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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5-11 (일) 18:45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539      
[근대] 대구 계산동성당 (두산)
대구 계산동 성당 大邱桂山洞聖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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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계산동성당 정면. 대구 중구 계산동. 사적 제290호. 1902년 건축된 영남 최초의 고딕식 건축물이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진

대구 계산동성당 첨탑. 대구 중구 계산동. 사적 제290호. 1902년 건축된 영남 최초의 고딕식 건축물이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진대구 계산동성당 정면. 대구 중구 계산동. 사적 제290호. 1902년 건축된 영남 최초의 고딕식 건축물이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진

1902년 건축된 영남 최초의 고딕식 건축물인 성당. 사적 제290호.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소재. 1918년의 증축으로 완성을 본 이 건물은 도심의 평지에 건축된 연건평 3백 평 규모의 벽돌조 건물로, 전주 전동성당(殿洞聖堂)과 쌍벽을 이룬다. 1899년 건축된 목조 십자형 기와집 성당이 1900년 화재로 불타버리자, 그 자리에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A.P.로베르(한국명:金保祿) 신부가 설계하고 프랑스 ·중국 등지에서 건축기술자와 도목수 ·석공 등 30여 명을 초빙, 2년여 만에 완공하였다.

건물의 평면은, 라틴 십자가 삼랑식(三廊式)으로 신자석(信者席)이 배치되어 있으며, 입면은 서쪽 정면에 종탑(鐘塔) 기능의 2개의 8각형 첨탑을 세워 건축물의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창문은 부벽(扶壁) 구조에 아치로 설계하였으며, 정면 현관과 측랑(側廊) 위쪽에 있는 꽃무늬창은 한국의 건축양식상 획기적인 것이다.

영남지방에 천주교를 토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1911년 조선교구로부터 분리, 대구대교구 주교좌 본당이 되었는데, 초대 주임신부에는 로베르를 임명하였다. 성당 부지에는 설계자를 기념하는 동상과 주교관이 있다.

이 성당 건물에서 동남쪽 600여m 지점에 있는 관덕정(觀德亭) 순교 기념관에는 을해 ·정해 ·병인박해 때 교우들의 은신처였던 한티고개 ·신나무골 등 교우촌에서 붙잡혀 처형된 순교자들의 유물 30여 점 등 65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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