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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4-26 (월) 22:51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044      
[조각] 서양조각사 (두산)
서양조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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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

조각의 기원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언어의 기원을 말하는 것처럼 어렵지만 기독교의 구약성서 《창세기》 부분은 조각의 기원 및 창작과정과 관련한 훌륭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즉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직접 노동을 투여하지 않았지만, 인간을 만들면서 흙을 빚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인간의 형상을 완성했다.

그러나 단지 흙을 빚어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었다고 그것을 조각으로 볼 수는 없으며, 하느님이 자신의 피조물인 아담에게 입김을 불어넣음으로써 단지 물질에 불과하던 인간이 생명체로 육화(肉化:incarnation)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헤겔은 이런 점에 주목하여 조각은 물질적 성질을 초월하여 그 속에 인간의 정신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술사적 맥락에서 조각의 기원은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굴벽화가 그려지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암각부조를 보면 동굴 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금을 연결하여 동물의 형상을 조각해놓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조각의 기원은 회화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인간이 바위나 나무에 금을 새기거나 어떤 형태를 쪼아 만드는 것으로까지 소급할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조각 중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로 추정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오늘날의 미적 감각의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수렵, 채집 등의 약탈적이고 기생적인 경제활동으로 생존하던 야만적인 인류가 비로소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출산의 능력이 있는 모성을 숭배하였음을 보여준다.

즉 여성의 인체 중에서 성적 매력을 지닌 많은 부분은 생략되거나 혹은 무시된 반면에 생식과 관련된 부분의 표현이 과장된 것으로 보아 이 조각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맥락에서 제작된 것임에 분명하다.

원시시대의 조각은 대부분이 실용적인 목적으로 부장품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조각도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조각은 개인적 표현보다 건축, 무덤 등의 부속물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형태의 결정과 기념비성이 특히 강조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특징을 이집트조각과 중국 진시황릉의 병마용(兵馬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집트조각은 원칙적으로 ‘죽은 자를 위한 미술’이란 목적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부장조각의 성격을 유지하였으며, 수천년에 걸쳐 정면성과 부동성 등의 동일한 표현양식을 고수했다. 그러나 신왕조시대(BC 1400년경)에 이르러 람세스2세와 네페르티티 여왕의 초상조각에서 볼 수 있듯이 영원불멸하는 관념의 표상으로부터 그 주인공의 성격과 개성적 외모를 엿볼 수 있는 조각도 출현하게 된다.

2. 고전조각

조각이 독립된 장르로 급속하게 발달한 것은 고대 그리스시대이며 특히 페리클레스가 통치하던 BC 5세기를 전후하여 고전조각의 이상미가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 조각은 고전기를 분기점으로 하여 그 전단계를 고졸기(古拙期), 알렉산더가 그리스를 통일한 후 세계정복에 나서면서 그리스문화가 국제적인 양상을 띠던 BC 3세기부터 로마제국이 성립되던 1세기까지를 헬레니즘기 등 세 단계로 나뉜다.

BC 7세기부터 나타나는 고졸기 조각은 대부분이 청년상(Kuros)과 소녀상(Core)으로 이집트조각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한다. 이처럼 그리스는 이집트와 크레타, 미케네 등 주변 해양문화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으나 지정학적인 여건상 독립된 통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었으며 그들 중 지도적인 위치에 있던 도시가 아테네와 스파르타였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여러 신들이 올림푸스산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4년마다 올림피아제전을 벌임으로써 그들의 민족적 유대감을 확인했다. 고졸기 청년상은 이러한 제전에 우승한 선수를 위해 신전에 봉헌했던 것으로서 대부분 아폴로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조각들은 실존하는 인물의 외양보다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구현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졸기로부터 약 200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그리스조각은 혁명적이라 할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고전조각의 백미는 아크로폴리스에 세운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이다. 이 신전의 주인인 아테나 여신상은 그리스 고전조각의 대표적인 조각가인 페이디아스가 제작한 것으로서 목조로 제작되었고 외부를 금은보화로 장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원작은 현존하지 않으며, 단지 로마시대에 대리석으로 복제된 신상을 통해 원형을 추론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신전의 박공(pediment)과 메토프, 프리즈 부분에 세운 조각을 통해 고전조각의 원숙미를 알 수 있다. 페이디아스는 아테나 여신상 뿐만 아니라 제우스 신전에 봉헌한 제우스 신상도 제작했는데, 이 신상은 한 조각가의 창조적 상상력에 대해 알려주며, 작품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고전조각의 이상미가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다.

