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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0-28 (화) 19:52
분 류 사전3
ㆍ조회: 617      
[고대] 통일신라의 과학 (민족)
과학(통일신라)

세부항목

과학
과학(한국과학 전통의 형성)
과학(통일신라)
과학(고려의 과학과 기술)
과학(자주적 과학 전통)
과학(실학자의 과학기술)
과학(서구 과학기술의 수용)
과학(광복 이후)
과학(참고문헌)

1. 신라인의 창조적 기술

삼국시대의 창조적 기술의 발전도 신라에서 첨성대와 석굴암, 그리고 아름다운 금속공예품과 청동범종으로 나타났다. 경주 첨성대는 중국에 세워졌던 고대의 측경대(測景臺), 즉 규표(圭表:태양의 그림자를 관측하던 천문관측기계)로서의 구실을 하는 천문대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발견되는 신라인의 창조적 예지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신라인은 단순히 측경을 목적으로 세워진 중국의 직선적인 형식의 천문대를, 아름다운 곡선미를 지닌 우아한 모습으로 발전시켜서 우리다운 소박한 아름다움을 창조하였다.

647년에 세운 경주 첨성대가 의미하는 것은 비단 그 모습이 지닌 한국미의 상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라 천문학자들은 중국에서 천문학과 역학(曆學)을 배워 왔지만, 언제나 배우고 모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다. 첨성대는 그들의 그러한 노력에서 얻어진 귀중한 소산이었다.

신라 천문학자들은 또 천체운행을 관측하기 위한 대(臺) 또는 개방식 돔(dome)으로서, 분점(分點)과 지점(至點)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한 관측소로 쓸 수 있도록 그것에 알맞은 구조를 가지게 하였다. 이러한 다각적 목적에 쓰일 수 있는 천문대는 그 당시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한국고대 과학기술의 백미이다.

신라의 기술자들은 또 하나 석굴암이라는 훌륭한 건조물을 남겼다. 그것은 그 기묘한 구조 및 우아한 조각과 건축기술의 비범함으로 한국 고대예술과 건축기술의 정화로서 평가되고 있다.

751년(경덕왕 10) 김대성(金大城)이 창건한 이 석굴암은 의심할 여지없이 중국의 석굴사원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그것이 자연의 암벽에 조영한 데 대하여, 석굴암은 원형·구형·삼각형·육각형·팔각형에 이르는 모든 구성법을 자유로이 조화하여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 인조석굴이라는 데 그 건축계획의 뛰어난 기술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신라의 실용수학과 기술이 조화된 한 결정이다. 결국, 석굴암의 축조기술은 그 기하학적 축조계획과 그 속에 깃든 천문 및 불교적 사상의 표현으로 특징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미의 창조자로서의 신라공장(新羅工匠)의 기술은 또 하나의 한없이 아름다운 범종을 만들어 내었다. 그들은 중국 고대의 종과 탁(鐸)을 결합하여 신라 특유의 형식을 가진 종을 만든 것이다. 종의 상부에 붙인 용뉴(龍瞿)라는 공명용(共鳴用) 음관(音管)이 그것이다.

신라공장은 종의 주조를 좋게 하기 위해서 동·석·연의 청동에 아연을 더한 황동(黃銅)을 만들었다고 문헌에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9세기 초의 신라 범종의 화학분석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중국의 유명한 박물서(博物書)인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 本草綱目≫에 “페르시아 동은 거울을 만드는 데 좋고, 신라 동은 종을 만드는 데 좋다.”고 쓰여 있는 것도 이 사실을 밑받침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770년(혜공왕 6)에 만든 것인데, 725년(성덕왕 24)에 만든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이룩된 특색 있는 범종 양식으로 알려진 ‘한국종’의 대표적 작품이다.

우리 나라 종은, 종 꼭대기에 용통(甬筒)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관이 용뉴의 한쪽에 붙어 있는 것이 특색이며, 중국 종이나 일본 종에 비해서 각 부분의 비례가 부드러운 균형을 나타내고, 동부(胴部)의 곡선이 우리 나라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또, 그 종소리가 맑고 깨끗하며 은은한 여운이 멀리까지 길게 퍼져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는데, 그것은 신라공장이 만들어낸 합금주조 기술의 소산이다.

