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4-20 (일) 19:47
분 류 사전2
ㆍ조회: 1299      
[민족] 한민족의 계통과 형성과정 (민족)
한민족(계통과 형성과정)

세부항목

한민족
한민족(계통과 형성과정)
한민족(형질)
한민족(언어)
한민족(의식과 생활)
한민족(신화와 습속)
한민족(참고문헌)
     
[계통]

오늘날 지구상에는 여러 인종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피부 색깔, 골통의 모양, 머리칼의 색깔과 조직 등 형질적 특징에 따라 몽고종(Mongoloid)·코카서스종(Cocasoid)·니그로종(Negroid) 등 세 인종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우리 민족이 속한 몽고종은 주로 동쪽 아시아에 살고 있으며, 피부 색깔에 따라 황인종이라고도 불린다.

이 몽고종은 본래 제4빙하기(第四氷河期), 고고학적으로는 구석기시대 후기에 시베리아의 추운 지방에서 기원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몽고종의 형질적 특징으로서 얼굴에 광대뼈〔耿骨〕가 나온 것이나 눈꺼풀이 겹쳐진 것〔epicantic fold〕이 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확인된다. 우리 한민족도 이러한 형질적 특징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시베리아의 몽고종은 옛시베리아족(Paleo-Siberians) 또는 옛아시아족(Paleo-Asiatics)·옛몽고족(Paleo-Mongolians)과 새시베리아족(Neo-Siberians) 또는 새몽고족(Neo-Mongolians)의 두 그룹으로 나뉜다.

이는 옛시베리아족이나 새시베리아족 모두 몽고종의 형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뒤에 부족적 이동에 따라 새 지역의 환경에 따른 형질적·문화적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두 그룹 사이에는 언어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늘날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옛시베리아족은 축치족(Chukchi)·코리약족(Koryaks)·길리약족(Gilyaks)·캄차달족(Kamchadals)·유카기르족(Yukagirs) 등이다. 이들의 한 갈래가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로 이동하여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한 갈래는 사할린과 북해도로 이동하여 아이누족(Ainu族)의 조상이 되었다.

한편,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새시베리아족에는 터키족·몽고족·퉁구스족(Tungus)·사모예드족(Samoyeds)·위구르족(Uigurians)·핀족(Finns)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터키족·몽고족·퉁구스족의 언어에는 문법구조·음운법칙·공통조어(共通祖語) 등에서 서로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이를 알타이어족(Altaic Language Family)이라고 한다. 반면, 사모예드족·위구르족·핀족은 다른 하나의 어족을 이루어 이를 우랄어족(Uralic Language Family)이라 한다. 우리 한국어는 이 가운데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알타이어족은 본래 예니세이강(Yenisei江) 상류지방과 알타이산 기슭에서 발생하였다. 이 지역은 삼림 및 초원지대로서 주민들은 일찍부터 목축을 주로 하고 농경을 부업으로 하는 생산경제 단계로 들어갔으며, 또한 알타이 산지에서는 구리와 주석이 많아 청동기문화의 발달에 유리하였으므로 안드로노보(Andronovo)문화·카라수크(Karasuk)문화·타가르(Tagar)문화 등 독특한 시베리아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는 동유럽으로부터 전파된 것으로, 문화의 전파에 따라 유럽 인종과 원주민인 몽고족 사이에 혼혈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북방 아시아 몽고종 계통의 민족에게서 가끔 유럽종의 형질적 요소가 발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제4빙하기에 시베리아 지방에서 형질적 특성이 완성된 몽고종은 제4빙하기 후기에 기온이 상승하여 빙하가 녹으면서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옛시베리아족이 시베리아의 동쪽과 남쪽으로 이동하였는데, 그 시기는 고고학적으로 후기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들에 의해서 후기구석기문화와 신석기문화가 전파되었다.