그리스조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상적인 미의 원리, 즉 조화(harmonia)와 균제(symmetria)는 수학에서 나온 것으로서 특히 피타고라스학파의 기하학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폴리클레이토스(Polycleitos)는 《창을 든 청년》에서 이 비례의 원칙에 따라 인체를 칠등신의 영웅적 형상적 형상으로 표현하였으며, BC 4세기경에 리시포스(Lysippos)는 팔등신의 《아폭시오메노스(Apoxyomenos)》를 통해 영웅적 비례를 자연주의로 발전시켰다.

고전기로부터 헬레니즘기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리시포스를 포함, 프락시텔레스(Praxiteles), 미론(Myron) 등의 뛰어난 조각가들이 많은 조각을 남겼다. 알렉산더 이후의 헬레니즘기는 그리스문화가 국제적인 양상을 보여주는 시기로서 문화의 중심이 아테네 등의 그리스 본토로부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페르가몬 등의 도시로 바뀌었다.

헬레니즘 조각의 특징은 고전조각처럼 제우스, 아폴로 등의 인간과 가까워지기 힘든 신의 형상보다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 니케 등의 인간과 정서를 표현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동세(動勢) 또한 역동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를 《라오콘군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헬레니즘 시기에 이르게 되면 고전조각에서 볼 수 있는 절대적 ·우주적 ·초감각적 질서로서의 균제보다 보다 감각적인 질서를 의미하는 에우리드미아(eurhythmia)와 대비(contraposto) 등이 조형요소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헬레니즘기의 마지막 왕조인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왕조마저 로마에 의해 멸망한 후 많은 그리스 조각가들과 장인들은 로마에 유입되어 로마조각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로마조각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과 달리 매우 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들로서 그리스문화를 그대로 답습했으나 그것을 로마식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사실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리스의 많은 조각들은 청동으로 주조된 것이었는데 로마인들은 이것을 대리석으로 복제했으며, 그리스인들처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에서 조각을 제작했다기보다 장식이나 권력, 부, 교양의 과시란 차원에서 조각을 소유했다. 로마인들의 세속적인 취향을 잘 반영한 것이 초상조각으로서 이제 비로소 로마제국의 황제나 귀족이 어떤 용모를 지닌 존재였던가를 파악할 수 있는 사실[岵隔]실물에 충실한 조각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로마조각을 통해 아그리파나, 카이사르, 부르투스, 티투스, 카리큘라 등의 로마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마치 증명사진 보듯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로마인들의 현실적인 감각을 반영한 또 하나의 사례인 《티베리우스의 개선문》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건축에 부속된 기념부조와 각종 주화(鑄貨)에 새겨진 조각상을 통해 그들의 매우 실용적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로마로부터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고, 기독교를 승인함에 따라 고전조각의 위대한 전통은 단절된다. 초기 기독교 미술과 중세의 경우 조각상을 포함, 모든 조형예술을 우상숭배란 맥락에서 배격했기 때문에 매우 국한된 범위에서 종교적 시사점이나 상징적 표현만이 가능했다.

8세기 이후 중세 암흑기로부터 벗어난 유럽에 새로운 문예부흥적 문화가 태동하면서 예술활동이 훨씬 활발해지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이 시기는 길드(조합)에 소속된 장인들이 교회나 영주의 주문을 받아 물건을 제작하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실용적인 맥락의 조각이 많이 나타났다. 중세의 독자적인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는 로마네스크와 고딕시대에도 조각은 철저하게 건축에 종속된 상태였으며, 선지자나 사도(使徒) 등의 조각상들이 건축물에 매달려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4. 르네상스조각

조토(Giotto di Bondone)의 등장 이후로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피렌체와 같은 도시를 중심으로 문예부흥운동이 전개되며 당대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과거와 구별하기 위해 ‘르네상스’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학문과 예술의 재생을 표방한 피렌체의 젊은 예술가들을 이끈 인물은 건축가 브루넬레스코(Fillippo Brunellesco:1377~1446)였으며, 그 일파 중의 한 사람으로서 르네상스 조각의 위상을 확고하게 구축한 조각가가 도나텔로(Donatello:1386?~1466)이다. 그는 현관 양쪽에 조용하게 열을 지어 매달려 있는 고딕 조각상들의 엄숙한 분위기로부터 조각이 비로소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즉 건축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예술의 영역이자 활력 넘치는 것으로 만들었다.

