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사전2 세계사사전1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14 (화) 21:17
분 류 사전2
ㆍ조회: 1034      
[국가] 폴란드 (두산)
폴란드 Poland

중부 유럽 발트해(海)에 면한 나라.

I. 개관

위치 : 중부 유럽 발트해 연안
면적 : 31만 2685㎢
인구 : 3862만 3000명(2003)
인구밀도 : 123.5명/㎢(2003)
수도 : 바르샤바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폴란드어
통화 : 졸티(Zolty)
환율 : 4.02Z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 4,230$(2003)
나라꽃 : 팬지

면적은 31만 2685㎢, 인구는 3862만 3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123.5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폴란드공화국(Polish Republic)이다. 수도는 바르샤바이며 폴란드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북동쪽으로 러시아연방, 동쪽으로 리투아니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슬로바키아, 체코, 서쪽으로 독일에 접하며, 북쪽은 발트해에 면한다. 남북길이 649km, 동서길이 689km로 거의 4각형의 국토를 이룬다.

II. 자연

폴란드는 위치상으로 동·서 유럽의 중간에 있고 대부분 제4빙하기의 영향 아래 있으며, 그밖에 동서로 달리는 오래된 계곡을 수반하는 넓은 저지가 국토 북부의 약 2/3를 점하고, 호수가 산재하는 평야지대도 있다. 가장 최근까지 빙하지대였던 북부지방은 일부가 사구(砂丘)를 이루는 저지대이고, 그 남쪽에는 빙하에 의한 퇴석(堆石)과 호소(湖沼)가 산재하는 저지대가 펼쳐진다.

바르샤바 남쪽에 있는 고지인 시비엥토크시스키에산맥(山脈)도 최고높이 612m에 불과하다. 남서부의 수데티 지방에는 수데티산맥이 있으며 체코와의 국경에 스네지카산(1,602m)이 있다. 슬로바키아와의 국경인 타트라 산지에는 폴란드 최고봉 리시산(2,499m)이 솟아 있다. 중부 및 남부의 일부 지역은 토질이 비옥하고, 포드졸과 본래 소택지였던 비옥한 토양지대도 있다. 하천 수계의 중심은 비스와강(江)과 오드라(오데르)강으로, 수많은 지류와 함께 전국에 수로망을 펼쳐 전체의 90%에 가까운 물이 모여든다. 이밖에 어류가 풍부한 빙하호가 산재한다.

서유럽의 습도 높은 해양성 기후에서 동유럽의 대륙성 기후로 옮아가는 점이지대에 위치해 있어, 강수량은 가장 많은 남부 국경 산악지대가 1,000∼1,100mm, 가장 적은 중부가 평균 600mm이다. 기온은 초봄·초가을에 0∼5℃, 봄·가을에 5∼15℃, 여름에 15℃ 이상, 겨울에 0℃ 이하로, 연평균기온은 6∼8.8℃이다.

삼림도 서유럽의 활엽수림으로부터 동유럽의 침엽수림으로 옮아가는 점이지대로, 삼림면적은 국토의 약 1/4을 점한다. 식생은 폴란드 남부의 타트라 산지에서는 알프스적 요소가, 동부에서는 스텝적 요소가 짙다. 북부와 서부에는 황지(荒地)와 이탄지(泥炭地)가 많다.

동물은 제4빙기 이후 이주한 것들로 붉은사슴, 노루, 말코손바닥사슴, 붉은곰, 여우, 수달, 비버 등 유럽 여러 지방의 것들이 뒤섞여 있다. 북동쪽에 있는 비아워비에차원시림지대(국립공원)에는 유럽들소가 서식한다. 광물자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서부 상(上)실롱스크(슐레지엔)의 역청탄으로, 폴란드 국내에서 생산되는 거의 전량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서부에서는 갈탄도 산출되며, 카르파티아산맥의 전면에 해당하는 남(南)폴란드에서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산출된다. 그밖에 남서부 지방에서는 철·아연·납·구리·니켈·비소·금이 생산된다. 남부의 암염(岩鹽)은 유명한데 13세기부터 채굴되어왔고, 중부의 황과 수많은 광천(鑛泉)도 유명하다.

