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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서학 (한메)
서학 西學 17세기 중엽부터 중국을 거쳐 한국에서 전개되었던 서양문명에 대한 학문활동과 그 내용. [개념] 1534년에 창설된 <예수회>는 가톨릭의 쇄신에 이바지하였을 뿐 아니라 동방포교에도 눈을 돌렸다. 이에 따라 1601년부터 중국천주교회가 문을 열어 활동하게 되었다. 난징〔南京〕에 있던 예수회 소속의 신부 A.바뇨니(중국명 高一志)는 1605년에 서양정치학서 《서학치평(西學治平)》 《민치서학(民治西學)》과 서양윤리학서 《수신서학(修身西學)》 등 15종의 한역서(漢譯書)를 냈다. 좀 늦게 중국전도에 나선 같은 예수회 소속의 신부 J.알레니(중국명 艾儒略)는 서양의 교육과 학문활동을 소개하는 《서학범(西學凡)》을 냈다. 이처럼 <서학>이라는 용어는 예수회 회원들이 내내 견지하였던 포교방법에 있아서의 문화주의·영합주의에 의하여, 기독교문화의 우수성을 깨우쳐주기 위한 방편으로서 서양문물을 소개하는 한역논저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서학이란 <서방(西方)에게 배우는>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서양과학기술자료와 한역된 서학서(西學書)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유교사회의 자기성찰과 반성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서학을 서태지학(西泰之學)·태서인지학(泰西人之學)이라고도 하였다. 좁은 뜻으로는 가톨릭교를 가리키기도 하여 서교(西敎)·천주학(天主學)이라는 용어가 쓰이기도 하였다. 같은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일본에서는 서학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은 없고 일본예수회 소속 신부들의 활동에 의한 키리시탄〔切支丹〕과, 주로 네덜란드인들과의 접촉으로 서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난학(蘭學)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한국 서학의 전개] 명(明)나라 말에서 청(淸)나라 초에 걸쳐 중국에서 전개되었던 중국 서학의 결과인 서양과학자료·가톨릭자료·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등은 당시 수시로 오갔던 사행원(使行員)들에 의하여 조선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조선에 이러한 자료들, 특히 마테오리치(중국명 利瑪竇)의 《천주실의(天主實義)》이 들어오는 저간의 사정에 대한 기록이 있다. 1631년(인조 9) 정두원(鄭斗源)은 천리경(千里鏡)·서포(西砲)·자명종(自鳴鐘)·염초화(焰硝花;불꽃놀이 화약)·만국지도(萬國地圖)·서양풍속기(西洋風俗記)·천주교서적 등을 가져왔고, 1645년(인조 23) 소현세자(昭顯世子)는 아담 샬(중국명 湯若望)에게서 받은 천문·산학(算學)·가톨릭교에 관한 책들과 지구의(地球儀)·천주상(天主像) 등을 가져왔다. J.J.벨테브레(한국명 朴淵)·H.하멜 등 네덜란드 선원들의 표착(漂着)은 직접 서양사람들을 접할 기회를 주었고 또 그들로부터 대포제작 등을 배우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 서학은 실권(失權)한 뒤 학문에 전념하고 있던 남인(南人) 학자들을 중심으로 퍼져 국가·경제·사회 등의 조직과 제도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서학은 한국의 실학(實學)에도 결정적인 한 동인(動因)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한국 서학은 크게 3유파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처음에는 전면적으로 배척하는 척사론적(斥邪論的) 자세이며, 그 다음으로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론적(受容論的) 움직임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일면배격·일면수용의 비판적 수용론이 있었다. 척사론적 입장은 신후담(愼後聃)의 《서학변(西學辨)》, 안정복(安鼎福)의 《천학고(天學考)》 《천학문답(天學問答)》, 이헌경(李獻慶)의 《천학문답》 등에 나타났는데, 서학을 전통적 가치체계와 사회질서에 커다란 위해(危害)를 가져올 것으로 경계하였다. 수용론적 입장에 섰던 사람으로는 권철신(權哲身)·권일신(權日身)·이가환(李家煥)·정약전(丁若銓)·정약종(丁若鍾)·정약용(丁若鏞)·이벽(李檗)·이승훈(李承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서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였을 뿐 아니라 서양과학기술의 전폭적 수용과 가톨릭신앙의 연구·실천에까지 영역을 넓혀 나갔다. 이원론(二元論)에 입각한 비판적 수용론자들은 서양과학기술의 효용성과 선진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서학의 이적(理的) 측면, 즉 십계명 등의 성서신앙에 따르는 윤리적 부분은 배척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 논리는 개화파들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과도 맥이 닿고 있다. 비판적 수용론을 전개한 사람들은 북학파(北學派) 계열의 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이덕무(李德懋) 등이었다. 가톨릭신앙에 국한하여 한국의 서학을 살펴보면, 우선 선교사들의 선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문적 연구에 이은 자율적 구도활동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는 세계 가톨릭포교사상 유례없는 일로서, 17세기 이래 서양의 학문·종교 등을 담은 서학서책들이 전해지자 이벽·권철신 등은 가톨릭의 중심교리인 천주(天主)의 개념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유교경전의 천(天) 개념과 나란히 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가톨릭에 귀의했던 것이다. 그 뒤 자율적으로 교리연구와 포교의 조직망을 넓혀 나갔고, 이러한 가톨릭의 유포에 대하여 방관적 자세를 취한 조선 정부는 가톨릭의 교세가 나날이 확장되기 시작하자 이를 사교로 규정하여 탄압을 가해 왔다. 