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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1-27 (월) 21:30
분 류 문화사
ㆍ조회: 5721      
[조선] 경복궁 (문화재청)
경복궁(景福宮)

경복궁 원경. 문화재청 사진

경복궁 전경. 문화재청 사진

경복궁 근경. 문화재청 사진

경복궁 근정전. 문화재청 사진

경복궁 근정전. 문화재청 사진

경복궁 근정전 용상. 문화재청 사진

경복궁 사정전. 문화재청 사진

경복궁 천추전. 문화재청 사진

경복궁 교태전. 문화재청 사진

경복궁 근정문 뒷편. 문화재청 사진

경복궁 향원지와 향원정. 문화재청 사진

종목 : 사적 117호
명칭 : 경복궁(景福宮)
분류 : 궁지
면적 : 343,888.1㎡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
시대 : 조선 태조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문화재청

<기본 설명>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웠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에서 오는 사신을 대접하도록 하였으며, 연못을 크게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는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서 지냈는데, 집현전을 두어 학자들을 가까이 하였다. 경회루의 남쪽에는 시각을 알려주는 보루각을 세웠으며, 궁의 서북 모퉁이에는 천문 관측시설인 간의대를 마련해 두었다. 또한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4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를 설치하였다.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창덕궁·창경궁과 함께 모두 불에 탄 것을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다. 그러나 1895년에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의 행동을 하여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현재 궁궐 안에 남아있는 주요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재수각·숙향당·함화당·향원정·집옥재·선원정 등이 있다.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 오던 도성(都城)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을 지킨 궁궐로서, 궁의 왼쪽에는 역대 왕들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들의 배치는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거나 왕이 신하들의 조례를 받는 근정전과 왕이 일반 집무를 보는 사정전을 비롯한 정전과 편전 등이 앞부분에 있으며, 뒷부분에는 왕과 왕비의 거처인 침전과 휴식공간인 후원이 자리잡고 있다.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인데, 이러한 형식은 이 궁이 조선의 중심 궁궐이므로 특히 엄격한 규범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비록 궁궐 안 대부분의 건물들이 없어지기는 하였지만, 정전·누각 등의 주요 건물들이 남아있고 처음 지어진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조선의 정궁의 모습을 대체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전문 설명>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의 정궁(正宮)이다. 조선의 태조(太祖)는 1392년 7월 개성(開城)의 수창궁(壽昌宮)에서 왕위에 즉위하여 조선을 건국하고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태조 3년(1394) 10월 한양(漢陽)으로 도읍을 옮겨 왕궁을 창건하기 시작하였다. 태조 3년 12월 4일 개토(開土)를 시작하여 태조 4년 (1395) 9월 경복궁이 조성되었다. 당시의 궁의 규모는 건물이 총 390여 칸에 불과하였다.

태조 4년 10월 정도전(鄭道傳)은 신궁(神宮)의 이름을 경복(景福)이라 하고 연침(燕寢)을 강녕(康寧), 동소침을 연생(延生), 서소침을 경성(慶成), 연침 정남쪽의 편전(便殿)을 사정(思政), 그 정남쪽의 정전(正殿)을 근정(勤政), 동루(東樓)를 융문(隆文), 서루(西樓)를 융무(隆武), 정전(正殿) 정문을 근정문(勤政門)이라 하였다. 왕궁담의 축조는 태조 7년(1398)에 있었다.

세종(世宗) 8년(1426) 10월에 정궁의 문 이름을 정하였다. 제1문은 흥례(興禮), 제2문은 광화(光化), 근정전(勤政殿)의 동 협문을 일화(日華), 서 협문을 월화(月華), 궁의 동문을 건춘(建春), 서문을 영추(迎秋), 근정전 앞 개울의 다리를 영제(永濟)라 하였다. 이때까지는 경복궁의 북문이 조성되지 않았으며 북쪽 궁 담은 목책이었다. 세종 15년(1433) 7월 북쪽 궁담을 쌓고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이 건립되었다.

경복궁은 1399년 정종(定宗)이 즉위하자 반년만에 개성(開城)으로 환도하여 빈 궁궐로 있었다. 태종(太宗)이 즉위하여 1405년 다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창덕궁(昌德宮)을 창건하여 왕은 그 궁으로 들어갔다. 태종은 1412년 4월 경복궁의 연못을 확장하고 섬 위에다 경회루(慶會樓)를 건립하였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 있었다. 세종 16년(1434)년 7월에 경회루 남쪽에 신루(新漏)를 건립하고 그 각을 보루각(報漏閣)이라 하였다. 이어서 1438년 대호군(大護軍) 장영실(將英實)에 의하여 천추전(千秋殿) 서쪽에 흠경각(欽敬閣)이 이룩되었다. 세조(世祖)때인 1456년 3월에는 후원에 연못을 파고 취로정(翠露亭)이란 정자를 짓고 정자 앞 연못 속에 연꽃을 길렀다.

