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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2-02 (수) 10:41
분 류 사전2
ㆍ조회: 246      
[조선] 신문고 (브리)
신문고 申聞鼓

조선 시대 백성들이 절차를 거쳐서도 해결하지 못한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왕에게 직접 알릴 수 있도록 대궐에 설치한 북.

이러한 제도는 중국 요임금이 아랫사람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감간지고'(敢諫之鼓)를 두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남조(南朝) 이후 기록에 등문고가 나타나고 당(唐) 이후 조당(朝堂)에 설치했으며, 송(宋)ㆍ명(明)으로 이어졌다.

우리 나라는 1401년(태종 1) 7월 송제(宋制)에 따라 등문고를 설치했다가 8월 신문고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1월에는 신문고를 통한 청원(請願)ㆍ상소(上訴)ㆍ고발(告發) 등의 처리 규정이 자세히 마련되었다. 세종 때 '신'(申)자는 신하들끼리 서로 상대방을 높이기 위해 쓰는 말로, 왕에게 전하는 데 쓰는 말이 아니라고 해서 잠깐 승문고(升聞鼓)로 이름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대궐 안 문루(門樓)에 설치하고 순금사(巡禁司)가 관리하다가, 의금부 당직청(當直廳)으로 옮겼다. 소원(訴寃)할 때 서울은 주무관사(主務管司)에 올리고 지방은 관찰사에게 올렸는데, 그렇게 한 뒤에도 억울한 일이 있으면 사헌부에 고하고 그래도 억울하면 신문고를 쳐서 왕에게 직소(直訴)했다.

중국은 황제에게 직소하는 제도가 아니라 사간(司諫)ㆍ정언(正言)에게 알리는 수단인 데 반해 우리 나라는 사헌부를 거쳐 해결되지 못한 것을 최종적으로 왕에게 직소하는 데 차이가 있었다. 한때 폐지되었다가 1471년(성종 2) 12월 다시 설치되었고, 또다시 폐지되었다가 1771년(영조 47) 11월 복구되는 등 여러 차례 변화를 겪으면서 말기까지 이어졌다.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제도로 설치되었으나, 신문고의 이용이 엄격히 통제되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소수 지배층이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쓰는 등 효율성이 없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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