신라의 금속공예 기술, 특히 주조기술에서 금동불상의 주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왕족과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을 위해서 더욱 세련되어진 귀금속의 세공기술은 6, 7세기에 이르면서 불교문화의 융성과 더불어 아름다운 금동불상의 주조로 발전하였다.

최근 원자력연구소에서 실시한 코발트 60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이용한 여러 가지 불상과 성덕대왕신종 등의 투과촬영 결과로 그 솜씨가 더욱 확실히 밝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조물의 내부구조와 주조방법을 보여 주고 있으므로, 그 주조기술의 높은 수준을 실험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게 하였다.

금동불상의 주조기술 중에서 가장 복잡한 것은 거푸집의 제작이다. 이때 섬세하고 부드러운 불상의 선을 살리기 위해서 납형이 흔히 쓰였다. 그것은 밀랍에 송진을 녹여 섞은 것으로, 원형을 만들어 부어넣는 데나 납의 흘러 나오는 데를 붙여, 거기에다 주형토(鑄型土)로 고운 가루를 낸 것에 진흙물을 섞어 칠하고 볕에 말려서 불에 구운 뒤 납을 벗기면서 분홍색으로 구워내고, 그 토형의 공동(空洞)에 녹은 청동을 부어넣어서 주조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든 청동제 불상은 흔히 그 표면을 금으로 도금하였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이라 불리는 두 개의 신라 금동불상(국보 제78호·제83호)은 대표적 작품으로 세련된 주조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2. 인쇄술의 발명

1968년 10월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 보수공사 때 발견된 다라니경(陀羅尼經) 인쇄두루마리는 우리 나라는 물론 세계 인쇄술의 시작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낳게 하였다.

세로 10㎝, 가로 5m 가량의 이 다라니경은 한 줄에 평균 8자를 새긴 62줄짜리 목판 12장으로, 한지에 찍어 낸 두루마리였다. 이것이 발견되기 전에는, 우리 나라의 목판인쇄술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때까지는 ≪고려사≫의 기록에 근거를 두어 대체로 11세기 초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던 것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704∼751년 사이에 목판으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인쇄본임이 밝혀지면서 신라에서의 목판인쇄술은 대체로 8세기 초에 시작되었다고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중국에서 목판인쇄가 실제로 발명되었다고 보는 시기인 712∼756년과 거의 같은 시기이거나 오히려 신라에서 먼저 이루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같이 인쇄술의 기초가 되는 여러 발명들이 중국에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발명들이 반드시 중국에서만 인쇄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야만 한다고 볼 수 없으며, 그런 기술적 배경을 받아들이고 있던 신라에서 어떤 특별한 계기에 종합되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견해이다.

그 당시의 신라는 반도의 통일을 이룩한 지 30여 년, 당대의 중국문화를 받아들여 왕조의 지배구조를 완성하고 나라의 가호를 불교신앙에 의하여 이룩하려는 강한 의욕에서, 불교국가를 이상으로 하여 불국사를 건립하기에 이른 신라문화의 전성기였다. 그래서 신라는 중국에서 새로 번역한 다라니경을 들여왔을 때 그것을 여러 벌 인쇄할 필요를 절감하였을 것이다.

또, 기술적으로는 문무왕 대(661∼680)에 동인장(銅印章)을 주조, 지방관청에 나누어 주어 도장이 실용되고 있었으며, 신라의 도공들은 나무에 새긴 형틀로 수많은 아름다운 무늬의 기와들을 찍어서 만들어 내고 있어, 목판인쇄 발명의 바탕과 기술적 가능성은 중국에서와 같이 완전히 성숙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라의 인쇄문화가 일본에 건너가서 770년대의 ≪백만탑다라니경 百萬塔陀羅尼經≫을 인쇄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신라의 목판인쇄는 그 뒤 더 큰 규모로 활발하게 행하여진 것 같지는 않다. 목판인쇄가 대규모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때에 이르러서였다.

<전상운>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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