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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30 (목)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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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철학 (한메)
철학 哲學 philosophy

자연과 사회, 인간 존재의 보편적 원리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탐구하는 학문 또는 세계.

철학이라는 뜻의 영어 philosophy는 그리스어 philosophia에서 왔는데, philos는 <사랑한다, 좋아한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sophia는 지혜라는 뜻이므로 philosophia는 지(知)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愛智)>의 학문을 뜻한다. 이 말을 처음으로 특수하고 제한된 의미로 사용한 사람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들에 따르면 철학은 무엇보다도 사물의 궁극적 원리를 추구하는 이론적·사변적 작업이다.

그러나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철학에 이론적인 과제뿐 아니라 실천적 의의도 부여하였는데, 삶의 지혜, 즉 삶을 올바르게 영위하기 위한 지식이 곧 철학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철학은 자연, 사회, 인간의 사유(思惟) 즉 인식의 보편적 운동과 발전법칙에 관한 학문임과 동시에 인간적 삶의 실천적 가치로서의 의의를 갖는 세계관·인생관이기도 하다.

[철학의 대상]

철학은 BC 7세기 무렵 그리스에서 시작된 학문이지만, 그 시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사상의 변천을 더듬어 보아도, 거기에는 일정한 연구대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즉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주제를 골라 연구하였던 것이다. 우선 고대철학에서 소크라테스 이전 초기 그리스철학의 연구대상은 자연이었다. 그때 자연은 생명을 지니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므로, 현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과는 달랐다.

그 뒤 BC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 이후부터 철학대상은 자연에서 인간으로 바뀌었고, 그 가운데서도 영혼 속의 선(善)을 중심으로 한 윤리적 문제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연을 주제로 한 철학을 부정하고, 자연에 관한 지(知)는 인간과 인생이라는 삶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소크라테스의 뒤를 이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시대에는 인간에게 관심을 돌리는 동시에 자연에 대한 고찰도 이루어져 장대한 철학체계가 수립되었다.

플라톤의 철학은 일반적으로 참된 세계, 즉 이데아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동경이며, 자연철학·도덕·국가·인간의 인식 등을 고찰대상으로 삼았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식의 문제와 영혼·정치·자연과학·논리학·윤리학 등 근본적인 세계관적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다루었다. 고대철학 말기, 이른바 헬레니즘 로마시대 철학에서는 철학대상이 다시 한정되어, 자기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위한 신변의 실천적 문제가 중심이 되었다. 철학의 주제를 자연학·논리학, 그리고 특히 윤리학으로 3분한 스토아학파나 자연해석을 행복(eudaimonia)과 평정(平靜;ataraxia)이라는 윤리적 이상 실현의 필수적인 전제로 간주한 에피쿠로스학파는 이러한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이고 있다.

중세로 접어들면서 철학의 주제는 인간이나 자연이 아닌 신이 되었다. 중세를 지배했던 것은 그리스도교 사상이었으므로 중세철학이 종교적 색채가 짙어지고, 신에 대한 고찰을 중심문제로 삼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근대에 들어와 철학대상은 신에 대한 관념이 차차 물러나는 대신 인간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인간 이성이 자연과학의 진보에 따라 중요성을 띠게 되자, 근대의 철학자들은 자기에 대해 자신을 가지고 인간 자신의 입장에서 새롭게 모든 문제를 고찰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시대풍조에 따라 철학대상은 우선 인간의 인식이 갖는 인식론적 영역의 한계와 의의라는 문제로 귀착되었다. 즉 인간은 과연 무엇을 어떤 범위에서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가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인간의 인식에 있어서 가장 단순하고 절대 확실한 것은 인간의 자의식,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ergosum)>라는 명제를 제출한 R.데카르트를 비롯한 합리론자와, 인간의 인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경험이라는 것이 필요하며, 경험을 초월한 사항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고 정의한 J.로크를 비롯한 영국 경험론자가 출현하여 서로 대립하였다.

이후 I.칸트의 철학은 합리론과 경험론을 통합하려는 것이었는데, 이것 역시 인식의 문제가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문제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세철학의 주요한 과제가 되고 있으며, 19∼20세기에 걸쳐서도 철학의 과제는 모든 과학의 기초를 정립하는 데에 있다고 하는 신칸트학파나, 언어를 분석하여 사람들이 언어의 문법적 형식에 속아 사고(思考)의 오류를 범하는 것을 막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분석철학 등 역시 인식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적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근세철학 중에는 인식의 문제를 주요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주제를 다루려는 철학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G.W.F.헤겔이나 K.마르크스 등의 경우 철학의 중심적 대상은 논리학, 즉 변증법적 방법론과 존재론 및 역사철학이었는데, 이는 칸트, J.G.피히테, F.W.J.셸링 등의 독일관념론으로부터 나와, 다시 그를 부정하고 철학의 대상을 단순히 인간 인식의 문제로부터 벗어나 그 영역을 훨씬 넓힌 새로운 철학적 입장이었다.

헤겔은 인식론적 철학에 대해 <인식하기 이전에 인식하려는 처사는 물에 들어가기 전에 헤엄치기를 배우려는 짓이다>라고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이후 19∼20세기 동안 F.W.니체·H.L.베르그송·W. 딜타이 등의 생(生)의 철학은 비합리적인 삶을 중요시하고 그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과제라 생각하였고, S.A.키에르케고르·K.야스퍼스·J.H.하이데거·J.P.사르트르 등의 실존철학에서는 인간을 절대적으로 타인과 바꿀 수 없는 실존으로 파악,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그 생활방식을 결단해 나가는가에 관한 문제를 철학의 중심과제로서 고찰해 나가려 하였다. 이와 같이 철학사에 나타나는 많은 철학들은 각각 다른 대상을 탐구하였기 때문에 그 중심 대상에는 각기 차이가 있었다.

