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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9 (월)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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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881      
[국가] 남아프리카공화국 (한메)
남아프리카공화국 南-共和國 Republic of South Africa

아프리카 남단부의 인도양과 대서양에 접해 있는 공화국.

면적 122만 5815㎢. 인구 4244만 6000(1997). 행정부수도 프리토리아, 입법부수도 케이프타운, 사법부수도 블룸폰테인. 북쪽으로는 스와질랜드·모잠비크·짐바브웨·보츠와나·나미비아 등과 접하고 있으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남동쪽은 인도양, 남서쪽은 대서양에 면한다.

[자연]

내륙고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좁은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평야지대가 있다. 특히 고원의 동쪽 가장자리에는 그레이트 이스카프먼트라고 하는 침식애선(浸蝕崖線)이 형성되어있는데, 해발 1500~2000m의 지역으로 드라켄즈버그산맥이라고 한다. 내륙고원의 중심은 오렌지강·발강에 의해 배수되는 남아프리카고원이며, 그 북동쪽에 림포포강 유역의 트란스발고원이 계속된다. 또 북서쪽은 칼라하리사막의 일부이다.

해안지대 동부는 개석사면(開析斜面)이 비교적 단조롭게 낮아지지만 남부는 케이프습곡대에 속하는 높이 1000~2000m의 여러 개의 산열(山列)이 있다. 또한 남서부는 나미브사막의 연장부에 해당한다. 난온대(暖溫帶)에 속하는데, 드라켄즈버그산맥에서 북서부의 칼라하리사막 및 남동부의 인도양 해안으로 갈수록 점차 높아진다.

드라켄즈버그산맥의 평균기온은 1월 약 16℃, 7월 7℃, 인도양 해안은 1월 23℃, 7월 15℃, 서해안은 1월 18℃, 7월 12℃인데 벵겔라한류의 영향을 받아 여름 기온이 낮은 편이다. 동부지역은 남동무역풍의 영향으로 여름(10~3월)이 우기가 되며, 남서해안쪽은 지중해기후로 대서양으로부터 이동성저기압이 몰려오는 겨울(5~8월)에 비가 집중된다. 강수량은 평균 1500㎜를 초과하나, 내륙으로 갈수록 500~800㎜로 감소하고 고원의 서쪽지역은 100~300㎜, 서해안의 사막쪽은 50㎜ 이하이다. 국토의 절반이 연평균 강수량 380㎜이므로 농업에 심각한 위험이 되고 있다.

[역사]

17세기 백인들이 건너와 살기 이전에 이나라에는 수렵·채집인인 부시먼·호텐토트가 살고 있었다. 그 뒤 네덜란드에서의 이민(移民;보어인)이 증가했는데 그들은 아프리카인의 토지를 빼앗고 입주지를 확대해 나갔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쳐 나폴레옹전쟁중이던 영국은 케이프 식민지가 프랑스의 손에 넘어갈 것을 두려워하여 이 식민지를 2차례 점령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패배한 뒤인 1814년에 케이프 식민지는 정식으로 영국령으로 인정받았다.

보어인들은 영국의 지배를 피하여 북방 내륙으로 이동, 나탈지방에 나탈공화국을 세웠으나 1843년 영국군에 패하여 나탈은 영국 영토가 되었다. 나탈을 빠져나간 보어인은 영국과 싸우면서 끝내 트란스발공화국(1852)과 오렌지자유국(1854) 등을 세웠으나 1867년 오렌지자유국의 그리칼란드지방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자, 영국은 즉시 이 지방의 할양을 요구, 1871년에 영국 영토로 삼았다.

이어서 1886년 트란스발의 위트워터즈란드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영국은 1899년 보어전쟁을 일으켰고, 1902년 영국이 승리를 거두었다. 전후 영국은 보어인과의 화해를 시도, 1910년에 케이프·나탈·트란스발·오렌지자유국 등 4개주로 이루어진 남아프리카연방이 성립되었다. 연방 최초의 총리가 된 L. 보타의 정부는 광산의 백인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최초의 인종차별법이라 일컬어지는 <광산노동법>을 1911년에 제정하였고, 1913년에는 아프리카인을 원주민 지정지에 격리하는 <원주민토지법>을 입법화했다.