III. 주민

폴란드는 국토 변동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주민 구성이 현저하게 변화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폴란드인(人) 2,200만, 우크라이나인 320만, 유대인 300만, 러시아인 120만, 독일인 70만으로 복잡한 구성을 보였으나, 현재는 슬라브인의 서부 계열에 속하는 폴란드인이 98.7%를 차지하며, 그밖에 소수의 백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독일인 등이 있다.

복잡한 민족구성 양상이 바뀌었으나 인구는 전쟁 이전의 수준을 넘어섰다. 외국에 거주하는 폴란드인이 약 1300만에 달하는데 그 분포는 대체로 미국에 1000만, 러시아연방을 비롯한 러시아 지역 각국에 120만, 브라질에 80만, 프랑스에 60만 등이다.

공용어는 슬라브어파(語派)에 속하는 폴란드어(語)로 문자는 로마자를 사용한다. 한편 포메라니아(포모제) 지방 주민들은 폴란드어의 한 방언으로 간주되는 카슈브어(語)를 사용하는데, 그들은 과거 서(西)슬라브의 한 부족이었던 포모제인의 후예로 여겨진다.

종교는 전인구의 95%가 가톨릭교도이다. 공산정권 수립 후 폴란드도 종교탄압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으나, 가톨릭은 여전히 국민의 정신생활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으며, 결국 공산정권도 완화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1956년 12월 초등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이 허용되고, 1971년에는 교회에 재산권이 부여되었다. 그후 교회는 산하에 대학을 두는 등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면서 정부에 대해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한편 1978년에는 크라쿠프의 추기경 비디우가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선출되었다. 가톨릭교도 이외에 그리스정교도, 프로테스탄트, 유대교도가 있다.

IV. 역사

1. 피아스트 왕조시대

기원전 1,000년간의 발굴품은 현재의 폴란드 땅에 슬라브인이 거주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문헌에는 뒤에 폴란드인을 형성한 여러 부족의 이름이 나타나는데 계급사회의 발생은 6세기이고, 9세기에는 비슬라인의 부족공국(部族公國)이 대(大)모라비아 왕국과 접촉을 가졌다. 10세기에는 그니에즈노·포즈난를 중심으로 폴인(또는 폴라니에족)의 땅이 형성되어 폴란드 통일의 모체가 되었으며, 거기서 민족과 국토의 명칭이 생겨났다. 962년경 폴인의 피아스트공(公) 미에슈코 1세의 기록이 나타나는데, 그는 포메라니아·실롱스크·말로폴스카의 땅을 합병하고 로마 교황청과 제휴하여 독일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966년에 그리스도교(敎)를 받아들여 봉건제도를 확립하였다.

폴란드에 초기 봉건국가가 완성된 것은 그의 아들 볼레스와프 크로브리(勇敢王) 때인데, 1000년에 그니에즈노에 대주교구가 이루어져 종교적 독립을 획득하였고 1024년에는 볼레스와프 1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위 계승과 몽골의 침입 및 독일·키예프 러시아와의 전쟁 등으로 국력이 쇠퇴하여, 14세기까지 지속되는 봉건분열시대가 시작되었다. 12, 13세기에는 경제의 발전이 현저하여 재통일의 가능성이 엿보였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겹쳐 프셰미슬 2세가 폴란드의 대부분을 통일하고 왕위를 부활시킨 데 그쳤다(1265).

최종적으로 봉건분열상태가 해소된 것은 블라디슬라프 1세(1314~1333) 때로 그는 1320년에 폴란드 왕(王)의 칭호를 얻었다. 1320∼1455년은 의회군주국가 시대로, 특히 카시미르(카지미에시) 대왕(재위 1333~1370) 때 중앙집권의 강국이 되어 폴란드 화폐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1364년에는 크라쿠프대학이 설립되는 등 경제와 문화가 크게 번영하였다.

2. 야기에우워 왕조시대

단기간의 폴란드·헝가리연방(1370~1383)에 이어 헝가리 라요시 2세의 딸 야드비가와 리투아니아 대공 블라디슬라프 야기에우워의 결혼에 의해 폴란드-리투아니아연합이 이루어졌다. 1400년에는 크라쿠프대학이 부활되었고, 1410년에는 역사상 유명한 그룬발트(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을 격파하여 독일기사단(騎士團)의 집요한 위협을 제거하였으며, 그후 몇 차례의 전쟁을 거쳐 발트해로 통하는 길을 열었다. 카시미르 4세(재위 1447~1492) 때에 폴란드 사상 최성기를 이룩했으며 16세기 말에는 북으로 발트해, 남으로 흑해에 이르는 유럽 최대의 왕국이 되었다.

