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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4-17 (토) 21:23
분 류 사전4
ㆍ조회: 1371      
[청동기] 민무늬토기 (민족)
민무늬토기(-土器)

민무늬토기. 청동기시대의 무늬가 없는 토기. 일명 '무문토기', '무늬없는 토기'라고도 한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청동기시대의 무늬가 없는 토기. 일명 '무문토기(無文土器)'ㆍ'무늬없는 토기'라고도 한다. 신석기시대 널리 사용되었던 무늬가 있는 토기인 빗살무늬토기에 상대되는 말로 사용된다.

[개관]

민무늬토기의 기형상의 특징은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납작바닥〔平底〕과 둥근바닥〔丸底〕으로 뚜렷이 구분되는데 비해, 민무늬토기는 모두 납작바닥이며 그릇에 목이 달려 있는 토기가 많은 점이다. 또한 빗살무늬토기에 비해 굵은 석영립이나 모래가 섞여 있는 태토로 만든 토기가 많다.

토기의 성형(成形)은 빗살무늬토기와 마찬가지로 테쌓기[積輪法]나 서리기[卷上法]에 의하고 있다. 소성(燒成) 또한, 노천요(露天窯)에서 하고 있어 발전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토기제작에 있어서도 신석기시대 때보다 정성이 덜 들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그릇의 두께가 두꺼워 종래 '조질후육(粗質厚肉)무문토기'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의 토기가 기형이 단조로운데 비해, 용도상의 구분에 의한 제작이 활발해져 취사용ㆍ저장용ㆍ부장용(副葬用) 등으로 구분지을 수 있는 여러 형태의 토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선(線)을 기본으로 하는 간단한 문양이 들어 있는 토기 외에 광물질 안료를 이용해 그릇의 표면을 적색ㆍ흑색으로 아름답게 발현시킨 토기도 제작되고 있어, 간단히 민무늬토기에 포괄시킬 수 없는 복잡성이 내포되어 있다.

[기원]

대체로 서기전 1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종전의 빗살무늬토기에 외부로부터 새로 들어온 민무늬토기의 제작수법이 더해져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압록강 하류유역과 중국 동북지방에 분포되는 신암리식(新巖里式) 토기, 압록강 중류유역과 그 지류인 혼강(琿江)ㆍ송화강(松花江)유역에서 만들어진 공귀리식(公貴里式) 토기, 두만강유역의 공렬문토기(孔列文土器, 刺突文土器라고도 함.), 청천강 이남의 평안도와 황해도지역에서 만들어진 각형토기(角形土器) 등이 있다.

초기형태는 모두 신석기시대 말기의 빗살무늬토기의 잔재가 남아 있어, 외래요소인 민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의 고유한 요소가 결합되어 당분간 공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잔재요소가 모두 사라지고 완전히 민무늬토기로 정립되는 시기는 서기전 1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초기 민무늬토기의 출토지역은 모두 압록강ㆍ두만강 등 한반도의 북쪽에 위치해 있어, 우리 나라 민무늬토기가 이 지역을 경유한 중국과 북방계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 분포상황과 신암리식 토기나 각형토기에 수반되는 석기상(石器相)으로 볼 때, 민무늬토기는 역시 농경문화와 함께 이 땅에 들어와 정착한 뒤 한반도의 남쪽으로 확산된 것으로 믿어진다.

[종류]

일반적으로 용도상에서 오는 제작의 차이에 의해 발형ㆍ심발형(深鉢形)ㆍ완형(燔形)ㆍ명형(皿形)ㆍ옹형(甕形)ㆍ호형(壺形)ㆍ두형(豆形) 등으로 구분된다. 이 토기들은 지역ㆍ시기ㆍ제작수법에 따라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역이나 시기에 따른 독특한 유형의 토기 중 대표적인 유적명을 따서 명명되어 불리는 토기로는 신암리식 토기ㆍ공귀리식 토기ㆍ미송리식(美松里式) 토기ㆍ묵방리식(墨房里式) 토기ㆍ가락식(可樂式) 토기ㆍ송국리식(松菊里式) 토기 등이 있다.

제작수법과 기형에 의한 특성으로 명명된 토기유형으로는 공렬토기ㆍ구순부각목(口脣部刻目)토기ㆍ각형토기ㆍ홍도(紅陶)ㆍ흑도(黑陶)ㆍ채문토기(彩文土器)ㆍ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ㆍ화분형토기(花盆形土器) 등이 있다.

(1) 발형ㆍ심발형구경이 그릇의 최대경이 되거나 배가 약간 부른 토기로 깊은 동체 (胴體)를 가진 단순한 모습이나 구연부는 직립ㆍ외반ㆍ내반 등 다양하다. 그릇의 높이가 20㎝ 이하인 사발형태의 것을 발형, 20㎝ 이상인 것을 심발형으로 구분해 부른다.

발형ㆍ심발형의 토기는 서포항을 비롯한 동북지방의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이래 계속 제작되어온 형태로, 민무늬토기시대는 각형토기지역을 제외한 우리 나라 전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공렬문과 구순부각목이 들어 있는 토기는 대개가 이 형식의 토기이다.

