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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4-26 (월) 22:22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415      
[조각] 조각 (한메)
조각 彫刻 sculpture

조형예술의 하나. 소재를 사용하여 3차원 공간에 입체현상을 조형하는 예술형식으로 조소(彫塑)라고도 한다. 회화가 색과 선으로 2차원의 화면에 평면적으로 표현하는 데 비해 조각은 공간 속에 3차원의 입체로 표현하여 시각에 호소하는 예술이다.

[예술에서의 위치와 본질]

조형미술은 본래 조각과 회화에 한정되어 있었으나 현재의 건축·조각·회화·공예는 각각 독립된 예술로서 조형미술이라 한다. 현대미술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각각의 예술 영역은 그 경계에서 상호 교착되어 조각과 회화, 조각과 공예(디자인), 조각과 건축(축조물) 등으로 나타나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조각의 본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현상은 현대조각에 있어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조각의 본질적인 모습은 오히려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상태에서 나타나는데, 하나의 이미지를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조각성 물체로 형상화하는 것이 바로 조각의 근원인 것이다. 입체는 형태·질·양 등에 따라 여러 가지 감각을 수반하지만, 이들이 생명을 가진 다른 새로운 존재로서 인식될 때 비로소 조각이라 할 수 있다.

즉 조각은 모방예술이나, 자연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조각가가 자연에서 받은 느낌을 다른 재료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조각의 재료로는 점토·브론즈(청동)·돌·나무 등이 주로 이용되어 왔으나 현대조각에는 철강·알루미늄·플라스틱·유리 등을 비롯하여 더욱 새로운 감각의 재료가 이용되고 있다.

[조각과 공간]

조각은 공간에 입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 입체감은 시각 이외에도 모든 감각이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서 특징 지어지며 시각을 통하여 촉감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조각이입체로 느껴지는 것은 주위에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조각은 환조괴(丸彫塊)와 환조가 지배하는 틈·구멍 등의 공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조각재료의 등장과 현대적 소재에 대한 표현형식의 변화에 따라 현대조각은 큰 변모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을 가장 크게 특징짓는 것이 공간인식이다. 예컨대 부조는 환조의 처리 방편으로서만 인식되었으나, 현재는 환조와 대등하게 또는 주요소(主要素)로서 적극적으로 구성에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환조는 그 틈이나 구멍, 면과 선으로 둘러싸여 이루어진 공간이 환조를 형성하는 현실의 재료와는 달리 질이나 형태에서 더욱 추상적이고 자유분방한 표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기법과 재료]

조각의 기법은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자연발생하는 것이지만 크게 모델링(modeling)과 카빙(carving)으로 나뉘며, 표현기법상 환조·부조(浮彫)·모빌(mobile)로 나누어진다. 모델링은 점토와 같은 유연한 재료를 붙이면서 만드는 기법으로, 주재료는 점토·납·옻·석고 등이고, 이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주조(鑄造)가 있다. 카빙은 나무·돌과 같은 단단한 재료로부터 형태를 파내는 기법이다. 특수한 재료로 뼈나 상아가 있다.

<점토>

점토로 형태를 만드는 기법을 소조(塑造)라 한다. 소조는 모델링 기법을 특징짓는 가장 일반적인 기법으로, 재료를 구하기 쉬워 예로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다. 점토 작품을 보존하기 위한 처리법에 따라 소상(塑像)·테라코타 등으로 나뉘며, 이와 비슷한 것으로 브론즈주조가 있다.

① 소상:점토를 그대로 건조시켜 굳힌 가장 소박한 기법으로, 건조 때의 균열을 방지하기 위해 식물섬유 등을 연결하여 점토에 혼입한다. ② 테라코타:유약을 바르지 않고 점토를 저온에서 구운 것으로,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드는 것과 점토를 거푸집에 채워넣어 만드는 것이 있다. 뒤의 것은 복수제작이 가능하고 점토를 구울 때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석고거푸집이 쓰인다. ③ 브론즈주조:예로부터 테라코타와 함께 소조작품의 보존을 위해 쓰이는 주요한 처리법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기술적 진보에 따라 브론즈주조가 널리 쓰이자, 제작초에 미리 브론즈주조를 예상하면서 소조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납>

모델링에 사용된 재료로서, 르네상스시대의 주름형조각의 시작(試作)이 현재도 남아 있으며, 고대부터 주조를 만들기 위한 원형 제작에 사용되었다.