[철학의 방법]

그러나 이와 같이 대상의 측면에서 철학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들은 한결같이 철학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이상 모두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대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은 그 방법에 있어서도 결코 일정하지가 않다. 그것은 연구대상이 각각의 철학마다 완전히 다르므로 그 대상을 다루는 방법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을 대상으로 삼는 철학과 과학의 기초 정립을 대상으로 삼는 철학은 서로 연구방법이 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철학사의 수많은 철학에는 천차만별의 방법이 있다. 어떤 철학은 연역적 방법으로 체계를 조직하려 했고, 어떤 철학은 반대로 귀납적 방법을 중요시하였다. 또 어떤 철학은 실재하는 참모습은 다만 직관으로만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였다. 그 밖에 칸트의 선험적 방법,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방법, E.후설의 현상학적 방법, 딜타이 등의 해석학적 방법 등 저마다 다른 방법들이 철학의 바른 방법으로 생각되었다. 이처럼 철학의 방법은 그 이론적 내용 및 사상적 체계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철학사에 나타난 여러 철학적 조류들 사이에는 서로 대립하는 방법론적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세계관으로서의 철학과 과학의 관계]

철학은 세계 전체의 모든 사물과 원리에 대해서 그것이 갖고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법칙을 탐구하는 하나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별과학들, 특히 자연과학·사회과학과는 일단 그 대상과 목표가 다르다. 그러나 이 개별과학들과의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은 개별과학들의 구체성·특수성을 자기의 이론적 범주에 통합하여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총체적인 이론·운동법칙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개별과학과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철학의 발달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철학의 발전은 자연과학의 발달과 그 맥을 같이 하면서 과학 발달의 성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교의가 사회의 절대적 지배원리였던 중세로부터 근대적인 합리적 이성주의가 출현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새롭게 진전되어 온 근대적 자연과학의 발명·발견이 초래한 과학적 진보가 그 사상적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 폭과 범위에 있어서 질적으로 점점 더 그 영향력을 넓혀감에 따라 어떻게 보면 철학적 대상영역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즉 과학이 포괄하는 질적·양적 범위의 확대가 철학이 담당하는 영역의 축소를 초래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철학적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과제와 그 의의는 여전히 상실되지 않고 그 고유의 이론적 범주를 견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이 담당하는 연구대상은 각기 고유한 특수영역·특수범주에 국한되는 반면 철학은 포괄적인 원리원칙을 담당하면서 세계의 운동에 관한 법칙적인 사상과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개별과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보편적 일반원리를 제공하는 총체적인 일반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에 있어서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의 이론적 사명은 개별과학의 학문적 성과를 총체적으로 포괄하고 철학적 보편원리를 개별과학의 특수영역에 구체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양자의 상호관련성 아래 유기적으로 과학과의 밀도 있는 결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에는 진보가 있으나 철학에는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확실히 철학에는 다른 학문에서와 같은 뜻의 진보는 없다. 다른 학문은 일정한 대상이 정해져 있고, 따라서 한 학문은 항상 같은 대상을 연구해 나가게 마련이므로 연구하는 동안 차츰차츰 그 대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거나, 이제까지의 지식이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오류가 정정되어 올바른 지식이 늘어 간다. 이렇게 되어 학문은 이제까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점차적으로 진보발달되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철학은 일정한 대상이 없으므로 다른 학문처럼 눈에 띄는 진보 발달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철학은 선택한 대상에 대해 여러 가지로 사색하고 연구해 나간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철학은 전혀 다른 사항을 연구대상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일 이와 같이 연구대상이 달라지면 그때까지의 철학은 근저에서부터 뒤집히며, 철학은 아주 새로운 기반에서 출발해야 한다. 철학은 이렇게 그 이전의 철학을 끊임없이 근저에서 뒤집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에 진보 발달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철학은 그 이전의 철학이 세운 기반 자체를 반성하고, 그 기반을 뒤집어 새로운 기반 위에 새로운 입장의 철학을 구축하는 것이다.

철학사에서 위대한 철학은 모두 새로운 기반을 발견하고, 새로운 입장에서 문제를 탐구해 온 것이다. 항상 근원적인 문제를 다시 추구하여, 그때까지의 철학 기반을 뒤집는 데에 철학의 본질이 존재하며, 이 점이 다른 여러 학문과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 연구는 철학사 연구와 분리시킬 수 없다. 현대철학의 모든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 문제가 지금까지의 철학에 대해 어떠한 반성으로부터 성립되었는지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이란 근원적인 물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그 특징이기 때문에 철학의 진보는 서로 대립하는 여러 이론, 여러 사상 사이의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철학의 여러 부문]

철학이라는 학문은 사람에 따라 연구대상도 다르며 문제시되는 바도 다르므로 철학의 부문 역시 사람에 따라 당연히 달라진다. 따라서 철학이 어떠한 부문을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일정한 견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 이외의 다른 학문에서는 그 학문이 어떠한 부문으로 나누어져야 한다는 데 대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철학의 특수한 성격이 발견된다. 그러나 현대철학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⑴ 제 1 부문:사고의 규칙이나 인식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며, 논리학이나 인식론이 포함된다. 헤겔과 같이 인식론을 인정하지 않는 철학자도 있으나, 우리가 어떤 사상(事象)을 인식할 경우, 우선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 또 진리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등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제 1 부문은 철학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인식론 영역은 근대 데카르트 이후 칸트에 이르기까지 중세철학의 종교적 단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 이성의 이론을 추구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부문이다.

