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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24 (화) 16:51
분 류 사전1
ㆍ조회: 3100      
[회화] 남종화 (한메)
남종화 南宗畵

중국 2대 화풍(畵風)의 하나. 남화(南畵)라고도 한다.

북종화에 대응하는 남종화라는 용어는 명나라 때 동기창(董其昌)·막시룡(莫是龍)·진계유(陳繼儒) 등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들은 스스로를 문인화의 본류(本流)라 자부하고 당시의 만력화단(萬曆畵壇)을 비판하며 독자적인 화풍을 펼쳤다.

남종화의 기본적 입장은, 학문이 깊은 이가(利家;직업적이 아니며 士氣에 찬 사람)로서 수묵(水墨)과 담채(淡彩)를 사용하여 간략조방(簡略粗放)·경담청아(輕淡淸雅)한 그림을 추구하였다. 정신적으로는 기교에 바탕을 둔 객관주의보다 문인적 교양을 수반한 인격표현을 중시했는데, 이것은 당시 유행한 선종사상(禪宗思想)의 영향이 컸다.

당시의 선종사상은 점수적(漸修的) 성격을 띤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과 돈오적(頓悟的) 성격을 지닌 혜능(慧能)의 남종선(南宗禪)으로 나누어진다. 혜능이 선종의 육조(六祖)가 된 후 간략함을 추구하는 남종선이 번성했는데, 이것을 계기로 하여 회화에서도 북종과 남종으로 구분되었다.

북종은 세밀한 윤곽선에 의해 착색산수(着色山水)를 그리는 이사훈(李思訓)으로부터 시작되고, 남종은 선담(渲淡)으로 이사훈 등의 구작법(鉤斫法)을 일변한 왕유(王維)로부터 시작된다. 즉, 그림에서도 선(禪)의 돈오와 비교할 수 있는 남종화가 번성한 것이다.

막시룡에 의하면 북종은 이사훈·이소도(李昭道)·조간(趙幹)·조백구(趙伯駒)·조백숙·마원(馬遠)·하규(夏珪)로 이어지고, 남종은 왕유·장조(張璪)·형호(荊浩)·관동(關同)·곽충서(郭忠恕)·동원(董源)·거연(巨然)·미불·미우인(米友仁)·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黃公望·吳鎭·倪瓚·王蒙)로 이어져, 동기창·진계유가 말하는 계보와 차이가 있다.

북종화와 남종화의 계보는 전통적인 선묘(線描)를 골격으로 하는 직업화가 이사훈과 파묵산수(破墨山水)를 그려 초기 수묵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시인 왕유를 각각 그 시조(始祖)로 함은 이해가 되나, 이 두 사람의 뒤를 잇는 계보는 역사적 사실과 모순되는 점이 있어 동기창 등이 조작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뒤 남종은 심주(沈周)·문징명(文徵明)·동기창에서 청나라 초기의 사왕(四王;王時敏·王鑑·王原祁)으로 이어지고, 북종은 남송화원(南宋畵院)의 마원·하규·이당(李唐)·유송년(劉松年)의 뒤를 이어받아 명나라 화원(畵員)의 대문진(戴文進)에 이른다.

당초 동기창 등이 말하는 문인화(남종화)는 원나라 이후 산업·상업의 발달에 따라 성숙해진 시민계급의 그림으로, 다양한 그 시대의 분위기가 정교하게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하여 궁정화가와 직업화가들은 남송화원의 기술적인 세련미를 이어받아 산수·화조(花鳥)·인물 등에서 그 장점을 발휘하였다.

심주·문징명 이후에는 문인화의 혼돈이 시작되었는데, 문인화의 직업화가 일어나 형식화(形式化)가 뚜렷해지고 많은 화가들이 배출되어 그 신분도 항간의 화공(畵工)으로부터 문인에까지 이르렀으며, 그 작풍도 지방색과 개성이 뚜렷해졌다. 이런 혼란에 어떤 질서를 세우려는 의도가 <남종·북종론>에 보인다.

따라서 남종화는 원말 사대가 이후 명·청시대 문인화의 이상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남종화란 강남의 풍경을 그린다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포함하는데, 강남산수화 제작에서 개발된 기법·구도가 그 본질을 이룬다. 수묵기법도 강남에서 많이 발달하였다. 오대(五代)의 궁정화가 동원(董源)은 화베이〔華北〕의 구성주의적 산수와는 다른 평담천진(平淡天眞)이라는 소박한 묘사로 풍경을 그려, 부드러운 준법의 피마준을 고안해냈다.

또한 북송(北宋)의 미불은 극도로 발달한 수묵기법으로 변환(變幻)하는 운산(雲山)을 그려 미점(米點)이라는 기법을 창안하였다. 이들은 남송화원에도 영향을 주어 원말 사대가 이후 남종화의 기술적 전통의 근간을 이루었다.

남종문인화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것에 바탕을 둔 제작을 주장하여 문인화의 형식화·무기력화를 두드러지게 한 동기창에 뒤이어 청나라 초기 사왕이 출현하자 남종문인화는 아카데미즘을 형성하게 되어 청나라 궁정화풍을 풍미했다.

화조화(花鳥畵)에서도 오대·송나라 초기부터 착색과 수묵, 사생(寫生)과 사의(寫意) 등 2개 유파가 공존했는데, 진순(陳淳)·서위(徐謂) 등은 윤곽을 이용하지 않고 수묵·색채 또는 거친 수묵으로 사의적인 화초를 그렸다.

청나라 초기의 운수평도 몰골법(沒骨法)으로 화조를 그려 그들과 함께 남종 화조화의 전통을 만들었다. 청나라 중기 이후 남종화가의 수는 급증했으나 직업화가가 대부분으로, 세속에 영합하는 경향이 짙었다.

[한국의 남종화]

한국에서는 정형화된 남종화가 조선 숙종 후반기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영조·정조 이후 주도적인 화풍으로 보급되었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패문재서화보(佩文齋書畵譜)》 등 명·청 남종화계 화보류(畵譜類)의 영향으로 보급된 남종화는 심사정(沈師正)·강세황(姜世晃)·이인상(李麟祥)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남종화풍의 진정한 보급과 토착화는 김정희파(金正喜派)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서화본일률(詩書畵本一律)을 추구한 김정희의 작품은 중국 문인화에 비해 손색이 없으며, 그의 영향 아래 허유(許維)·조희룡(趙熙龍)·전기(田琦) 등 여러 화가가 배출되었다.

그 밖에도 묵란(墨蘭)의 대가 이하응·민영익(閔泳翊) 등에 의해 진작(振作)된 조선 말의 문인화풍은 근대화단으로 계승되어 오늘날까지 맥을 잇고 있다. → 북종화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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