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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7-15 (일) 16:35
분 류 명품감상
ㆍ조회: 3683      
[조선] 최순우, 백자 달항아리
백자 달항아리

조선 17세기, 높이 41.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국의 흰 빛깔과 공예 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의 하나이다. 따라서 한국의 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조선 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외국 사람들은 곧잘 한국을 항아리의 나라라고는 부르지만 우리네의 집안 살림살이 세간 중에서 크고 작은 항아리 종류들을 빼 놓으면 집안이 허수룩해질 만큼 그 위치가 크다. 따라서 이렇게 많은 항아리들 중에는 잘생긴 작품이 매우 많다. 이 항아리들을 빚어 낸 사람들도 큰 욕심 없이 무심히 빚어 내었을 것이고 이것을 사들여 아침 저녁 매만지던 조선 시대 여인들도 그저 대견스러운 마음으로 무심하게 다루어 왔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남겨진 백자 항아리들이 오늘날 한국미의 가장 특색있는 아름다움의 한 가닥을 차지하게 되었고, 요사이는 잘생긴 백자 항아리 하나에 천만금이 간다고 해도 놀랄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백자 항아리의 작가들이 비록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작품화한 것이 아니었다 해도 그들은 자신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항아리의 둥근 맛과 여기에서 저절로 이어지는 의젓한 곡선미에 남몰래 흥겨웠을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비록 작가 의식을 가지고 계산해서 낳아 놓은 아름다움은 아니었지만 도공들의 손길은 그들의 흥겨운 마음을 따라 움직였을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즉 모르고 만들어 낸 아름다움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장식도 고운 색깔도 아랑곳할 것 없이 오로지 흰색으로만 구워 낸 백자 항아리의 흰빛의 변화나 그 어리숭하게만 생긴 둥근 맛을 우리는 어느 나라의 항아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 대견함을 느낀다. 이러한 백자 항아리들을 수십 개 늘어놓고 바라보면 마치 어느 시골 장터에 모인 어진 아낙네들의 흰옷 군상들이 생각나리 만큼 백자 항아리의 흰색은 우리 민족의 성정과 그들이 즐기는 색채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백의민족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불러 보기도 했는데, 우리네의 흰 의복과 백자 항아리의 흰색은 같은 마음씨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야겠다. 이웃나라 중국 자기나 일본 자기들이 그렇게 다채로운 빛깔로 온통 사기 그릇을 뒤덮던 시대에 우리는 마치 배꽃이나 젖빛깔에도 비길 수 있는 순정어린 흰빛의 조화를 유유하게 즐겨왔으니 과연 한국 사람은 백의민족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 하면 혹시 심미에 대한 건강한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조선 자기의 아름다움은 계산을 초월한 이러한 설명이 필요하리 만큼 신기스럽고도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1994, pp.21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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