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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4 (월) 10:56
분 류 문화사
ㆍ조회: 3224      
[철기] 철기 시대 (원삼국 포함) 개관
철기 시대 (원삼국 포함) 개관

청동기 문화를 배경으로 성립하였던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경 철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청동기는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데 이들 재료를 동시에 확보하지 못하면 만들 수 없는 것임에 반하여 쇠는 철광석에서 추출해 내기만 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금속이다.

따라서 청동기는 국지적인 발달을 보인 반면 철기의 사용은 매우 보편적인 양상을 띤다. 철을 이용하여 단단한 농기구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사용하면서 보편적이고 전반적인 생산력의 향상이 이루어졌다. 또한 쇠로 농기구뿐만 아니라 철제 무기를 만들수 있게 됨에 따라 더 많은 부와 노예를 소유하기 위한 정복 전쟁은 더욱 활발하게 일어났다.

고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수립한 위만 세력은 바로 이러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하였다. 위만 왕조는 발달한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동부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고 중국의 한과 대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청동기 단계에서 시작된 고조선 사회가 철기 단계로 접어들었으나 위만 왕조는 내부적으로 발전된 사회의 통합을 가능케하는 새로운 통치체제의 편성에 실패하면서 한나라에 멸망하게 되었다. 한나라는 위만 조선을 멸망시킨 후 이 지역에 4군을 설치하여 직접 통치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었다. 그들은 한반도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막으면서 이 지역을 중국의 통치권 내에 두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지역의 토착 세력들은 이러한 한나라의 의도에 강력하게 저항하였으며 한사군과 대결하면서 새로운 국가체제를 형성하여 갔다. 이들은 안으로는 철기 문화에 기반하여 지속적인 생산력 발전을 모색하면서 각처에서 일어나는 수장 세력을 편제하여 생산 대중을 통치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해야 했다.

또한 밖으로는 중국의 영향력에서 이탈하는 한편, 다투어 일어나고 있던 다른 주변 민족과 충돌해서 이겨야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안팎의 문제를 극복하면서 한반도의 각 지역에서 국가가 성립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부여, 고구려 한반도 남부의 삼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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