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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01 (수) 08:22
분 류 사전2
ㆍ조회: 378      
[고려] 이자겸의 난 (브리)
이자겸의 난 李資謙- 亂

고려 인종 때 외척 세력가이던 이자겸이 왕위를 빼앗고자 일으킨 반란. 척준경(拓俊京)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일으켰다 해서 '이ㆍ척의 난'이라고도 한다.

고려 귀족 사회는 문종대를 전후하여 자신의 정치적ㆍ경제적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상호 대립하는 양상이 심화되어갔다. 그러한 귀족 세력 중에 경원 이씨는 문종부터 인종 때까지 80여 년 간 계속 외척으로서 강력한 세력을 굳혀오고 있었는데, 이자겸은 이러한 경원 이씨 가문의 출신이었다.

1094년 문종의 아들인 선종이 죽고 병약하고 11세밖에 안 된 어린 나이의 헌종이 즉위했다. 이때 경원이씨 출신인 이자의(李資義)는 자신의 여동생인 원신궁주(元信宮主)와 선종의 사이에서 태어난 한산후(漢山侯)를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거사를 도모했으나 왕의 숙부인 계림공(鷄林公:숙종)이 이자의 일파를 주살하고 중서령이 되었다가 그해 11월에 헌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숙종은 즉위 후 원신궁주 이씨와 한산후를 경원으로 귀양보내는 등 왕권의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뒤이어 즉위한 예종은 이자겸의 딸을 왕비로 들임으로써 경원 이씨와 타협하는 한편, 왕권의 강화를 위해 지방의 중소 세력가 출신으로 관직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된 한안인(韓安仁)을 비롯한 신진 관료들을 발탁해 주변에 포진시킴으로써 기존 세력을 견제시키는 등 왕권을 어느 정도 안정시켰다.

그러나 이후 외척 세력으로 재상(宰相)의 반열에 들어선 이자겸과 신진 관료인 한안인 일파는 상호 대립하게 되었고, 1122년(예종 17) 4월에 예종이 죽으면서 개경의 귀족 사회 자체 내 분열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자겸은 자기집에서 성장한 14세의 외손인 인종을 즉위시키는 데 성공하고 그 공으로 수태사 중서령의 최고직을 제수받았다. 그리고 예종의 동모제(同母弟)인 대방공(帶方公)과 대원공(大原公)을 왕위 찬탈의 음모자로 무고하고 그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의 반대파인 한안인 일파를 살해ㆍ유배시켰다. 또한 1124년(인종 2) 2월에는 무인 출신으로 추신(樞臣)이 되어 권세를 잡았던 최홍재(崔弘宰)를 제거하고 그 공으로 양절익명공신(亮節翼命功臣)을 제수받았으며, 중서령 영문하상서도성사 판이병부 서경유수사 조선국공으로 책봉되었다.

나아가 자신의 세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제와 친족들을 요직에 등용했으며 셋째 딸과 넷째 딸을 인종비로 들였다. 이후 이자겸은 자신의 권력을 배경으로 남의 토지를 탈점하고 뇌물을 공공연하게 받는 등 전횡이 심했다. 이자겸은 한때 사사로이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표를 올리고 토산물을 바치면서 자신이 나라의 모든 일을 맡고 있는 지군국사(知軍國事)라고 자칭했으며, 심지어는 이 직함을 왕이 직접 내려주도록 강청했다.

이를 계기로 인종은 그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마침내 내시 김찬(金粲)ㆍ안보린(安甫鱗) 등과 의논하여 동지추밀원사 지녹연(智祿延), 상장군인 최탁(崔卓)ㆍ오탁(吳卓) 등과 함께 1126년 2월에 거사했다. 즉 오탁 등이 군사를 이끌고 궐내로 들어가 이자겸의 일파인 척준신(拓俊臣)ㆍ척순(拓純) 등 5, 6명을 살해했다.

이 급보에 접한 이자겸과 그의 측근인 척준경은 잠시 당황하다가 먼저 척준경이 군사 수십 명을 거느리고 대궐 앞으로 나오고 이어서 이자겸의 아들로 현화사(玄化寺)의 주지였던 의장이 승병 300명을 거느리고 와서 합세하여 궁성을 포위했다. 그리고 척준경이 중심이 되어 궁궐에 불지르고 반대파를 잡아 살상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인종은 난을 피하여 산호정(山呼亭)으로 갔으며, 신변에 해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이자겸에게 서(書)를 보내 왕위를 넘겨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자겸은 양부(兩府)의 의논이 두려워 감히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재종형제인 이수(李壽)의 반대로 그 서를 왕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자겸은 이씨가 왕권을 잡는다는 십팔자도참설(十八子圖讖說)을 믿고 2차례나 왕을 독살하려 했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딸인 왕비가 인종을 도움으로써 실패했다.

인종은 이자겸과 척준경의 사이를 떼놓음으로써 수습의 실마리를 잡았다. 이자겸의 아들인 이지언(李之彦)과 척준경의 노비 사이에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이자겸과 척준경의 사이에 생긴 틈이 생기자, 왕은 내의(內醫) 최사전(崔思全)을 통해 척준경에게 교서(敎書)를 전해주었다. 교서 내용은 척준경에게 지난 일은 생각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이자겸을 제거해 큰 공을 세울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이었으며, 이어 김부식(金富軾)의 형인 김부일(金富佾)을 척준경에게 보내어 이자겸의 제거 계획을 독촉했다.

이에 척준경은 무력을 동원하여 이자겸과 그의 처자들을 귀양보냈다. 그리하여 이자겸의 딸인 두 왕비가 폐비되었으며, 임원애(林元)의 딸이 왕비가 되었다. 이어 척준경ㆍ이수ㆍ김향ㆍ최사전은 공신호와 관작을 받았고, 이자겸은 그해 12월 유배지인 영광(靈光)에서 죽었다.

그후 척준경은 공신으로서 문하시중에까지 올랐으나 사양하고 문하시랑의 직을 받아 잠시 동안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공을 믿고 지나치게 발호(跋扈)하다가 1127년(인종 5) 3월에 좌정언 정지상(鄭知常) 등의 탄핵을 받아 귀양가서 죽었다. 이로써 이ㆍ척에 의한 파문은 끝이 났으나, 이자겸의 난을 통해 당시 귀족들이 정권ㆍ왕권을 둘러싸고 상호간에 얼마나 치열하게 싸움을 되풀이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자겸의 난으로 정치 기강은 더욱 문란해졌으며 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궁궐이 모두 불탐으로써 귀족층의 분열ㆍ대립이 표면화되거나 귀족 사회 자체가 동요되고 있었다. 즉 이ㆍ척이 제거된 이후 개경의 귀족 세력 가운데서도 특히 김부식 형제(경주 김씨)와 이수(경원 이씨) 및 새로이 외척이 된 임원애(정안임씨)의 계열 등이 크게 부상했고, 한편 척준경을 탄핵하는 공로를 세운 정지상을 중심으로 하는 승려 묘청(妙淸)과 일자(日者)인 백수한(白壽翰) 등의 서경 출신 신진 관료가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이후 서경 천도를 주장하는 서경 출신의 귀족과 이에 반대하는 개경 귀족의 충돌로 귀족 세력 자체 내의 분열이 극심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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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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