제 1 차세계대전중 남아연방은 연합국측으로 참전하여 독일령인 남서아프리카(현재의 나미비아)를 점령했으며, 전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으로 만들었다. 한편 대전 중 영국으로부터 수입이 감소되자 자립화에 박차를 가해 공업화가 진척되었다. 1924년 성립된 헤르초크 국민당정부는 푸어화이트(poor white)라 불리는 보어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문명화 노동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산업조정법> <임금법> 등의 인종차별법을 입법화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에 대해 아프리카인들은 최초의 민족주의운동 조직인 아프리카인민족회의(ANC)나 노동조합운동 조직인 공상조합 (工商組合)을 결성하여 반대했다. 제2차세계대전 때에도 남아연방은 연합국으로 참전했다. 제2차세계대전 후 아시아·아프리카 각지에서 일어났던 반식민지 투쟁이나 나아가서 국내 아프리카인의 반인종주의 투쟁의 고양(高揚)에 대해 국민당의 D.F.말란은 백인유권자에게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t;인종차별정책)의 필요를 호소하여 1948년의 총선거에서 압승했다.

말란은 선거공약에 기초하여 <인종간통혼금지법(人種間通婚禁止法,1949)>, 국민의 인종별구분을 규정한 <인구등록법(1950)>, 인종별 거주지구를 규정한 <집단지역법(1950)> 등의 인종차별법을 차례차례 입법화하였고, 또한 아프리카인 민족운동을 탄압했다. 또한 1959년에 <반투자치촉진법>을 제정, 국내에 백인국가와 흑인국가를 병존시키는 <분리발전정책>을 천명했다. 이 정책을 바탕으로 10개의 반투스탄을 조성하고 각 반투스탄 안에서 처음에는 아프리카인에게 일정한도의 자치를 부여하였으며, 뒤이어 <독립>을 부여해 나갔다.

1960년에 일어났던 샤프발사건을 계기로 하여 정부가 아프리카인 민족운동 조직인 ANC와 범아프리카인회의(PAC)를 비합법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에 걸쳐, 학생이나 교회에 의한 반인종주의 투쟁이 심해졌다. 1970년대 중엽, 포르투갈령(領) 앙골라와 모잠비크의 독립, 짐바브웨·나미비아에서의 해방투쟁의 격화, 1976년의 소웨토봉기는 정부의 대외·대내 정책을 압박,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블랙아프리카제국에 대해 데탕트정책을 실시했으나 나미비아의 불법지배, 앙골라의 반정부 게릴라에 대한 지원으로 인하여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한편 국내적으로는 인종차별정책의 완화를 추진했는데 1983년 그때까지 참정권을 주지 않았던 혼혈과 인도인에게 참정권을 주고 인종별 의회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정책에 대해 국민당 내의 보수파는 개명파인 P.W.보타 정권의 완화정책에 반대하여 탈당했고, 또한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프리카인도 국정참가가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정치]

남아프리카연방은 1961년 5월 영국연방을 탈퇴하고 공화정으로 이행, 공화국 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에서는 대통령 밑에 백인의회(대통령이 지명하며 소수의 컬러드·인도인·중국인도 참여하였다)가 설치되었다. 한편 비백인(非白人)은 국정참정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아프리카인에 대해서는 단지 자문기관인 원주민대표심의회를 두었으며, 1959년에 <반투자치촉진법>을 제정하여 반투스탄 내에서 일정한 한도의 자치권을 아프리카인에게 허용하였다.

그 결과 1963년 트란스케이자치국의 성립에 이어 1970년대 초까지 10개의 자치국이 성립했다. 그뒤 반투스탄에 독립을 허용하는 방침을 세우고 몇개의 반투스탄이 독립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외한 국제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83년 11월 흑인을 제외한 유색인종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로 확정하였으며 1984년에 이 헌법을 기초로 흑인을 제외한 인종별의회의 선거가 이루어졌는데, 컬러드 30%, 인도인 20%의 낮은 투표율로 보타 총리가 새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새 내각에는 백인이 아닌 각료도 등용되었으나 1985년 4월까지 흑인거주지역에서는 흑인들의 폭동이 격화되었다. 1989년 9월 총선이 실시되어 드 클레르크 교육장관이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집권 국민당이 93석으로 과반수를 확보하고 보수당은 39석, 민주당은 33석을 확보하였다. 국민당은 아파르트헤이트의 부분 수정을 통한 개혁정책의 추구와 인종그룹별 균등한 권력배분을 주장하였고, 보수당은 아파르트헤이트의 강화와 개혁조치, 반대, 그리고 순수 백인지상주의를 추구하였으며, 민주당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급진 개혁 세력이었다.

