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5-12 (수) 20:20
분 류 사전2
ㆍ조회: 5248      
[조선] 조선시대의 과거 (한메)
조선시대의 과거

관련 문서 : 고려시대의 과거

[조선시대]

문과(文科)·무과(武科)·잡과(雜科)로 대별되며, 잡과는 다시 역과(譯科)·의과(醫科)·음양과(陰陽科)·율과(律科)로 구분되나, 당시 상문(尙文)의 경향으로 인하여 과거라 하면 문과를 가리킨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를 유학(幼學), 무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를 한량(閑良)이라 하여 그 자격에 제한이 있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① 범죄로 영구히 용서될 수 없는 자 ② 독직(瀆職) 관리의 자제 ③ 재가(再嫁)·실행부녀(失行婦女)의 자손, 서얼자손(庶蘖子孫)은 응시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보다도 신분상으로 큰 제한이 있어 생(生)·진시(進試)와 문과는 양반 이외는 원칙적으로 응시자격이 없었고, 무과는 그 제한이 상당히 완화되어 천인을 제외한 일반 서민에게도 그 자격이 주어졌다.

과거는 식년시(式年試;子·卯·午·酉年)가 원칙이었으며, 이 밖에 임시·부정기의 과시(科試)로 증광시(增廣試)·알성시(謁聖試)·춘당대시(春塘臺試) 외에 성균관내의 과시가 있었다. 과거에는 사마시(司馬試) 혹은 생진시(生進試;흔히 小科라 함)와 문과(大科라 함)가 있고, 생진시는 다시 초시(初試)·복시(覆試)의 2단계, 문과는 초시·복시·전시(殿試)의 3단계가 있어 이 5단계를 거쳐야만 문과급제가 되는 것이었다.

생진시의 초시는 독서하는 선비가 처음으로 응하는 국가시험으로 식년 전년(式年前年) 8월에 한성부(漢城府) 및 8도에서 지역별로 관찰사 주재하에 시행했다. 진사시 (進士試)는 부(賦) 1편과 고시(古詩)·명(銘)·잠(箴) 중의 1편을 짓게 하며, 생원시(生員試)는 오경(五經)의 의(義) 1편과 사서(四書)의 의(疑) 1편을 짓게 하여 각도의 정원수에 따라 전국에서 양 과에 각각 700명(뒤에 540명), 총 1400명(뒤에 1080명)을 선발하였다.

이 생진시의 초시에 대행하는 것으로 성균관 대사성이 사학유생(四學儒生)에게 시행하는 승보시(陞補試)·사학합제(四學合製) 등이 있고 지방에는 각도의 도사(都事)와 개성·강화 유수(留守)가 시행하는 공도회(公都會) 등이 있었다. 제2단계인 생진시의 복시는 초시의 합격자를 식년 봄에 모아 예조(禮曹)의 주재하에 시행했는데, 복시 전에 《소학(小學)》 《가례(家禮)》의 강(講)으로 녹명(錄名)한 뒤 초시와 동일한 과목을 과하여 생원·진사 각과에서 100명씩 선발했다.

이 합격자에게 백패(백색 종이에 흑서한 합격증서)를 주며 제술(製述)의 합격자를 생원(生員), 명경의 합격자를 진사(進士)라 하였다. 그들은 성균관에 입학하는 자격만이 아니라, 사류(士類)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공인받고 하급관리가 되는 자격을 얻었다.

제3단계인 문과 초시는 식년(式年) 전해 가을에 한성부와 8도에서 지역별로 관찰사 주재하에 시행되는데 응시자격은 생진시의 합격자인 생원과 진사이다. 처음에 제술·명경으로 나누고 다시 초장·중장·종장으로 나누었으며, 제술시는 초장에서 오경사서(五經四書)의 의(疑)·의(義) 또는 논(論) 중에서 2편, 중장에서 부(賦)·송(頌)·명(銘)·잠(箴)·기(記) 중에서 1편과 표(表)·전(箋) 중에서 1편, 종장에서 대책(對策) 1편으로 시취(試取)하였다.

