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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15 (수)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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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887      
[국가] 폴란드 (한메)
폴란드 Republic of Poland

동유럽 북부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폴란드공화국(Rzeczpospolita Polska). 면적 2683㎢. 인구 3880만 2000(1997). 발트해 남쪽에 자리하여 동쪽은 러시아, 서쪽은 독일, 남쪽은 체크·슬로바키아에 접해 있는 유럽 8번째로 큰 나라이다. 화려한 문화를 지녔으나, 수많은 고난의 역사를 겪었다. 수도는 바르샤바.

[자연]

전국토가 제 4 빙하기의 영향을 받고 있다. 남쪽은 오랜 세월 빙하의 침식으로 인한 호소와 퇴석(堆石)이 많은 평탄한 지형이다. 한편 북쪽은 근래까지도 빙하지대였으며 사구를 이루는 저지대이다. 남서부는 수테티지방의 수테티산맥이 있으며, 체크와의 국경에는 1602m의 스네슈카산이 있고 남동부의 체크·슬로바키아와의 국경에는 폴란드 최고봉인 러시산(2499m)이 있으며, 중부 및 남부지방에는 기름진 평야가 있다.

전 국토에는 9300개의 빙하로가 퍼져 있으며 비스툴라강과 오데르강의 지류가 수로망을 형성하여 용수의 90%를 집수(集水)하고 있다. 기후는 대체로 대륙성기후이며, 서쪽은 해양성기후에 가깝다. 동쪽은 완전한 대륙성기후로서 점이(漸移)현상이 뚜렷하며, 북쪽은 발트해의 영향을 받아 심한 기후 변화가 없다. 초춘(初春)·초동(初冬)을 합쳐 연간 6계절로 구분된다. 또한 봄에는 홍수가 많은 특성을 보인다.

바르샤바를 기준으로 볼 때 1월 평균기온 -3℃, 7월 평균기온 19℃ 정도이다. 강수량은 연평균 559㎜인데, 그 절반은 5~7월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또 영하의 기온은 30~50일로, 비교적 적은 일수이다. 삼림은 서부의 활엽수림지역에서 동부의 침엽수림으로 옮겨가는 점이지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식생은 남부의 타트라산지에서는 알프스적 요소, 동부에서는 스텝적 요소를 나타낸다.

주요 광물자원은 역청탄으로 상(上)슐레지엔에서 거의 전량이 생산되며, 서부에서는 갈탄도 생산되고, 원유와 천연가스는 카르파티아산맥의 전체에 해당하는 남폴란드가 주산지이다. 남부지방에서는 철·아연·납·구리·니켈·비소·금·암염이 생산되고 중부지방의 황과 수많은 광천(鑛泉)으로 유명하다. 동물은 제 4 빙기 이후에 옮겨와 살고 있는 것들인데, 노루·사슴·붉은곰·여우·수달·비버 등으로, 유럽 전지역에서도 분포하는 것들이 여기에 살고 있다.

[역사]

BC 1000년 무렵의 유적에서 발굴된 발굴품을 보면, 폴란드땅에 슬라브인이 거주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폴란드를 형성한것은 여러 부족이었다는 사실도 문헌에 나타나있는데, 6세기 무렵에는 계급사회가 형성되고9세기에는 비(非)슬라브인의 부족공국이 대모라비아왕국과 접촉을 가졌다. 또한 10세기에그니에즈노·포즈나니를 중심으로 폴인(폴라니에족)의 땅이 이루어져 폴란드의 모체가 되었으며, 여기에서 폴란드의 명칭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포모제·슐레지엔·말로폴스카의 땅을 합병하고 독일의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그리고 로마 교황청과 제휴하여 996년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으며, 이와 함께 봉건사회를형성하였다. 이 과정이 곧 피아스트 왕조의 시작이 되었다. 초기 봉건국가는 피아스트의 아들 볼레슬라프 크로브리(勇敢王)가 완성하였고, 1000년에 대주교구가 이루어져 종교적 독립을 획득하였다.