한반도의 경우에도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지만, 아직 그 인종의 형질적 특성을 확인할 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석기문화는 몽고·만주·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쪽으로는 사할린·북해도를 거쳐 아메리카대륙에까지 전파되었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신석기문화가 모두 같은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신석기시대 토기의 경우, 반란형(半卵形:반 계란의 형태)의 토기 표면에 직선이나 점으로 구성된 기하문(幾何文:사물의 형태·크기 등을 본뜬 무늬) 장식을 한 것이 시베리아·만주·한반도 지역과 북아메리카 및 일본열도의 북부에 분포되어 있어 그것이 모두 시베리아로부터 전파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시베리아의 신석기문화는 이들 여러 지역에서 각기 변화하여 발달하였으므로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 지역의 신석기문화는 아직 수렵과 어로의 채집경제 단계에 있어서 농경문화가 시작되지 못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만주나 한반도의 신석기 유적에서도 역시 인골(人骨)이 발견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주민의 인종적 특성을 알기는 어렵다.

알타이 산지와 바이칼호수의 남쪽지대에 살고 있던 알타이족이 남쪽으로 이동한 것은 옛시베리아족의 이동에 뒤이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원주지의 초원지대에 이어져 있는 초원지대로 이동하였으며, 유목(遊牧)·기마(騎馬) 민족이었으므로 이동이 용이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초원이 펼쳐진 한계까지, 즉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남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몽고를 거쳐 중국 장성(長城)지대까지, 남동쪽으로는 흑룡강 유역에서 만주 북부까지 이동하였다.

그 결과 터키족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북쪽에, 몽고족은 지금의 외몽고를 거쳐 중국 장성지대와 만주 북부에, 퉁구스족은 흑룡강 유역에 각각 분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알타이족과 함께 시베리아에 살던 한민족도 이동의 물결을 따라 몽고를 거쳐 중국 장성지대의 동북부와 만주 서남부에 이르러 정착하였던 것이다.

단, 오늘날 알타이족이라 하면 터키족·몽고족·퉁구스족을 가리키고 한민족은 포함시키지 않는데, 이는 한민족이 남하하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알타이족에서 갈라져 만주 서남부에 정착하였고, 여기서 하나의 민족단위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알타이족에 의해서 중국 북부에 전파된 시베리아의 청동기문화는 오르도스·내몽고지방과 만주 서남지방, 즉 요령(遼寧)지방에서 각각 꽃피었는데, 전자는 내몽고족이 발달시킨 것이고 후자는 한민족의 조상들이 발달시킨 것이다. 이 두 청동기문화는 모두 시베리아 청동기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요령의 청동기문화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비파형(琵琶形)의 단검(短劍)이나 기하문경(幾何文鏡) 등 고고학적 유물에 의하여 확인된다. 이로부터 한민족의 조상들이 요령지방을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알타이족이 다른 민족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문헌에 따르면 춘추시대에 장성지대 깊숙이 침입한 누번(樓煩)이나 임호(林胡), 그리고 만주 북부의 동호(東胡) 등의 이름이 보이는데 이들이 곧 알타이족 중의 몽고족을 가리키는 것이며, 장성지대 서북쪽의 흉노(匈奴)는 터키족 또는 몽고족을 가리킨다.

터키족이나 몽고족에 비하여 중국 동북부의 민족으로서 숙신(肅愼)·조선(朝鮮)·한(韓)·예(濊)·맥(貊)·동이(東夷) 등이 주(周)나라 초기부터 중국 문헌에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가운데 ‘肅愼(숙신)’과 ‘朝鮮(조선)’은 중국 고대음으로는 같은 것이고, ‘韓(한)’은 ‘khan>han’에 대한 표기로서 ‘크다’ 또는 ‘높은 이’ 등의 뜻을 가진 알타이어다. ‘貊(매)’의 ‘辛(태 또는 치)’는 중국인들이 다른 민족을 금수로 보아 붙인 것이고, ‘百’이 음을 나타내는데, ‘百’의 중국 상고음(上古音)은 ‘pak’으로서 이는 우리의 고대어 ‘밝’ 또는 ‘박’에 해당하며, ‘광명(光明)’이나 ‘태양’을 뜻한다.

