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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2-02 (수) 10:10
분 류 사전2
ㆍ조회: 289      
[조선] 이인좌 (브리)
이인좌 李麟佐 ?~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역신(逆臣).

본관은 광주(廣州). 본명은 현좌(玄佐). 관찰사 운징(雲徵)의 손자이며, 윤휴(尹鑴)의 손서(孫壻)이다. 남인의 명가 출신이었으나 남인이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 이후 정계에서 소외되었으므로, 그 역시 관직 진출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1724년 경종의 죽음과 영조의 즉위를 계기로 점점 정계에서 밀리게 된 소론은 남인과 공모하여 영조를 폐하고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추대하는 정변을 계획, 지방에서 먼저 거병하면 경중(京中)에서 내응한다는 전략을 짰다.

이때 이인좌는 남인 명가의 후광을 업고 영남의 유망사족과 접촉해 그들의 정치 행동을 촉구하며 외방 기병의 지휘를 맡았다(→ 색인 : 이인좌의 난). 그러나 1727년 정미환국을 계기로 청남(淸南)과 온건 소론이 조정에 기용됨으로써 반란군의 조직이 약화되어 경중의 내응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고, 반남인ㆍ반소론적인 영조와 노론 세력을 제거한다는 명분도 약화되어 정변은 거의 실패한 듯했다. 그러자 그는 정권에서 소외된 토족ㆍ토호층과 합세하여 1728년 3월 15일 스스로 대원수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켜 청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어 여러 읍에 격문을 보내 병마(兵馬)를 모으는 한편 환상곡(還上穀)을 분급하고 관노비에게 상급(賞給)을 주기도 했다. 반란군을 이끌고 목천ㆍ청안ㆍ진천을 거쳐 안성에 이르렀으나 도순문사 오명항(吳命恒)이 지휘하는 관군에게 패했다. 반란군을 이끌고 죽산으로 피신했으나, 마을사람에게 생포되어 한성으로 압송당한 뒤 능지처참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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