도나텔로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움의 혁신에 비해 여전히 고딕적 표현에 더 가깝지만 회화에서의 원근법을 3차원적 입체와 효과적으로 결합시킨 부조작품을 제작한 조각가로서 도나텔로와 같은 세대인 기베르티(Gorenzo Ghiberti:1378~1455)가 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이었던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1435~88)는 일찌감치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회화작업을 포기하였으며 그 후 조각작업에만 전념하였으나 그 역시 르네상스 조각의 거장으로 손색이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르네상스 조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이며, 그의 조각은 재료의 물질적 속성을 초월하여 그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탁으로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완성한 후 미켈란젤로는 곧장 《죽어가는 노예》를 제작했으며, 그 작품은 죽음 앞에 체념하고 있는 한 청년의 격렬한 동세를 확고하고 단순하며 안정된 형태로 표현하였다.

일반적으로 미켈란젤로는 ‘미완성’(non-finito)의 아름다움을 개척한 조각가로 평가받는데, 몇몇 작품이 비록 미완성인 채로 남겨져 있으나 마치 돌덩어리 속에서 생명체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과 같은 심리적 긴장은 후에 나타나는 매너리즘 조각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켈란젤로 이후 전성기 르네상스의 호사스러운 민족취향을 반영한 것이 첼리니(Benvenuto Cellini:1500~71)가 프랑수아 1세를 위해 제작한 《황금의 소금상자》로 이 뛰어난 세공품이 르네상스 조각의 활력과 이상미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16세기 매너리즘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의 유럽인들이 지니고 있던 미적 취향을 반영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16세기의 매너리즘적 징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조각가가 볼로냐(Giovanni da Bologna:1529~1608)로서 그의 조각은 파르미자니노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기존의 규범에 대한 도전에서 획득된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어 주목된다.

5. 바로크 이후

바로크, 로코코 시대로 분류되는 17,18세기는 회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카라바조, 푸생, 벨라스케스, 루벤스, 렘브란트, 베르메르 등과 같은 바로크 거장들에 필적할 만한 조각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바로크 조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각가가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1598~1680)이며 그의 《성 테레사의 환상》은 마치 무대장치와도 같은 공간구성과 인물의 표정 및 동요하는 옷주름의 처리를 통해 종교적 황홀경을 극적으로 고양시킨다.

바로크 이후 나타나는 조각은 대체로 궁정을 장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며 장식이 앞서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단지 우동(Jean A.Houdon:1741~1828)이 새롭게 대두한 신고전적 풍미를 보여주며, 신고전적 태도는 19세기에 카노바(Antonio Canova)에게 계승되며 프랑스혁명 후, 뤼드(Fran탊is Rude:1784~1855)와 카르포(Jean Baptiste Carpaux:1827~1875) 등에 의해 신고전주의 조각이 낭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6. 현대조각

현대조각은 오귀스트 로댕(August Rodin:1840~1917)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왜냐하면 그는 조각의 독립성을 최초로 각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로댕 이후로 조각에 대한 새로운 태도, 즉 조각은 ‘입체의 공간차지’라는 개념과, 조각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시각은 물론 양감과 중량감까지 동원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립될 수 있었다. 또한 흙이란 물질을 단지 물리적 재료로서가 아니라 풍부한 표현가능성을 지닌 매체로 파악하는 근대적 개념이 형성되었다.

