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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5-09 (목) 20:33
분 류 사전1
ㆍ조회: 306      
[신라] 천마총 (민족)
천마총(天馬塚)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 경주 황남동고분군 일대를 정비·정화해 ‘대릉원(大陵苑)’이라 이름지은 고분공원 안 서북쪽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경주시내 일대에 외형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남아있는 고분에 번호를 부여한 것 중 가장 마지막인 ‘155호분’이다. 1973년에 발굴되어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경에 만들어진 적석목곽분으로 밝혀졌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신라 제21대 소지마립간 또는 제22대 지증마립간의 무덤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목곽 안에서 금관을 비롯한 많은 유물과 함께 천마를 그린 장니(障泥 : 말다래)가 출토되어 천마총이라 했으며, 지금은 고분 내부를 복원해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

[구조]

고분은 밑 지름 47m, 높이 12.7m의 원형분이다. 지면을 길이 7.7m, 너비 5.6m, 깊이 40cm로 파고 냇돌과 자갈을 고르게 깔아 목곽 바닥으로 삼고 동서 6.6m, 남북 4.2m, 높이 2.1m로 추정되는 목곽을 설치하였다. 목곽 안에는 중앙에서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길이 2.2m, 너비 80㎝의 목관을 동서로 길게 놓고, 그 주위에 자갈로 너비 50㎝, 높이 40㎝의 석단(石壇)을 쌓았다. 석단 동쪽에 접해 길이 1.8m, 너비 1.0m, 높이 0.8m의 나무로 짠 부장품 수장궤(副葬品收藏櫃)를 남북으로 길게 놓았다.

신라 초기의 적석목곽분에서 목곽은 주곽과 부곽을 따로 분리해 부곽을 시신의 발치쪽에 두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머리쪽에 두었다. 후기에는 금령총, 식리총과 같이 주곽과 부곽이 합쳐지게 된다. 따라서 이 천마총도 고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진 적석목곽분임을 알 수 있다.

목곽 주위에는 큰 냇돌을 밑 지름 23.6m의 원형으로 목곽과 같은 높이까지 경사지게 쌓아올렸다. 목곽 위에는 약 4m 높이로 냇돌을 반구형(半球形)으로 쌓고 그 표면에 진흙을 약 30㎝ 두께로 바르고 정상부에는 진흙 속에 마구장식품(馬具裝飾品)들을 묻었다. 진흙 밖으로는 산흙을 쌓아 봉토를 만들었고 봉토 가장자리에는 냇돌을 높이 1.2m로 쌓아 호석(護石)으로 삼았다.

[유물]

목관 안에서는 피장자(被葬者)가 착용했던 금관·금제과대(金製敬帶)·요패(腰佩)·팔찌·반지·목걸이 등의 장신구류와 환두대도(環頭大刀)가 발견되었다. 부장품 수장궤 뚜껑 위에서는 금제조익형관식(金製鳥翼形冠飾)과 금제접형관식(金製蝶形冠飾) 및 금동모(金銅帽)○금동제경갑(金銅製脛甲) 등의 파편이 발견되었다. 수장궤 안에는 위쪽에 투조금동판식죽심장니(透彫金銅板飾竹心障泥),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천마도장니, 은제·금동제 안장 등의 마구류가 놓였고, 그 밑에 백화수피제 채화판(彩畵板)이 있었다.

이들 밑에는 금·은·금동 및 청동으로 된 각종 그릇과 많은 칠기와 유리그릇이 있었고, 맨 밑에는 쇠솥과 각종 토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석단 위에서는 동쪽에서 금모(金帽)·은제과대 등의 장신구류가 발견되었고, 그 밖의 위치에서는 환두대도를 비롯한 각종 무기류와 철정(鐵鋌)이 나왔으며, 금동제식리(金銅製飾履)는 서북쪽 모서리에서 발견되었다.

금관은 높이 32.5㎝, 대륜(臺輪)의 너비 4.5㎝, 대륜의 지름 20㎝이며, 3개의 出자형 입식과 그 양끝에 녹각형 입식을 세운 신라 금관의 일반적인 형식이었다. 출자형 입식의 가지수는 4개이며 금관 전면에 영락과 곡옥을 달았다. 곡옥은 대륜에 달린 것이 가장 크고 위로 올라가면서 작아졌다. 이 금관은 신라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한 것이다. 금관에 연결된 한 쌍의 금제수식은 길이 23.5㎝와 5㎝인 2줄의 패식(佩飾)이 세환(細環)에 달린 형식이었다.

