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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3 (수) 20:53
분 류 사전1
ㆍ조회: 2534      
[근대] 근대사회 (두산)
근대사회 近代社會

봉건제사회(封建制社會)가 끝난 뒤에 나타난 사회.

I. 개관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로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근대사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선행된 봉건사회를 극복해야 했다.

한국 근대화의 기점은 사상적으로 동학(東學)의 대두와 정치적으로 대원군(大院君)의 혁신적인 정책이 시작된 1860년대로 보는 견해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이 조약을 계기로 유럽 열강과 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고 부산ㆍ원산ㆍ인천 등지의 개항통상을 보게 되어 비로소 열강과 우호국가로서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 대세에 발맞추어 나가는 개화운동의 세력이 형성되는 반면, 한편으로는 외래문물을 거부하고 봉건적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수구세력(守舊勢力)이 존속하여 서로 대립하였다.

1894년 개화내각이 출현하여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중앙관제 및 지방제도의 개혁과 함께 계급타파ㆍ노예해방ㆍ조혼금지(早婚禁止)ㆍ과부의 개가허용(改嫁許容)ㆍ과거의 폐지ㆍ적서(嫡庶)의 차별 폐지 등을 포고하여 그 개혁은 사회적으로 전면적인 개혁이 되었지만, 실제 사회생활에 있어 즉시 큰 효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봉건사회 조직의 붕괴와 신시대적 체제의 형성을 의미하는 사실임에는 틀림없었다. 1896년 건양(建陽)의 새 연호를 사용함과 함께 음력 대신 양력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 다시 연호를 광무(光武), 국호를 대한(大韓)이라 고치고, 신교육령에 의한 보통학교ㆍ중학교ㆍ사범학교 등의 설립을 보는 등 비로소 근대국가로서 모든 형식과 체제를 이루었다.

형식뿐 아니라, 실지로도 외세에 지배되지 않는 독립국가ㆍ독립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구비하여야 한다는 자주정신에 의해서 신진투사들이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독립문의 건립, 《독립신문》의 간행,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의 개최 등으로 한국민의 자주독립의 정신을 내외에 선양하고 국민의 세계 조류에 대한 자아인식을 일깨웠다. 독립협회에 이어 대한자강회 등 많은 정치ㆍ교육ㆍ문화 단체들이 민중의 계몽과 자각을 촉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당시 위정자들의 지식과 성의, 그리고 단결ㆍ봉사의 정신 부족으로 국내적으로 수구파와 개화파의 알력, 또는 친청(親淸)ㆍ친일(親日)ㆍ친로파(親露派) 등의 대립과 분쟁, 대외적으로 일본ㆍ청국ㆍ러시아 등 강대국의 간섭을 받아 국가의 운명은 비운에 빠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악랄한 지배와 압박ㆍ착취에 대한 반항운동으로 독립운동이 계속되었을 뿐 참된 근대화란 요원(遙遠)하였다.

8ㆍ15광복 후에는 38선이 그어지고 6ㆍ25전쟁까지 겪어야 했으며, 전쟁 후 수립된 제1공화국은 전후 복구사업에 바빴다. 따라서 어느 의미에서는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인 근대화가 추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아울러 1970년부터 불붙은 새마을운동에 힘입어 한국의 근대화, 특히 산업화는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ll. 서양

1. 봉건사회의 변질

유럽의 근대사회는 봉건사회 그 자체에서 성립되기 시작하였다. 즉, 유럽의 봉건사회는 11∼12세기경부터 크게 변질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11세기 말부터 시작된 십자군운동이 촉진제가 되었다. 이러한 변질을 나타내는 중요한 현상으로는 우선 경제적 근대화를 들 수 있다.

① 도시의 발전

십자군 이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지중해 무역과 저지대(低地帶)를 중심으로 하는 발트(북해) 무역이 발전함에 따라 2개의 무역권을 연결하는 내륙의 상업로(商業路)도 발전하게 되어 이탈리아ㆍ독일ㆍ플랑드르ㆍ샹파뉴 등지에 도시가 번영하였다.