명경시(明經試)는 뒤에 없어졌지만 오경사서에서 시취하였다. 이리하여 선발된 340명(뒤에 223명)이 복시에 응할 수 있게 된다. 문과 복시는 식년 봄에 한성부에서 예조의 주관하에 시행되었는데, 복시전에 《경국대전》 《가례》로써 녹명한 뒤 초장에는 사서삼경의 강서(講書), 중장에는 부 1편과 표·전 중 1편의 제술(製述), 종장은 대책 1편의 제술로 33명을 선발하였다.

문과 전시는 국왕 친림하에 시행하는 것으로, 33명을 그대로 급제케 하되 대책·표·전·잠·송·제(制)·조(詔) 중에서 1편의 제술로써 갑과(甲科) 3명, 을과 7명, 병과 23명의 등급을 정한다. 이들에게는 홍패(紅牌)와 어사화(御賜花)를 하사하고 영전을 축하하는 갖가지 행사가 있었다. 이들 급제자 중에 갑과의 제1인은 장원(壯元)이라 하여 종6품, 제2등은 방안(榜眼), 제3등은 탐화(探花)라 하여 각각 정7품, 을과는 정8품, 병과는 정9품의 품계를 주어 승문원(承文院)·성균관·교서관(校書館)의 권지(權知;임시직)로 하였으며 기성 관료는 갑과 제1인은 4품계를 올려주고, 제2·3등은 3품계, 을과는 2품계, 병과는 1품계를 각각 올려 주었다.

이외에 1401년(태종 1) 증광시라 하여 임시로 과거를 보인 이래, 1429년(세종 11) 알성시(謁聖試), 1457년(세조 3) 별시(別試) 등을 비롯하여 외방별시(外方別試)·종친과(宗親科)·현량과(賢良科)·도기시(到記試)·황감시(黃柑試)·춘당대시(春塘臺試)·기로과(耆老科) 등 수시로 과거를 보는 풍조가 생겼고, 앞에 말한 태종의 중시(重試)에서 시작하여 1429년(세종 11) 발영시(拔英試)·등준시(登俊試), 1458년(세조 4) 전문시(箋文試), 1482년(성종 13) 진현시(進賢試), 1538년(중종 33) 탁영시(擢英試) 등의 중시가 있어 이미 등용된 문신들에게 임금이 친히 시험을 보게 하여 합격자들을 더욱 중용(重用)하였다. 무과는 궁술(弓術)·총술(銃術)·강서를 시험과목으로 하고 역시 초시·복시·전시의 절차를 밟았으나 조선시대에는 문(文)을 숭상하여 무과는 중요시하지 않았다.

잡과인 역(譯)·의(醫)·음양(陰陽)·율과(律科)는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부문에 따라 세분되는데, 사역원(司譯院)·전의감(典醫監)·관상감(觀象監)·형조(刑曹) 등에 근무하는 중인(中人;하급관리)의 자제로 그 분야에 소양이 있는 자들을 모아 각각 당해 관서에서 초시·복시의 절차로 시험을 보았다.

잡과에는 지원자가 적어서 식년시(式年試) 외에는 없었다. 후일에 오면서 과거를 너무 자주 본 결과 합격하여도 등용되지 못하여 등용운동을 전개하게 되었으며 정실(情實)과 부정합격으로 인한 폐해가 많아지자 1818년(순조 18) 과장구폐절목(科場救弊節目)이 나오게 되었다.

<이기동>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과거' 항목에서
   
윗글 [시대구분] 시대 구분론 (7차 지도서)
아래글 [종교] 한국의 도교 (브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790 사전2 [고려/조선] 전호 (브리) 이창호 2004-05-14 5622
789 사전2 [조선] 운요호사건 (브리) 이창호 2004-11-23 5503
788 시대 [시대구분] 시대 구분론 (7차 지도서) 이창호 2010-03-19 5249
787 사전2 [조선] 조선시대의 과거 (한메) 이창호 2004-05-12 5248
786 사전2 [종교] 한국의 도교 (브리) 이창호 2004-05-14 5244
785 사전2 [연표] 한국사11-한국사 연표 (브리) 이창호 2003-03-15 5189
784 사전2 [고대] 단군신화 (민족) 이창호 2003-07-06 5157
783 사료 [고려] 최승로의 시무 28조 이창호 2001-04-17 5142
782 사전2 [근대/현대] 근현대의 정치 (민족) 이창호 2003-04-28 5101
781 시대 [근대] 5. 근대 사회의 성격 (지도서) 이창호 2001-05-28 4902
1234567891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