⑵ 제 2 부문:존재하는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부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형이상학 내지 존재론이라 일컬어지는 것으로서, 이는 개개 존재사상에 대해 그것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성질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존재한다고 언급되는 사상에 대해 그것이 존재한다고 일컫는 연유를 고찰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현대에서는 부정되는 경우가 많으나 이러한 시도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특히 헤겔과 마르크스는 형이상학적인 논리학과는 대조적인 이론체계를 수립하였으면서도 존재론적인 변증법적 논리학을 전개하였다. 이 밖에 역사·인간·사회 등에 대해 그 근원적인 본질을 탐구하려는 역사철학, 철학적 인간학, 사회철학 등이 있다.

① 역사철학은 인간사회의 역사에 대한 철학적 이론 및 역사과학의 과제와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통틀어 일컫는 철학부문이다. 고대에도 역사철학은 신의 섭리나 운명과 같은 생각에 맞서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는 주장으로 존재하였으나, 진정한 의미의 역사철학적 문제의식은 초기 부르주아지의 계몽사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고전적인 부르주아 역사철학의 가장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는 M.J.A.콩도르세·G.E.레싱·I.칸트·J.G.헤르더·J.G.피히테·헤겔 등에게서 보듯이 역사의 진보가 필연적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② 철학적 인간학의 직접적인 선구자는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이다. 그러나 그 본래적인 출발점을 이루는 인물은 M.셸러이다. 현대철학의 인간학적 전향은 철학을 인간 현존재(Dasein)의 문제, 즉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③ 사회철학은 T.홉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어 사회에 관한 유물론적인 근본학설을 의미하였고 19세기에 들어 I.A.콩트의 영향을 받은 J.S.밀에 의하여 유물론적인 측면은 없어지고 실증주의적인 사회학이 되었다. 20세기 현대철학에서의 사회철학이란 주로 M.호르크하이머·H.마르쿠제·T.아도르노 등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체계를 뜻하며 영미철학에 대립하는 진보적인 사회이론 및 철학조류로 성립되었다.

⑶ 제 3 부문:가치에 대해 탐구하는 것으로, 윤리학·미학·법철학 등이 있다.

① 윤리학(ethi-ca)은 인간의 도덕의식과 도덕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철학의 한 분야로서 도덕의 일반원리, 본질적 형태, 도덕의 내적인 발전법칙, 그리고 사회생활과 개인생활에서 도덕이 차지하는 원천적인 의미를 탐구한다. 윤리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실천철학으로서 항상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회경제적 관계들에 상응하여 발전해 왔으며, 또한 그 관계로부터 발생하여 다시 그 관계에 반작용하는 하나의 사회적 의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② 미학은 인간의 미적 행위의 다양한 형식·발전조건·구현방식·발전 전망을 탐구하는 이론체계로서, 미적 가치체계는 역사적 이데올로기의 필연적인 한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플라톤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우주, 사회, 신체와 영혼, 국가와 인륜 등 모든 것에서 발견되며, 특히 진리의 직관 속에서 발견된다. 근세에 들어와 J.J.루소·D.디드로는 자연적인 것과 자연스러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자연은 모든 생산적인 미적 행위의 모델로 간주되었다.

중요한 현대미학 이론가 중 한 사람인 G.루카치는 순수미학적인 가치체계를 부정하고 헤겔적인 의미에서 미학과 예술론을 동일시하였다. 그는 미적인 관계를 인간 주체의 감성적 실천으로 파악하지 않고 철저히 의식의 현상, 즉 반영으로 간주한다. 일반적으로 미적 가치체계는 주―객 관계의 역사적 발전수준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객관적 아름다움>의 개념도 그때그때의 역사 발전단계에 따라 특수한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다.

③ 법철학이란 법의 원천·본질·목적에 관해 독자적으로 형성된 자유민주주의적 철학부문이다. 법의 정의와 그 의의를 둘러싸고 수많은 변종과 분파가 있으나, 개략적으로 살펴 볼 때 법철학에 대한 입장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 신학적 법철학 ㉡ 고전적인 인간주의적 법철학(D.에라스무스 이래 G.W.라이프니츠·홉스·로크 등이 이에 속한다) ㉢ 순수한 규범적 법철학 ㉣ 법교의학에서 생긴 사조 ㉤ 현대 절충주의 등이 그것이다.

한편 법철학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법철학자로 R.예링과 헤겔이 있는데, 《권리를 위한 투쟁(1872)》을 통해 전개된 예링의 이론은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고 공고히 하는 데 있어서 법이 갖는 의의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한 법철학 영역에서 <존재하는 것>만을 인정했던 헤겔은 국가를 법으로부터 철학적으로 분리시켜, <법학은 개념과 관계하며, 법철학은 이념과 관계한다>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철학의 역사]

<고대>

철학은 일반적으로 BC600년 무렵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시대부터 4·5세기 고대사 끝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을 보통 고대철학이라 한다. 고대철학은 3기로 나누어진다.

⑴ 창시기의 철학

BC 6세기부터 BC 5세기 중엽 무렵까지로, 이 시기의 철학은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자연 속에 있는 변하지 않는 원질(原質;arche)을 탐구하였다. 여기에는 그리스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창시자로서 원질을 물로 생각하여 세계를 더 이상 신화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철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한 최초의 철학자인 탈레스, 원질을 아페이론(apeiron), 즉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것으로 보아 유물론적 경향을 보인 물활론자(物活論者) 아낙시만드로스, 공기라고 생각한 아낙시메네스 등의 자연철학자들이 있었다.

이 시기에 특히 주목할 만한 사상적·철학적 대립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사이의 세계관의 차이였다. 즉 파르메니데스가 불생불멸로 <있는 것> 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반면, 원질을 불이라고 규정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영원한 생성 과정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에 입각하여 세계를 설명하는 최초의 포괄적인 체계를 세웠다.