<옻>

옻으로 굳힌 건칠(乾漆)은 동양조각의 특징으로서, 예로부터 한국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이 행하여졌다. 점토 위를 옻에 적신 마포로 굳히고 내부의 점토를 빼낸 탈건칠조(脫乾漆造)와, 거칠게 조각한 목조를 심재(心材)로 하여 그 위에 톱밥을 옻칠로 고른 다음 살을 붙이는 목심건칠조(木心乾漆造) 등이 있다.

<목조>

나무 한 개로 만드는 것과 나무토막을 짜맞추어 만드는 것이 있다. 뒤의 것은 내부에 공동(空洞)을 만들어 목재가 쪼개지는 것을 방지하고 목재 본래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등, 목조기법의 발달된 형태이다.

<석조>

석조에 사용되는 돌은 가장 견고한 흑어영석(黑御影石)에서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대리석까지 그 종류가 많다. 대리석은 그리스·로마시대 이래로 유럽조각의 주재료였다.

<부조>

일반적인 입체의 조각을 환조라 하는 데 반하여 평면화된 조각을 부조라 한다. 부조는 조각과 회화의 중간이지만 입체를 감상한다는 점에서 조각에 속하며, 회화적인 단순한 선조(線彫)와 구별된다. 또 높낮이에 따라서 고부조와 저부조로 나뉜다.

부조는 건축장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기능으로 ① 넓은 벽면의 단조로움을 없애는 액세서리로서의 역할 ② 석상(石像)건축벽의 무거운 느낌을 없애주는 창으로서의 역할 ③ 건축적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조각적 효과 등이 있다.

<모빌>

조각은 본래 부동이지만 모빌은 실제로 움직이는 조각이고, 시간의 경과와 함께 입체형태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각의 3차원에 시간이라는 차원을 더한 것이다.

[역사]

조각은 선사시대부터 조형미술의 한 장르로 존재하여 왔으며 그 전개도 매우 다채로웠다. 여기서는 조각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서양의 로마네스크 이후를 개관한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⑴ 로마네스크

10∼12세기의 미술을 말한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도교가 유럽 정신세계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그로 인해 각지에 건립된 성당 내부는 많은 조각으로 장식되었다. 이 당시 조각의 특징은 신비주의나 상징주의로서 강인한 조형적 박력을 보여 준다. 독일의 빌덴스하임대성당의 청동문짝의 부조, 프랑스 베즐레의 상트 아드리누성당 문짝 입구의 반원형 부조 등이 있다.

⑵ 고딕

12세기 북유럽에서 시작하여 13∼15세기에 걸쳐 북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건축 및 조형미술의 일반 양식을 가리킨다. 이 시기는 현실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때로 자연주의적 경향이 싹텄다. 프랑스의 아미앵·샤르트르·랭스 등의 대성당 정면 기둥 위의 예수상·성자상 등이 그 예이다.

<르네상스>

⑴ 15세기 이탈리아 조각

토스카나지방의 중심도시인 피렌체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각지에 파급되었다. 1401년의 피렌체 산 조반니세례당 제2청동문짝의 제작자 L. 기베르티는 원근법·투시법 등을 사용하여 부조를 완성함으로써 명성을 떨쳤다. 도나텔로는 고전정신과 리얼리즘을 융합시킨 르네상스양식의 창시자로 《다비드상》 《수태고지》 《헤로데의 향연》 등의 작품이 있다. 그 밖에 브론즈상에 뛰어난 A.폴라이우올로·A.베록키오·B.첼리니 등이 활약하였다.