3. 폴란드 분할시대

폴란드는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말에 걸쳐서 슈라흐타(士族階級)의 민주정치가 실시되었는데, 그 동방진출은 자주 모스크바 대공국과의 전쟁을 일으켰다. 17세기에는 투르크와의 전쟁 및 발트해를 둘러싼 스웨덴과의 전쟁 등으로 국력이 피폐해갔다. 그와 같은 정세 아래에서 프로이센·러시아·오스트리아의 3국은 점진적으로 폴란드를 침범하여 1795년에는 폴란드를 완전히 분할하였다.

나폴레옹에 의한 바르샤바 공국시대(1807~1815) 기간을 제외하고 1795~1918년까지 3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1830년의 반란으로 혁명정부를 조직하였는데, 1831년 11월 봉기로 이어진 독립투쟁의 실패로 대량의 망명자(약 1만 명)가 국외로 탈출하고 미츠키에비치·쇼팽 등도 조국을 떠났다.

4. 독립과 제2차 세계대전

1918~1939년은 폴란드의 독립 기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탄생한 폴란드는 러시아와의 전쟁(1920~21)으로 영토를 확대하여 많은 이민족을 거느린 대국이 되었으나, 1926년 피우수트스키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프랑스와의 협력관계가 독일과의 협력관계로 뒤바뀌었고 폴란드는 파시스트화되어 갔다. 폴란드 정부는 1932년에 소련과, 1934년에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했으나 1939년 9월 1일 나치스 독일의 침입이 시작되어 서부 지역은 독일에, 동부 지역은 소련에 분할 점령되었다. 나치스 독일의 점령은 대량학살의 '죽음의 수용소'를 만들어내어 역사에 남을 잔학한 살상을 자행했다.

망명정부는 파리 함락 후 런던에서 활약하였으며, 국내 게릴라 활동단체로는 망명정부 지휘하의 국내군(國內軍)과 폴란드 노동자당이 편성한 인민군 등이 있었다. 1945년 해방되었으나 1944년 8월 국내군이 일으킨 대(對)독일군 무장봉기인 ‘바르샤바 봉기’는 그 평가를 둘러싸고 큰 문제를 남겼다. 바르샤바 봉기로 시민 24만 명이 사망하고, 63만 명이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에서 피살되었다.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600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와 국민 재산의 38%에 해당하는 재산피해를 입었으며, 전후(戰後) 정해진 현재의 국경은 역사적으로 보아 상당히 서쪽으로 이동되었다.

5. 기에레크정권

폴란드의 기에레크 정권은 경제의 재건을 위해 서방국가들로부터 차관을 도입하여 중공업 우선의 공업화정책을 실시하였으나, 270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만 짊어지게 되었을 뿐 실패로 끝나고, 경공업과 농업 등 소비재 산업이 급격히 쇠퇴하기에 이르러 다시 국민생활을 위협하게 되었다. 차관 상환, 무역수지 적자, 1979, 1980년의 마이너스 성장 등 불안한 경제상황 아래에서의 지도층의 부패로 인한 국민의 정치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1980년 7월 육류 가격인상을 계기로 발생한 노동자의 파업은 강한 정치적 색채를 띠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2개월 동안 전국을 뒤흔들었다.

정부는 8월 31일 그단스크에서 노동자측과 회동하여 파업권과 자주관리노조, 즉 자유노조의 결성권을 인정하는 합의문서에 조인함으로써 공산권에서는 전례가 없는 대폭적인 권리를 노동자측에 허용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결국 기에레크는 혼란의 책임을 지고 9월 해임되고 카니아가 뒤를 이었다. 노조결성권 획득 후에 결성된 자유노조의 ‘연대노조’는 곧 전국적으로 조직이 확산되어 11월에 정식으로 등록되었으며, 38세의 바웬사가 위원장이 되었다. 악화일로의 경제사정은 다시 전국 규모의 노동자 파업을 불러일으키고 1981년 10월 카니아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였으며, 참모총장 야루젤스키가 당 제1서기 및 총리·국방장관을 겸하게 되었다.