금모는 높이 19㎝, 밑변의 너비 19㎝로 한쪽으로 쏠린 사다리꼴이다. 투조금판을 앞면에 2장, 뒷면에 1장, 윗부분에 1장, 모두 4장으로 결합해 만들었고, 밑변에는 별도로 금판을 구부린 끝금구를 끼웠다. 금판에는 작은 T자형·원형·괴운문(怪雲文)·반원형 등을 투조하였고, 앞면 중앙에는 사격자문(斜格子文)의 금판을 끼웠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모와 흡사한 모습이나 앞면 중앙에 모표(帽標)같은 장식이 달린 점이 다르다.

금제조익형관식은 높이 45㎝, 양날개 너비 40㎝로 밑의 혀모양 꼭지 외에는 표면 전체에 괴운문을 투조하고, 그 사이사이에 지름 0.7㎝의 원형 영락을 단단히 매달았다. 이와 비슷한 관식이 금관총에서 출토된 바 있다. 금제접형관식은 높이 23㎝, 너비 23㎝이며, 관식 중심선에서 좌우로 꺾이고, 전체 모습은 두 날개를 편 새모습과 비슷하다. 꼭지를 제외한 전면에는 몸체에 2줄, 날개와 머리부분에 1줄의 비교적 큰 역심엽형(逆心葉形)을 투조하고 그 사이사이에 원형 영락을 매달았다. 꼭지 중앙에는 못이 남았다.

금관 대륜 바로 밑에 늘어진 경식은 하단이 과대에 이르는 대형이었다. 이 경식은 주식(主飾)이 목 좌우에서 길게 늘어져 하단에서 대형 곡옥에 의해 결합되고, 주식 좌우에 2줄의 소형 수식이 각각 따로 늘어져 주식 중간쯤에서 조금 작은 곡옥에 의해 결합된 형식이다. 주식의 구성은 영락이 달린 은제구슬 6개를 1줄로 해 3단, 같은 모습의 금구슬 6개를 3단, 다시 은구슬 3단을 끼운 끝에 방주형 금구(方柱形金具)를 끼워 그 밑에 감색 유리구슬을 8개씩 6줄 달아맨 것을 1조로 삼고, 이들을 좌우 각각 6조로 형성되었다. 은제구슬은 부식되어 흔적만 남았다. 소형 수식은 작은 유리구슬과 방주형 금구만으로 되어 있었다.

금제과대는 피장자의 허리에 매어졌던 것으로 너비 2.9㎝, 길이 3.1㎝이다. 그 밑에 달린 심엽형 장식을 포함한 길이가 6.3㎝인 과판(敬板)을 44개 이어서 그 양 끝에 교구(沽具)와 장규형(長圭形) 끝금구가 달렸다. 과대에 매달린 13줄의 요패 중 1줄은 대형 요패이며, 또 1줄은 영락이 달린 금줄 끝에 숫돌을 끼우는 장식모(裝飾帽)가 달린 것이었다. 다른 11줄의 요패는 장경 4㎝의 타원형 금판을 5매 연결하고 그 밑에 미식(尾飾)을 단 것이다. 미식에는 규형 금판·곡옥·원통형 금모(圓筒形金帽)·유리구슬·족집게·광주리형 금구·물고기형 금판 등이 있었다.

대형 요패는 길이 75㎝로 표면에서 뒤쪽으로 우묵하게 우그러진 장경 7㎝, 단경 3.5㎝의 타원형 금판을 8매 연결한 끝에 장규형 미식을 달았다. 이 요패는 타원형 금판과 미식의 앞면에 원형 영락을 달아 장식하였다.

백화수피제 천마도장니 한 쌍은 부장품 수장궤 안 동쪽 중앙에 남북으로 길게 겹쳐 놓여 있었다. 가로 75㎝, 세로 56㎝, 두께 0.6㎝이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 새롭게 보존 처리한 결과에 의하면, 2장의 자작나무 껍질을 합판처럼 결을 엇갈리게 겹쳐 사격자로 꿰매 만든 것이었다.

이 자작나무 껍질에서는 모두 47층의 나이테가 나타나므로 최소한 이것을 만들 때는 47년 이상 자란 자작나무를 썼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자작나무는 한랭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당시 신라권역에서는 50여 년 이상 자란 자작나무를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재료는 북방에서 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니 둘레에는 너비 1.2㎝의 얇은 가죽단을 돌려, 상단 중앙은 반달형으로 팠고, 그 판 둘레에는 얇은 가죽을 덧대고 좌우에는 안장에 달기 위해 2개씩의 구멍을 뚫었다. 장니 표면 둘레에는 너비 10㎝ 범위 안에 주·흑·백·녹색으로 채색한 인동당초무늬를 가로 6개, 세로 3개씩 그려 넣고, 중앙에는 하늘을 나는 백마를, 네 모서리에는 반으로 잘린 꽃무늬을 그렸다.

