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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9-13 (토) 22:35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887      
[현대] 독립기념관 (민족)
독립기념관(獨立記念館)

        독립기념관 전경. 충남 천원군 목천면에 있는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술전시관. 민족의 수난과 독립 쟁취의 역사적 사실을 기리기 위해 관련된 사료 및 유물들을 보존, 전시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독립기념관. 충남 천안시 목천면에 위치. 독립운동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보관, 전시하며,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종합적 학술전시관으로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독립운동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보관, 전시하며,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종합적 학술전시관. 국민운동으로 추진되어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하였다.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에 위치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을 세우자는 논의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1946년 천도교회관에서 사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기념관 건설준비위원회가 결성된 것과, 1975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주최 ‘광복30주년기념심포지엄’에서 정식 안건으로 토의, 합의하여 정부에 건의한 바도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82년 일본의 교과서에 실린 식민지 서술 부분이 한국 국민의 분노를 일으켜, 이에 한국 국민이 국민운동으로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정부에서는 소요 부지인 118만 3000평을 매입하여 제공하였다.

국민성금 490억 2432만 5009원(1986년 4월 8일 현재)을 모금하는 한편, 국내외로 독립기념관에 전시할 자료와 유물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1986년 4월 8일 〈독립기념관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그 해 5월 9일 공포되기에 이르렀다.

원래는 1986년 8월 15일에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그 해 8월 4일 뜻하지 않은 화재가 일어나 1년을 늦추어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 8,126점의 자료와 유물을 모두 7개 전시관에 나누어 전시하였다.

제1전시관은 ‘민족전통관’으로 독립운동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민족사의 성장과 문화, 국난 극복의 역사적 사례를 간추려 전시하였다. 선사시대부터 1860년까지 민족사를 압축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관점에서도 유의한 전시 내용이다.

제2전시관은 ‘근대민족운동관’이다. 시대적 배경은 서양 제국주의의 도전을 받아 민족의 시련이 격앙된 1860년대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하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년까지이다. 동학(東學)·척사(斥邪)·개화(開化) 문제와 아울러 구국운동으로 전개된 의병전쟁과 계몽운동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제3전시관은 ‘일제침략관’이다. 일제가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고 동학농민군을 탄압하면서 한국을 반식민지화하고, 1910부터 1945년까지 식민 통치한 잔학상들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전시하였다. 독립운동의 객관적 조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시 내용이다.

제4전시관은 ‘3·1운동관’이다. 3·1운동의 전개 과정과 그 형성 기반인 1910년대의 독립운동 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각종 태극기의 변천 모습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제5전시관은 ‘독립전쟁관’이다. 해외 독립군의 독립전쟁뿐만 아니라 국내의 농민·노동·여성○소년운동 등 사회경제운동·학생운동·문화운동 내용까지 복합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독립운동의 다양한 내용과 역사적 의미가 가장 많이 담겨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내용이 너무 복잡하여 앞으로 국내와 해외편을 분리, 전시하는 분관 문제를 안고 있다. 제6전시관은 ‘임시정부관’이다. 임시정부와 그 산하의 광복군에 관해 전시하고, 또 만주·중국 본토·러시아·미주·일본 등 해외 각지로 이주한 동포 사회의 생활 내용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제6관은 관람을 끝내면서 8·15광복과 만날 수 있도록 전시 기법을 계획하고 있으나 실제는 그러한 효과를 얻기 힘든 실정이다. 제7전시관은 ‘대한민국관’인데, 원래 기획위원회에서 토의할 때 정부홍보관이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제외시킨 곳이다.

그런데 그 뒤 정부에서 별도의 경비와 위원회를 만들어 건립하였다. 내용은 8·15광복 후 현재까지의 정치·경제·문화 등의 변천사로 구성되어 있다. 위의 7개 전시관 외에 본관(겨레의 집)과 원형극장이 있고, 야외에는 독립운동사의 중요 인물과 단체 들의 어록비(語錄碑)와 각종 조각물이 있어 독립기념관에 걸맞는 환경으로 다듬어져 있다.

현재 독립기념관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동곡·서곡·중곡으로 자연 분할된 부지 중 중곡에 위치하고 있는데, 앞으로 동곡과 서곡이 어떤 모양으로 개발될 것이냐에 따라 그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독립기념관에는 부설로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있다.

독립운동에 관한 각종 도서와 자료를 정리, 보관하면서 독립운동사에 관한 학술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이의 연구 결과에 따라 각 전시관의 내용도 새롭게 정리될 것은 물론, 독립운동사의 연구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당초 독립기념관 건립을 계획할 때, 통일 후로 미루자는 주장도 있었고, 또 명칭 문제도 있었다. 통일 후로 미루자는 주장은, 분단된 상태에서라도 남북이 각각 독립운동 자료와 유물을 성실히 모아 두는 것이 곧 통일을 대비하는 민족적 자세라는 주장에 밀리게 되었다.

명칭 문제는 ‘독립기념관’·‘독립운동기념관’·‘광복기념관’·‘민족기념관’·‘겨레의 집’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으나, 정부가 〈독립기념관법〉으로 제안하여 국회에서 통과시킴으로써 확정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또는 늦어도 통일 후에는 재론되어야 할 이름이다.

≪참고문헌≫

獨立記念館建立史(독립기념관, 1987), 독립기념관전시품도록(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8).

<조동걸>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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