성종 5년(1474) 경회루를 다시 건립하였는데 돌기둥 위에 용(龍)을 조각한 것이 옛과 달랐다. 성종(成宗) 5년 3월에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과 흥례문(興禮門), 광화문(光化門)에 청기와를 제작하여 올리려는 논의가 실록에 보인다. 1992년 경복궁 침전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 결과 많은 청기와 편이 출토되어 성종 명종년간(明宗年間) 경복궁의 중요 건물들에는 청기와가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연산군(燕山君) 1506년 경회루 방지(方池)에 만세산(萬歲山)을 조산(造山)하고 연못에 수십 척의 배를 갔다 띄우기도 했다.

선조(宣祖) 25년(1592) 4월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경복궁은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273년간 복구되지 못하였다가 고종 때 대원군에 의하여 복구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중창공사(重創工事)는 1865년 4월 13일부터 시작하여 1867년 11월초에 완공되었다. 이때 중창된 건물은 근정전(勤政殿), 사정전(思政殿), 자경전(慈慶殿), 강녕전(康寧殿), 교태전(交泰殿), 함원전(含元殿), 만경전(萬慶殿), 흥복전(興福殿), 만화당(萬和堂), 수정전(修正殿), 건복전(建福殿), 연길당(延吉堂), 흥복루(興福樓), 함화당(咸和堂), 집경당(緝敬堂) 등이었다. 그후 1873년 5월 건청궁(乾淸宮)을 건립하여 어진(御眞)을 봉안하는 곳으로 하였다. 궁궐지(宮闕志)를 보면 이때 경복궁 4대문 내에는 7224칸의 건물이 섰고 신무문(神武門) 북쪽 후원(後苑)(현, 청와대지역(現 靑瓦臺地域))에는 488칸의 건물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1876년 11월 4일 큰 화재가 나서 강령전, 교태전, 자경전 등 830여 칸의 침전 건물들이 불탔다. 이들 침전들은 고종(高宗) 25년(1888) 복구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경복궁은 일본의 간악한 침략정책에 의하여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1915년 일제는 조선시정(朝鮮施政) 5주년 기념사업으로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를 경복궁 내에서 개최하면서 4천여 칸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18개소의 상품진열관을 설치했었다. 그때 건립된 것이 조선총독부박물관(朝鮮總督府博物館)(1995년 철거)이었다. 1917년 11월 10일에는 창덕궁에 화재가 나서 침전들이 모두 불타버리자 1920년 이를 복구한다는 명목으로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 교태전(交泰殿), 연길당(延吉堂), 함원전(含元殿), 경성전(慶成殿) 등을 헐어내어 창덕궁의 침전 복구 공사 재목으로 사용하였다. 1926년에는 일제 침략 정책의 심장부인 조선총독부 청사를 경복궁의 근정전을 막아서는 자리에 건립하였다. 조선총독부건물은 경복궁 복원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역사회복정책에 의하여 1996년 철거되고 말았다.

경복궁 복원공사는 1992년부터 추진되었는데 현재 강녕전(康寧殿), 교태전(交泰殿), 경성전(慶成殿), 연생전(延生殿)과 동궁(東宮) 건물이 복원되었다. 그리고 흥화문(興化門)과 영제교(永濟橋), 태원전(泰元殿)의 복원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현재 경복궁에는 조선시대(19세기) 건물로는 근정전(국보 제 223호), 경회루(국보 제 224호), 근정전회랑(勤政殿廻廊)(보물 제 812호), 자경전(보물 제 809호), 사정전(思政殿), 천추전(千秋殿), 수정전(修正殿), 집경당(緝敬堂), 함화당(咸和堂), 집옥재(集玉齋), 협길당(協吉堂), 팔우정(八隅亭), 재수각(齋壽閣), 향원정(香園亭), 건춘문(建春門), 신무문(神武門)이 남아 있어 조선 정궁의 궁제(宮制)와 수도 서울의 고도(古都) 중심축을 알 수 있다.

꽃벽돌로 장식된 아미산 굴뚝(보물 제 811호)과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보물 제 810호)이 있으며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던 풍기대 2개(보물 제 846호, 제 847호)가 있다. 광화문의 해태조각상과 근정전의 기단에 조각된 방위신상(方位神像)들과 경회루 다리 및 영제교의 석교에 설치된 석조조각물들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조각미술품들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회루의 루원(樓苑)과 향원지(香園池)의 연못이 원 형태로 남아 있어 조선의 대표적 명원도 볼 수 있다.

출전 : 문화재청 홈페이지 지정문화재 DB
참고 : 궁도우미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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