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4-10 (목) 22:58
분 류 사전2
ㆍ조회: 1289      
[근대] 시일야방성대곡 (브리)
시일야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만천하에 폭로한 대표적인 저항논설.

〈황성신문〉1905년 11월 20일자 2면에 실렸으며, 필자는 당시 이 신문의 발행인이었던 장지연이다. 사설의 주된 내용은 침략의 앞잡이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난하고 을사오적을 우리 강토와 국가를 남에게 바치고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매국의 적(賊)'이라고 비난하면서, 이 조약은 고종황제가 승인을 거부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논설 외에도 잡보(雜報)란에 '오조약청체전말'(五條約請締顚末)이라는 제목으로 조약을 강제 체결하게 된 정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 비분강개의 논설이 실린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은 평소보다 많은 1만 부가 인쇄되어 이른 새벽에 서울 장안에 배포되었고, 신문이 배포되자마자 장지연은 같은 날 오전 5시 한양골의 사옥에서 체포되어 경무청에 수감되었으며, 〈황성신문〉의 사원 10명도 함께 체포되었다.

또한 인쇄기계와 활자가 강제로 봉인되었고 마침내 무기정간령이 내려졌다. 정간의 사유는 검열을 받지 않고 신문을 배포하여 치안을 방해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다음날인 11월 21일자 논설에서 〈황성신문〉과 장지연을 극구 찬양한 반면 〈제국신문〉은 '한때 분함을 참으면 백 년 화근을 면함이라'라는 논설에서 과격한 논설로 나가면 탄압을 받아 신문 없는 사회가 될 것이므로 신중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면서 국민들에게 자중할 것과 실력양성을 주장했다. 한편 일본인이 발행하던 한글신문인 〈대한일보〉는 장지연의 행동을 경거망동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장지연은 체포된 후 대한제국의 〈대명률 大明律〉 잡범편(雜犯篇)에 의하여 태형을 선고받았다가 1906년 1월 24일 석방되었고, 〈황성신문〉은 같은 해 2월에 무기정간령이 해제되어 2월 2일자부터 속간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윗글 [조선] 김석주 (민족)
아래글 [조선] 육의전 (브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570 사전2 [조선] 안병찬 (브리) 이창호 2003-03-24 1305
569 사전2 [조선] 신돌석 (브리) 이창홉 2003-03-28 1302
568 사전2 [민족] 한민족의 계통과 형성과정 (민족) 이창호 2003-04-20 1301
567 사전2 [조선] 민진원 (민족) 이창호 2002-11-05 1298
566 사료 [알림] 사료 학습 게시판을 신설합니다. 이창호 2000-10-28 1297
565 사전2 [조선] 안병찬 (두산) 이창호 2003-03-24 1294
564 사전2 [조선] 김석주 (민족) 이창호 2002-11-04 1292
563 사전2 [근대] 시일야방성대곡 (브리) 이창호 2003-04-10 1289
562 사전2 [조선] 육의전 (브리) 이창호 2003-04-19 1286
561 사전2 [근대] 중체서용론 (두산) 이창호 2003-04-15 1284
1,,,2122232425262728293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