6. 자유노조와 민주화개혁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 연대에는 1000여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하여 폴란드 민주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야루젤스키 정권은 1981년 12월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바웬사를 비롯한 노조지도자·반체제 지식인 5,000여 명을 체포함으로써 노조활동은 지하로 잠적하게 되었다. 1982년 5월과 8월에는 계엄령하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감행되었고, 이 사이 주미(駐美)·주일(駐日) 대사를 비롯한 폴란드인의 망명사태가 일어났다. 정부는 1982년 10월 자유노조를 불법화하고 1983년 7월 계엄령을 해제한 후 ‘위기상태법’(1985년 12월 말까지 시한)을 제정함으로써 계엄해제에 대비한 안정장치를 마련하였다.

정부의 강경정책에도 불구하고 자유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은 꾸준히 전개되었고, 1987년 11월 정부는 일련의 정치·경제개혁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부결되어 정부의 위신은 더욱 실추되었다. 1988년 8월 다시 탄광을 중심으로 파업이 연발,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위험에 직면한 정부는 바웬사에게 자유노조 합법화 등을 토의하기 위한 원탁회의를 제의, 설득하여 파업을 종결시켰다.

1989년 4월 당·정부·노조·지식인 대표 등 55명으로 이루어진 ‘원탁회의’에서는 ① 자유노조의 합법화, ② 자유선거에 의한 상원 신설, ③ 하원 460석 중 35%의 자유선거, ④ 대통령제 신설 등이 결정되었다. 그 결과 1989년 6월 실시된 총선에서 자유노조는 상원 100석 중 99석, 하원에서 161석을 차지하여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는 7월 야루젤스키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야루젤스키는 자유노조 기관지의 편집장 마조비에츠키를 총리로 지명함으로써 동구 사회주의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비공산당 주도의 연립정권이 출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조비에츠키 정부 출범 후 개혁 속도의 지연과 옛 공산세력의 잔류 등에 불만을 품은 자유노조 등 개혁주도파들은 야루젤스키의 조기 퇴임 압력을 가하였고, 야루젤스키가 이에 굴복함으로써 임기 5년의 직선대통령제가 채택되었다. 이에 따라 1990년 11월과 12월 대통령 예비·결선 선거가 실시되어 결선 선거에서 바웬사가 승리, 전후의 첫 민선 대통령이 되었다.

V. 정치

1. 기구

폴란드는 직선제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임기 5년의 대통령을 국가최고통수권자로 한다. 대통령은 국가방위위원회 의장·군사령관을 겸임하고 국회해산권·각료임명권·법률안거부권·계엄령선포권 등 강력한 권한을 가지며, 하원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한 당의 의원 중에서 총리를 선임한다. 총리는 내각을 구성하게 된다. 2001년 밀러(Miller)가 총리에 취임하였다. 국회는 상·하원의 이원제(二元制) 국민의회로, 상원(세나트) 100명, 하원(세임) 460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각각 4년이다. 특히 하원은 총리 등 각료 승인권, 내각불신임 결의권 등을 가진다.

국가행정의 최고집행기관인 내각회의(정부)는 하원에 의해 승인 임명된 총리·부총리 및 장관 등으로 구성되며, 세임에 책임을 진다. 이와 같은 권력구조는 1989년 4월 당·정부·자유노조·지식인 대표 등으로 구성된 55인 원탁회의의 결정에 의해 형성된 정치개혁의 소산이다. 원탁회의는 당초 국가평의회의장(국가 원수) 제도 대신 대통령제를 도입하면서, 이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 의한 간접선거·6년 임기제로 결정, 초대 대통령으로 야루젤스키를 선출하였다.

그러나 야루젤스키는 바웬사 및 그를 지지하는 세력으로부터 조기 사임의 압력을 받게 되었고, 이를 수락함으로써 차기 대통령선거는 직접선거·5년 임기제로 바뀌게 되었다. 바웬사는 5년 임기의 첫 민선 대통령이 되었다. 1995년에는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Aleksander Kwasniewski)가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2000년 10월 재선되었다.

한편, 국가권력의 지방기관인 국민평의회는 구미나(최소 행정단위), 시(市), 대도시의 구(區), 주(州)에 설치되어 있다. 1975년 6월 이후 폴란드의 주는 49개로 나누어졌으며, 바르샤바·크라쿠프·우치 등 3개 현(縣)은 도시현이다. 법원은 최고법원을 상급법원으로 하는 3심급제이며, 그밖에 특별법원이 있고, 검찰은 독립기관이다.

