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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5-23 (목) 19:42
분 류 사전1
ㆍ조회: 3278      
[사찰] 합천 해인사 (민족)
해인사(海印寺)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伽倻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의상(義湘)의 화엄10찰(華嚴十刹) 중 하나이고, 팔만대장경판(八萬大藏經板)을 봉안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며,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합 수도도량이다. 이 절은 신라 애장왕 때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하였다.

신림(神琳)의 제자 순응은 766년(혜공왕 2) 중국으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가 수년 뒤 귀국하여 가야산에서 정진하였으며, 802년(애장왕 3) 해인사 창건에 착수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성목태후(聖穆太后)가 불사(佛事)를 도와 전지(田地) 2,500결(結)을 하사하였다. 갑자기 순응이 죽자 이정이 그의 뒤를 이어 절을 완성하였다.

해인사의 해인은 ≪화엄경≫ 중에 나오는 ‘해인삼매 (海印三昧)’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해인사는 화엄의 철학, 화엄의 사상을 천명하고자 하는 뜻으로 이루어진 화엄의 대도량이다. 창건주인 순응은 의상의 법손(法孫)으로서, 해인삼매에 근거를 두고 해인사라 명명하였던 사실에서 그의 창사(創寺)의 이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화엄의 철학, 화엄의 사상을 널리 펴고자 하였다.

이러한 창사의 정신은 뒷날에도 오래오래 받들어져, 고려 태조의 복전(福田)이었던 희랑(希朗)이 이곳에서 화엄의 사상을 펼쳤다. 현재 해인사의 사간장경(寺刊藏經) 중에 화엄의 문헌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 등도 이를 입증하는 자료가 된다. 특히, 고려의 태조는 희랑이 후백제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고 해동 제일의 도량으로 만들었다.

즉, 희랑이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태조를 도와 승전하게 하였으므로, 태조는 전지 500결을 헌납하여 사우(寺宇)를 중건하게 하였다. 1398년(태조 7)에는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팔만대장경판을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옴으로써 해인사는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그 뒤 세조는 장경각(藏經閣)을 확장하고 개수하였다.

1483년(성종 14)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해인사 중건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1488년 인수왕비(仁粹王妃)와 인혜왕비(仁惠王妃)가 학조(學祖)에게 공사를 감독할 것을 명하고 대장경판당(大藏經板堂)을 중건하였다. 또한, 3년 동안의 공사 끝에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하여 법당과 요사 160칸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1695년(숙종 21)에 불에 타서 여러 요사와 만월당(滿月堂)·원음루(圓音樓)가 불탔고, 그 이듬해 봄에 또 불이 나서 서쪽 여러 요사와 무설전(無說殿)이 불타버리자 뇌음(雷音)이 중건하였다. 1743년(영조 19)에 또 실화하여 큰 축대 아래 수백 칸이 불타 버렸지만, 당시 경상도관찰사 김상성(金尙星)의 도움으로 능운(凌雲)이 중건하였다. 또, 1763년에 실화하였으나, 관찰사 김상철(金尙喆)의 협조로 설파(雪坡)가 중건하였으며, 1780년(정조 4)에 불이 나자 5년 만에 성파(惺坡)가 중건하였다.

1817년(순조 17)에 다시 큰불이 나서 수천 칸이 모두 불타버렸는데, 관찰사 김노경(金露敬)의 도움으로 영월(影月)·연월(淵月) 등이 소규모로 중건하였으며, 1871년(고종 8)에 법성료(法性寮)가 다시 불에 탔다. 이 절은 창건 이래 수많은 화재를 겪었으나 장경각만은 온전히 보전되어 왔다.

조선 시대의 불교 탄압시에 36개의 사찰만을 남겨둔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 해인사는 교종(敎宗) 18개 사찰 중의 하나로 남아 전답 200결과 승려 100명을 지정받았다. 또, 1902년에 원흥사(元興寺)를 전국의 수사찰(首寺刹)로 정하고 전국에 16개 중법산(中法山)을 두었을 때 이 절은 영남 중법산으로 수사찰이 되었으며, 1911년에 전국을 31본산(本山)으로 나누었을 때 16개 말사를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현재는 말사 75개와 부속 암자 14개를 거느리고 있으며, 대법보사찰로서 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 등을 갖춘 총림(叢林)으로서 한국불교의 큰 맥을 이루고 있다. 이 절의 당우로는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冥府殿)·삼성각·응진전·조사전·퇴설당(堆雪堂)·응향각·관음전·궁현당(窮玄堂)·구광루(九光樓)·경학원(經學院)·명월당(明月堂)·사운당(四雲堂)·해탈문·국사단(局司壇)·봉황문(鳳皇門)·일주문(一柱門) 등이 있다.

