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3 (수) 10:29
분 류 사전1
ㆍ조회: 1373      
[정치] 재상 (민족)
재상(宰相)

관련 항목 : 재신

국왕을 보필하던 최고위 정치담당자를 부르던 칭호. 재보(宰輔)·재신(宰臣)·재추(宰樞)·대신(大臣)·상공(相公)이라고도 한다.

어원적으로 보면 ‘재(宰)’는 요리를 하는 자, ‘상(相)’은 보행을 돕는 자로 둘 다 노예적인 일을 수행하는 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진(秦) 이래로 최고행정관을 뜻하는 것으로 전용되었다.

고대 중국의 진·전한(前漢)에서는 승상(丞相)·태위(太尉)·어사대부(御史大夫)의 3공(三公)을 재상으로 불렀고, 후한대에서 청대에 이르기까지는 사도(司徒)·태위·승상·상서령(尙書令)·동중서문하평장사·중서령·내각대학사 등을 재상으로 불렀다.

우리 나라의 재상은 진 이래로 중국의 역대 왕조가 사용한 재상에서 기원되었다. 백제는 554년(위덕왕 1) 이전에 내신(內臣)·내두(內頭)·내법(內法)·위사(衛士)·조정(朝廷)·병관좌평(兵官佐平)을 재상으로 불렀다. 신라도 어떠한 관직을 재상으로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554년(진흥왕 15) 이전에 재상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통일신라는 676년(문무왕 16) 이전에 재상 칭호를 사용하였다. 어떠한 관직을 재상으로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785년(원성왕 1) 이전에 상대등(上大等)·병부령(兵部令)·시중(侍中) 등을 재상으로 불렀다.

그런데 통일신라의 재상은 관직의 높고 낮음이나 왕위계승서열과 관련, 대재상(大宰相)·차재상(次宰相)·상재(上宰)·이재(二宰)로 구분되기도 하였다.

고려는 당·송대의 관제에 영향을 받아 국초부터 재상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고려 전기의 재상은 외면적으로 다음 [표 1] 에서 제시된 종2품 이상의 모든 관직자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나라·송나라와 비슷하게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시중(侍中) 이하 5직 8인과 중추원의 판사(判事) 이하 7직 9인만을 재상(또는 재추)으로 불렀다.

이것도 이들 관직(자)의 국정에서의 기능과 관련해 중서문하성의 2품 이상은 재신·성재(省宰)·진재(眞宰)·재보로 호칭하면서 진정한 재상으로 중시한 반면에 중추원의 2품(일부는 3품) 이상은 추신(樞臣)으로 차별해 불렀다.

재상으로 인식된 2품 이상의 관직 수는 원간섭기 이전까지는 전기의 수가 큰 변동 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는 통치질서의 문란, 권문세족과 도평의사사의 대두 등과 함께 크게 확대되어 1302년(충렬왕 28)에는 28직(인)으로, 1376년(우왕 2)에는 60여직으로, 1389년(창왕 1)에는 80여직으로 각각 증가되었다.

재상의 국정 참여는 고려시대의 정치정세 등과 재상의 수에서 전기에는 중서문하성의 재상을 중심으로 한 정치가 운영되었다. 그러나 무신집권기에는 집정(執政) 이외의 재상은 유명무실하였다.

그 뒤 원간섭기 이후에는 재상의 과다한 국정 참여로 인한 정치질서의 문란과 폐단의 시정 도모 등과 관련되어 몇 명의 재상으로 임명된 내재추(內宰樞, 또는 別廳宰樞)나 내상(內相) 중심의 국정운영으로 변질되었다. 또, 중서문하성의 재상은 그 위차(位次)에 따라 수상(首相)·아상(亞相)·삼재(三宰)∼팔재(八宰)로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은 고려의 관제를 계승해 국초부터 재상의 호칭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중국·고려와는 달리 종2품 이상의 관직자(관인) 모두를 재상으로 인식하고 호칭하였다. 재상의 수는 개국과 함께 고려 말의 문란된 통치질서를 개선하고 남설된 관직을 크게 축소함에 따라 1392년(태조 1)에는 50여인으로 감소되었다.

그러나 이후의 육조 지위 강화 및 도제의 정비 등과 함께 1405년(태종 5)에는 60여인으로, 1432년(세종 14)에는 70여인으로, 1434년에는 60여인으로 각각 변천되었다. 그리고 1434년의 그것이 토대가 되어 ≪경국대전≫의 편찬과 함께 다음 [표 2] 의 인원과 같이 명문화되면서 조선 말기까지 큰 변동 없이 계승되었다.

재상의 국정 참여는 왕권·행정체계 등과 관련되어 다소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1555년(명종 10)에 비변사가 상설기관이 되기까지는 대개 의정부·육조의 정2품 이상 관직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 이후는 비변사도제조·제조를 겸직한 의정부·육조·4부(개성·광주·수원·강화)·3군문(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등의 종2품관 이상을 중심으로 영위되었다.

또, 의정부의 재상은 국정에서의 기능 및 위차와 관련되어 정승이나 3공·2재·3재·4재로 호칭되었다. 또한 모든 재상은 대유한 품계나 출신 등과 관련되어 1품재상·2품재상·문신재상·무신재상·종친재상(종재)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 밖에 문반·무반의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 (通政大夫)·절충장군(折衝將軍)의 관직자도 재상은 아니었지만 국정 참여나 경제적·사회적·신분적 대우면에서 재상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특히 승정원의 도승지 등 6승지는 왕명출납·시종의 기능에서 재상으로 인식됨은 물론, 때로는 의정이나 판서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高麗史, 朝鮮王朝實錄, 增補文獻備考, 大典會通, 九通分類摠纂, 上大等考(李基白, 歷史學報 19, 1962), 高麗宰相考(邊太燮, 歷史學報 35·36合輯, 1967), 高麗都堂考(邊太燮, 歷史敎育 11·12合輯, 1969), 朝鮮備邊司考(李載浩, 歷史學報 50·51合輯, 1971), 朝鮮初期의 觀察使(張炳仁, 韓國史論 4, 서울大學校, 1978), 朝鮮初期六曹硏究(韓忠熙, 大丘史學 20·21合輯, 1982), 中國歷代職官辭典(日中科學硏究所編, 圖書刊行會, 1980).

<한충희>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윗글 [정치] 재상 (두산)
아래글 [고려] 재신 (민족)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830 사전1 [중국] 양무운동 (한메) 이창호 2002-10-23 1205
2829 사전1 [중국] 양무운동 (두산) 이창호 2002-10-23 878
2828 사전1 [중국] 태평천국 (한메) 이창호 2002-10-23 1129
2827 사전1 [중국] 태평천국 (두산) 이창호 2002-10-23 1063
2826 사전1 [발해/고려] 육부 (한메) 이창호 2002-10-23 1004
2825 사전1 [고려] 육부=육조 (두산) 이창호 2002-10-23 948
2824 사전1 [고려] 육부 (민족) 이창호 2002-10-23 1005
2823 사전1 [정치] 재상 (한메) 이창호 2002-10-23 943
2822 사전1 [정치] 재상 (두산) 이창호 2002-10-23 843
2821 사전1 [정치] 재상 (민족) 이창호 2002-10-23 1373
1,,,11121314151617181920,,,30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