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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05 (목) 09:29
분 류 사전1
ㆍ조회: 978      
[조선] 박규수 (한메)
박규수 朴珪壽 1807~1876 (순조 7~고종 13)

조선 말기 문신·개화파 실학자. 자는 환경(桓卿,瓛卿), 호는 환재(桓齋,瓛齋). 본관은 반남(潘南). 서울 출생.

박지원(朴趾源)의 손자로서 가학(家學)인 실학사상을 계승하였으며, 역관(譯官) 오경석(吳慶錫), 한의사 유대치(劉大致), 개화승(開化僧) 이동인(李東仁) 등과 교유하였다.

1826년 무렵 순조(純祖)의 세자인 익종(翼宗)과 교유하기 시작하여 다음해 순조가 익종에게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시켰을 때, 익종에게 《주역(周易)》을 강의하였고 국사를 의논하였다.

1830년 익종의 급서(急逝)와 연이은 부모와의 사별로 이후 약 20년 간 칩거하면서 조부가 지은 책과 사상 등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1848년(헌종 14)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正言) 등을 거쳐 1860년(철종 11) 열하부사(熱河副使)로 청(淸)나라의 연경(燕京)에 다녀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목격하고, 중국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견문을 넓혔으며 대사성이 되었다.

1862년 진주민란(晉州民亂) 때는 민란수습을 위한 안핵사로 임명되어 백성의 편에 서서 사태를 수습하였다. 그 뒤 도승지·공조판서·형조판서 등을 거쳤고, 1866년(고종 3) 평안도관찰사로 있을 때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자 군사를 동원, 불태웠다.

그 뒤 대제학을 지내던 중 1872년 진하사(進賀使) 정사(正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와 청의 양무운동(洋務運動)을 목격하고 개국(開國)·개화(開化)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귀국 뒤 우의정이 되어 흥선대원군에게 개국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75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낼 때 일본이 운요호〔雲揚號〕 사건을 일으켜 수교를 요구해 오자, 최익현(崔益鉉) 등의 강력한 척화(斥和) 주장을 물리치고 수교를 주장하여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게 하였다.

그 뒤 고희(古稀)를 넘기고 수원유수(水原留守)를 지내다가 죽어 고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그의 개화사상은 후에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로 《환재집》 《환재수계》 등이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

<박순>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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