2. 정당 ·단체

폴란드의 정당은 사회민주당·사회민주연합·통일농민당·민주당 등이 있고, 기타의 조직으로는 폴란드의 전체 노동조합을 거느려온 노동조합 중앙평의회, 1989년에 합법화된 자유노조, 1945년에 설립된 부인연맹 등이 있다. 정당 중 구 사회민주당은 1990년 1월 40여 년간 공산정권을 주도하여온 폴란드통일노동자당(공산당)이 민주개혁 추세에 맞추어 서구적 사회주의를 지향하여 변신한 정당이다.

통일노동자당은 1948년 폴란드노동자당과 폴란드사회당이 합당하여 정권을 장악한 이래 권력을 독점하여왔으나, 1980년대에 들어 당원의 이탈현상이 현저해지고, 1989년 6월의 상원 및 하원 일부 선거에 대패한 후 세력이 급격히 쇠퇴하였다. 또 하원의 다수당이면서 1989년 9월 자유노조의 마조비에츠키에게 내각을 넘겨줘, ‘집권당’을 포기하여야만 하였고, 1990년 1월에는 사회민주당으로 개명, 변신에 힘썼다. 그밖의 통일농민당과 민주당은 오랫동안 통일노동자당의 지도 아래 있었으나, 1989년 8월 바웬사의 제의를 받아들여 마조비에츠키 연립정권에 참가하였다.

노동조합중앙평의회는 1945년에 설립되어, 그 휘하에 폴란드 전체 노동조합을 거느려왔다. 바웬사가 이끌어온 자유노조는 1981년 불법화되어 활동에 큰 제한을 받았으나, 꾸준히 민주화운동을 주도하여 1988년에는 결정적으로 대세를 잡아 1989년 자유노조 주도의 내각을 수립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1990년 11월의 대통령 직접선거에 바웬사와 마조비에츠키가 함께 출마함으로써 세력이 양 진영으로 분열하여 큰 타격을 입었다.

최근의 주요 정당은 민주좌파연합, 시민플랫폼, 자위(自衛)당, 농민당, '법과 정의당', 폴란드가족연맹 등이  있다. 민주좌파연합은 사회민주당과 국가노동연합당, 녹색당 등 좌파 성향의 정당 및 단체들의 연맹체로 하여 1991년 발족한 후 1999년 단일 정당으로 탈바꿈하였다.

시민플랫폼은 자유노조 운동 계통의 일부 소장 개혁파들이 합세하여 탄생한 정치단체로서 2001년 총선거 이후 단일정당으로 발족하였다. 자위당은 농민층에 지지기반을 둔 극우 민족주의적 성격의 정당이며, 농민당은 과거 공산당의 괴뢰정당인 농민당에 뿌리를 둔 정당으로 농민의 권익보호를 표방한다. '법과 정의당'은 자유노조 운동에 뿌리를 둔 우파 민족주의자들과 과거 중도연합 세력이 합세하여 2001년 총선거 직전에 출범하였다. 폴란드가족연맹은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이다.

3. 외교

폴란드는 공산정권 수립 이래 바르샤바조약기구와 COMECON(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경제상호원조회의)을 축으로 하는 외교정책을 기조로 하면서 1972년 서독과 국교를 수립하는 등 서방과의 교류도 추진해왔다. 특히 1970년대의 제1서기 기에레크는 1972∼1977년 벨기에, 핀란드, 미국, 스웨덴, 서독, 인도, 이탈리아, 바티칸 등을 방문하여 경제협력과 동서 긴장완화를 촉진하였다. 1980년대의 제1서기 야루젤스키는 1986년 몽골, 북한,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1987년에는 이탈리아, 소련, 일본, 영국, 벨기에를 방문하는 등 균형외교를 폈다. 1989년 6월과 7월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 미국 대통령 부시가 각각 폴란드를 방문하여 경제원조와 상호교류 방안을 논의하였고, 7월 동구권 최초로 44년 만에 로마 교황청과 수교하였다.