⑵ 아테나이기(아테네)의 철학

BC5세기 후반이 되자 철학은 새로운 전환을 보였다. 즉 이제까지 철학이 자연을 대상으로 삼고 있었던 데 대해 이제는 인간을 그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프로타고라스나 고르기아스 등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이 새로운 전환의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객관적 해답은 내놓을 수 없다는 상대주의 입장에 머물러 있었다.

이에 대해 인간의 문제를 진지하게 추구함으로써, 인간 영혼의 선(善)이란 무엇인가라는 사항을 철학의 주제로 삼은 이는 소크라테스였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아폴론신전에 새겨져 있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을 자신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삼았다. 한편 그의 제자 플라톤은 스승의 뒤를 이어 이데아를 진정한 존재, 존재자의 본질이라 하여 이를 존재론적 기초로 삼고 <이데아론>에 도달했는데 이 이론은 그 이후의 모든 관념론 철학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주의와 결별한 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철저하게 비판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다양한 사유형식과 사회형식, 자연형식과 함께 가치형식을 최초로 분석한 위대한 탐구자로 불린다. 이 아테나이기는 고대철학의 최성기였다.

⑶ 헬레니즘 로마시대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뒤부터 고대 말기까지로 아테나이기 철학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아졌고, 오로지 개인의 안심입명을 구하는 문제를 탐구하게 되었다. 키프로스의 제논이 창시한 금욕주의의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가 창시한 쾌락주의적 에피쿠로스학파, 모든 인식을 단념해야 한다고 주장한 피론의 회의학파 등은 모두 인간 자신의 자력으로 안심입명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 점차로 종교적 경향이 짙어져 인간 이상의 초월적인 신에 의해 구원을 찾아내려 하게 되었다. 피론의 철학이나 플로티노스를 시조로 하는 신플라톤학파의 철학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중세>

중세철학은 물론 그리스도교를 기조로 하여 성립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처음에는 가혹한 박해를 받았으나, 점차 이교(異敎)를 극복하고 로마인 사이로 퍼져, 드디어 392년에 국교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리스도교가 세력을 떨치게 됨에 따라 가톨릭교회 교의(敎義)를 확립할 필요성이 생겼고 그것을 교부(敎父)들이 만들었는데, 교부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은 A.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는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그 깊은 내성에 따라 진실한 그리스도교적 철학을 수립하고, 원죄설에 따른 교의를 완성하였다. 이 교부철학은 시대적으로는 고대사에 속한다.

참된 의미의 중세철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스콜라철학이다. 스콜라철학이란 교회 부속학교 교사들이 강설하는 철학이라는 뜻으로, 그 시기는 대체로 서로마제국의 부흥자 카를대제시대로부터 중세말까지, 즉 9세기에서 15세기 중엽까지이다. 스콜라철학은 보통 초기·중기·후기로 나뉜다.

초기는 9세기부터 13세기 초엽까지이다. 원래 스콜라철학은 교회에서 정한 교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이 교의에 이론적 기초를 세우려고 하였는데, 초기 스콜라철학은 이러한 의도가 수행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였다. 그때의 대표적 인물로는 J.S.에리우게나·안셀무스 등이 있었다. 안셀무스는 <알기 위해 나는 믿는다>라고 말하였는데, 이 말은 지식에 의해 신앙내용의 기초를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을 분명히 나타낸 것이다.

이때의 스콜라철학은 플라톤주의를 기조로 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하여 13세기 무렵의 중기 스콜라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그 대표자는 T.아퀴나스·D.스코투스 등인데, 스콜라철학의 일인자인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을 교회의 정통적 견해와 융합시켜서 큰 체계를 수립하였고, 신앙과 봉건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고대의 과학과 철학 및 교부철학을 공식적인 교리와 통일시켰다.

스코투스는 토마스의 철학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견고한 체계를 세운 스콜라철학자이자 스코투스학파의 창시자이다. 후기는 14세기부터 15세기 전반 무렵이며, 스콜라철학의 쇠퇴기이다. 이 시기의 대표자 W.오컴은 유명론(唯名論)을 완결된 체계로 만든 사람으로, 교회와 국가의 분리,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옹호하였으며 종교개혁의 길을 닦았다.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도기가 필요했는데 이것이 르네상스시기였다. 르네상스기철학은 우선 그리스철학의 부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이 인문주의 또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이다. 중세적 속박을 벗어나려 할 때, 이제까지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해석된 그리스철학을 새롭게 평가하여 그 참다운 모습을 재발견하려는 시도가 나타난 것은 획기적이면서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문주의적 운동으로부터 곧 내용적으로도 중세철학의 범위를 벗어난 새로운 철학이 생겨나게 되었다. 르네상스기의 철학은 존엄·자유·자립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과 이성에 바탕을 두었다. 당시의 휴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인문주의적 사상을 봉건사회의 세속적인 교권에 의한 인간 억압과 핍박에 대항하는 이론적 무기로 삼았다.

따라서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단순히 고전적인 고대의 정신적 부흥·재생만은 아니었으며, 동시에 교권의 비호를 받는 스콜라철학의 정신적 전제와 봉건주의에 대항한 신사조의 운동이기도 하였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그 이후 계몽주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독일의 고전적 철학 및 문학의 휴머니즘으로 계승·발전되었다.

또한 근대적 정신을 가져오는 데 덕욱 힘이 되었던 것은 M.루터와 J.칼뱅의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은 봉건질서의 이념적 지주였던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제도 및 특정한 타락상들(이를테면 면죄부 판매)에 대해 대항한 최초의 근대적 사회운동이었다. 이로써 종교개혁의 유산은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끼친 외에 독일의 프로테스탄트지역에 중심을 둔 문학과 철학에서의 고전주의시대를 여는 정신적 토양을 형성하였다.