드 클레르크 대통령은 1990년 2월 2일 아프리카인민족회의(ANC), 범아프리카인회의(PAC) 등 33개 흑인인권운동조직의 합법화를 발표한데 이어 2월 11일 대표적 흑인인권운동가 N.R.만델라를 투옥 27년만에 석방시키는 등 개혁조치를 단행하였다.

정당은 대체로 인종에 기반을 두고 결성되었다. 백인정당 중 국민당은 아프리카인의 권리 옹호에 목적을 두고 1912년 결성되었고, 그 외 인종차별완화정책에 반대하여 국민당을 탈당한 순수국민당·국민보수당·남아프리카보수당 등이 있다. 비백인계로는 남아프리카노동당·남아프리카인도국민회의·남아프리카흑인연합·ANC·PAC와 학생운동지도자 S.비코의 영향으로 72년 결성된 흑인회의 등이 있다.

외교는 친서방이지만 인종차별로 국제적 고립상태에 놓여, 1974년 11월 국제연합에서도 축출되었다. 1984년 들어 앙골라와 정전협약, 모잠비크와 불가침조약 등을 체결하는 등 인접국과 평화적 문제해결을 기도하였으나, 미국과 유럽공동체(EC) 등으로부터는 경제제재를 받았다. 1988년 12월 국제연합 총회에서는 인종차별정책과 관련하여 석유공급의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1994년 4월 27일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백 동시선거를 실시하여 5월 만델라가 300여 년의 백인 지배를 종식시키고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만델라는 대통령 취임 후 11월 17일 백인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게 하는 토지반환법에 서명하였고, 영연방 및 유엔 재가입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하였다.

[경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대륙 최대의 공업국인 동시에 풍부한 광산자원을 갖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구미자본의 유입으로 공업화가 진행되어, 1960년대 중반 이래 제조공업은 광업을 제외하고 국내총생산(GDP) 비율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수입제한·보호관세조치에 의해 급속히 발전했는데, 공업총생산액은 1946년의 9억랜드에서 1975년에는 127억랜드, 공장수는 1만 1000개에서 2만 1000개, 취업인구는 49만에서 135만으로 증가했다.

업종은 중공업·경공업을 망라하고 철강·석탄액화·원자력발전 등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부문에 특히 국가가 개입하는, 공사(公社)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또한 광산자원이 풍부해서 석유를 제외한 거의 모든 광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금생산은 세계 1위로 전세계 생산량의 1/2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매장량이 1위인 것은 망간·바나듐·백금·크롬 등 희소금속류이며, 제2위에 다이아몬드·우라늄 등이 있다.

농업은 백인의 상업적 대규모 경영농업과 홈랜드에서의 아프리카인에 의한 자급자족농업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광대한 농장에서 기계화에 의해 사탕수수·담배·과일 등의 수출용 작물을 재배하며, 옥수수·밀의 곡물은 자급용과 수출용으로 재배하고 있다. 후자는 토지가 좁고 거칠며 또한 토지에 비해 인구가 많기 때문에 자급조차 어려운 상태이다.

국제수지를 보면 금수출을 제외한 무역수지는 매년 적자로, 금수출에 의해 그 적자를 메워나가고 있다. 공업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자본재·공업용 원자재는 선진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광·농산물 등의 1차산업품을 수출하고 있다(1994년 수출의 57%). 경제의 설비부문에서는 다른 아프리카제국(諸國)에 비하여 현격하게 정비되어 있어 철도총연장·포장도로총거리·자동차보유대수는 아프리카 제1이며, 또한 국내외 각지를 잇는 항공망도 발달해 있다.

중요 상업항으로는 케이프다운·포트엘리자베스·이스트런던·더반이 있다. 현재 정부는 아프리카인에 대해 <분리발전정책>과 병행하여 인접지공업계획(隣接地工業計劃)을 실시하고 있는데, 기존의 4대공업도시(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더반·포트엘리자베스) 등 홈랜드와 인접하는 백인지역에 공업을 일으켜 주간에는 아프리카인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야간은 그들을 홈랜드로 돌려보내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인종차별정책으로 교역국으로부터 많은 경제적인 제재를 받았는데, 1986년에는 최대의 교역상대국인 미국이 석탄·우라늄·철 등의 수입금지와 신규융자 및 투자금지 등의 제재조치를 취하였다. 또 GM·IBM 등 미국기업이 철수 결정을 내린 데 이어 EC가맹국들도 경제제재조치를 단행, 경제사정이 악화되었다.