또한 동북지방ㆍ서북지방의 심발형토기에는 구연부 바로 밑에 융기문대를 한 줄 돌려붙인 토기도 있고, 동부 상부에 방망이모양〔棒狀形〕이나 혹은 꼭지손잡이를 한 쌍 붙여놓은 것도 있다. 이 토기는 민무늬토기에서 가장 많이 제작되는 형식으로 음식조리ㆍ취사ㆍ저장 등 다목적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2) 완형발형토기보다 소형이며 구경에 비해 높이가 낮아 현재의 대접 또는 보시기와 같은 형태이다. 구연부는 보통 직립이나 내반시킨 것도 볼 수 있다. 발형토기와 마찬가지로 각형토기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나진 초도(草島)와 무산 호곡동에서는 이 형식의 토기 바닥에 구멍을 촘촘히 뚫어 시루로 사용한 것도 출토되고 있고, 그릇 안팎을 붉게 마연한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도 있다.

한강 이남의 거의 모든 민무늬토기 유적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부여 송국리와 진주 대평리에서는 단도마연토기로 만든 완형토기가 출토되었다. 이 토기는 취사용과 조리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3) 명형 요즈음에 사용하는 접시와 같은 형태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동북지방의 회령 오동, 나진 초도, 서포항(西浦項) 유적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고운 점토만을 사용한 태토로 만들어 표면이 고우며 일부 마연한 토기도 있다.

(4) 잔높이 5∼12㎝ 정도의 소형토기로 원통형ㆍ발형 등 다양하다. 신석기시대 이래로 만들어지는 기형으로 비교적 제작이 조잡하다. 그러나 송국리에서는 정선된 태토를 사용해 홍도(紅陶)수법으로 만든 발형의 소형잔이 출토되었다. 함경도에 비교적 많고 다른 지방에서도 간간이 출토된다.

(5) 두형완형토기나 발형토기의 밑에 높은 굽이 달린 형식으로 ‘고배(高杯)’라고도 한다. 굽의 형태가 원통형ㆍ원추형ㆍ나팔형으로 구분되고 있다. 초도와 대구 연암산에서는 세 형식의 굽다리접시가 모두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흔암리ㆍ송국리 등에서는 원통형굽이, 호국동에서는 원추형과 나팔형굽이 출토되었다. 나팔형굽에는 삼각형 투공(透孔)이 뚫려 있으며, 미송리 출토품은 나팔형굽과 신부(身部)가 연결되는 잘룩한 부분에 꼭지를 돌려 붙여놓고 있다.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앙소기(仰韶期)에서부터 두형토기가 출토되고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신암리 1문화층에서 처음으로 원통형굽과 나팔형굽이 출토되고 있다. 즉, 민무늬토기시대 초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의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으로 볼 때, 다량으로 제작되는 것은 중기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용도는 주로 제사 및 취사용으로 쓰인 것으로 생각된다.

(6) 옹형ㆍ호형배부분이 부르고 어깨가 마련되어 있는 토기 중 높이가 50㎝ 이상되는 대형토기를 옹, 그 이하를 호로 부르나 기준이 애매하다. 일반적으로 목이 달려 있거나 구연부가 외반되는 것을 호라고 하고, 그 밖의 토기는 옹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옹형토기와 심발형토기의 구분 또한 뚜렷하지 못해 서로 혼동해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기형의 토기 역시 발형ㆍ심발형토기와 마찬가지로 다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소멸빗살무늬토기에 이어서 서기전 1000년경 농경문화와 함께 정착된 민무늬토기는 서기전 300년경 중국으로부터 거세게 밀려드는 철기문화에 수반되는 회색경질토기와 와질토기(瓦質土器)에 밀려 차차 제작의 빈도가 줄게 된다.

무문토기가 정착되는 과정에서도 당분간 빗살무늬토기와 공반관계를 보였듯이, 이 시기에도 민무늬토기의 전통은 강하게 남아 경질계, 즉 밀폐된 공간에서 1,000℃ 이상의 환원염으로 구워진 토기와 함께 간단한 노천요에서 구운 민무늬토기는 상당기간 병존하게 된다.

청천강 이남지방에서는 서기전 3세기경부터 회색승석문토기ㆍ와질토기와 함께 구연부가 외반되고 몸통이 구형(球形)으로 서서히 바뀌는 무문토기 호와 역시 민무늬토기로 만들어지는 완형ㆍ발형ㆍ두형 토기가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청천강 이북의 압록강유역과 두만강유역에서는 이남지역보다도 민무늬토기의 전통이 더욱 강해 기원 후에 들어와서도 민무늬토기가 대부분이고 그 밖에 일부 회색경질토기 및 와질토기의 시유예가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회색경질토기, 와질토기와의 공반관계는 4세기를 전후해 정립되는 삼국토기에 의해 일부 특수한 용도에 필요한 제작 외에는 대부분 소멸되었다. →토기

≪참고문헌≫

토기와 청동기(한병삼, 교양국사총서 8,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韓國의 美-土器-(中央日報社, 1981), 韓國の考古學(金廷鶴, 河出書房新社, 1972), 韓國無文土器 地域分類 試論(金元龍, 考古學 1, 1968), 韓國 無文土器文化의 硏究(金廷鶴, 白山學報 3, 1967), 無紋土器形式分類試考(尹武炳, 震檀學報 39, 1975), 韓國 無文土器의 硏究(林炳泰, 韓國史學 7, 1986), 낙동강 상류지역의 무문토기 연구(任世權, 史學硏究 34, 1982), 평창강유역의 무문토기 연구(任世權, 嶺南考古學 1, 1986), 南韓地方 無文土器文化 展開와 孔列土器文化의 位置(李淸圭, 韓國上古史學報 1, 1988).

<한영희(韓永熙)>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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