또 당시 사회사상(社會思想) 방면에서 저명한 인물로는 교황권에 대항하여 국가의 권력을 강조하고, 강대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취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한 N.마키아벨리와, 근대자연법의 선구자 H.그로티우스 등이 있다.

<근대>

이상과 같은 과도기를 거쳐 17세기에 이르러 참다운 근대철학이 성립되었다. 그것은 인간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려는 성격을 띠었다. 근대로의 이행기에 이루어진 놀랄만한 자연과학의 발달과 진보는 중세철학의 해체와 더불어 인간 이성의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의의를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⑴ 합리론과 경험론

근대에 들어와 제일 먼저 생긴 것은 합리론적 철학과 경험론적 철학이다. 합리론적 철학은 주로 유럽대륙에서, 경험론적 철학은 주로 영국에서 발달하였으며, 이들은 17∼18세기를 통해 대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합리론철학의 창시자는 데카르트이다. 데카르트는 인식론적 관념론의 관점에 입각한 합리적 인식을 절대화하였다. 그리하여 데카르트에 있어 가장 단순하고 절대 확실한 것은 인간의 자의식,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편 데카르트의 철학적 관념은 수학의 방법에서 도출된 직관적·연역적 추론이다. 이 추론방식은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논리적 방법의 초보형태이다. 철학사에서 이와 같은 데카르트의 학설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은 B.스피노자이며, 데카르트의 인식론이 지닌 주관적 관념론의 원칙은 G.버클리에서 라이프니츠와 C.볼프에 이르기까지 관념론의 발전과정에서 일종의 모법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칸트와 피히테의 경우 자아가 이론철학 및 실천철학의 결정적인 범주로 되었으며, 헤겔철학의 합리주의적 원리나 셸링 및 L.A.포이어바흐의 인간학적 경향도 데카르트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합리론은 인식 과정 가운데 이상적인 단계를 절대화하며, 사유(이성)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인식론적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경험론철학은 인간의 인식에서 경험이 맡은 역할을 중요시한다. 이 점에서 경험론은 합리론과 완전히 대립되는 것이다. 바로 경험론에 따르면 인간의 인식이 경험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이상 합리론과 같이 경험을 무시하고 이성적 인식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론철학도 인간의 경험에 의해 확인되는 것만을 인정하려는 점에서 합리론과는 다른 의미로 역시 인간의 입장을 중시하는 근대정신을 표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험론철학의 선구는 F.베이컨이다. 베이컨은 인간에 의한 자연의 합리적 지배를 목표로 삼은 영국 유물론 및 모든 근대실험과학의 진정한 시조(始祖)로 평가된다.

그는 감각적 경험을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합리론철학자들과는 달리 귀납적인 방법을 통하여 보다 일반적인 원리들로 상승하는 연구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베이컨의 경험론적 이론을 체계화한 인물은 홉스였다. 홉스는 데카르트가 주장한 본유관념(本有觀念)을 거부하고, 감각적 지각을 모든 지식이 비롯되는 관념들의 원천으로 보았다. 또한 그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인간관에 입각하여 소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이론을 전개하였다.

한편 로크는 인간 오성(悟性) 근원에 대한 연구를 통해 베이컨과 홉스의 원리에 이론적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로크의 유물론적 감각론에 의한 인식론과 그의 역사철학적 입장은 프랑스와 기타 유럽의 계몽주의철학 형성에 진보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T.제퍼슨 등 미국독립전쟁의 사상적 지도자들도 이러한 로크의 견해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영국 명예혁명 이래 18세기의 관념론적 경험주의 사상가였던 D.흄은 자유주의 및 공리주의 정신에 따라 전통 형이상학에 반대하고 상식의 철학을 내세웠다. 흄의 경험론철학에 의하면 사유는 2차적 의미만을 가지며, 감각과 경험이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소재를 결합, 변화, 증가 내지 축소하는 능력만을 갖는다고 한다. 따라서 흄의 철학은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관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주장에서 나타나듯이 영국 경험론의 최종적인 단계에서의 회의론적 특성을 갖는다.

<칸트의 비판철학>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을 초월하려고 하였다. 그는 인식은 경험 없이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경험론을 인정하였으나, 경험론으로 일관하기에는 너무나도 강한 형이상학적 요구들이 있으므로 그 점에서는 합리론철학에 공감하였다. 칸트에 따르면 학문적 인식은 오로지 감성적 직관과 개념적 인식의 통일로써만 가능하다.

인식에는 경험이 필요하며 우리는 경험적 세계를 인식할 수 있을 뿐이지만, 경험적 세계는 우리의 주관 속에 있는 선천적 인식형식(공간과 시간이라는 직관형식과 범주라는 오성의 선천적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우리의 인식은 결코 사물 그 자체의 모습인 물자체(物自體)의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상의 세계를 인식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식의 대상은 현상계에 한정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물자체 세계의 존재 여지가 남는 것이며, 여기에서 형이상학이 성립하게 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칸트는 도덕적 실천의 입장에서 이 형이상학을 수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인식능력 그 자체를 비판함으로써 그 속에 선천적 형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철학의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그런 연유로 칸트는 자신의 철학을 비판철학이라고 이름지었던 것이다. 칸트가 기초를 세운 선험적 관념론은 피히테와 헤겔을 비롯하여 이후 현대철학에 지속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독일관념론>