한민족에 의하여 발달한 요령 청동기문화는 대체로 대흥안령(大興安嶺)의 산줄기를 경계로 중원(中原)문화와 접하였다. 그런데 요령지방은 북으로는 삼림·초원지대를 이루고, 남으로는 난하(金河)·대릉하(大凌河)·요하(遼河)의 하류지역에 농경에 적합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따라서 요령지방의 조선족은 본래 시베리아에서는 목축을 주로 하고 농경을 부업으로 하였지만, 요령지방에 정착한 뒤로는 그 환경에 적응하여 농경을 주로 하면서 목축을 부업으로 하는 농경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한반도에 이르러서는 그 자연적 환경에 따라 목축은 거의 잊어버리고 오로지 농경을 하는 민족으로 되었다. 이와 같이 앞선 청동기문화와 농경문화를 가진 조선족이 한반도에 들어와 선주민인 옛시베리아족을 정복, 동화시켰음은 고고학적 유물뿐 아니라 신화·언어 등의 연구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이와 같이 한민족은 몽고종에 속하며, 그 가운데서도 새시베리아족의 알타이족에 속한다.

그러나 한민족은 알타이족의 이동 과정에서 일찍부터 갈라져 나와 만주의 서남부, 요령지방에 정착하여 농경과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으며, 그 가운데 한 갈래가 한반도에 이주하였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선주민인 옛시베리아족을 정복, 동화시켜 오늘날의 한민족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들에 의해서 여러 읍락국가(邑落國家)가 형성되고 나아가서 읍락국가의 연맹체가 성립되었으며, 고조선이 바로 그 연맹의 맹주국(盟主國)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치적·사회적 공동체를 이룩함으로써 하나의 민족 단위로 성립되었다. 또한, 이러한 민족공동체가 이루어짐에 따라 여러 집단의 언어가 통일되어 한국어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 하나의 민족 단위로 성립된 것은 요령지방에서 농경과 청동기문화를 발달시킨 때부터이다. 그것은 단군신화에서 전하는 고조선의 건국연대와 대체로 부합되는 기원전 2000년대로 볼 수 있다.

[고고학적 측면에서 본 특질]

한반도에서 구석기 유적의 발견은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 유적의 문화적 성격이나 특히 그 주민의 인종적 특질 등은 충분히 밝혀지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중국 북경이나 주구점(周口店)에서 발견된 전기구석기 유적이나 그 밖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여러 시기의 유적들과 어떤 관계에 있으며, 나아가 그 인종적 관련은 어떠한지도 구명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를 밝힐 수 있는 인류학적·고고학적 자료들이 너무 적다.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문화적·인종적 관련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부터이다.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의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는 만주와 몽고,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시베리아 남부지방의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

시베리아 지역의 청동기문화는 아직 농경이 시작되지 않고 수렵·어로의 채집경제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는 근동지방이나 남부유럽지역의 경우 일찍이 신석기시대부터 농경이 시작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시베리아 신석기문화의 영향을 받은 몽고·만주 및 한반도의 신석기문화 역시 수렵·어로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시베리아의 신석기문화에서는 토기에 있어서 ‘캄케라믹(Kammkeramic)’의 특징이 중요하게 지적된다. ‘캄케라믹’이란 ‘빗살무늬토기’로 번역되어 우리 나라의 신석기시대 토기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 토기는 ‘뾰족 밑’ 또는 ‘둥근 밑’에서 위로 벌어진 반란형의 형태에 토기의 표면 전면에는 기하문을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표지적(標識的)인 특징은 뒤에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지역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서 다소의 변화를 겪게 된다.

예컨대 만주에 있어서는 송화강(松花江)을 경계로 하여 그 서남쪽과 동북쪽에 토기의 모양과 무늬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 하나는 기형(器形)에 있어서 송화강 동북쪽에서 흑룡강에 걸친 지역의 토기의 바닥은 평저(平底)인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한반도의 동북부에도 전하여졌다.