이어 24년 볼레슬라프가 왕위에 올랐으나 왕위 계승문제와 몽골의 침입 및 독일·키예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였다. 이로써 봉건사회는 분열과 혼란을 거듭하다가 프셰미슬 2세에 이르러 폴란드로 통일되었다. 그 뒤 블라디슬라프가 봉건사회 분열을 종식시켰다. 1320∼1455년은 의회군주국가시대로, 이때 카시미르가 중앙집권의 강국을 형성하여 문화가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한편 1370∼83년의 단기간 동안 폴란드와 헝가리가 연방국을 형성하게 되었다. 헝가리의 라요시 2세의 딸 아드비가와 리투아니아의 대공 블라디슬라프 야겔로의 결혼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연합이 이루어졌고, 1410년 그룬발트(타넨베르크)전투에서 독일군을 무찔렀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발트해로 통하는 길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카시미르 4세(1447∼1492) 때 마침내 폴란드 역사상 최성기를 이루게 되었으며, 16세기 말에는 남으로는 흑해에 이르고,북으로는 발트해에 이르는 유럽 최대의 왕국이 되었다.

그러나 15세기 중엽에서 16세기 말에 이르는 동안 동방진출을 꾀하다가 전쟁을 일으켰고, 17세기에 들어서는 발트해를 둘러싼 스웨덴과의 전쟁 및 투르크와의 전쟁이 국력을 약화시켰다. 이로 인하여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가 점진적으로 침범하여, 1795년에는 완전히 분할되었다. 1795년∼1918년까지 수난의 시대를 겪으면서 B.나폴레옹에 의한 바르샤바공국 시대를 제외하고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들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과 봉기를 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으며 그때마다 많은 인명 피해만 입었다. 1831년 11월의 봉기로 이어진 독립투쟁의 실패로 대량의 망명자가 국외로 탈출하는 비극이 있었다. 한편 제 1 차세계대전 후 폴란드는 독립하게 되고 1920∼21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많은 영토를 확장, 이민족을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독립 후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전쟁으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 및 실업문제에 부딪쳤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25년 통화개혁과 토지개혁을 단행하려 하였으나 대지주의 저항으로 실패하였다.

1926∼35년 의회제민주주의가 외견상으로는 유지된 듯하였으나 결국 권위주의체제로 정착되고 말았다. 또한 1926년 5월엔 필수트스키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철도노동자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프랑스와의 협력관계는 끝이 나고 독일과 협력관계가 시작되었다. 폴란드정부는 1932년 소련과, 1934년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였으나, 1939년9월 1일 나치스 독일의 침입으로 서부는 독일, 동부는 소련에 분할 점령되었다. 한편으로 파리에서는 망명정부가 활동을 시작하였고 파리가 함락된 뒤에는 활동무대를 런던으로 옮겼다.

국내의 게릴라활동단체는 망명정부의 지휘로 국내군과 함께 저항운동을 펼쳤다. 1944년 8월 국내군이 일으킨 무장봉기인 <바르샤바봉기>로 인하여 시민 24만 명이 죽고 63만 명이 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 소련과 독일이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연합군측에 가담하여 1944년 7월 폴란드에 진주하게 되었다. 그해 12월 친소파 <국민해방위원회>가 임시정부를 세웠다. 그 뒤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하자, 6월 런던의 망명정권을 일부 포함한 통일정부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정부 내의 노동자당은 치안상의 이유로 주요 부서를 장악하였으며, 한편으로 농민당·사회당은 독립정당으로 무장저항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게릴라전은 2년만에 끝나고 1948년 다시 소련의 방침에 의해 노동자당이 사회당을 흡수하여 폴란드통일노동자당을 만들었다. 그들은 선거에서 단일후보제를 채택하고 당의 지도자는 소수정당에 대해 경찰력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당서기장이 된 W.고물카는 우익편향자(右翼偏向者)로 지목되어 1949년 실각하였고, 1952년 신헌법이 채택되어 이웃 공산국가들과 조약을 체결하였다.

