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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9 (월) 14:44
분 류 사전2
ㆍ조회: 925      
[근대] 파쇼다사건 (한메)
파쇼다사건 -事件 Fashoda Incident

1898년 이집트 수단 남부의 파쇼다에서 영국의 종단(縱斷)정책과 프랑스의 횡단(橫斷)정책이 충돌하여 일어난 사건.

세계정책상 대립되어 온 두 나라를 조정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1904년 영·프협상의 성립과도 연관되었다. 1894년 영국령 수단을 점령한 프랑스는 이를 아프리카대륙 동쪽 해안의 지부티와 결합하기 위해 이른바 횡단정책을 서둘렀다. 1896년 2월, 프랑스는 J.H.마르샹 대령이 지휘하는 원정대를 프랑스령 콩코에서 나일강 상류로 파견하였고 마르샹 일행은 2년에 걸려 5000㎞의 열대지역을 횡단하여 1898년 7월 파쇼다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현지 추장들과 협약하여, 나일강 상류 왼쪽 연안 일대를 보호령으로 만들고 파쇼다에 프랑스 국기를 게양하였다. 한편 영국은 아프리카대륙의 남북을 연결하는 종단정책을 채택, H.H.키치너 장군으로 하여금 수단지방에 철도를 부설하고 1898년 9월 하르툼에 진입하게 하였다. 키치너 장군의 부대가 파쇼다에 들어가 9월 19일 키치너와 마르샹 사이에 회담이 열렸는데, 키치너가 마르샹 일행의 철수를 요구한 데 대하여 마르샹은 철퇴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대내외적인 여건이 유리하지 못한 프랑스는 1898년 11월 4일 영국측에 마르샹의 소환을 약속하였다. 1899년 3월 21일 수단에 관한 영·프 공동선언이 런던에서 조인됨으로써 나일강과 콩고강 유역의 중간에 남북으로 선을 그어 그 동서를 각각 영·프의 세력권으로 확정하였다.

이로써 이집트 수단은 영국의 세력 아래 들어가고, 프랑스는 콩고식민지에서 이집트 수단을 경유하여 나일강 유역에 통상할 수 있는 자유권을 얻었다. 이와 같은 파쇼다사건의 해결은 양국간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여, 1904년의 영·프협상을 가져왔다. 1906년 영국은 파쇼다라는 지명을 코도크(Kodok)로 바꾸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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