종교로서 이는 다시 천주교와 개신교로 구분된다.

신흥종교는 불교·기독교·이슬람교 등의 기성세계종교와는 달리 비록 연원은 멀다 하더라도 그 성립이 최근세이며 아직 세계성이 희박한 종교를 말하는데, 천도교·대종교·원불교·통일교 등이 이에 속한다.

1980년대 전반기 이전 대한민국의 종교인구는 전인구의 약 40%를 차지하였다〔표 5〕. 그러나 그 수는 계속 증가하여 1994년 현재 대한민국의 종교인구는 전인구의 약 49.9%로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표 6〕.

1980년대 말까지 우리 종교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불교이었다. 1983년 10월 불교인구는 750만 명으로 계속 감소추세에 있었지만 여전히 전체 종교인구의 약 48% 이상을, 그리고 전체인구의 약 19%를 차지하고 있었다. 불교계는 광복 후 40여 년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련을 겪어오면서 근래 자체의 노력으로 부흥기를 맞고자 힘쓰고 있다.

대한민국 불교 최대의 종단으로는 조계종(曹溪宗)과 태고종(太古宗)이 있고, 그 밖에 법화종(法華宗)이 두 파, 총화종(總和宗)·천태종(天台宗)·진각종(眞覺宗)·일승종(一乘宗)·불입종(佛入宗)·정토종(淨土宗)·화엄종(華嚴宗)·보문종(普門宗)·법상종(法相宗)·용화종(龍華宗)·원효종(元曉宗)·진언종(眞言宗)·천화불교(天華佛敎)·미륵종(彌勒宗) 등 18개 종파가 있으며, 1983년 말 5,680개 사원과 1만2693명의 남녀 승려가 있었다.

유교의 경우는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그 영향력을 크게 상실하고는 있으나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를 이루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직도 우리의 생활규범으로 남아 있다. 유교인구는 1983년 말 전체 종교인구의 약 5.04% 정도였다.

기독교의 경우 종교계에서 가장 왕성한 세력신장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개신교가 그러하다. 광복 후 유럽 여러 나라, 특히 미국과의 긴밀한 국제관계가 성립된 이래 종교면에서의 영향은 괄목할 정도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나라의 종교문화, 그 중 특히 기독교교회들은 크게 성장하였다. 그 동안 한국천주교회는 착실히 신장하여 1981년 9월 조선교구설정 150돌을 맞이하였으며, 1983년 말 160만 명의 신자를 확보하여 전체 종교인구의 약 10%를 차지하였으며, 2,300여 개의 성당, 5,100여 명의 교직자가 있었다.

개신교의 경우 이보다 훨씬 더 급성장하여 1983년 말 약 530만 명의 신자, 즉 전체 종교인구의 약 34%를 차지하였으며, 2만6000여 개의 교회, 4,000여 명의 교직자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개신교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로는 ① 교회의 분열현상(한국 개신교의 최대교단인 장로교회 안에는 25개나 되는 분파가 갈라져 있다), ② 농촌교회의 영세성과 도시교회의 경제적 비대화로 인한 양극화현상, ③ 교회 내 청소년교육의 부진과 신도 수 감소, ④ 교회의 샤머니즘화현상 등이 있다.

이 밖에 천도교·원불교·대종교 등 민간신앙에 바탕을 둔 신흥종교와 외래의 바하이·천리교(天理敎)·이슬람교 등이 그 기반을 굳혀가고 있다. 특히, 이슬람교는 6·25전쟁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터키군이 참전함으로써 우리 나라에 소개되었는데, 1970년대 초 우리 나라의 건설업체가 중동에 진출한 이래 회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995년 11월 1일 당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인구는 2259만8000명으로 총인구의 50.7%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교인구 비율은 1985년 42.6%에 비해 8.1%가 증가하였다. 종교유형별 분포를 보면 다음 〔표 7〕과 같다. 〔표 7〕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95년 11월 1일 당시 총인구 중 불교인구가 23.2%로 여전히 가장 많고, 개신교 19.7%, 천주교 6.6% 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과 연령별 종교인구를 보면 다음 〔표 8〕과 같다. 〔표 8〕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남자 인구의 47.3%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여자는 54.2%가 종교를 가지고 있어 여자가 6.9% 정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연령별로는 종교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층인 45∼49세 가운데 61.1%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 특히 40대 여자의 종교인구비율(40∼44세:66.2%, 45∼49세:66.0%)이 가장 높게 나타나 괄목할 만한데, 여자들이 40대로 들어서면서 자녀들 육아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는 시기라는 점이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10세 미만 인구를 제외하고 종교인구비율이 가장 낮은 연령층은 25∼29세로 43.6%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남자의 경우 40.1%로 가장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한편, 4대 종교의 연령별 구성비를 보면 다음 〔표 9〕과 같다. 〔표 9〕에서 보는 바와 같이 4대 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유교)인구는 2224만3000명(98.4%)으로 우리 나라 종교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85년 4대 종교 구성비 98.2%보다 0.2% 증가되었다.