칸트의 철학을 계승하여 독일에서는 독일관념론이라는 일련의 철학이 성립되었다. 피히테·셸링·헤겔 등의 철학이 그것이다. 피히테는 칸트철학으로부터 출발하면서 칸트의 현상계와 물자체계(物自體界)라는 이원론적 입장을 초월하여 <절대적 자아>라는 것을 생각함으로써 통일적인 체계를 세우려 하였고, 셸링은 피히테의 철학에서 출발하면서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라는 개념을 초월, 모든 사상(事象)의 근저에 있는 <자기동일적(自己同一的)인 절대자>라는 개념에 도달하였으며 또한 헤겔은 셸링철학으로부터 시작하여 절대자를 단지 자기동일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자기를 실현해 나가는 이념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 중에서 헤겔의 철학이론은 객관적 관념론이라 불린다. 헤겔은 당시 칸트와 피히테의 철학에서 제시된 주관적 관념론을 객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비판하였다. 변증법 인식에 의거하여 헤겔은 개별자와 일반자, 필연과 우연, 유한자와 무한자, 본질과 현상 등과 같은 상관개념들을 경직되게 무매개적으로 대립시키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극복하여, 개념의 자기운동에 대한 인식과 대립물의 통일과 침투에 대한 인식을 자신의 변증법의 근본법칙으로 정식화하였다.

인식론·자연철학·역사철학·종교문제·도덕관·미학 그리고 철학사의 발전 등 모든 철학적 문제에 대해 헤겔은 진보적이고 이성적인 변증법적 방법론으로 일관하여 그것을 체계화하였다. 헤겔철학은 B.바우어·포이어바흐 등의 청년헤겔학파에 의해 계승되었고 이후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비판적으로 수용되었다.

[현대철학의 여러 조류]

현대철학은 크게 보아 헤겔을 분수령으로 하여 그 이후 여러 철학사조들의 출현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통설로 되어 있다. 헤겔이 죽고 청년헤겔 좌파가 출현하였는데, 특히 그 중에서 포이어바흐는 이념중심의 헤겔체계를 뒤집어 인간을 중심주제로 삼는 인간학적 유물론을 제창하였다.

또한 젊은 시절 청년헤겔 좌파의 일원이었던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사상, 즉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혁명적 철학을 수립하였다. 한편 헤겔의 절대이성주의에 반대하면서 비합리주의적 주관주의를 내세운 철학자로는 A.쇼펜하우어와 키에르케고르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과 사회를 철저하게 염세주의적으로 해석하였고, 이러한 그의 철학사상은 이후 R.바그너·E.하르트만·니체 등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 또 키에르케고르의 경우 그의 초창기 연구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헤겔의 철학이었지만, 후기의 키에르케고르는 합리주의적인 헤겔체계의 형이상학적 이론을 비판하면서, 그 자신 철학의 중심개념으로서 실존, 주체적 진리 등을 내세워 실존철학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어 니체는 철학의 중심 범주로서 삶(生;Leben)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당시까지의 최고의 도덕적·종교적 가치를 무효화하는 <신은 죽었다>는 말로 허무주의의 도래를 선언하였다. 한편 K.W.훔볼트와 F.E.슐라이어마허로부터 시작된 해석학(解析學;Hermeneutik)은 정신과학의 새로운 방법론으로서 이후 생의 철학과 실존주의에 그 방법론이 도입되었다.

특히 역사 속에서의 인간의 자기이해라는 해석학의 현대적 특징은 이미 딜타이가 제기한 바 있다. 딜타이의 철학에서 삶이라는 개념은 항상 역사적인 인간의 삶과 관련하여 중심적 범주로 여겨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새롭게 등장한 실존철학은 야스퍼스·하이데거·사르트르·G.마르셀 등으로 대표된다.

야스퍼스는 실존주의철학의 창시자라 불리며 하이데거의 철학은 존재의 철학이라 일컬어지는데, 하이데거는 인간적 현존재에 관한 물음에 새로운 초석을 놓고자 하였다. 한편 사르트르는 극단적인 주관주의 및 비합리주의적 개인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실존주의의 대표자로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후설로 대표되는 현상학이론은 M.메를로퐁티의 철학을 매개로 하여 현대의 구조주의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베르그송은 우주의 운동법칙과 변화법칙을 <생>이라는 개념에서 도출하는 존재론을 전개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철학체계를 생의 철학이라 한다. 생의 철학은 비합리주의를 내세우며 과학적 인식 대신 직관을 중요시한다.

다음으로 영미 계통에서 발달한 현대철학들은 대체로 실증주의·실용주의·논리실증주의·분석철학 등인데, 우선 실증주의는 L.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사조로서, 이들은 현대의 철학 과제가 더 이상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법칙성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개별과학의 개념 형성물들에 대해 논리적 분석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용주의, 즉 프래그머티즘철학 역시 실증주의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에 대해 실증주의와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실용주의의 핵심은 진리의 기준이 객관적 실재와의 일치 여부가 아니라 유용성·효용·결과라는 데에 있다. 논리실증주의 역시 실증주의의 현대적 현상형태라 볼 수 있으며, 이 철학사조는 개념적 엄밀함, 사변 및 신비주의에 대한 비판, 경솔한 가설 설정의 금지 등을 내세우고 있다.

분석철학 또한 실증주의의 한 현상형식으로서, 이에 따르면 철학의 과제는 전통철학적인 문제들의 내용을 오로지 언어분석적인 방식으로 명료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영미철학의 여러 조류에 반대하여 질적으로 다른 철학사상을 수립한 유파로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이 있다.