앞에서 지적한 서학 척사론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여, 현실세계와 조상숭배를 부정하고 신분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리라고 단죄하여 1791년(정조 15)의 신해박해(辛亥迫害), 1801년(순조 1)의 신유박해(辛酉迫害), 39년(헌종 5)의 기해박해(己亥迫害), 66년(고종 3)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등이 잇따라 일어났고, 많은 신도가 순교하는 등 탄압이 심했다. 그러나 1831년(순조 31)에 조선교구(朝鮮敎區)가 설치되면서 선교사들의 입국이 시작되고 <만민은 천주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과 복된 내세에의 약속 등에 힘입어 가톨릭은 점차 교세를 넓혀 나갔다. [한국 서학의 영향] 시대적으로 한국 서학을 가름하면 선조 연간인 17세기 중엽부터 숙종 연간에 이르는 약 100년간의 접촉기를 시작으로, 숙종 후년부터 정조 초년에 이르는 약 80년간의 성숙기를 거쳐, 약 30년간의 실질적 적용기 이후의 쇠퇴기로 나눌 수 있으며, 각 단계마다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이 상이하다. 접촉기의 한국 서학은 주로 명나라와 청나라를 통해 발아(發芽)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기존의 성리학적 질서체계를 뒤흔들었고 서양과학기술과 합리주의도 유입되었다. 이 시기에 김육(金堉)은 시헌력(時憲曆)의 장점을 인식하고 이것의 활용을 건의하여 1653년(효종 4)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한역서학서와 과학기술자료들은 선각적 지식인들의 학문적 열정을 자극하여 지식 습득은 물론 의식세계의 폭을 확장시켰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종다양한 서책류와 개념들이 온축(蘊蓄)되어 이를 대하는 지식인 수가 늘어나고 이해도 깊어졌다. 성숙기를 대표하는 학자는 이익(李瀷)이다. 《성호사설》 《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選)》 《성호선생문집(星湖先生文集)》 등에 나타난 그의 서학에 대한 이해 정도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는 실중주의에 입각하여 선택적으로 인식하였고 확고한 학문정신 위에서 파악하였으므로 한국 서학의 조종(祖宗)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의 제자로서 신후담·안정복(安鼎福) 등은 서학을 척사론적 입장에서 연구하였다. 이러한 조류에서 약간 비껴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북학파(北學派)인 홍양호(洪良浩)·홍대용·이덕무 등이다. 그 가운데 흥대용은 《주해수용(籌解需用)》을 써서 서양수학을 소개하는 한편, 혼천의(渾天儀)·자명종 등을 직접 만들었으며, 서양의 천문학과 시제(時制)를 연구하였다. 실질적 적용기는 정조 연간으로, 과학기술의 도입·활용과 가톨릭신앙의 실천으로 나타났다. 서양기술 수용을 적극 주장하고 나선 박지원은 과학기술을 <잔재주가 아닌 정신의 극치>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마침내 <백성에게 유익하고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오랑캐의 것이라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창하였으며 《열하일기(熱河日記)》 《과농소초(課農小抄)》 등의 저서를 남겼다. 박제가는 표착한 서양사람들에게 선제(船制)와 그 밖의 기예(技藝)를 배우자고 하는 등 적극적인 기술도입론을 펼쳤고 가톨릭이 불교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사실도 논구하였다.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이 활동한 시기도 이때였다. 그는 정신적 측면만이 아니라 국부(國富)와 민안(民安)을 위해서는 산업기술의 발달이 첩경임을 지적하였고, 거중기(擧重機)·활차륜(滑車輪) 등을 제작하여 수원성(水原城)을 축조하고, 종두법(種痘法)을 실험하는 등 실천가이기도 했다. 이러한 구체적 제안과 실천들이 계속 이어지지 못한 것은 한국사의 한 굴절로서 기록되고 있다. 또한 이 시기는 가톨릭의 신앙과 포교에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이벽·정약전·권철신·이승훈 등은 개인적으로 서교(西敎)를 연구하였는데, 1777년(정조 1)에는 천진암(天眞庵)·주어사(走魚寺) 등지에 모여 토론을 하며 신앙의 길을 열었다. 이승훈이 J.J.그라몽(중국명 梁棟材)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온 1784년부터 정기적 모임이 있었고 곧 조선천주교회가 창설되었다. 이어 충청남도 내포(內浦)에 이존창(李存昌), 전라북도 전주(全州)에 윤지충(尹持忠)·유항검(柳恒儉) 등이 교회를 열어 토착화의 길로 접어들었고,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입국과 서민교화를 위한 정약종의 교리서 《주교요지(主敎要旨)》가 나오는 등 사뭇 활기가 있었다. 온건한 정책을 편 정조의 죽음에 뒤이어 벽파(僻派)가 득세하면서 무르익어가던 한국 서학도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른바 반시파적정쟁(反時派的政爭)의 후유증으로 신유박해가 일어났는데, 이는 황사영백서사전(黃嗣永帛書事件)·이양선출몰(異樣船出沒) 등과 맞물리면서 가톨릭교도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가속화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의 서학도 차츰 쇠퇴해 갔다. [의의] 한국 서학은 중국 서학과는 또 다르게 자생적·적극적이었다. 서학에 힘을 쏟은 학자들이 유교적 세계관에 철저하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서학수용에도 영향을 미쳐 특색과 한계를 동시에 부여하였다. 양명학(陽明學)의 수용과 동학(東學)의 맹아(萌芽)도 서학의 영향 없이는 생각하기 어렵다. 가장 큰 역사적 의의는 근대성의 맹아가 서학의 호름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는 것으로서, 중화사상(中華思想)의 틀에서 벗어나고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개안(開眼)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결국 한국 서학은 한국사에 있어서 근대의식의 원인이자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근용>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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