그러나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토기는 동북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뾰족 밑 또는 둥근 밑으로부터 위로 벌어진 반란형이며, 토기 전면에 기하문을 장식한 것이 표지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이것이 신석기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그 모양이나 무늬에서 변화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이와 같이 시베리아·몽고·만주 및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토기는 지역적으로 혹은 시대적으로 다소의 변화를 겪었지만, 그 기본적인 토기문화의 전통에는 공통되는 점이 있다.

일례로 이들 토기의 무늬에 특이한 연속호선문(連續弧線文, rocker stamping)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흔들림 무늬'라고도 하는 것으로 호선을 좌우로 연속시킨 무늬이다. 이 무늬의 토기가 한반도에서는 매우 드물었으나, 최근 충무 앞바다의 상노대도(上老大島) 패총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인류학·고고학 연구에 있어서 인접한 지역에서 어떤 특이한 문화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났을 때는 그 지역 사이의 문화적 연관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 석기(石器)의 경우 시베리아 신석기문화의 그것은 대체로 타제(打製)인 점과 세석기(細石器)인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석기문화가 역시 몽고·만주 및 한반도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이러한 석기 수법 때문에 이들 지역의 석기들이 후기구석기나 중석기시대의 것으로 오인되는 일이 이따금 있어 왔다.

다만, 한반도의 세석기는 함경북도 지방과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발견된 일이 있을 뿐이고 극히 드문 예에 속하지만, 그것은 아마 한반도에서 산출되는 석재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한반도에서는 부싯돌〔燧石〕이나 흑요석(黑曜石)이 거의 산출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에 석기의 제작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실제로 흑요석이 산출되는 함경북도 지방과 남해안의 부산 동삼동 패총, 충무 상노대도 패총에서는 흑요석의 세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노대도 패총은 특히 주목되는 유적으로, 여기서는 둥근 밑, 평평한 밑의 두 가지 토기와 타제·마제의 두 가지 석기 모두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각각 다른 두 시대의 문화유적인 듯하다.

패총이기 때문에 층위(層位)가 교란되어 층위상으로는 두 시대의 유물을 구별하기 어려우나, 유물을 형태학적으로 분류하면 둥근 밑 토기와 타제석기가 신석기시대의 유물일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토기 가운데는 신석기시대의 특징적인 연속호선문 토기가 함께 출토되므로 신석기시대의 문화 유물임이 확인된다.

이와 같이 토기와 석기에서 나타나는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는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주·몽고를 거쳐 시베리아의 신석기문화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전파는 그 문화의 주인공인 옛시베리아족의 이동에 따른 것이었다.

한반도의 청동기문화 역시 시베리아의 그것에서 기원하여 몽고·만주를 거쳐 요령 및 한반도로 전파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시베리아로부터 알타이족의 이동 경로와 일치한다. 즉, 시베리아의 청동기문화가 남쪽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알타이족의 한 갈래인 우리 민족의 조상이 요령지방에 정착하여 요령지방과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에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던 것이다.

이를 요령 청동기문화라 할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의 특징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에 전파된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와 비교되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요령 청동기에는 청동단검·동부(銅斧)·청동단추·청동도자(刀子)·동착(銅鑿)·동패(銅牌)·재갈 등의 마구(馬具), 거울 모양의 원형 동기(銅器)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단검의 경우 검신(劍身)의 봉부(鋒部) 하단에 돌기가 있고 검신 아랫부분이 외호(外弧)를 이루어 비파의 동체와 비슷한 것이 특징이다.

또, 이 단검은 검신과 자루를 따로 만든 것이 특징인데, 초기에는 자루를 나무로 만들어 착장(着裝)하였고, 후기에는 청동으로 T자 모양의 자루를 주조하여 못으로 고정시켰으며, 그 뒤로는 주형(鑄型)에 검신과 자루를 고정시킨 형태로 주조하고 못으로 고정시킨 흔적을 나타냈다.

