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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8-20 (화) 17:22
분 류 사전1
ㆍ조회: 591      
[조선] 김신국 (두산)
김신국 金藎國 (1572~165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청풍. 자 경진(景進). 호 후추(後簫). 1591년(선조 24) 생원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남에서 의병 1,000여 명을 모집 ·분전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고 참봉(參奉)이 되었다. 1593년 전주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거쳐 도원수 권율(權慄)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였다. 정언(正言)을 거쳐 1599년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어 어사로서 관서지방을 순시하였다. 북인(北人)이 소북(小北) ·대북(大北)으로 갈라지자, 소북의 영수로 대북을 공격하다가 그들에 의해 삭직되었다.

충주에 은거하면서, 《경현록(景賢錄)》을 편찬하였다. 1608년 보덕(輔德)으로 기용되고, 광해군 때 사간(司諫)을 거쳐 익사공신(翼社功臣)에 책록, 청릉군(淸陵君)에 봉해졌다. 평안도관찰사 ·우참찬(右參贊) ·호조판서를 거쳐,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광해군 때의 훈작(勳爵)이 삭제되었다. 곧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당시 후금(後金)의 침략에 대비하여 성지(城池)수축 ·군량저축 등에 힘썼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국문(鞫問)을 당했으나, 혐의가 없음이 밝혀졌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호조판서로서 이정구(李廷龜)와 함께 금나라 사신과 화약을 논정(論定)하고, 공조와 형조의 판서를 지냈다. 1635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끝까지 싸울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듬해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昭顯世子)를 선양[瀋陽]에 배종(陪從)하였다. 1640년 귀국하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646년 중추부영사가 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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