⑵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으로 부조 《계단의성모》 《모세》, 피렌체대성당의 《피에타》 《론다니니의 피에타》 등이 있는데, 수많은 인간상(人間像)을 새겨 르네상스조각의 진정한 완성자이며 차기 양식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조각은 내용적으로 진폭이 매우 크며, 조형양식의 변환은 외로운 영혼의 편력의 궤적(軌跡)이었다. 1564년 그가 죽은 뒤 이탈리아르네상스 조각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바로크와 로코코>

⑴ 바로크

16∼17세기 중엽에 걸쳐 전개된 미술의 동적 감각이 넘치는 양식을 의미한다. 북유럽 여러 나라가 르네상스미술을 흡수하여 특유한 미술을 형성하였다. 조각에서 G.L.베르니니는 뛰어난 기교로 유동적이고 화려한 구성과 특유한 몽환적인 형상을 새겼다. 작품은 《성녀 테레지아의 황홀》 《산 피에트로대성당의 주제단> 등이 있다. 바로크시대의 조각 재료는 화려한 색대리석이며 동일작품에 여러 가지 재료를 결합, 사용하였다.

⑵ 로코코

프랑스를 중심으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전개된 양식으로, 곡선을 자유로이 도입, 우아하고 관능적인 서정이 전면에 나타난다. 이 시기의 가장 뛰어난 조각가 J.A.우동은 대표작 《디아나》에서 정돈되고도 우아한 육체를 표현하여 고전적인 것과의 융합을 보여 주었으며 초상조각에도 뛰어났다.

<19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에 대한 반발로 그리스의 헬레니즘시대를 본뜬 고전주의적 풍조가 일어났다. A.카노바·B.토르발센 등은 로마에서 아름다운 대리석조각을 제작하였다. 프랑스에서는 C.자크·A.L.바이 등이 영향을 받아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적 경향이 강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 중 F.뤼드·J.B.카르포는 정력적이고 유동적인 작품으로써 낭만적 내셔널리즘경향을 고취하였다.

한편 뛰어난 동물조각가 A.L.바리는 《뱀과 싸우는 사자》 등과 같이 주제를 맹수에서 구하였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F.A.R.로댕은 뤼드·바리·카르포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특징을 집대성하고 권력이나 건축의 장식물에서 조각을 해방시켜 독립된 예술로 확립시킨 점에서 근대조각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코가 찌부러진 남자》 《청동시대》 《칼레의 시민들》 등에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파악력과 강한 구성력을 보여주었다. 로댕 외에 M.클링거·C.무니에·C.클로델 등이 이 시기에 활약하였다.

<20세기>

⑴ 로댕의 후계자들

20세기 조각은 회화와 함께 눈부시게 변모하였다. 로댕의 후계자들은 결국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데 E.A.부르델·A.마욜·C.데스피오 등은 장식성조각에서 탈피, 면(面) 구성에 의한 보다 사실적인 조각을 구축하려 하였다.

⑵ 각 이즘(主義)의 조각가

20세기 예술동향의 특징 중 하나는 여러 가지 예술적인 주장과 주의가 대두된 것으로 조각가도 이에 크게 기여하였다. 큐비즘을 조각에 적용한 조각가는 L.뒤샹(비용)·H.로랑스·J.리프시츠 등이며, 각각 개성이 뛰어난 반면 인체 등을 순수한 면의 조합에 의해 만드는 경향은 모두 같았다. 또 U.보초니를 중심으로 물체를 면과 선으로 연속하여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구성하는 조각가도 나타났다.

표현주의 조각가로는 마욜 풍의 기법에서 출발하여 극도로 확장된 인체에 특이한 감상을 부여한 W.렘부르크 등이 있다. 다다이즘운동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초현실주의와 관련이 있었던 J.아르프의 조각은 자연물과 관련을 가졌는데 포름(forme) 자체에 생명력이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⑶ 추상조각

추상적인 경향은 20세기 조각의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C.브랑쿠시는 더욱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의 포름을 표현, 20세기 조각의 추상방향을 결정지었다. 그는 순화된 형태에 신비로운 명상을 담은 《새》 등을 연작(連作)하였다.