② 부역(賦役)의 소멸과 지대(地代)의 금납화(金納化)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화폐경제가 진전함에 따라 영주들은 비능률적인 부역 대신 공납징수(貢納徵收)를 강화하더니 이윽고 농민으로부터 직접 화폐를 입수하고자 생산물지대(生産物地代)를 화폐지대로 바꾸었고, 약간의 해방금(解放金)을 받고 농노(農奴)의 신분을 농민으로 해방시켰다(농노해방).

③ 농민 반란

농민층의 일반적인 상승 기운에 대하여 영주들은 농민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부역의 부활을 도모하는 등 봉건강화(封建强化)를 강행하였으므로, 이에 대항하는 농민반란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농민반란은 대부분 진압되었지만 농민들의 자립적 경향이 강해져서 농민들은 차차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장원제도(莊園制度)도 해체되어 갔다.

④ 길드(guild)의 변질

농민층의 일반적인 상승과 함께 농촌의 수공업이 발달하고 도시의 수공업자 길드의 독점적 지위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한편, 도시 길드의 내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주장(主匠:master) 간의 대립과 주장과 직인(職人:journeyman)과의 대립이 격화되었으며, 특히 그 때까지만 해도 길드와 관계가 없던 상업자본가들이 상당한 세력으로 도매체제(都賣體制)의 지배를 강화하여 길드는 본래의 성격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정치적인 면에서의 변질로서는,

① 로마 교황권의 쇠퇴

십자군운동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교황권의 정신적 권위가 현저히 손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세속적 지배권도 또한 쇠퇴하였다. 본래 교황의 세속적 지배권은 봉건 제후(諸侯)로 하여금 세습적인 황제나 국왕과 대립하도록 조정함으로써 권력이 유지되어 왔으나, 십자군운동 이후 제후나 기사들이 몰락하였고, 반대로 국왕의 권력 강화(집권화)에 의하여 교황의 세속적 지배권은 쇠퇴하였다.

게다가 교황의 이른바 아비뇽 유수(Avignon 幽囚:1309~l377)와 교회의 대분열(1378~1417)에 의해서 그 쇠퇴는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와 병행하여 각지에서 이단운동(異端運動)이 일어나 교회의 혁신, 더 나아가서는 교황의 권위마저 부정하는 경우도 나타나 종교개혁의 선구적 구실을 하였다.

② 중앙집권 국가의 형성

십자군운동으로 전사ㆍ도산(倒産) 등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중소영주(中小領主)인 기사나 제후들이었다. 게다가 총포의 사용 등 전술의 변화로 기사의 존재가치가 무용화되면서 제후나 기사들은 점차 국왕의 신하로 변신하였다.

한편, 이에 따라 대두된 도시의 상인자본가들도 지방분권적인 봉건적 지배체제가 상업발달을 저해하는 것이라 하여 국내의 통일과 중앙집권화를 실현하려는 국왕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이리하여 14∼15세기경부터 유럽 각국에서는 점차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형성되어 근대국가로서의 길이 열렸다.

2. 유럽 근대사회의 성립

봉건사회의 변질에서 싹튼 근대사회의 싹은 l4∼16세기경부터 18세기에 걸쳐 한층 더 성장하였다.

① 도시 중심의 상공업이 15세기 말부터 신대륙ㆍ신항로의 발견(지리상의 발견) 등에 의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아시아 무역,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무역 등의 전개로 상업은 세계적인 규모로 발전하였고, 대서양 연안의 여러 도시(리스본ㆍ안트베르펜ㆍ런던 등)는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의 경제적 발전에 수반하여 시민계급의 경제력도 향상됨으로써 근대사회의 주역으로서의 발언권도 가지게 되었다. 한편, 신대륙으로부터 금ㆍ은 등의 귀금속이 대량으로 반입되어 가격혁명(價格革命)이 발생하여 해체되어 가던 장원과 봉건적 경제사회는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② 로마교황권의 쇠퇴와 이단운동의 전개는 16세기 초 M.루터나 J.칼뱅 등의 종교개혁운동 전개에 의하여 결정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종교개혁과 그 뒤를 이은 종교전쟁의 결과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 신앙의 자유 확립 등 근대사회의 기본적 성격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개성의 자각, 또는 폭넓은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의 수립에 크게 기여한 것이 르네상스 이래의 휴머니즘의 발전이었다. 특히 17∼18세기에 보급된 계몽사상(啓蒙思想)은 자유ㆍ평등 등의 기본적 인권과 민주주의ㆍ사회계약설 등 근대사회의 기본적인 사상을 넓혀서 시민혁명의 사상적 무기가 되었다.