1955년 바르샤바조약에 서명하고, 1956년 <스탈린비판>으로 새로운 국면에 돌입하자 <포즈나니폭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10월에 통일노동당 중앙위원회 제 8 차 총회에서 고물카가 다시 등장, 당서기장이 되었다. 고물카는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주권 회복을 기도하였으나, 당 통제정책과 부딪쳐 결국 소련군 주둔을 허용, 대소동맹(對蘇同盟)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 뒤 1970년 12월에 발트해 연안의 노동자 폭동으로 고물카는 E.기에레크에게 당 제 1 서기 자리를 양보하였다.

[정치]

1952년 국회(세임)에서 채택된 헌법에 의해 인민공화국으로 발족한 뒤 1954년·57년·60년·76년·83년 등의 헌법 개정을 거쳐 1989년 12월 국명을 인민공화국에서 공화국으로 변경하였다. 89년 6월 창설된 국민의회는 양원제로 상원 100석, 하원 460석이며 임기는 4년이다. 그해 7월 양원 합동회에서 국가 원수의 기능을 가지고 집단지도체제를 이루었던 국가평의회를 폐지하고, 대신 국회에서 선출하여 대통령에게 강력한 집행권을 부여하였다.

대통령은 하원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당의 의원 가운데서 총리를 선임하며, 총리는 내각을 구성한다. 1947년 이래 공산당인 폴란드통일노동당(PUWP)이 집권해 온 1당체제국가로 소련이 모델이 되어 최고 정치적 권한이 당 중앙위원회의 정치국과 당 제 1 서기에 있었던 폴란드는 1989년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70년 말과 1980년 경제위축으로 국민의 정치불신이 고조된 가운데 육류가격 인상을 계기로 노동자의 동맹파업이 정치적 색채를 띠면서 급속히 확대되자 정부는 8월 파업권과 자주관리노조의 결성권을 인정, L.바웬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자유노조인 <연대노조>를 결성하였다.

이 정치적·경제적 혼란의 책임으로 E.기에레크 제 1 서기가 해임되고 S.카니아가 그 뒤를 이었으나, 경제사정 악화와 정부의 생활필수품 가격인상으로 노동자파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81년 10월 카니아가 사임하고 W.W.야루젤스키가 당 제 1 서기에 올랐다. 야루젤스키는 연대노조의 계속되는 파업에 맞서 1981년 12월 게엄령을 선포, 연대노조의 활동은 전면금지되어 다시 불법화되었고 바웬사를 비롯한 지도층은 체포되었다.

계엄령은 18개월 후에 해제되었으나 정부는 계속해서 반대세력을 통제하였고 경제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자 88년 다시 노동파업이 일어났다. 이에 정부는 1989년 4월 연대노조와 협상, 그 결과 이전의 단원제에서 양원제로 바뀌고 새로이 합법화된 연대노조가 자유선거를 거쳐 국회에 진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 대폭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해 6월 의회선거에서 연대노조가 압승을 거둠으로써 공산주의자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T.마조비에츠키를 수반으로 한 동구권 최초의 비공산연립정부가 탄생하였다. 현재는 1990년 11월 실시된 자유총선거에서 자유노조지도자 바웬사가 대통령으로 있다.

[외교·군사]

바르샤바조약기구와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를 주축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비롯하여 서방 및 중부 유럽과의 관계 개선 위주로 외교정책을 수행하였고, 개혁의 진전과 함께 서방과의 관계도 급진전, 89년 W.W.야루젤스키서기장의 벨기에·영국·프랑스 순방,G.H.부시 미국 대통령의 폴란드 방문, 바웬사의 미국 방문 등으로 경제원조와 우호협정이 이루어졌으며, 1990년 통일 독일과 오데르―나이세강에 따른 국경협약, 1991년 11월 체코·헝가리 등과 함께 상품 및 인력의 자유이동을 골자로 하는 EC 준회원국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1992년 4월 올세프스키총리가 미국을 방문하여 경제개혁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였고 바웬사대통령도 같은 해 3월 독일을 방문한 데 이어 5월 러시아를 방문, 양국우호협력조약에 조인하였다. 공산정권 붕괴 후 탈이데올로기와 자유외교를 펴고 있으며, EU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병역은 의무병역제로서, 정규군 총병력은 30만 5000이다. 여기에는 육군 19만 9500, 해군 1만 9500, 공군 8만 6000이며, 복무연한은 육·공군은 2년, 해군은 3년이다.