이에 비해 A.페브스너와 N.가보 형제는 감각과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합성수지판이나 선재(線材)를 사용하여 조립의 엄밀함과 정밀함을 가장 중시하였고, 물체적인 면보다도 공간적인 선을 강조하였다. 모빌을 고안하여 새로운 공간적 의미를 나타내려 한 A.콜더도 현대 추상조각의 지향에서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이 시기에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은 것은 유기적인 반구상 형태에 의하여 인간의 심층을 나타내려 한 아르프·H.무어·A.자코메티와, 서양조각의 전통으로 회귀하여 새로운 감각의 구상을 부활하려 한 이탈리아의 M.마리니·G.만주·E.그레코 등의 소상이다.

1950년대 말부터는 종래의 조각개념을 벗어나 폐품을 압축 고형화한 B.세자르, 인체에서 바로 인형(人形)을 본뜬 G.시갈 등 현대 소비문화를 배경으로 한 팝 아티스트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또 J.팅겔리·N.쇠페르의 키네틱 아트, 물질성을 배제하고 채색하는 미니멀 아트, 물건을 천·비닐로 싸거나 빌딩·거리를 천으로 덮는 크리스트의 랜드 아트, 행위나 비물질적 미디어 등의 도입은 부동의 물체에 의한 형체 표시였던 조각개념을 변화시켰고 조형미술 전반에 걸친 개념의 변혁을 가져왔다.

[한국의 조각]

한국에서 조각이 행하여진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일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에는 뼈조각이 이루어졌는데 대표적 유물로는 울주암벽조각(蔚州岩壁彫刻)이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암벽조각·선돌·목조각 등이 더욱 발전하였다. 조각사상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시기는 불교 수용이 이루어져 불상이 제작되기 시작한 4세기 무렵의 삼국시대였다.

초기 불상은 네모난 대좌 위에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선정인(禪定印) 형상으로, 중국 불상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는 뚝섬에서 출토된 고구려 금동불좌상(金銅佛坐像)이 있다. 6세기 후반의 것으로는 삼존형식(三尊形式)과 반가사유상이 많으며, 중국 북위(北魏) 말기 및 동위시대의 불상양식을 반영하고 있는데, 중국의 것보다 단순하고 투박하다.

삼국시대 말기인 7세기 중엽에는 법의(法衣)·측면·뒷면 등의 묘사가 입체적인데, 보살상에는 중국 수(隋)·당(唐)나라 초기의 불상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한편 불상 외에 사람·동물모양의 토우(土偶)가 신라·가야 고분에서 발굴되었는데, 이는 전문 조각공에 의한 것이 아닌 손으로 빚은 명기(明器), 또는 의기(儀器)로써 사실적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상은 대체로 입상에 여원인(與願印) 및 시무외인의 통인(通印)을 보이는 것과 약함(藥函)을 든 경우가 많다. 보살상은 이전보다 좀더 화려한 날개장식을 하였고, 자연스러우면서 동적인 자세로 변화하였다.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불상은 석굴암의 조상(彫像)들로 그 세련도가 극치에 달하였다.

8세기 말∼9세기 무렵에는 금동상이 줄고 석조상·철불상이 많이 등장하였다. 한편 8세기 중엽부터 당나라의 영향으로, 능묘를 옹호하기 위하여 능묘 앞에 배치하는 능묘조각이 이루어졌는데, 문무석인(文武石人)·석사자·십이지상 등은 9세기 중엽까지 힘찬 모델링, 사실적 묘사 등 기술에 있어서 절정을 이루었으나, 그 뒤로 점차 형식화·평면화하여 통일신라 말기에는 능침제도(陵寢制度)가 해체되었다.

고려 전기에는 지방에 따라 특징있는 불상들이 제작되었는데, 이 가운데는 신라 말기 양식을 계승하고 중국 송(宋)·요(遼)나라 불상 양식을 반영한 듯한 풍만한 조형성을 보이는 것과 민간신앙에 밀착된 토착적인 것이 있다. 후기에는 원(元)나라와의 관계에 의하여 티베트·네팔 계통의 요소도 나타났다.