현대조각에서 로댕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은 특정 주제나 기능으로부터의 독립, 내적 생명성, 작품 그 자체의 결과로서 재료와 구조, 중력과의 관계 등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로써 조각은 신전과 광장을 떠나 독립된 공간 속에 자족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로댕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근대 시민사회의 미의식과 그 형식이며, 로댕의 뒤를 이은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1861~1929)은 로댕의 감성적 양식을 신고전주의로, 마욜(Aristide Maillol:1861~1944)은 감각적인 인체조각으로 확산시켰다.

현대조각이 나타나던 시기에는 조각가가 아니라 화가에 의해 조각의 층위가 두터워지는 양상을 보여주는데 그 대표적인 미술가로 도미에(Honore Daumier:1808~79), 드가(Edgar Degas:1834~1917),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조각의 출발은 조각의 출현 아래 조각을 지배해 왔던 자연주의적 규범, 즉 재현과 모방의 전통으로부터의 단절로부터 비롯한다.

루마니아 출생의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1876~1957)는 재현의 전통을 완전히 포기하고 유기적인 추상으로부터 순수기하학적인 추상조각의 세계를 개척하였으며, 러시아혁명기의 구성주의 또한 비구상적 형태의 구조적 순수성을 보여준다.

예술적 혁명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20세기 초, 중반의 수많은 조각가들, 이를테면 ‘강철시대’의 미학을 실천한 A.G.에펠 이후 새로운 매체로 각광받기 시작한 철강을 이용하여 철조를 개척한 곤잘레스(Julio Gonzalez:1890~1967)와 그 뒤를 이은 스미스(David Smith:1906~65), 긴장된 공간감과 동세를 표현한 마리니(Mario Marini:1901~1980), 양감과 볼륨을 배제한 깡마른 인체의 골격을 통해 실존주의 조각의 지평을 열고 있는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1901~66), 모빌과 스태빌의 영역을 개척한 칼더(Alexander Calder:1898~1976), 그리고 무어(Henri Moore:1898~1986) 등은 다같이 3차원적 입체 속에 현대성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조각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에 의한 ‘오브제’작업이 출현하면서부터 전통적인 장르 개념으로서의 조각은 도전받기에 이른다. 그의 기성품(ready-made)은 ‘만든다’는 행위의 신비를 ‘선택한다’는 것으로 바꿔놓았으며, 뒤샹 이후 손의 기술과 노동의 시간이란 조각 제작과정의 물리적 조건과 그 전제 또한 변화하게 되며, 특히 첨단 기술공학의 발달에 따라 ‘테크놀로지 아트’가 등장하면서 조각 개념의 위기는 더욱 고조되기에 이른다.

7. 그 밖의 지역

유럽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조각은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종교의식을 반영하는 신상이나 불상, 우상(偶像) 등이 우세하게 나타나며, 특히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의 조각은 원시미술의 전통을 비교적 풍부하게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 보다 많이 결합된 조상들을 보여준다.

BC 3000년경에 제작된 이집트 가자지역의 거대한 스핑크스는 BC 1400년대의 투탕카멘의 황금가면과 더불어 이집트 조각의 위대성을 나타낸다.

아시아에서 활발하게 조성된 불교미술의 대표적인 사례는 AD 300년경에 인도의 산치에 축조된 거대한 ‘스투파’로서 부처의 육신을 모셔놓는 스투파는 불교가 동방으로 전래하면서 탑파로 발전하게 된다.

BC 200년경에 제작된 아잔타의 석굴조각은 신앙심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예술의 장엄미의 극치를 보여주며,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과 전쟁의 와중에 일어난 살육을 참회하고, 백성들의 의식을 통합하여 부국강병에 활용하기 위해 각국의 왕들이 앞을 다투어 수많은 암벽 불상을 조성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지시에 따라 축조된 왕릉에 부장된 병마용과 그 갱(坑)은 규모의 방대함에도 그러하지만 특히 장교와 사병, 군마의 묘사에 있어서 무덤조각의 장관을 이루며 현재까지 발굴이 진행될 만큼 엄청난 양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남방으로 전래된 불교는 11세기에 미얀마의 페간에서 불교예술의 황금시대를 구가하였으며, 타이 등지에서 일어난 불교미술은 중국이나 한국, 일본과는 다른 양식을 보여주며 그것은 득도에 이르는 방법과 종교의식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조각' 항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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