[경제·산업]

국유제와 중앙계획체제에서 자유기업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급진적인 계획들이 시행되고 있다. 1978년 이래 대단한 경제위기를 맞아 1979∼82년에 생산국민소득은 24.6%, 분배국민소득은 27.5%나 하락하였다. 한편 1983년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47.9%에 이른 반면 실질임금은 1981∼82년에 24.9%로 하락하였다. 이로 인해 1981년부터 5개년계획을 중지하고 2년간의 연차계획도 없는 상태를 지속하다가 겨우 1983년부터 안정화 3개년계획을 발족시켰으나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하였다.

외채의 엄청난 누적과 수출 부진으로 침체를 거듭하다가 1988년 5월과 8월의 파업으로 더욱 악화되어, 1988년 400억 달러에 이르는 외채 해결책으로 IMF·세계은행등에 대한 신규 차관 도입을 위한 산업의 사유화, 화폐개혁, IMF경제개혁안 수용 등 다각도로 경제회복을 위해 시도하고 있다. 동구권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여 1992년부터 회생조짐이 보이기 시작, 1992년 4월 공업생산성이 1991년에 비해 10% 증가하였고, 실업자수도 1990년 이후 처음으로 2만 5000여 명이 줄어들었다.

<농업>

동부 유럽에서는 러시아 다음가는 농업국이다. 농경지 면적은 15만㎞²로 전국토 면적의 48%를 차지하며, 노동인구는 1/4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동구권의 다른 국가와는 달리 경지의 80% 이상이 자영농가에 의해 경작된다. 즉 폴란드에서는 농업의 집단화가 다른 공산국가에서처럼 강행되지 않았으며, 중농적 개인농가가 지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제 2 차세계대전 전에는 곡물 수출국이었으나, 전후에는 인구증가 및 축산업의 발달로 곡물 수입국이 되었는데, 주요 농축산물은 보리·밀·귀리·감자·소·돼지·말 등이다. 감자는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 제 2 위의 생산국이며, 귀리도 많이 생산된다.

<광공업>

광공업은 생산국민소득의 48.7%를 차지하고 있어서 폴란드 최대의 산업부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은 500만이 넘어 전 취업자의 29.2%를 차지한다. 1960년대의 광공업의 원천은 풍부한 석탄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석탄산업, 철강업, 섬유를 중심으로 하는 경공업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후 1970년대에는 서방 선진기술·설비 등을 대규모로 도입해 기계공업·화학공업 등에 주력하였으며, 1980년대 전반부터는 산업구조의 전환이 이루어져 석탄산업·철강업 등의 전통산업에서 탈바꿈하였다. 이후 전기·기계 부문에 주력하면서도 일반공작기계·전기·전자기기 부문에서도 많은 신장을 보았다.

한편 1970년대 전반에 고도 경제성장 노선에 돌입하여, 광공업 생산에 적극적인 투자정책을 펴서 10%의 신장률을 가져왔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고도 경제성장정책을 시행하였으며, 80년대초 경제위기를 넘기고 종래의 중화학공업화 노선을 변경시켜 자원 절약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산업구조 전환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하자원은 유럽 제 1 의 슐롱스크탄전이 있고 그 부근에서 암염·황동광·황 등이 산출된다. 카르파티아산맥 북쪽 크로스노·고를리에서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지만 산유량은 극히 적어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공산품 생산 분포는 크라쿠프의 철강공업, 그다니스크·그디니아의 조선업, 스타라호비체·루블린의 자동차공업, 바르샤바의 농기계공업, 슐롱스크·비스트라강 유역에 화학공업, 오슈비엔침·노바후타에 현대적인 공업이 발달되고 있다. 그 밖에 건설기계·공작기계·자동기계 생산도 늘고 있다.