③ 중앙집권국가의 발전은 17∼18세기에 절대주의 국가(절대왕정)를 탄생시켰다. 군대와 관료를 기반으로 절대권력을 장악한 군주가 통치하는 절대주의 국가는 그 본질에 있어서 봉건국가의 재편성이지 결코 근대국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행정기구의 정비나 관료제도와 같은 통치기구의 집중성(集中性)에서 보면 근대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후, 귀족ㆍ승려 등의 봉건적 지배층을 대신해서 시민계급이 집중권력을 쥐고 지배층이 되었을 때 근대국가(정치적 근대사회)가 성립되는 것으로서, 이것이 곧 시민혁명이다.

그러나 시민혁명에 의하여 근대사회가 성립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은 산업혁명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산업혁명은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비롯되었고, 19세기 중엽부터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전개되어 자본주의 사회의 확립을 보게 되었다. 따라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이 두 가지가 유럽 근대사회 확립의 필수요소인 것이다.

3. 유럽 근대사회의 발전과 성격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겪으며 확립된 유럽 근대사회의 특색은, 바로 일반적인 근대사회의 특색이기도 하다.

① 종래의 거간제 수공업(居間制手工業)이나 공장제 수공업을 대신하여 공장제 기계생산이 지배적인 생산양식으로 등장, 값싼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즉, 생산력의 현저한 증대를 가져 왔다.

② 농업보다 공업이 현저히 발전하여 인구의 도시집중화 현상이 촉진되었으며, 신흥 공업도시가 많이 나타났다.

③ 종래의 지배계급이던 지주ㆍ귀족이나 절대왕권에 밀착된 상업자본가 계층이 후퇴하고, 공업생산에 투자하여 대단위 공장을 건설하고 많은 임금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에 종사하는 산업자본가의 세력이 커졌다.

④ 이러한 산업자본가의 성장에 수반하여 정치면ㆍ경제면에서 많은 민주적 개혁이 시도되었다. 예를 들면, 의회정치의 확립, 선거권의 확대, 경제적 자유(자유무역주의)의 확립 등 한마디로 말해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수립되기 시작하였다.

⑤ 공장과 기계 등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 계층과 노동력 이외에는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임금노동자 계층이 완전히 분리되어 사회적으로 계층의 대립이 표면화되었다.

⑥ 산업혁명의 진행과 함께 노동자의 임금이 하락하여 생활상태가 악화됨으로써 노동문제가 발생하였다.

⑦ 이러한 계급대립의 결과, 노동ㆍ사회 문제의 발생과 함께 사회주의운동ㆍ노동운동이 전개되어,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이상사회 실현의 사상과 운동이 진행되었다. 이들이 대략 유럽 근대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성격으로, 19세기 말이 되자 이러한 근대사회에도 여러 변질이 나타나 다시 현대사회로 옮겨 가게 되었다.

lll. 중국

1. 청조의 붕괴와 군벌

중국의 쑨원[孫文]은 삼민주의(三民主義)에서 중국인을 ‘산산이 흩어진 모래’에 비유하였다. 이는 국민을 결속시킬 근대사회의 유대성(紐帶性)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중국의 봉건사회는, 유럽의 여러 국가는 물론 동양의 다른 국가와도 달라서 할거제(割據制)가 아니고 수많은 공동체 위에 중앙집권적으로 군림하였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 안에는 강력한 지주제(地主制)가 존재하고 있어서 농민을 궁핍으로 몰아넣고 독립 자영농민층의 성장을 억제하였는데, 청조(淸朝) 말기에는 이러한 현상이 극도에 달하였다.

태평천국(太平天國:1850~1864)은 이의 타파를 위한 농민전쟁으로 중국의 근대혁명의 선구적 구실을 하였으나, 청조의 비호 아래 결속되어 있던 지주들의 연합세력에 의하여 압살되고 말았다. 그 후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辛亥革命)은 청조를 타도하고 공화국을 실현하였는데, 이 혁명은 부르주아혁명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결국은 군벌(軍閥) 세력에 의하여 유린되고 말았다. 즉, 청조를 기구적(機構的)으로 붕괴시켰을 뿐, 변혁은 사회구조에까지 미치지 못한 것이다.