1989년 9월에 출범한 마조비에츠키 정부는 탈이념적 자주외교를 전개하여 11월에 서독 총리 콜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바웬사는 같은 달 미국의 대통령 부시와 회담하였다. 마조비에츠키의 뒤를 이은 바웬사는 1991년 미국과 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를 차례로 방문, 외채 탕감 등 경제협력을 논의하였다. 같은 해 4월 프랑스와, 6월 독일과 우호조약을 체결하였다. 1992년 3월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독일을 공식방문하였다. 러시아와는 1992년 5월 우호조약을 체결하였고 2001년 10월에는 러시아대통령 푸틴이 폴란드를 방문하면서 양국관계가 급격히 호전되었다.

1996년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 1999년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맹하였고 1998년부터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가맹을 위해 교섭 중이다.

4. 군사

폴란드는 징병제로 12개월간 복무한다. 2001년 현재 국방비는 38억 5000만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97%를 차지한다. 총병력은 16만 8000명이고, 육군 11만 5000명, 해군 1만 5000명, 공군 및 방공군 3만 8000명이다. 폴란드는 현재까지 전세계 26개 분쟁지역에 정규군 9,935명, 징집병 1만 1816명, 민간인 1,700명 등 2만 4175명을 파견하는 등 국제 평화유지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VI. 경제

1. 산업

폴란드의 농지면적은 15만㎢로 전체 국토면적의 48%를 차지하며, 동부 유럽에서는 러시아연방에 다음가는 농업국이다. 다른 COMECON(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경제상호원조회의) 국가들과는 달리 농업집단화율이 가장 낮아 농경지의 80% 이상이 자영농가에 의해 경작된다. 기에레크 정권은 1971년 8월에 이윤제도의 채택, 개인영농의 허용 등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유례가 없는 혁신적인 농업정책을 써 농업생산의 증대를 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곡물수출국이었으나 전후에는 인구증가 및 축산업 발전에 따른 사료 수요의 증가로 곡물수입국으로 바뀌었다.

주요 농축산물은 라이보리, 밀, 보리, 귀리, 감자 및 소, 돼지, 말 등이다. 특히 라이보리와 감자의 생산량이 많은데, 라이보리는 식량 외에 보드카 양조 등에 쓰이며, 감자는 식량·사료·공업용 원료 등으로 쓰인다. 말은 예로부터 농업용 역축(役畜)으로 많이 사육되어왔다.

역대 정권은 공업화에 주력한 결과 공업이 주종산업이 되도록 산업구조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특히 중화학공업의 성장이 현저하여 기계공업이 가장 선도적인 공업부문이 되었다. 이에 따라 산업기반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석탄, 섬유, 화학, 기계류, 제철부문에 중점이 두어졌으나 오늘날에는 비료, 석유화학, 기계공구, 전기기계류, 전자, 조선부문으로 확대되었다.

주요공업으로는 크라쿠프의 철강공업, 그단스크·그디니아의 조선업, 스타라호비체·루블린의 자동차공업, 바르샤바의 농기계공업 등이 알려져 있고, 건설기계·공작기계·오토메이션 기계의 생산도 늘고 있다. 화학공업은 비교적 새로이 일어난 공업으로 실롱스크 지방·비스와강 유역이 성한데, 오시비엥침·노바후타에는 현대적인 공장이 있다. 로지는 전통적인 섬유공업도시이며, 식품공업도 그 전통이 길어 국내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실롱스크 지방에는 유럽 제일의 실롱스크 탄전이 있어 폴란드의 공업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탄전 인근에서는 그 밖에도 납·아연의 산출이 많다. 황동석(黃銅石)·암염(岩鹽)·황의 산출도 많은데, 특히 카토비체의 염산(鹽山)은 유명하다. 카르파티아산맥 북록의 크로스노·고를리체에서 석유·천연가스가 발견되어 채굴되고 있으나 산유량은 극히 적어 러시아 지역으로부터의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2. 무역

폴란드의 산업은 동부유럽 국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따라서 무역에 있어서도 1/2 정도가 동구권과의 무역이며, 러시아 지역의 각국·독일·체코·슬로바키아가 주요 거래국이었다. 1970년대 초부터 종래의 무역 위주에서 산업기술 협력의 형태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으며, 특히 고도경제성장의 달성을 위해 서방 선진제국과의 경제협력을 적극화하고 있다.

