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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19 (목) 08:37
분 류 사전1
ㆍ조회: 513      
[조선] 훈민정음 (한메)
훈민정음 訓民正音

1) -> 한글

2) 조선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1446년(세종 28) 정인지(鄭麟趾) 등이 왕명으로 설명한 한문해설서. 책 이름은 그 글자 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解例)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집필자들은 정인지·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강희안(姜希顔)·이개·이선로(李善老) 등 집현전의 8학자이다. 현존본은 1940년 무렵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와룡면(臥龍面) 주하리(周下里)에 있는 이한걸(李漢杰)의 집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고(故) 전형필 소장본이며 아직까지는 국내 유일본이다. 33장 1책. 목판본. 국보 제70호. 간송미술관 소장.

[구성]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과 훈민정음의 음가(音價) 및 운용법(運用法)을 밝힌 예의편(例義篇)이 본문처럼 되어 있고 이를 해설한 해례편이 제자해(制字解)·초성해(初聲解)·중성해(中聲解)·종성해(終聲解)·합자해(合字解)·용자례(用字例)의 순으로 나눠 기술되고 있으며 책 끝에 정인지의 서문이 실려 있다. 예의 부분은 1면이 7행에 매행 11자, 해례 부분은 8행에 매행 13자이며, 정인지의 서문은 1자씩 낮추어서 매행 12자로 되었다.

이 책도 발견 당시 완전한 것은 아니었고, 처음 2장이 빠져 있던 것을 나중에 붓글씨로 적어넣었던 것인데, 적을 때 실수하여 세종어제서문의 끝자 <이(耳)>가 <의(矣)>로 바뀌었다.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실록본>에는 <이(耳)>로 기록되어 있다.

<세종어제서문 및 예의편>

세종어제 서문에서는 표기수단을 가지지 못한 비지식층 백성들에게 표기수단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세종이 친히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고 창제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어 중국 36자모표에 나오는 한자를 그대로 이용하지 않고, 외래어인 한자어의 전래자음(傳來字音)을 이용, 새로 만든 글자인 훈민정음의 음가를 설명하였다.

이 중에서 초성 23자모체계는 비록 전래자음을 가지고 음가를 설명하기는 하였으나 중국 36자모체계의 영향을 받은 체계였으며, 인위적인 개신(改新)의도를 가지고 정리하였던 《동국정운(東國正韻)》 23자모체계와도 일치하여 15세기 중세국어의 초성체계와 부합되지 않는 면도 있다〔표 1〕.

전청·차청과 같은 술어는 제자해에 나오며, 예의편에서는 단지 아음(牙音)·설음(舌音)·순음(脣音)·치음(齒音)·후음(喉音) 등 5음(五音)분류만 표시하였고, 전탁(全濁)은 병서(竝書)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초성자의 설명을 위하여 이용한 한자들은 중성자와 종성자도 그대로 설명할 수 있도록 고른 것이었다. 중성자는 로 정하였는데, 분명히 이중모음인 <요야유여>도 기본단위자로 삼은 것이 특색이었고, 종성자는 초성글자를 다시 써서 표시하도록 규정하였다.

예의편의 끝에서는 연서(連書)와 병서·합용(合用) 등의 표기방식과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초성·중성·종성 글자를 자소(字素)처럼 써서 음절단위로 쓸 것을 규정하였고, 각 음절마다 방점으로 성조를 왼쪽에 표시하도록 하였다.

<해례편>

해례편은 새로 만든 글자의 제자원리를 주로 밝히고, 그 음가·운용법, 이 문자가 표시하는 음운체계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다만 조선 초기에는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을 통하여 송학사상(宋學思想)을 고도로 수용하고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해례편의 기술에 있어서도 송학이론을 적용하여 일종의 언어철학을 전개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제자원리나 모음자(母音字)의 음가에 대한 설명 등은 현대의 음성학이나 언어학의 이론에도 부합되는 과학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이 해례편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 나온 훈민정음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훌륭한 학술서적이기도 하다.