이에 비하여 몽고족에 의하여 발달한 오르도스 청동기문화에서는 단검의 검신과 자루를 함께 붙여 주조한 점이 다르다. 이는 요령의 청동기문화가 청동 단검의 고식(古式)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안드로노보 단검의 경우에도 검신과 자루를 따로 만들어 붙이고 있다.

또한, 요령 청동기에 있어서 동부(銅斧)도 고식을 보이고 있다. 즉, 요령의 동부는 날이 부채꼴로 퍼지고 머리 하단에 돋을띠〔突帶〕를 둘렀으며, 거기에 간단한 기하문을 새기고 있는 등 안드로노보나 카라수크의 동부 형식을 잇고 있다.

이에 비하여 오르도스의 동부는 날쪽이 아래로 좁아지고 머리 부분의 장식도 퇴화되었다. 다시 말하면 오르도스의 동부는 요령 청동기문화 전기의 동부보다 늦은 시기의 형식이며, 요령에서도 후기에는 오르도스 동부와 같은 형식이 나타나고 있다.

요령지방의 청동기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청동단추에서 변화하여 발달한 거울 모양의 원형 동기이다. 청동단추는 지름 3∼10㎝ 내외의 작은 원형동기를 안쪽으로 약간 구부리고 내만(內彎)한 쪽에 반원형의 꼭지〔瞿〕를 단 것으로, 시베리아 카라수크 문화나 오르도스 및 요령의 청동기 문화에서 모두 보이는 것이다.

요령 청동기문화에 있어서는 지름이 10∼20㎝ 내외로 커지고 내만한 쪽의 꼭지가 2∼4개로 늘어나 다뉴(多瞿)로 변하였으며, 내만한 면의 전면에 기하문이 장식된 새로운 청동기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카라수크문화나 오르도스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요령 청동기문화의 독특한 특징으로서 뒤에 한반도에서 더욱 정치한 기하문경으로 발달하여 다뉴기하문경(多瞿幾何文鏡)이 되었다.

요령의 청동단검은 그 형태에 따라 비파형단검이라고도 하고, 그 문화의 중심지 이름을 따서 요령식단검이라고도 한다. 이 비파형단검은 후기에는 점차 봉부의 돌기가 퇴화하고 검신 하부의 너비가 좁아졌으며, 한반도에 이르러서는 검신의 너비가 더욱 좁은 세형동검(細形銅劍)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이 요령의 청동기문화는 단검이나 원형동기뿐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청동기도 거의 대부분이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조형(祖形)이 되었다. 이러한 요령의 청동기문화는 더 거슬러 올라가 시베리아의 청동기문화와 연결되는 것이며,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의 몽고·만주·한반도로의 전파는 역시 시베리아로부터 알타이족의 민족이동에 따른 것이다.

<김정학>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윗글 [조선] 신돌석 (브리)
아래글 [알림] 사료 학습 게시판을 신설합니다.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570 사전2 [조선] 안병찬 (브리) 이창호 2003-03-24 1305
569 사전2 [조선] 신돌석 (브리) 이창홉 2003-03-28 1301
568 사전2 [민족] 한민족의 계통과 형성과정 (민족) 이창호 2003-04-20 1299
567 사료 [알림] 사료 학습 게시판을 신설합니다. 이창호 2000-10-28 1297
566 사전2 [조선] 민진원 (민족) 이창호 2002-11-05 1295
565 사전2 [조선] 안병찬 (두산) 이창호 2003-03-24 1293
564 사전2 [조선] 김석주 (민족) 이창호 2002-11-04 1292
563 사전2 [근대] 시일야방성대곡 (브리) 이창호 2003-04-10 1288
562 사전2 [조선] 육의전 (브리) 이창호 2003-04-19 1285
561 사전2 [근대] 중체서용론 (두산) 이창호 2003-04-15 1282
1,,,2122232425262728293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