1960년대에 출현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마르쿠제·J.하버마스 등의 철학자들을 포함한다. 신(新)마르크스주의로 특징지어지는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비판이론으로 변형하고자 하였다. 이 학파의 급진적 사상은 60년대 후반의 미국·유럽 학생운동에 커다란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이론의 핵심은 헤겔·마르크스로부터 계승된 부정(否定)의 변증법이라는 개념체계이다. 현대철학은 이처럼 다양하고 개성있게 발달되어 있어, 앞으로의 철학적 과제는 개별 철학사조들간의 상호교류와 이론적 통합성이 얼마만큼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철학사상]

서양철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19세기 말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철학과 종교가 엄격히 구분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으므로 한국철학에 대한 고찰은 종교사상의 흐름을 좇을 수 밖에 없다. 한국사상 가운데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은 무속신앙(巫俗信仰)이며, 이는 한민족의 생활 속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므로 고유한 독자성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다. 이러한 무속신앙의 터전 위에 BC 4세기 무렵에는 유교, 2세기 말에는 도교, 4세기 초에는 불교가 각각 중국을 거쳐 유입되었다. 이 외래사상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한국적 풍토에 맞게 변용·발전되어 문화와 역사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무속신앙>

한국의 무속신앙은 시베리아 일대의 샤머니즘과 맥을 같이 하지만, 독자적 특성을 지니면서 한민족의 신화적(神話的) 사유와 원초적 잠재의식을 형성하였다. <단군신화> <고주몽신화> <박혁거세신화> <석탈해신화> <김알지신화> <김수로왕신화> 등 문자화된 신화를 통해 보듯이 고대 무속신앙은 당시 사회의 종교일 뿐 아니라 일종의 통치원리였고, 특히 무당은 신적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여겨졌다.

다신론적 성향, 토템사상 및 애니미즘적 사고를 그 사상적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고대 무속신앙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외래종교와 접합·동화하여 많은 변형이 있었으나, 아직도 민간에 상당 부분 존속하고 있고, 또한 시조신앙(始祖信仰)과 연결되어 민족적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커다란 구실을 하여 왔다.

<유교사상>

BC 4∼BC 3세기에 유교가 전래된 이래 한동안의 이해와 적응기를 거쳐 1세기로 접어들면서 고구려에서 《유기(留記)》라는 사서가 편찬되고, 4세기 후반 태학(太學)이 설치되는 등 적극적인 수용 자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4∼5세기 무렵 부족연맹적 국가형태의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은 왕권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는 데 있어서 유교의 주요 덕목인 충효사상을 절실히 필요로 하였고, 6세기 이후 유교적 정치이념과 민본(民本)·위민(爲民)사상이 정착되었다.

고려 건국 후 유교는 관료제를 뒷받침해주면서 중세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였고, 최승로(崔承老)·김심언(金審言) 등의 유학자들은 군도(君道)·신술(臣術)·이도(吏道)의 실현에 힘썼다. 통치의 기술 및 관리로서의 출세 도구로 간주되어 높은 수준으로 연구·발전되었던 11∼12세기의 유교는 12세기 후반부터 관료적인 한계와 폐단을 드러냄으로써 더 이상 강력한 사회사상으로서의 구실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13세기 말엽 중국의 주희(朱熹)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이 전해져, 이후 조선의 건국과 함께 통치원리로 채택되었다.

성리학은 조선이 멸망한 20세기 초까지 도교·불교·무속신앙을 배격하면서 그 자체의 기본적 논리를 실현시키려 하였는데, 특히 15∼16세기에는 성리학적 이상주의에 철저한 사림파(士林派)가 대거 관리로 등용되어 성리학의 사회사상적 기능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다. 이와 함께 이황(李滉)·이이(李珥) 등의 대유(大儒)에 의해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같은 인성연구(人性硏究)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인성의 연구란 사단(사람의 본성인 仁·義·禮·智에서 우러나는 惻隱·羞惡·辭讓·是非의 4가지 마음씨)과 칠정(喜·怒·哀·樂·愛·惡·欲 등 사람의 7가지 감정)을 각각 <이(理)의 발(發)> <기(氣)의 발>, 또는 더 복잡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이황은 8년에 걸친 기대승(奇大升)과의 논쟁을 통해 연구를 심화시켰는데, 이 문제는 이후 약 2세기 동안 계속 논의의 초점이 되어 한국 성리학의 수준을 높였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둘러싸고 학설의 대립이 지속됨으로써 퇴계학파·율곡학파 또는 주리파(主理派)·주기파(主氣派) 등의 학파가 본격적으로 성립되었다. 그 뒤 17∼18세기 성리학자들의 예(禮)를 절대시하는 형식주의를 비판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이용후생(利用厚生)을 추구하는 실학(實學)이 대두하였다. 이수광·유형원(柳馨遠)·박지원(朴趾源)·정약용(丁若鏞)·이익으로 대표되는 실학파 학자들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공리론(空理論)을 반박하면서 실생활의 유익을 목표로 정치·경제·언어·지리·천문·금석 등 다방면에 걸쳐 연구활동을 하였다. 이후 조선 말기의 성리학은 척외·수구를 통한 주권수호의 방향으로 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불교사상>

4세기 무렵 유입된 불교는 왕실종교로 출발하여 왕권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나, 그보다는 불교적 윤리관과 종교적 세계관 형성에 더 많은 공헌을 하였다. 6∼7세기 백제에서는 겸익(謙益) 등의 노력으로 율종(律宗) 연구가 왕성하였으며, 신라에서는 원광(圓光)·자장(慈藏)이 점찰보(占察寶)·세속오계·포살의식(布薩儀式) 등으로 불교적 도덕 실천을 고취하였다. 또한 원효(元曉) 등은 아미타불 중심의 정토신앙(淨土信仰)을 크게 일으켜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대승불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7세기 원효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는데, 그의 <일심설(一心說)>과 <화쟁론(和諍論)>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뚜렷이 나타나 있으며 불교 내의 모든 이론들을 유기적으로 종합하려는 시도였다. 이런 통합적 방법론의 태도는 이후의 불교사상가들에게도 계승되어 한국 불교의 특징이 되었다. 11세기 의천(義天)과 12세기 후반 지눌(知訥)의 <선교합일(禪敎合一)>사상이라든지, 14∼15세기의 기화(己和)와 16세기의 휴정(休靜)의 <삼교유사론(三敎類似論)> 또는 <삼교회통론(三敎會通論)> 등의 그 예이다.

