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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1-26 (일) 18:32
분 류 문화사
ㆍ조회: 3451      
[조선] 경복궁 (한메)
경복궁 景福宮

경북궁.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사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궁(正宮).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었다.

이성계가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 때의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수조지소(受朝之所)인 근정전(勤政殿)이 5칸에 상하층 월대(越臺)와 행랑·근정문·천랑(穿廊)·각루(角樓)·강녕전(康寧殿) 7칸, 연생전(延生殿) 3칸, 경성전(慶成殿) 3칸, 시사지소(視事之所)인 보평청(報平廳) 5칸 외에 상의원·중추원·삼군부(三軍府) 등이 마련되었다.

궁의 명칭은 《시경》 <주아(周雅)>에 나오는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2자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지었다. 정종이 즉위하면서 개성으로 도읍을 옮겨서 궁을 비우게 되었으나, 태종 때 다시 환도하여 정궁으로 이용하였다.

태종은 경회루(慶會樓)를 짓고,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사신을 접대하도록 하였으며, 세종은 이곳에 집현전을 두었다. 1553년(명종 8)에 강녕전에서 불이 나 근정전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듬해 복구되었으나 92년 임진왜란으로 궁은 전소되고 말았다.

궁의 복구문제는 왜란 직후부터 논의되었으나 실천에 옮겨지지는 못하였다. 1606년(선조 38) 궁궐영건도감(宮闕營建都監)을 설치하고 광화문과 근정전 등 주요 건물만이라도 우선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 이하응에 의하여 대규모로 다시 세워졌다.

그 규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융문당(隆文堂) 이하의 전각도 256칸이고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다. 궁이 완성되고 나서 1868년에 왕은 경복궁으로 옮겼다. 그러나 1895년에 궁 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은 옮겨온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궁 안에 있는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방매하고 17년 창덕궁의 내전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동행각·경성전·연생전 등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희정당 등의 내전을 지었다.

또한 정문인 광화문을 건춘문 북쪽으로 이전하고 근정전의 정면 앞에 총독부청사를 지었는데, 이것은 매우 큰 석조건물로 근정전을 완전히 가리는 결과가 되었다. 이 밖에도 자선당 자리에도 석조건물이 들어서고 건청궁(乾淸宮) 자리에는 미술관을 지어 궁의 옛모습을 거의 없애버렸다.

1945년 광복 후 총독부청사는 정부청사로 이용되었고 1971년에는 국립박물관이 목조기와건물의 모양을 본떠 지어졌다가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구 총독부청사 건물로 이전되었다.

경복궁이 자리잡은 위치는 도성의 북쪽 북악산의 기슭으로,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주산(主山)의 바로 아래이다. 궁의 전면으로 넓은 시가지가 전개되고 그 앞에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으며 내수(內水)인 청계천과 외수(外水)인 한강이 흐르는 명당 터이다.

궁의 왼쪽으로 종묘가 있고 궁의 오른쪽에 사직단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오던 도성의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이다. 고종 때 중건된 궁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장방형으로 되어 있으며, 궁성의 둘레는 1만여 척에, 시가지를 내려다보듯이 남쪽으로 향하였으며 궁의 주요건물들도 모두 남향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배치는 크게 앞부분엔 정전과 편전들이 놓이고 뒷부분에 침전과 후원이 자리잡고 있어 이른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다른 궁궐들이 정전과 침전들이 좌우에 놓이거나 앞뒤의 관계가 불분명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데, 조선조의 정궁으로서 특히 엄격한 규범을 보이고 있다.

주요건물의 위치를 보면 궁 앞면엔 광화문이 있고 동·서쪽 건전춘(建春)·영추(迎秋)의 두 문이 있으며 북쪽엔 신무문이 있다. 광화문 안에는 홍례문이 있고 그 안의 개천 어구(御溝)를 건너면 근정문이 있고 문을 들어서면 정전인 근정전이 우뚝 솟아 있다.

근정전 뒤의 사정문을 들어서면 왕이 정사를 보는 곳인 사정전이 있고 그 동·서쪽에 만춘전(萬春殿) 천추전(千秋殿)이 남향으로 놓여 있다. 사정전 뒤 향오문(嚮五門)을 들어서면 연침(燕寢)인 강녕전이 있고 그 앞 동서 양쪽에 연생전·경성전이 있다. 강녕뒤에는 양의문(兩儀門)이 있고 문안에 왕비가 거처하는 교태전(交泰殿)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주요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 등이다. 사적 제117호.

<조동걸>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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