중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32호인 대장경판과 국보 제52호인 장경판전, 보물 제264호인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518호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8호인 반야사 원경왕사비, 국보 제206호와 보물 제734호로 지정된 고려각판, 보물 제999호로 지정된 목조희랑대사상, 보물 제1273호인 해인사 영산회상도, 사간장경 중의 보물 다수 등이 있다.

① 대적광전:이 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6호로 지정된 대적광전은 법보사찰 해인사의 중심 법당이다. 창건 이후 건물의 내력에 대하여는 알 수 없으나, 현 건물은 1817년(순조 17) 제월(霽月)과 성안(聖岸)이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 봉안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보현보살상(普賢菩薩像)은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삼존상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성주군 금당사(金塘寺)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이 절이 폐사될 때에 용기사(龍起寺)로 옮겨졌다가 1897년 범운(梵雲)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에 봉안되었으며, 원래부터 있던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지장보살·보현보살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한편 대적광전에서는 1996년 9월 비로자나불상 등에서 1326년(충숙왕 13)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의복, 지공(指空)의 〈문수최상승무생계법〉 계첩(戒帖)을 비롯한 여러 유물과 불단 진단구(鎭壇具)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 2점 등이 출토되었다.

② 장경각:장경각은 법보사찰 해인사의 기본 정신을 대변해 주는 건물이다. 민족의 지보(至寶) 고려대장경판을 봉안해 둔 2개의 판전으로서, 경판의 보관을 위한 가장 과학적이고 완전무결한 걸작으로 인정받은 건물이다. 이 장경각과 고려대장경판은 1995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③ 기타 전각:명부전은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며, 목조지장보살 및 시왕상(十王像)이 봉안되어 있다. 크기는 19평으로 1873년(고종 10)에 담화대사(曇華大師)가 옛 금탑전(金塔殿) 자리에 신축하고, 경상남도 웅천(熊川)의 성흥사(聖興寺)에서 옮겨온 시왕상을 봉안하였다.

응진전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며, 소조(塑造) 석가여래 및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크기는 23평으로 본래는 해행당(解行堂)이며, 1488년(성종 19) 학조대사가 창건하여 역대선사의 영정(影幀)을 봉안하였던 곳이다. 현재 건물은 1817년 성안대사가 중건하였고, 내부의 나한상은 1918년 판전 서재(西齋)에서 옮겨 봉안하였다.

응향각은 노전(爐殿)이라고도 하며 크기는 74평으로 1936년에 고경(古鏡)이 건립하고, 현재는 선원(禪院)으로 사용하고 있다. 퇴설당은 70평으로 1817년 제월대사가 건립하였고, 현재 선원으로 쓰이고 있다. 행해당(行解堂)은 조사전(祖師殿)이라고도 하며 순응·이정 등 50여 조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크기는 14평으로 1899년 범운대사에 의하여 건립되었고, 본래는 희랑조사상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보장전(寶藏殿)으로 이안되었다.

심검전(尋劍殿)은 관음전이라고도 하며, 목조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크기는 3동 80칸으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고, 현재 건물은 1908년 회광(晦光)이 천상궁(千尙宮)의 시주로 중건하였으며, 현재 요사로 사용되고 있다. 궁현당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3동 80칸으로 1407년 학조대사가 중건하였고, 1963년 해붕(海鵬)이 삼창(三創)하였으며, 1908년 회광이 관음전과 함께 중건하였다. 현재는 불교전문강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학원은 경홍전(景洪殿)이라고도 하며 크기는 34칸이다. 1892년 민형탁(閔炯托)의 뜻에 의하여 범운대사가 건립하였다. 처음 왕·왕후·태자의 삼전위축소(三殿爲祝所)로 건립되어 경홍전이라 불렸다. 구광루는 크기는 67평으로 1818년 감사(監司) 김이재(金履載)의 주선으로 건립되었다. 본래는 재식시(齋式時) 법요(法要)를 집행하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사중의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동쪽 한칸은 종고루(鐘鼓樓)로 사용되었다.