<무역>

1971∼80년에는 무역이 크게 신장되어 3.5배의 증가를 보였고, 수입을 중심으로 대서방(對西方) 여러 나라와의 무역 신장률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80년대 전반에 들어서면서 무역은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1980년도의 무역실적은 수출 169억 9700만 달러, 수입 190억 8900만 달러였고, 1985년 무역실적은 수출 177억 7300만 달러, 수입 174억 4500만 달러로 대(對)사회주의무역 비중이 급속도로 높아갔다. 수출품목은 주로 석탄·강재(鋼材)·건설기계류이고, 수입은 원유·철광석·공업기계 등의 설비류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무역의 약 1/2은 COMECON에 속하는 동유럽 여러 나라와 이루어졌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는 수입초과를 나타냈으며, 소련 체제의 붕괴 이후 주대상국은 독일·영국·체코·슬로바키아·프랑스 등이다. 1991년의 경제 개혁과 EU·미국의 협조로 경제안정을 되찾았으며, 무역의 전망도 점차 밝아오고 있다.

<교통>

국내수송의 주력은 철도로서 총연장길이 2만 7095㎞이고, 철도화물 수송량은 1206억 t·㎞이다. 70년대에 도로망 정비에 주력하여 자동차 화물 수송량이 급증하였고, 제 2 차세계대전 이후에 해상운송을 육성하여 지금은 해상운송량이 1761억 t·㎞가 된다. 이 외에 내륙수로는 3754㎞이고, 그다니스크·슈체친·그다니아 등의 항구가 있으며, 국영항공 LOT는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의 29개 국과 정기항로를 개설하고 있다.

[사회]

폴란드는 오랫동안 다민족국가였으나 제 2 차세계대전 후의 영토이동·주민교환 등으로 인하여 폴란드인이 인구의 98%를 차지하는 사실상의 단일민족 국가가 되었다. 폴란드 외의 소수민족은 독일인·우크라이나인·유대인·체코인·슬로바키아인·아르메니아인·카라임인 등이다. 국어는 폴란드어이고, 방언의 차가 심하지만 교육과 매스 미디어의 발달로 약화되고 있다. 국민의 95%가 가톨릭교도이고, 1970년에 1만 8151명이었던 성직자 수가 1985년에는 2만 2040명으로 증가하였다.

가톨릭교회의 지위는 1978년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에 선출되면서부터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제 2 차세계대전 후로는 유럽에서 이례적으로 인구가 1.6배나 증가해서 유럽의 평균보다 높다. 주택사정은 집세가 싸지만 매우 심각하고 복지면에 있어서는 무상의료·연금제도·장애자보장·모성보호 등이 철저하다. 국민의 약 1/3이 정부가 정하는 사회적 최저선 이하로 생활하고, 특히 연금생활자의 생활이 어렵다. 평균수명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인데, 남자 67.3세, 여자 74.8세이다. 교육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무상이고 의무교육은 8년이다. 1985년의 동일연령 인구 중 보통과 중등학교의 학생 비율은 19.0%, 대학생 비율은 10.6%이다.

[한국과의 관계]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 북한과는 1948년 10월에, 한국과는 1989년 11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한국은 같은 해 11월 주(駐)폴란드 상주대사관을 개설하였고, 폴란드는 1990년 1월 주한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였다. 이보다 앞서 양국간에는 1988년 무역사무소개설협정, 1989년 교육교류협정·무역협정·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하였다. 통상은 1992년 11월 현재 대한(對韓) 수출이 1억 829만 달러, 수입이 7910만 달러였다. 현재 교민은 없고, 1991년 6월 현재 민간상사 주재원·공무원 등을 비롯 81명의 체류자가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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