제자해에서는 《태극도(太極圖)》 《역학계몽(易學啓蒙)》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등 송학계통의 서적에서 이론을 섭취, 제자해의 첫머리부터 태극(太極)·음양(陰陽)·오행(五行)과 결부된 언어관을 제시하고, 훈민정음의 창제도 성음(聲音)에 따라 음양의 이치를 다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훈민정음의 제자원리가 상형(象形)에 있음을 말하고, 자음자(子音字)의 제자에 있어서는 먼저 조음위치별(調音位置別)로 기본이 되는 초성자를 정하고, 이 기본자들은 각각 그 조음방식 또는 조음위치를 상형하여 제자된 것임을 말하였다.

즉 초성 17자 가운데 아음의 <텕>은 설근(舌根)이 목구멍을 막는 형상을, 설음의 <텖>은 혀가 입안의 위 천장에 붙은 형상을, 순음의 <텙>은 입의 형상을, 치음의 <텛>은 이의 형상을, 후음의 <텞>은 목구멍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각 조음위치에서 발음되는 자음은 그 발음이 세게 나는 정도에 따라 이 기본문자에 획을 더하여 제자한다고 하였다(예를 들어 텖→텗→텤). 계속하여 다시 오행설을 가지고 각 자음을 오행·계절·음계(音階)·방위 등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오행과 결부된 오성(五聲)의 음상을 발음기관 및 오행의 특질과 연관시켜서 설명한 다음, 중국의 전통적인 어두자음(語頭子音) 분류법인 36자모표의 분류방식에 따라 훈민정음의 자음자를 설명하였다〔표 2〕.

다음에 전탁의 음가는 뀤전청소리가 엉긴 것뀥이라고 설명하고, 훈민정음 28자와 따로 제정한 순경음(脣輕音)의 음가는 뀤가벼운 소리를 가지고 입술을 잠깐 합하고 목구멍소리(숨소리)가 많다뀥고 하였다. 중성글자는 초성글자와는 달리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를 상형하여 기본모음자 뀤?으이뀥를 제자하였음을 말하고, 이들 기본모음자에 대하여 〔표 3〕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 세 기본모음자는 중세국어의 7단 모음체계를 세 갈래로 보고 제자한 것으로서, 뀤이뀥 모음을 별도로 보고, 뀤?뀥 모음계열, 뀤으뀥 모음계열로 나누어서 나머지 모음자들(으아우어;이를 初出字라고 하였음)을 제자하였음을 설명하였다〔표 4〕.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다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오우 입을 오므림

??

?으

??

아어 입을 벌림(口張)

중성 11자 가운데 나머지(요여유여;이를 再出字라고 하였음)는 뀤이뀥에서 시작되는 음으로 보고(起於이), 이어 《역경(易經)》 뀤계사상(繫辭上)뀥 제 9 장에 나오는 뀤천일(天一), 지이(地二), 천삼(天三), 지사(地四), 천오(天五), 지육(地六), 천칠(天七), 지팔(地八), 천구(天九), 지십(地十)뀥의 천수(天數)와 지수(地數)를 가지고 중성글자들을 설명하기도 하고, 초·중·종 세 글자들의 결합을 설명하기도 하였다〔표 5〕.

초성해에서는 초성이란 운서의 자모에 해당한다고 하고 한자음을 가지고 다시 설명하였다. 중성해에서도 중성이란 한자음의 개음(介音)?운복음(韻腹音)임을 역시 한자음을 가지고 설명하였는데, 중국 음운학에서 음절말음(龍尾라고 함)으로 다루는 반모음[j]까지도 중성에 포함시켜, 제자해에서 설명한 11자 외에 다음과 같이 여러 모음자가 합용되어 중모음으로 쓰일 수 있음을 말하였다.

기본자 ???

초출자 ????

재출자 ????

합용자 ????

일자중성?? ??????????

이자중성?? ???????