종교 유형별로 종교인구의 연령분포를 비교하면, 불교와 천주교는 30대, 개신교는 10대, 유교는 60세 이상 신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불교의 경우는 30대를 정점으로 하여 각 연령층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으며, 개신교와 천주교는 30대 이하의 젊은 층의 구성비가 각각 72.0%, 67.5%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유교의 경우 젊은 연령층보다는 연령이 높을수록 신자 수가 많아 반 수 이상(53.2%)이 50세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한국갤럽연구소가 1997년 현재 한국의 종교실태와 한국인의 종교의식을 조사한 결과, “한국 기독교는 이제 그 성장을 멈추었는가?”라는 성장정체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전에 없이 높아진 시점에 개신교 인구가 불교 인구를 앞섰다는 결과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1997년 현재 개신교 인구는 18세 이상 인구의 20.3%인 646만3000명인데, 통계청이 199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밝힌 개신교 인구 876만336명에서 0세에서 17세까지를 뺀 18세 이상 개신교 인구는 611만3422명이다.

이 연구소의 조사에 의한 추계를 보면 전체적으로 모든 종교에서 그 비율이 감소하였으나, 특히 개신교의 경우 그 감소율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장기적인 전망은 개신교의 성장 둔화나 정체, 감소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 특히 개신교의 경우 초기 선교과정에서 젊은 층을 집중적으로 선교, ‘선택에 의한’ 개신교 인구의 증가율이 타종교에 비하여 월등히 높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선교에 의한 증가보다는 인구의 자연증가율에 의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 점은 가족 내 구성원과 응답자의 종교일치도가 개신교의 경우 현저히 증가하고 있는 것과도 일치된다는 추계이다. 또한 세대간 신앙계승에 의한 개신교 인구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는 추계이다.

1997년 갤럽연구소의 종교실태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종교인보다 비종교인이 많으며, 그 비율은 1989년보다 증가하였다.
② 개신교인이 불교인을 앞섰다.
③ 비종교인의 49.7%는 과거에 종교를 믿었던 ‘종교이탈자’이고, 종교이탈율은 3.2% 증가하였다.
④ 타종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 수는 줄고, 다른 종교로 개종한 전(前) 개신교 수는 늘었다.
⑤ 비종교인은 ‘종교에 대한 무관심’(26.4%)과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22.8%), ‘정신적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18.9%) 종교를 믿지 않는다.
⑥ 남성보다는 여성 종교인이 월등히 많으며, 그 간격이 1989년보다 더욱 벌어졌다.
⑦ 25∼29세의 연령층에서 종교인이 1989년보다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⑧ 가족 구성원(아버지나 어머니나 배우자)과 응답자의 종교일치도가 개신교와 천주교의 경우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⑨ 종교인의 신앙기간이 평균적으로 증가하였다.
⑩ 신앙심의 자기평가에서 개신교인의 53.4%가 “신앙심이 매우 깊다.” 또는 “깊은 편이다.”라고 응답하여 불교나 천주교의 감소 추세와 대조적이다.
⑪ 일주일에 1회 이상 예배에 참석하고, 하루에 한 번 이상 기도하는 개신교인이 줄었다.
⑫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성경을 읽는 개신교인은 약간 늘어났다.
⑬ 개신교인의 57.7%가 십일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황성모>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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