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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11-01 (목) 19:10
분 류 사전1
ㆍ조회: 768      
[조선] 족보 (한메)
족보 族譜

일족(一族)의 계보(系譜)를 기록한 가계보(家系譜).

중국 후한(後漢)시대에 왕실의 계보를 기록한 것이 그 시초이다. 한국에서도 고려 시대부터 편찬되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족보로서는 1476년에 발간된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성화보(成化譜)가 있다. 한국에서 족보의 발생은 벌족(閥族)의 세력이 서로 대치하고, 동성일족(同姓一族)의 관념도 매우 뚜렷하게 된 이후의 일이며, 족보 간행을 촉진시킨 요인은 ① 동성 불혼(同姓不婚)과 계급 내혼제(階級內婚制)의 강화 ② 소목질서(昭穆秩序) 및 존비 구별(尊卑區別)의 명확화 ③ 적서(嫡庶)의 구분 ④ 친소(親疏)의 구분 ⑤ 당파별(黨派別)의 명확화 등이었다.

족보에는 편찬할 때의 서문(序文)과 선조(先祖)·현조(顯祖)의 사적(事蹟)·행장기(行狀記)·묘비문(墓碑文), 현조의 묘(墓)나 조묘(祖墓)의 소재도(所在圖) 등이 기재되며, 또 시조(始祖)부터 현세대에 이르는 일족 전체의 남성성원(男性成員)의 이름·자·호·시호(諡號)·관직 생몰 연월일 및 묘의 소재지, 배우자의 성과 본관 등이 기재된다. 다만 여자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으며, 남편의 성명·본관 그리고 아들의 이름이 기록될 뿐, 철저한 남계중심의 기록이다.

족보는 현대에 와서는 누구든지 만들어도 되지만, 봉건 사회에서는 양반 씨족이 아니면 가질 수가 없었는데, 말하자면 양반이라는 증서와 같은 것이었으며, 이것이 없으면 상민(常民)으로 전락하여 병역 등이 부과되므로, 조선 시대 중기 이후 족보 편찬 사업이 활발해졌다.

족보에는 시조부터 현세대에 이르기까지의 일족을 망라한 대동보(大同譜)와 유력한 인물을 파조(派祖)로 하는 일파를 단위로 해서 편찬되는 파보(派譜)가 있다. 대동보의 편찬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대씨족(大氏族)인 경우 거의 불가능하고, 따라서 30∼40년마다 편찬되는 파보가 주가 되지만, 이 시조까지의 계보와 각 파간의 계통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족보는 한 성씨의 역사 기록이고 가계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사문서(私文書)이지만 공문서의 성격도 지닌다. 족보의 기록을 통하여 자기 조상의 업적을 찾아보고 종중(宗中)의 협동과 상부상조, 그리고 교화의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는 사회 통합적 기능도 아울러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족보가 단순히 가계의 기록만이 아니라 종중(宗中)의 단합과 사회적 통합의 기능을 지닌다고 할 때 그것은 오늘날에도 존재 의의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최근에는 족보 안에 사진을 넣거나 한글로 풀어쓰거나 영상 자료 형태로 제작하는 등 여러 새로운 양식들이 시도되고 있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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