한국불교의 또 다른 특징은 호국불교로서의 성격을 띰으로써 민족국가 유지와 민족문화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이는 불교 본래의 무국적적 보편성향과는 관계없이 한국불교가 민족사상의 형성·발전에 일정한 몫을 하여 왔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불교가 한국 전통사상으로서 간주되어 높이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교사상>

도교가 언제 한국에 도입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대체로 2세기 말 무렵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가(道家)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은 신라의 태학에서 교과목의 하나로 채택되었고 그 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식인의 교양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이 사상은 조선시대의 몇몇 유학자들에 의해 매우 깊이 연구되면서 비판적으로 수용되기도 하였는데, 이이의 《순언(醇言)》, 박세당(朴世堂)의 《도덕경주해(道德經註解)》 《남화경주해(南華經註解)》, 한원진(韓元震)의 《장자변해(莊子辨解)》,서명응(徐命膺)의 《도덕경지귀(道德經指歸)》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밖에 휴정의 《도가귀감(道家龜鑑)》은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도교와의 일치점을 찾아본 노장연구서이다. 도교의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현세적 성향이나 산천·일월성신 등의 자연신을 숭상하는 점에서는 무속신앙과 유사한 측면이 많아 예로부터 서로 동화·화합하였고, 민간에서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풍수도참사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도교 신앙은 고려시대에 가장 왕성하여 도로·관청건물·사찰·가옥·묘지, 그리고 관복·승복에 이르기까지 풍수서인 《해동비록》에 의해 규정되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유행한 《정감록(鄭鑑錄)》 신앙 역시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서의 왕조 변전(變轉)에 대한 주장으로서 풍수설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한편 제도화된 도교의 성립도 이루어져 도관(道觀)의 설립과 도교의 제의인 초제(醮祭)는 이미 고구려 때부터 행하여졌으며, 고려시대에는 <천존(天尊)> <태일(太一)> <태을(太乙)>의 신앙이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도교가 성리학에 의해 배척당하면서 피지배층인 민중의 장생과 초복(招福)을 위한 기능을 행사하게 되었던 까닭에 지배층의 사상적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배층의 사대주의·현란함에 비해 도교는 보다 주체적이고 소박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동학사상>

19세기 조선사회는 사회구조의 해체기로서, 홍경래(洪景來)의 난과 진주민란, 삼정(三政)의 문란 등 극도의 혼란상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구세제민(救世濟民)>의 기치 아래 등장한 것이 동학사상이다.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시된 동학은 가톨릭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물인 <서학(西學)>과의 대결을 의도하고 있었다. 즉 동학이라는 명칭 아래 무속신앙·불교·유교·도교 등의 요소를 나름대로 포괄함으로써 동양의 전통적 가치관의 통일을 꾀하고자 하였다.

또한 동학에는 적극적인 현실개혁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현실개혁 의지는 전봉준에 의해 주도된 동학농민운동을 통하여 혁명의 차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동학사상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시천주(侍天主)>사상으로서, 이의 실현을 위해 성(誠)·경(敬)·신(信)의 태도가 강조되고 <인내천(人乃天)>사상과 연결되면서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사상을 형성하게 되었다. 동학사상은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에 이르러 더욱 구체화되어 인간존중정신이 부각되었다. 이와 같이 동학이 만인의 평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근대사회로의 진입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을로 평가된다.

<현대철학의 사조>

한국에서 서구의 철학사상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인식할 수 있게 된 계기는 가톨릭의 전래였다. 그 뒤 18∼19세기 무렵부터 서구철학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하여, 마침내 19세기 말에는 그리스철학을 유학의 관점에서 비판한 《철학고변(哲學攷辨)》 같은 저술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20세기 초부터는 서구사상 연구와 병행하여 최남선(崔南善)·손진태(孫晉泰) 등의 단군신앙과 무속신앙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1950년대에 이상은(李相殷)·박희성(朴希聖)·박종홍(朴鍾鴻)·손명현(孫明鉉) 등은 각각 맹자·생명·부정(否定)·자유의지 등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60년대에 들어와 전후의 분위기를 타고 조가경(曺街京) 등은 실존철학을, 김태길(金泰吉) 등은 미국실용주의철학을 보급하는 데 각각 앞장섰다. 70년대 이후로는 김준섭(金俊燮)·이초식(李初植)·이명현(李明賢) 등이 과학철학을 소개하였고, 김여수(金麗壽)·소흥렬(蘇興烈) 등은 언어철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1960년대 이상은·김경탁(金敬琢)·김용배(金龍培) 등에 의해 동양의 전통철학을 현대적인 방법론 아래 연구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는 1970년대 유승국(柳承國)·김충렬(金忠烈) 등으로 이어졌다. 1950년대의 현상윤(玄相允)·권상로(權相老)에 의한 한국유교와 불교의 정리, 1960년대 이을호(李乙浩)의 다산경학연구(茶山經學硏究), 이기영(李箕永)의 원효연구, 1970년대 윤사순(尹絲淳)·유정동(柳正東)의 퇴계철학연구 등 전통철학 연구들도 오늘날의 한국철학계에서 관심을 쏟을 만한 업적이다. → 중국사상·인도철학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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