종성해에서는 종성이란 자음으로 끝나는 음절말음임을 역시 한자음을 가지고 다시 설명하고, 중세국어의 성조를 우선 종성만 가지고 설명하였다. 즉 불청불탁자(不淸不濁字)는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의 종성이 되고, 전청자·차청자·전탁자는 입성(入聲)의 종성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국어의 종성은 뀤텕 텞 텗 텖 텚 텙 텛 텘뀥 8자면 족하다고 하였으며, 한자음의 입성 가운데 뀤텗뀥 종성음을 일반에서 뀤텘뀥로 발음하고 있는데, 이를 뀤텗뀥음으로 발음해야 된다고 하였다. 합자해에서는 초성·중성·종성 글자를 자소처럼 인식하여 이들 3요소를 좌로부터 우로, 위로부터 아래로 써서 음절단위로 쓸 것을 규정하였고, 합용병서·각자병서의 서법(書法)을 초성·중성·종성에 걸쳐 설명하였다.

그리고 반설경음(半舌輕音) 뀤텘?뀥도 반설중음(半舌重音)인 뀤텘뀥과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음을 말하고, 중모음 뀤l·, ?뀥의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용자례에서는 중세국어에서 90단어의 예를 들어 그 표기법을 보였다.

초성 뀤텕 텣 텞, 텗 텤 텖, 텚 텥 텙, 텚? 텠 텢, 텛 텦 텞, 텘 ?뀥의 표기례를 각각 2단어씩 들었는데, 각자병서와 뀤텞뀥의 표기례가 제외되고, 텚?의 표기례를 보인 것이 특징이다. 중성은 뀤???????????뀥표기례를 각각 4단어씩 보였으며, 종성은 뀤텕 텞 텗 텖 텚 텙 텛 텘뀥 8종성의 표기례만을 각각 4단어씩 보였다.

<정인지의 서문>

정인지의 서문에서는 한자의 난해성, 이두문자(吏讀文字)의 불편 등을 훈민정음 창제의 이유로 들고 있다. 이어 세종이 1443년(세종 25)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으며, 훈민정음은 간단하여 배우기 쉬운 글자이면서 여러 가지로 응용이 가능하여 음악이나 한자음 또는 자연음까지도 표기할 수 있고, 이 글자의 창제로 한문책의 해석도 쉬워졌으며 의사소통도 가능해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례편의 저술자가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로 등 8명이며, 46년 9월 상한에 이 서문을 쓴 것 등을 밝히고 있다. 세종 때에는 모든 분야에 걸쳐 한국 것을 존중하고 밝혀보려는 기운이 충만되어 있던 시대였으므로, 이러한 기운이 국어의 문자화를 위한 훈민정음 창제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자기언어를 위한 새 글자를 제정한 일은 있지만, 《훈민정음》 같은 서적을 펴낸 일은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문화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3) 한문본

《훈민정음》의 예의편(例義篇)만을 국역한 책. 흔히 《언해본(諺解本) 훈민정음》이라 한다. 번역한 사람이나 번역된 연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세종 말년부터 세조 초기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번역 방식은 한문을 짧은 구절로 나누어 토(吐)를 달고, 한자마다 동국정운식(東國正韻式) 한자음을 표기하였으며, 그 아래에 두 줄로 한문의 자석(字釋;뜻풀이)을 한 다음 그 구절 전체를 번역하였다.

한문본과 국역본은 그 내용이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어서, 국역본에는 원한문본에 없는 치음자(齒音字)에 관한 규정, 즉 한어(漢語)의 치음을 표기하는 한글의 치음자를, 치두음자(齒頭音字;텠 텢 텠텠 텛 텛텛)·정치음자(正齒音字;텠 텢 텛 텛텛)로 따로 제자해서 사용하도록 한 규정이 첨가되어 있으며, 이 규정은 1455년(단종 3)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사성통고(四聲通攷)》의 범례에도 들어 있으므로, 번역사업은 55년 이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판본은 몇 가지가 있는데, 박승빈소장본(朴勝彬所藏本)과 월인석보본(月印釋譜本)을 비롯하여 일본 궁내성본(宮內省本)·가나자와소장본〔金澤所藏本〕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월인석보본은 서강대학교 소장되어 있는 판본과 경상북도 풍기읍(豊基邑)에 있는 희방사(喜方寺)의 복각본(覆刻本)의 2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뒤의 것이 언해본의 원전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것은 1458년(세조 4)에 간행된 《월인석보》의 책머리에 실려 있는 <세종어제훈민정음>이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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