2000년에는 대외교역액 중 65%가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국가와의 거래이다. 그 가운데서도 독일이 최대인데 양국간 교역액은 227억 4400만 달러로 전체의 28%를 차지한다. 공식적인 수출액은 317억 달러, 수입액은 498억 달러이지만 서쪽의 독일 접경지대와 동쪽의 구소련 위성국가를 상대로 한 불법국경 무역액도 1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주요 수출품은 전기·수송기계, 야금제품, 수입품은 전기·수송기계, 화학제품 등이다.

3. 교통

폴란드에는 그단스크·슈체친·그디니아 등의 항구가 있다. 보유선박은 278척(262만 4000톤), 화물운송량은 3536만 6000톤이다. 국영항공 LOT는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여러 나라와 정기항로를 개설하고 있다. 그밖에 석유 파이프라인이 건설되어 있다. 철도 총연은 2만 7145㎞이며, 이중 전철화 구간은 8307㎞이다. 도로 총연장은 25만 4000㎞로 포장도로 구간은 15만 4000㎞이다.

VII. 사회

폴란드는 동구권 국가 중에서는 수위를 다투는 문화국가로, 국민들은 그 역사적 배경에서 배양된 불굴의 국민정신을 지니고 있다. 과거 공산권 내에서 폴란드가 비(非)스탈린화(化) 반란의 기초를 만들고,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가톨릭교회의 지위 강화를 이룩하였던 것도 문화적 전통과 거기에 뿌리박은 불굴의 국민정신에서 연유된 것이다. 폴란드는 그러한 유럽 문화의 전통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분야에서 서유럽을 지향하고 있는 나라이다.

사회보장과 노동보호는 통일되게 발달되어 있다. 예컨대 양로연금은 남자 65세, 여자 50세부터 지급되며, 탄광의 광부나 건강에 해로운 일에 종사하는 사람과 교원은 5년 감해진 나이부터 지급된다. 노동자와 그 부양가족의 의료는 무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문맹률은 꽤 높았으나 1949∼1952년에 문맹 일소운동이 전개되었고 파괴된 학교도 복구되었다. 15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은 2%이다. 학교 제도는 국립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교육비가 무료이고 유아원 3년, 초등학교 6년은 의무교육이다. 2개의 신학(神學) 아카데미가 있어 공산국가로서는 특이한 일이었다. 폴란드 과학 아카데미는 1951년에 설립되었으며, 75개 연구기관이 있다.

최대 규모의 도서관은 바르샤바 국립도서관으로 장서가 약 261만 7000권에 이른다. 대학도서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크라쿠프대학 도서관으로 장서는 약 250만 권이다. 폴란드인으로 세계 학술에 공헌한 인물에는 코페르니쿠스·퀴리 부인·오스카 랑게 등이 있다.

VIII. 문화

1. 문학

초기의 폴란드 문학은 라틴어로 씌어졌으며 전설이나 연대기(年代記)가 많다. 라틴어로 씌어진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종교가(宗敎歌)인 《보구로지차》(13세기)이며 15세기에는 종교문학이 왕성하게 일어났다. 16세기에 들어오면서 폴란드 문학은 개화기를 맞이하였고, 이 시기에 태어난 최대의 시인은 코하노프스키이다. 18세기 후반에는 계몽주의 시대를 맞았으며 대표적 시인으로는 크라시츠키가 있다. 독립을 잃었을 시기에는 낭만주의 문학이 크게 유행하여 A.미츠키에비치, J.스워바츠키, Z.크라신스키, C.노르비드와 같은 독특한 시인이 출현하였으나 이들은 모두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19세기 후반의 실증주의 문학가로는 B.프루스, E.오르제슈코바, H.시엔키에비치가 유명하다. 시엔키에비치는 《쿠오 바디스》를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무렵에 성행하였던 모더니즘의 대표적 작가로는 S.비스피안스키, S.제롬스키 등을 손꼽을 수 있으며, 《농민》으로 알려진 W.S.레이몬트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제1·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의 대표적 작가로는 Z.나우코프스카, M.돔브로프스카, S.I·비트켸비치, W.곰브로비치, B.슐츠, J.이와슈케비치 등의 소설가와 투빔, 스워남스키 등의 시인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J.안제에프스키, 루드니츠키, T.루제비치 등이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폴란드 작가 중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많은데, 폴란드 태생으로 이스라엘로 건너간 슈무엘 아그논은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는 1976년, 체스와프 미워시는 1980년, 여류시인이자 비평가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1996년 수상하였다.