당시 불상 외에 가면도 제작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풍천면(豊川面) 하회리(河回里)의 하회탈(나무로 만든 탈)이 있다. 이 탈은 모두 표정이 있고 변형과 과장, 굴곡과 비균형이 햇빛 밑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되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능묘조각은 봉분의 둘레돌〔護石〕과 난간이 14세기 중엽부터 정비되면서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는데, 호석에 구름무늬와 인물상이 부조되었으며 석사자·석양(石羊)이 봉분 주위에 1쌍씩 배치되었고 문석인·무석인이 1쌍씩 능 전면에 늘어섰다. 형태면에서 조각 수법이 치졸한 작은 규모의 장승형태가 주종이었으나, 공민왕릉에 이르러 크기가 커지고 표현이 사실적이 되었다.

이러한 입체적인 원주형 석인조각이 조선시대까지 계승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정책으로 불상이 발달하지 못하였고, 대체로 머리가 크고 신체묘사가 형식적인 투박한 조형상이 발달하였다. 그 밖에 산대극(山臺劇)에 쓰이던 가면(탈)이 있는데, 이는 고려 가면처럼 표정이 나타나지는 않으나 각 인물의 성격·신분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능묘조각은 공민왕릉의 능침제도를 따르고 있으나 양·호랑이상이 2쌍씩 봉분주위에 배치되었고, 문무석인 뒤에 석마가 등장하였다.

석인조각은 고려시대풍을 계승하다가 형식화 과정을 거친 뒤 16세기에 이르러 머리가 커지고 하반신이 짧아졌다. 또 목·허리의 표현이 없는 각주형(角柱形)으로 변화하였고, 그 뒤 19세기에 이르러 전체적으로 길어졌으며 표정이 생겨났다.

20세기 초 순종 유릉(裕陵)에 이르러 서양조각의 영향으로 사실적·개성적인 석인조각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밖에 고대로부터 건설되어온 탑에도 다양한 조각물들이 만들어졌다. 한편 개화기 이후 서양문화를 수용, 1920년대부터 합리적·객관적 사실주의 형식의 조각이 정착되자 전통조각들이 위축·단절되기도 하였다.

조각예술 형식을 한국에 정착시킨 선구자는 김복진(金復鎭)이었으며, 그의 작품 《3년전》 《나체습작》은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각각 수상·입선하여 사회적으로 처음 공개된 한국인 조각가의 신미술 조각작품이 되었다. 그 뒤 양희문(梁熙文)·장기남(張基男)·김 두일(金斗一)·문석오(文錫五)·윤효중(尹孝重)·이국전(李國銓) 등이 활동하였고 40년을 전후하여 윤승욱(尹承旭)·김경승(金景承)·조규봉(曺圭奉)·김정수(金丁秀) 등이 조각계의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당시 작품은 사실주의 경향을 띠었고, 주제는 대개 소녀상·소년상·여인상·나부상·초상 등이었으며, 재료는 석고가 대부분이었다.

8·15 이후 서울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홍익대학교에 미술전공 학부가 생기면서 신진조각가가 지속적으로 배출되게 되었다. 1950년대에는 순수창작 외에 모뉴망조각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60년대에 들어 양자가 큰 흐름을 형성하였다. 또한 50년대 후반 미술계의 전반적 흐름에 따라 추상적 조형이 추구되었는데, 김종영(金鍾瑛)은 58년부터 서양의 새로운 조형미학을 수용하여 추상주의 조각을 개척하였고, 59년 권진규(權鎭圭)가 테라코타 소조 작품을 만들었다.

1960년대로 들어서는 금속재가 조각에 이용되었으며 장르개념을 초월한 대담한 실험들이 추진되었다. 이 시기에 문신(文信)·김세중(金世中)·최종태(崔鍾泰)·윤영자(尹英子)·김정숙(金貞淑) 등 참신한 조각가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서동화>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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