이러한 그림은 모두 밑그림없이 능숙한 필치로 그려졌다. 특히, 적외선조사를 통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천마의 부릅뜬 눈과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듯한 모습 등을 통해 이를 그린 화가의 재치와 천부적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천마도 제작에 사용된 안료는 흰색에 호분(胡粉), 흑색에 먹(墨), 적색에 진사(辰砂:HgS)와 연단(鉛丹:Pb₃O₄) 등 고대 회화에 주로 쓰인 천연 무기물임이 밝혀졌다.

백화수피제 채화판은 천마도장니보다 더 밑에서 2장이 겹쳐서 나왔다. 채화판은 지름 약 37㎝의 원판 중앙에 지름 약 13㎝의 구멍이 있는 벽형(璧形)이며, 위에 서조도(瑞鳥圖) 채화판, 밑에 기마인물도 채화판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작나무 껍질을 두껍게 겹친 선형판(扇形板)을 연결시켜 만든 것이다. 서조도 채화판은 6장의 선형판을 연결시켜 각 판에 한 수의 서조를 그렸고, 기마인물도 채화판은 8장의 선형판을 연결해 각 판에 기마인물을 그렸다. 이들 그림은 극채색(極彩色)으로 그린 천마도와는 달리, 그림윤곽을 가는 묵선으로 그려 엷게 채색하였다.

천마총에서는 이들 유물 이외에도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장신구로는 출(出)자형 입식을 갖춘 금동관, 백화수피제 관모, 태환이식 1쌍과 세환이식 2쌍, 2쌍씩의 금·은제팔찌, 금제가락지 10개를 비롯해 각종 구슬이 있었다. 또 은제과대와 요패가 파손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그 중 대형 요패의 미식에는 위쪽에 심엽형 장식이 있고 밑에는 용을 선각하였다.

무기류로는 석단 위에 금은장삼환대도(金銀裝三環大刀)와 소도를 비롯해 많은 도자(刀子)·철모(鐵모)·철촉(鐵鏃)·철부(鐵斧)와 용도를 알 수 없는 철기류 및 철정(鐵鋌)이 있었다. 마구류로는 3벌의 말안장과 5쌍의 등자(埼子), 5종의 재갈, 각종 행엽과 운주들이 있었다.

칠기류는 부장품 수장궤 밑바닥에 놓인 토기들 위에 주로 놓여 있었다. 모두 식기류로서 조형배(鳥形杯)·압형배(鴨形杯)·각배(角杯)·고배·잔·찬합 등이 있었다. 대부분의 칠기는 외면에 흑칠, 내면에 주칠을 하였다. 조형배와 압형배는 머리와 날개를 주칠로 그렸으며, 잔에는 화염문 등의 무늬를 그렸다.

금속용기류에는 금동제소합이 많았다. 금동제고배·금동제대합 등은 단조(鍛造)한 청동판에 금도금한 것이며, 청동제정(靑銅製鼎)과 청동제초두는 주조한 것이었다. 은제품으로는 1개의 대합과 4개의 소합이 있었고, 대형의 쇠솥 4개도 출토되었다.

유리용기로는 대부배(臺付杯)와 대가 없는 배가 나왔다. 대부배는 담록색(淡綠色)의 유리로 대파되어 대만 남았으나 복원한 모양은 높은 대 위에 반구형 배를 올린 모양이다. 유리배는 청색 유리로 구연이 밖으로 꺾인 원통형이며 바닥은 중앙이 불룩한 원저이다. 구연부 바로 밑에서 동체 상반부에 걸쳐 굵은 줄무늬를 만들었고, 그 아래는 고르지 못한 귀갑무늬를 나타내 마치 커팅한 것같이 만들었다. 크기는 입지름 7.8㎝, 높이 7.4㎝이다.

토기류로는 이 시기 고분에서 흔히 출토되는 종류들인 장경호·단경호·고배·개배·원저대호·소호 및 장군형 토기 등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이 중 한 장군형 토기 안에는 10여 개의 달걀이 들어 있었고, 쇠솥 뚜껑으로는 큰 기대(器臺)의 대각을 잘라낸 것을 썼다.

≪참고문헌≫

天馬塚(文化財管理局, 1974), 新羅古墳硏究(崔秉鉉, 一志社, 1992), 문화재와 보존과학 ’97-특(국립중앙박물관, 1997).

<김정기>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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