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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9-21 (금) 12:59
분 류 사전1
ㆍ조회: 1206      
[조선] 사창 (두산)
사창 社倉

조선 시대 각 지방의 사(社 : 행정 단위로서 현재의 면)에 두었던 곡물 대여 기관.

춘궁기에 곡식을 대출하여 가을에 이식과 함께 받아들이는 민간 자치적 성격을 띤 일종의 빈민 구호 제도로서 의창·상평창과 같이 3창(三倉)의 하나이다. 본래 사창 제도는 송나라 주자(朱子)의 제창으로 처음 실시되었는데 조선에서는 1436년(세종 18) 충청감사 정인지(鄭麟趾)가 의창의 원곡(元穀) 감축과 그 보충으로 인한 군자곡(軍資穀)의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민영의 사창을 설치할 것을 주장하였다.

의창곡은 이식을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러한 의창과 환곡은 농민이 흉년 등으로 갚을 수 없을 경우 회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재고량이 점점 부족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의창의 원곡을 보충하기 위하여 토지와 호구 수에 따라 일정량의 쌀을 거두거나 군자곡으로 보충하기도 했으나 의창 원곡이 계속 부족해지자 이에 새로운 재정 확보책으로 사창 설치가 거론되어 마침내 1451년(문종 1)부터 실시되었다.

사창은 처음 원곡을 대여하여 이식을 취함으로써 어느 정도 원곡의 감소를 막을 수 있었으나 세조 이후부터는 사창곡이 제대로 회수되지 못하고 관리들의 농간 등 많은 폐단이 생겨 1470년(성종 1)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토지겸병에 따른 농민의 토지이탈과 극심한 기아현상, 의창의 환곡기능 상실 등에 따라 농민에 대한 진휼정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사창제의 부활이 다시 논의되었다.

정조 연간에 환곡제를 이정하는 방안이 제기되었는데 그 하나가 환곡제를 폐지하고 상평창 제도로 개편하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환곡 대신 사창제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환곡이 원래 갖고 있는 기능인 진휼을 상평창 혹은 사창제로 유지하되 환곡제 운영에서 나오던 세수 수입 부분을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었다.

그 까닭은 환곡제의 폐단 때문이었다. 본래 진대 기능을 가진 환곡이 그 운영과정에서 취득한 모곡(耗穀)을 국가재정의 일부로 전용하면서 실질적인 부세로 바뀌었고 운영상의 문제점 등이 많았다,

철종 연간 무렵 환곡제의 폐단이 시정되지 않아 여기에 반대하는 농민 항쟁이 계속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환곡제를 폐지하고 모곡 수입만큼 현재 경작하고 있는 토지의 총면적에 일정액을 부과하는 파환귀결(罷還歸結)의 방식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몇 개월 뒤 다시 환곡제로 돌아갔다. 흥선대원군 때는 농민 항쟁의 대응책으로 다시 사창제가 제기되어 1866년(고종 3) 사창절목을 마련하고 사환제(社還制)를 시행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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