명월당은 크기는 146평으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고, 현재 건물은 1940년 설호대사(雪琰大師)가 중건하였다. 사운당의 크기는 146평으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고, 1940년 설호대사가 중건하였다. 예전에는 승정(僧政)을 행하였고, 지금은 종무소(宗務所)로 사용되고 있다.

해탈문의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1817년 중건하였고, 1899년 범운대사가, 1940년 사중에서 중수하였다. 국사단은 6평으로 현건물은 1855년에 건립하였으며, 1899년 범운대사가 중수하여 국내(局內)를 맡은 신을 안치하였다. 봉황문은 1817년 건립하였으며, 사천왕탱(四天王幀)이 안치되어 있다. 일주문은 1940년에 건립되었다.

④ 기타 문화재:그 밖의 해인사의 성보(聖寶)로는 정중탑(庭中塔)·묘길상탑(妙吉祥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4호인 삼층석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5호인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5호인 사명대사비 및 부도, 가야산석불(石佛)·원경왕사비(元景王師碑)·홍치4년명동종(弘治四年銘銅鐘)·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금은자사경(金銀字寫經)·희랑조사상·세조영정(世祖影幀)이 있다.

그리고 상탑향로(象塔香爐)·무공수정(無孔水晶)·옥등잔(玉燈盞)·진주등(眞珠燈)·순은화병(純銀花甁)·관욕소관(灌浴哨罐)·오동향로(烏銅香爐)·순은다기(純銀茶器)·순은향로(純銀香爐)·순은방향로(純銀方香爐)·향로개(香爐蓋)·요령(搖鈴)·감로병(甘露甁)·일영의(日影儀)·봉촉대(鳳燭臺)·귀형촉대(龜形燭臺)·관복(官服)·오조어필첩(五朝御筆帖)·법라(法螺)·옥제조화(玉製造花)·금강저(金剛杵)·각사인(各寺印)·헌종어필(憲宗御筆)·삼보인(三寶印)·계첩석판(戒牒石版)이 있다.

또 팔상병(八相屛)·33조사영병(祖師影屛)·복수수병(福壽繡屛)·숙종어필(肅宗御筆)·화초수병(花草繡屛)·화조오채병(花鳥五彩屛)·흑판복수병(黑板福壽屛)·복수채병(福壽彩屛)·대화로(大火爐)·금산첩(禁山牒)·방울·대종(大鐘)·소종(小鐘)·경허(鏡虛)친필·명문와(銘文瓦)·향합(香盒) 등이 있다.

해인사를 도량으로 삼고 머물렀던 고승들 가운데 불교사를 통하여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이들로는 사명대사(四溟大師)·선수(善修)·희언(熙彦)·각성(覺性) 등이 있다. 그리고 사상적인 맥을 따질 때, 이 절이 화엄사찰이므로 의상대사를 비롯하여 신림·희랑 등 신라시대의 화엄의 대가들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려 시대에 와서는 의천(義天)·경남(敬南) 등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학조·체정(體淨)·유기(有璣)·유일(有一)·상언(尙彦)·유안(油安)·성여(性如) 등 유명한 승려들이 이 절에 머물렀다. 또한, 역대 명인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이 다른 사찰들에 비하여 두드러진 점이다. 말년에 가야산에 들어와 생애를 마친 최치원(崔致遠)이라든가 대장경 조성에 전설적인 이야기를 남긴 이거인(李居仁), 김정희(金正喜), 그리고 홍길동으로 알려져 있는 정인홍(鄭仁弘) 등은 모두 이 절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산내 암자 중 유서가 깊거나 규모가 큰 것은 신라 왕실의 원찰(願刹)로 전해지는 원당암(願堂庵)을 비롯하여, 백련암(白蓮庵)·지족암(知足庵)·희랑대(希朗臺)·국일암(國一庵)·약수암(藥水庵)·용탑암(龍塔庵)·삼선암(三仙庵)·금선암(金仙庵) 등이 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東文選, 新增東國輿地勝覽, 朝鮮寺刹史料(조선총독부, 1911), 朝鮮佛敎通史(李能和, 新文館, 1918), 朝鮮金石總覽(조선총독부, 1919), 陜川海印寺誌(韓贊奭, 1949), 海印寺誌(金雪醍, 1963), 韓國의 寺刹 7-海印寺-(韓國佛敎硏究院, 一志社, 1975).

<홍경희>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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