2. 미술

10세기 말부터 그리스도교가 전파됨에 따라 폴란드는 당시 서유럽을 풍미하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이어서 13세기에는 고딕 양식이 도입되었고 15세기에는 고딕 양식 조각의 전성기를 맞았다. 비트스토포시가 제작한 《마리아의 제단》은 이 시대의 대표작이다. 16세기의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에는 주로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고, 19세기 이후에는 국내의 민족적 전통과 결부된 독톡한 건축물이 나타났다.

한편 회화는 12세기 이후 고딕 시대에 활기를 띠었고, 16세기에는 역사화·초상화가 등장하였다. 특히 초상화는 17, 18세기에 이르러 전형적인 회화양식이 되었다. 근대 회화는 고전주의·낭만주의를 거쳐 리얼리즘 시대를 맞이하였으며, 19∼20세기에는 세계의 모든 작풍(作風)이 도입되었다. 현대에는 코바르스키 등의 사실파 이외에도 스타지에프스키, 야레사 등의 새로운 경향도 볼 수 있다.

3. 음악

폴란드에서는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민요 외에 교회음악이 그리스도교와 함께 발달하였다. 바로크 시대의 뛰어난 작곡가로는 야젠프스키, 미에르체프스키 등이 있다. 17세기부터 폴란드의 민속무용은 유럽의 예술음악(폴로네즈·마주르카)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쇼팽의 스승이었던 에르스네르는 '폴란드 음악의 아버지'로 볼 수 있으며, 쇼팽 역시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19세기 후반의 작곡가로는 노스코프스키, 젤렌스키가 특히 유명하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J.파데레프스키와 루빈스타인도 19∼20세기에 걸쳐 활약하였다. 20세기 전반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로는 K.시마노프스키가 널리 알려져 있다. 작곡가 헨리크 고레키는 수차례에 걸친 심포니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5년마다 개최되는 쇼팽 피아노 경연대회를 비롯하여 음악 관계 축제대회가 많이 열리고, 국립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유명한 교향악단이 있다.

IX. 대한관계

폴란드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한국과는 외교관계 없이 약간의 무역거래만 하다가 1989년 4월에 주(駐)바르샤바 무역관과 5월에 주(駐)서울 무역사무소가 교환·개설되었고, 11월 1일 정식으로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1989년 투자보장협정·무역협정, 1991년 이중과세방지협정·항공협정, 1993년 문화협정·과학기술협력협정, 사증면제협정, 1997년 외무부간 협력의정서, 1998년 표준화 협력 양해각서·운전면허 상호인정 및 교환협정, 1999년 세관협력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1994년 12월 폴란드 대통령 레흐 바웬사, 1999년 총리 예지 부제크가 방한하였다. 한국에서는 1996년 국무총리 이수성, 1998년 국무총리 김종필 등이 폴란드를 방문하였다. 2000년 현재 대한수출 5600만 달러, 대한수입 5억 28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철강, 유기화학품, 농산물, 제약 원료 등이며, 수입품은 자동차, 자동차 부품, 가전제품, 전자부품, 일반기계, 섬유제품(특히 폴리에스터 직물) 등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윗글 [현대] 팔레스타인문제 (두산)
아래글 [원시] 신석기혁명 (두산)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939 사전2 [지역] 태평양 (두산) 이창호 2004-11-29 1061
938 사전2 [현대] 아라파트 (브리) 이창호 2005-01-11 1059
937 사전2 [지역] 아시아 2 (브리) 이창호 2004-11-29 1058
936 사전2 [현대] 유럽경제공동체=EEC (브리) 이창호 2005-01-06 1054
935 사전2 [현대] 분자생물학 (두산) 이창호 2005-01-07 1048
934 사전2 [현대] 중소이념분쟁=중소분쟁 (브리) 이창호 2005-01-05 1044
933 사전2 [현대]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두산) 이창호 2005-01-06 1041
932 사전2 [현대] 세계화=글로벌리즘 (브리) 이창호 2005-01-07 1040
931 사전2 [현대] 팔레스타인문제 (두산) 이창호 2005-01-06 1035
930 사전2 [국가] 폴란드 (두산) 이창호 2004-12-14 1034
1,,,11121314151617181920,,,11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