청조라는 하나의 절대정권이 무너진 후에 군벌이라는 복수의 절대정권이 성립되어 중화민국의 공화정권도 이들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던 것에 불과하였다. 이 균형을 깨고 전국적 규모의 지배권력을 수립하기 위하여는 서로 투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각 단위(單位)에 열강의 이해가 결부되어 이른바 군벌혼전시대(軍閥混戰時代)를 가져 왔다.

2. 반봉건ㆍ반제국주의 투쟁

중국의 군벌들은 그들의 존립 기반을 무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직업적인 사병(私兵)을 양성하였고, 이의 유지를 위한 경비조달을 목적으로 농민들을 착취하였다. 결국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어야 할 계급 간의 대립이 실제로는 군벌의 바탕인 지주층과 착취의 대상이 되는 농민층의 대립으로 나타났는데, 더욱이 유럽의 봉건사회나 근대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단일조직의 사회가 어느 정도나마 형성되어 있지 못하고 공동체 내부의 인간관계(신분질서)가 그 조직의 취약성을 나타내었다. 즉, 유교적 윤리가 폭력정치에 의한 지배를 내부적으로 대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의 변혁은 우선 낡은 인간관계를 타도하기 위한 사상의 변혁이 선행되어야 하였다. 문학혁명(1917)에서 5ㆍ4운동(1919)에 이르기까지의 이른바 타도공가점(打倒孔家店), 즉 유교 타도운동의 의의는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5ㆍ4운동이 ‘근대화’를 타개하는 전환점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였다. 아편전쟁(阿片戰爭:1840∼1842) 이후 중국이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정책에 말려들고, 개개의 군벌들이 열강들의 이해와 결부되어 각기 봉건적인 구체제를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근대화의 전망은 어두웠다. 그러나 반제(反帝)ㆍ반봉건(反封建)이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청년학생을 선두로 중국 국민들이 이러한 점에 눈을 뜨게 되었을 때 5ㆍ4운동은 급격히 확대되었다. 국민을 눈뜨게 하는 일, 즉 ‘민중을 환기(喚起)시키는 일’은 각자가 올바른 인식을 가지면 되는 것이었다. 봉건제도와 제국주의 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국 국민은 20세기 초의 세계정세와도 연관성을 가지면서 변혁을 향하는 저력을 축적하였다. 쑨원이 5ㆍ4운동 시기에 '알고자 하는 바는 어렵고, 행하고자 하는 바는 쉽다(知難行易)'라고 설파한 것은 단순히 《서경(書經)》의 말을 역전(逆轉)시킨 것이 아니라 근대사회가 다가왔음을 올바르게 예언한 것이다.

3. 근대화와 노동자 계층

지역단위로 또는 내재적으로 성숙되어 온 계급대립은 공동체의 최소단위에서 더 격돌하였다. 특히 연해(沿海)지방과 내륙지방간의 경제적 불균형으로 인하여 혁명정세에도 불균형이 나타났다. 이리하여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은 사상변혁을 수반하면서 사회의 최소단위에서의 권력탈취에 의한 혁신으로 지방정권 내부를 구조적으로 전환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급자족적인 자연경제체제의 유지가 가능한 범위인 현(縣) 정도의 단위별로 농민들이 '단체를 결성'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단체들이 횡적으로 연결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을 때 비로소 '흩어진 모래'는 굳게 결합되어 구(舊)체제를 무너뜨릴 수가 있다. 이 최소단위인 농민들의 무장단체를 쑨원은 '농단군(農團軍)'이라 명명하였다.

쑨원이 농단군의 결성을 착상했을 때 발표한 '지권평균설(地權平均說)'은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의 원칙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 근대사회의 바탕이 되는 독립자영농의 창출(創出)을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924년의 국공합작(國共合作)에서 처음으로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과정에서 근대화된 중국사회는 유럽적인 근대사회는 아니었다. 쑨원이 시도했던 경자유기전의 원칙은 농업의 협동제로 변질되어 오히려 중국의 근대화를 역행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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