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4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4-02 (금) 10:44
분 류 사전4
ㆍ조회: 797      
[원시] 덧띠토기 (브리)
덧띠토기 -土器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민무늬토기의 한 형식.

덧띠토기, 청동기시대 토기, 높이 17.5cm, 대전 괴정동 출토. 한국브리태니커 사진토기의 입술 바깥에 단면원형ㆍ타원형ㆍ삼각형 등의 덧띠[粘土帶]를 말아붙여 입술부분을 보강한 토기로서 점토대토기라고도 한다. 덧띠를 따로 만들어 붙였기 때문에 덧띠부분만 떨어지는 경우도 많으며 덧띠 부근에는 손으로 누른 자국이 자주 관찰된다.

그릇 모양은 대전 괴정동에서 출토된 것처럼 밑바닥이 좁고 위로 퍼져올라가거나, 서울 응봉, 청원 비하리에서 출토된 것에서 보듯이 납작밑에 원통형의 몸체를 이루는데 모두 깊은 바리[深鉢]형에 포함된다. 한강 유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대구 연암산, 부산 조도, 삼천포 늑도, 전라남도 해남 군곡리 등지에서 다량으로 출토되며 경기 이북지역에서 출토된 예는 없다. 일본 규슈[九州]의 판부(板付)유적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그당시 주민들의 이동과 문화교류 상황을 알 수 있다.

경기지방의 덧띠토기는 BC 5세기에 나타나 BC 4세기경에 성행했다고 여겨지며, 단면원형의 것으로부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면삼각형의 덧띠토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에 발굴된 경기도 일산의 새도시 개발지역에서는 BC 8세기 이전으로 올라갈 수 있는 덧띠토기가 나온 바 있다.

남부지방의 경우 단면원형의 덧띠토기는 BC 3세기경에, 단면삼각형의 덧띠토기는 BC 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에는 그릇의 최대 지름이 몸통 아래쪽에서부터 점차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어 화분 모양과 비슷해지며 바탕흙은 종래의 민무늬토기보다 훨씬 단단해졌다. 덧띠토기는 쇠뿔모양손잡이토기ㆍ굽다리접시ㆍ검은간토기 등과 함께 나오는 예가 많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윗글 [원시] 덧무늬토기 (민족)
아래글 [원시] 덧띠토기 (한메)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80 사전4 [고려] 서산 보원사 법인국사 보승탑비 (금석문) 이창호 2012-05-25 881
79 사전4 [고대] 임신서기석 (금석) 이창호 2012-05-25 433
78 사전4 [고대] 성덕대왕신종과 종명 (금석) 이창호 2011-08-01 1150
77 사전4 [고대] 보령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금석) 이창호 2011-07-06 638
76 사전4 [고대]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원문 (금석) 이창호 2011-07-06 381
75 사전4 [고대]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번역문 (금석) 이창호 2011-05-12 589
74 사전4 [근대] 이상설 (브리) 이창호 2010-09-07 566
73 사전4 [근대] 이상설 (한메) 이창호 2010-09-07 533
72 사전4 [근대] 이상설 (두산) 이창호 2010-09-07 508
71 사전4 [근대] 이상설 (민족) 이창호 2010-09-07 497
12345678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