[인구 및 사회]

인종별 인구비율은 흑인 74.1%, 백인 14.7%, 컬러드 8.6%, 아시아계 2.6%(1995)로 백인 대 흑인의 비율은 1:4에 가깝다. 그러나 백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토지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백인인 아프리카너와 영국계 백인의 비율은 6:4로 아프리카너가 다수파를 차지한다. 아프리카너는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케이프주로 이주해 온 보어인의 자손으로 스스로 아프리카너라 부르고 아프리칸스어로 말한다.

아프리칸스어는 네덜란드어의 한 방언으로 본국에서 격리되어 있는 동안에 변화한 것이다. 이주 초기의 고투와 영국과의 보어전쟁에서 패배한 쓰라린 경험에서 아프리카너는 일종의 내셔널리즘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나아가 그리스도교도인 백인만을 중시하는 선민의식으로 발전하여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하는 인종격리정책을 내세웠다. 아프리카너는 국민당의 지지세력으로 정치권력에서 다수파를 구성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경제적 혜택이 없는 푸어 화이트도 다수 있다.

백인은 아프리카너를 제외하고는 영국계가 많고 또한 독일계·네덜란드계·유대인들도 거주하고 있다. 컬러드는 특히 케이프주에 많고 케이프 컬러드라 불리는 경우도 있다. 컬러드의 선조는 초기에 이주해 온 네덜란드인과 현지의 흑인인데, 소수이긴 하나 노예로 이주해온 인도네시아·말레이인의 피도 섞여 있다. 여러 대에 걸쳐 혼혈을 거듭해 왔기 때문에 피부색과 모발이 다양하며 백인과의 구별이 어려운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인종분류국이라고 하는 내무부 내의 기관이 혼혈의 가계도를 체크하여 백인사회로의 잠입자를 적발하고 있다. 아시아인은 인도·파키스탄·스리랑카 등지에서 이주해 온 힌두교도나 이슬람교도들인데 특히 인도인이 많다. 이들은 나탈주(州)에 많이 거주하며 영국 식민지시대에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강제이주되어 온 사람들의 자손이 대부분이다. 이외 상인으로서 자발적으로 이민해온 자들도 있는데 이들 중에는 흑인들을 상대하는 상점이나 작은 공장의 경영자, 하급노동자가 많다.

그 밖에 광산노동자로 유입되어 그대로 정착한 중국인·말레이인이 1만명쯤 된다. 한편 오렌지자유주(自由州)는 아프리카너의 본거지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하기 때문에 아시아인의 거주를 거의 볼 수 없다. 심지어 백인전용 레스토랑·호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인종차별의 대명사라 일컬어지는 배덕법(背德法)은 백인과 비백인간의 성적 관계를 금한 법률인데, 백인인구의 순수성을 보장하고 혼혈인구의 증가를 막는 데 목적이 있다.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의 하나인 패스법은 16세 이상의 아프리카인에게 출생지·부족명·현주소·사진·지문·고용주의 서명 등 필요사항을 구비한 증명서 소지를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증명서를 휴대하지 않거나 지정한 주거지를 무단 이탈했을 경우 신병을 구속받게 되는데 부랑자로 간주되면 수정원주민법(修正原住民法)에 의해 재판 없이 백인농장으로 보내어져 강제노동에 처해진다.

요하네스버그 남서쪽에는 소웨토라는 인구 100만을 넘는 흑인 거주지가 있으며 노동자들은 낮에는 요하네스버그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매일 소웨토로 돌아가야만 한다. 이 외에도 아프리카인은 법적으로 구속받는 경우가 많은데, 직업확보법에 의해 백인노동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하급노동밖에는 보장되어 있지 않다.

현재 아프리카인의 교육에 관해 정부는 출신부족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수학이나 이과(理科)의 교과서까지도 줄루어나 코사어 등 부족어로 인쇄하고 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공공장소분리법 폐지, 백인전용시설의 흑인들의 이용을 허용하는 등 인종차별정책이 완화되었고, 1991년 토지법, 집단지역법, 인구등록법의 3대악법 폐지로 사실상의 아파르트헤이트는 종결되었다.

[한국과의 관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6·25 당시 UN군으로 참전하였으나 1992년 남한과 수교하였으며 북한과는 미수교 상태이다. 미수교 상태에서도 수년 전부터 8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진출해 현지공장을 가동시켜 왔다. 대(對)경제관계는 1995년 대한수출액 12억 1867만 달러이며 대한수입액은 4억 6613만 달러이다. 한국 교민은 1995년 398명이며 123명이 체류하고 있다.

<윤길진>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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